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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중국교회의 ‘생월(生月)’ 9월이 되었습니다. 9월은 중국교회의 ‘생월(生月)’이라고 할 수 있는 달입니다. ‘생월’이란 말이 퍽 낯설게 들리실 텐데요, 중국에 들어간 첫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馬禮遜)은 1807년 1월 31일 영국을 떠나, 뉴욕에서 배를 바꿔 타고 244일이 지난 9월 4일에 마카오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주강(珠江)을 거슬러 올라가 9월 7일, 주일 밤 8시에 광저우(廣州)에 내렸습니다. 그래서 9월을 중국교회의 ‘생월’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저희 중국어문선교회에서는 2007년 3월 15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중국선교 200주년과 선교중국 세미나’를 개최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는 ‘선교중국’이라는 말은 낯설었고, ‘중국선교’라는 말을 많이 쓸 때인데, 중국어문선교회는 대담하게 행사의 타이틀에 ‘선교중국’이라는 말을 내걸었습니다. 이 행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올해(2007년)는 중국에 복음이 전해진 지 200년이 되는 해입니다’고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기는 했어도 한국교회는 이상하게 중국선교 200년의 해를 덤덤하게 보낸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니 어언 12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중국을주께로> 100호 감사예배’를 함께 드렸는데, 이제 205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모리슨 선교사가 중국에 첫발을 디딘 9월을 맞으면서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모리슨은 16세인 1798년 전반기에 회심의 체험을 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기는 모리슨을 연구하는 데 아주 귀중한 자료로 쓰이고 있는데, 회심 이듬해인 1799년 9월 28일의 일기에는 “성경은 나의 유일한 과목이며, 나는 하나님이 거기에 그 은혜로운 축복을 덧붙이실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모리슨은 여러 분야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중국선교 활동을 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역경(譯經), 다시 말씀 드려 성경의 중국어 번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신천성서(神天聖書)>인데, 번역에 무려 12년이 걸렸습니다. <신천성서>의 번역이 끝난 날은 1819년 11월 25일입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신천성서> 번역 2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6세 때의 성경에 대한 체험과 고백은 이 일을 하게 한 동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능히 하실 것” 모리슨은 해외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서 “오, 주여! 저는 이 복음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 곳에 비록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 오, 주여! 이 일을 위하여 저를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1804년에 런던선교회에 입회를 신청하여 허락을 받고 선교사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모리손은 중국으로 갈 때 뉴욕에서 배를 바꿔 탔는데, 그가 탄 트라이던트(Trident)호의 선원들은 중국을 여러 번 오간 경험이 있어서, 중국에 전도하러 가는 청년을 우습게 보며, 당신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조롱삼아 물었습니다. 그때 모리손은 “아닙니다, 선생.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능히 하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십여 년 전에 저는 이 ‘발행인 통신’들을 모아 조그만 책자 한 권을 중국어문선교회의 시님 출판사에서 발행하였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좀 독특했습니다. <하. 기. 영.>, 무슨 뜻일 것 같습니까? ‘하’는 하나님, ‘기’는 기도, ‘영’은 성령의 준말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하’는 바로 모리슨 선교사의 이 말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기’는 허드슨 테일러의 “발 대신 무릎으로”라는 말에서 따왔고, ‘영’은 조나단 고프트의 “오직 나의 영으로”(슥 4:16)에서 따왔습니다. 저는 이 셋이 중국 사역의 불변의 3대 동력임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모리슨은 1821년에 사랑하는 아내 메리를 병으로 잃었고, 이듬해에는 동료 선교사였던 밀레(W. Milne)가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비통한 마음과, 그런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냈네. 지금은 또 밀레를 (……). 그러나 나는 결코 원망하지 않네. 비록 나 홀로 여기 남아 있지만,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이전부터 도와주셨네.”라고 적었습니다.
모리슨은 중국에서 17년간 선교활동을 하고 1824년에 일시 귀국을 했습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에 그는 중국을 소개하는 강연과 세계언어연구소 설립 등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1826년에 다시 중국으로 향합니다. 송별모임에서 모리손은 “우리는 군주들이나 왕들로부터 어떤 권위도 부여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능변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외교적 기교나 수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설가가 아닙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 대한 모든 의존관계를 끊어야만 합니다. (……) 우리의 고통에 관하여 영원히 침묵합시다. 그리스도께서 견뎌 내신 고통을 생각해 냅시다. 그러면 우리의 고난에 빛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고별사의 끝 두 문장, “그리스도께서 견뎌 내신 고통을 생각해 냅시다. 그러면 우리의 고난에 빛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를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의 성도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중국에 돌아온 모리슨 선교사는 쉬지 않고 일하다가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눕게 되었고 1834년 8월 1일 저녁 10시 경에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기 직전 그는 주변의 신도들에게 “지금은 얼마 되지 않는 신자가 백 년 후에는 만 배로 증가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명확하게 보고 있습니다. 9월이, 중국 사역의 동역자들이 그리고 중국의 성도들이, 모리슨 선교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교훈과 용기를 얻는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끓는 가마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에 들어와서 동아시아에 격랑이 일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겪고 있습니다. 북한은 ‘발사체’를 계속해서 발사해서 관련 국가들, 특히 한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있고,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던 남한을 향해 거친 언사를 연일 내뱉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간 갈등의 골은 날로 깊어 가기만 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도 마찬가지의 모양새입니다. 홍콩의 시위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동아시아가 ‘끓는 가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와 같은 정세가 중국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바른 답을 찾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중주>에는 ‘하나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바른 답을 <중주> 가족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실무진의 이 같은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중국 당국의 기독교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비자발적인 귀국을 하는 한국선교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통일선교 사역을 하고 있던 분들도 많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을 통한 통일선교가 위축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에 대해 생각하는 기획 글을 마련했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9월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수립일인 ‘구구절(9월 9일)’이 들어 있는 달이기도 하네요.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즐거움이 풍성한 추석 맞으시기 바랍니다.
사진 | 바이두 유관지|중국어문선교회 고문,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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