2019.10.1  통권 206호     필자 : 변성래
[책 속의 중국]
《창랑지수》(1∼3)
옌쩐 장편소설/ 박혜원·공빛내리 옮김/ 비봉출판사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 맑으면 내 갓끈 씻으면 되고,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 씻으면 되지.



이 문장은 삼려대부였던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 난 뒤 강호를 떠돌아다니다가 그를 알아본 한 어부가 어찌된 일입니까 하며 묻자, 굴원이 답하길 “온 세상이 더러운데 나 혼자 깨끗했고, 모든 사람들이 술 취해 있는데 나 혼자 정신이 맑았소. 그래서 쫓겨났소이다.” 하자 굴원을 측은하게 여긴 어부가 그 자리를 떠나며 남긴 노래이다.
 

책의 제목이나 처음 등장하는 문장을 보면 고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소설의 무대는 현대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지대위(池大爲)라는 인물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중국인들의 특성, 중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단지 중국의 상황이 아니라 한국 역시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초상을 발견한 것은 아버지의 유물을 정리하던 때였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나 돌아가신 일이 생생한 꿈만 같았다.” 주인공 지대위는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지시고 난 뒤 운명하신 아버지를 산에 묻고 와서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하도 오래되어 표지색이 변한 《중국 역대 문화명인 소묘》라는 책을 만나게 된다. 공자, 맹자, 굴원, 사마천, 혜강, 도연명, 이백 등 12인의 초상과 그들이 후세에 남긴 말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람 좋다는 건 정말 수지맞는 거다. 제일 수지맞는 장사야.”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나 마을에서 덕망 높고 실력 있는 의사(중의원)였던 그 아버지는 올곧은 삶을 살아가시던 중, 곤경에 처한 마을의 지인에게 힘이 되어주었으나 오히려 그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고 문화대혁명 때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난 뒤 지대위는 북경중의학원(北京中醫學院)에 입학한다.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난 뒤 위생청에 소속되면서 사회생활이 시작된다. 냉정한 현실과 온화한 이상이 충돌을 겪는 시기가 열린다.
 

지대위가 위생청에서 적응하는 과정이 녹록하지 않다. 상하를 떠나 관료들의 보신주의(保身主義), 부패, 거짓 보고, 음해(陰害)등을 직접 목격하면서 심한 갈등을 느낀다. “양심과 책임감이란 지식인이 자기의 인격에 스스로 갖다 붙인 이름이다. 이것은 또한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마음속에 맴돌던 말들로, 심지어 한때는 이것을 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을까 하고도 생각했다. 이 말들은 나를 정의감에 피 끓게 했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 직면하자 이 말들의 설득력은 그리 충분하지 못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주인공 지대위가 관료사회에 진입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인간관계(특히 지위, 계급에 따른)의 갈등이다. 그 가운데서 어떻게 하던 중심을 잡고 흠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젊은 지식인의 고뇌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10년 가까이 말단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중,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이렇게 살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 역시 아버지처럼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막상 현실에 맞닥뜨리며 심한 번민에 휩싸인다.
 

지대위는 그 특유의 성실함이 직속상관인 위생청장의 눈에 들어 서서히 날개를 펼치게 된다.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결국 그가 꿈에 그리던 위생청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어떤 방향에서 이 세상을 경험해 나가더라도 결국은 정신적인 공격을 받게 되어 있다. 어떤 생존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기왕 그렇다면 왜 굳이 내가? 세속적인 삶을 한 편 밀어둔 그런 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책 《창랑지수》는 중국 정부에서 출판만 허가하고 일체의 보도나 광고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왜 그랬을까? 왜 중국 정부는 이 책이 중국 인민들이 많이 읽게 되는 것을 막았을까? 그것은 이 책이 단지 지대위라는 한 개인이 관료 조직 안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내부 고발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정부 관료들의 부패를 정면으로 고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눈먼 돈이라고 부르는 정부 자금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 경쟁하듯 마구 집어쓰는 상황,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던 관례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추태가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다.
 

지대위 역시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끝없는 유혹의 손길이 멈출 틈이 없다. 특히 남자가 일순간에(혹은 한방에)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은 돈과 여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지대위 또한 이 유혹 앞에서 자칫 그 함정에 빠질 뻔 했지만 다행히 그 위기를 잘 넘기긴 했다. 그가 처음에 품었던 맑고 향기로운 생각이 직급이 올라가면서 다소 퇴색되긴 했으나 딱히 그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탓할 자격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세속을 등지고 산으로 올라가거나 글 초두에 언급한 굴원처럼 방랑의 삶을 살지 않는 한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지대위의 멘토 역할을 하는 안지학(晏之鶴) 선생을 주목한다. 안 선생은 이십 년 전만 해도 위생청의 브레인에 통했지만 요즘은 한직으로 밀려난 별 볼일 없는 존재감이다. 그러나 지대위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주고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현재 상황에서 가장 좋은 길을 알려주고 있다. 살아가며 이런 멘토를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