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즈치(潘志琪)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2018년 제55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馬獎)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수상후보에 올랐다. 판즈치는 베이징영화대학(东北师范大学)을 졸업한 뒤 저장(浙江)커뮤니케이션대학에서 영화예술 전공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항저우(杭州) 24번가(24号大街)개발지역에서 일하는 농민공(農民工) 쑤용허(苏永禾, 60세)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유랑의 발자취를 추적하였다.
이 영화는 아시아 기록영화의 발굴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본 NHK, 한국 KBS, 대만 PTS, 싱가포르 MediaCorp가 공동 제작하였다. 판즈치 감독은 촬영과 편집을 겸했고, 프로듀서는 이마이 요코(今井陽子) 등이 맡았다. 그리고 2017년 9월 1일 일본에서 방영되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일본어 제목은 ‘유랑하는 농민공 이야기’이다. 쑤용허는 고향을 떠나 30년간 윈난(云南), 쓰촨(四川), 신장(新疆), 지린(吉林), 랴오닝(辽宁), 저장 등 여러 지역을 떠돌았는데, 그가 농민공으로 유랑했던 기간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시기와 맞닿아 있다.
농민공의 위기: 공헌과 위법 농민공은 호구(戶口)가 있는 농촌을 떠나 타지로 가서 일하는 사람과 고향이 속한 행정구역에서 일하는 농민을 가리킨다. 중국에는 수억 명의 농민공이 있는데 대부분 서부지역 출신으로 경제가 발전한 동남부 대도시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옮겨 다닌다. 중국 정부는 인구이동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호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공들이 임의로 호구를 도시로 옮기는 것은 거의 힘든 실정이다.
60세인 쑤용허는 젊어서 서부 구이저우(贵州)성의 농촌지역을 떠나 수십 년간 중국 전역을 떠돌다가 개발 중인 항저우에서 허름한 천막을 치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점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허름한 천막 노점식당은 폭우가 쏟아지면 빗물이 천막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는 길가에 있는 소화전을 틀어서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몸을 담그기도 하고 빨래도 하였다. 쑤용허가 노점식당을 운영하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만할 때 뜻밖의 노점식당을 철거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쑤용허가 영업허가증이나 위생허가증도 없이 불법으로 영업을 하였고 불법 건축물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쑤용허는 정부 관리들이 법을 집행한다는 명분하에 자신을 공민(公民)으로 취급하지 않고 난민으로 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부동산 투자자들은 항저우 24번가에 5성급 호텔이 들어선다고 자랑하며, 항저우에 불법 건축물들이 호텔 아래에 즐비하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따지며 여기가 농촌이냐고 오히려 비아냥거렸다. 쑤용허는 천막을 걷고 이삿짐을 삼륜차에 실었다. 그리고 잡풀들이 무성한 황무지에 이삿짐을 풀었다. 그는 땅을 일궈서 채소를 심고 다시 천막을 세우고 더 많은 농민공 손님들이 찾아 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또 도시 관리자들이 와서 연말이 되기 전에 천막을 철거하라고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쑤용허는 1천 위안이라는 적은 배상금에 불만을 터뜨리며 시공사 책임자에게 배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애썼다.
쑤용허는 중국의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위반하여 하루아침에 공산당 당적을 박탈당하고 공무원 직위조차도 내려놓고 고향인 구이저우성 안순(安順)을 떠나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신장까지 금을 캐러 다니는 등 중국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이리저리 유랑하는 삶에 지쳤던 쑤용허는 노년에 남에게 빌어먹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힘으로 애써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왜, 갑자기, 삶의 터전이 철거를 당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중국의 땅이 아무리 넓어도 정작 자신은 편안하게 머무를 곳이 없다고 탄식하였다. 그는 또 도시 관리자나 상인, 투자자들이 자신과 같은 농민공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고도 불평하였다.
한때 중국 경제 쾌속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농민공들은 발전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이제는 시대의 낙오자가 되었다. 현대화와 도시화라는 고속 발전의 뒤안길에서 삶에 허덕이는 농민공들의 생존 권리를 그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수차례 철거를 당해 힘든 시기를 보냈던 쑤용허는 말기 암으로 고생하면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농민공의 고향: 변화하는 농촌 구이저우와 윈난 등 서부지역개발은 지역불균형발전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2010∼2030년 2단계에서는 발전의 가속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동부와 서부지역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어 중국 정부는 철도와 도로건설 공사를 중심으로 서부의 열악한 인프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쑤용허는 도로와 철도 공사 등 개발이 진행 중인 고향 구이저우 안순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졌다.
2014년 쑤용허는 동거녀인 천친메이(陈琴妹)와 우시(无锡)로 가서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지내다가 수십 년간의 유랑생활에 지쳐 고향에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오랜 세월 아이들을 혼자 양육했던 아내를 차마 볼 면목이 없어서 늘 귀향을 미루어 온 그였다. 그는 한편으로 고향에 고속철이 들어오고 고속도로가 생기면 농촌의 생활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2014년 말 쑤용허는 우시에서 구이저우 안순으로 귀향할 때 동거녀인 천친메이의 집에 먼저 들렀다. 천친메이의 아버지는 쑤용허에게 언제까지 떠돌아다니며 인생을 낭비할거냐?, 모아 놓은 재산은 있냐?,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 하며 계속 질문을 퍼붓자, 쑤용허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쓴웃음만 지은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동거녀의 고향집을 빠져나왔다.
쑤용허가 다시 찾아온 고향은 도로를 건설한다며, 300여 년 전에 삶의 터전을 일구기 위해 땀을 흘렸던 조상들이 잠든 묘원에서 묘지를 이장하느라 분주하였다. 부동산 업자들은 곳곳에서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여 앞으로 중국인의 절반이 도시민이 될 것이고, 도시화와 개발의 속도에 따라 중국인의 부(富)가 결정될 것이며, 경제와 상업이 도시에 집중되고, 시장이 형성되면 돈을 더 많이 벌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장밋빛 희망만을 제시하였다.
쑤용허의 고향 동네 곳곳에는 ‘빈곤 탈출’, ‘신농촌’이라는 커다란 빨간색의 글씨 표어들이 붙어 있었다. 쑤용허는 고향에 정착하려고 축산농가 지원금을 신청하였다. 개발과 도시화의 바람이 농촌과 중소도시에도 불어 닥쳤다. 쑤용허의 고향 안순은 2017년에 국가원림(园林)도시로 지정되었고, 2018년에는 중국 우수 관광지로도 선정되었다.
농민공과 가족: 낯섦과 해체 농민공들이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면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부모와 헤어져서 농촌지역에 그냥 남아서 지내게 된다. 성인이 된 농민공의 자녀들 가운데는 아버지 세대들처럼 도시에서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아버지 세대의 농민공들은 점점 늙어가고 아이들은 자라나는데 자식과 헤어져서 살고,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도시로 들어가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살 수도 없는 곤경의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는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농민공은 다음 세대가 그들 세대처럼 곤경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까 걱정이 태산이다.
쑤용허는 아내 황다오펀(黄稻芬)과 사이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는데 아들은 아버지처럼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농민공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너무 화가 난 큰딸은 지금까지 아버지의 구차한 변명을 실컷 들어왔고, 아버지는 위선자에다 거짓말쟁이라고 화를 내며 대들었다. 큰딸은 또 아버지한테 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회의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적이 있었냐며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막돼먹은 것은 부모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며 울부짖었다. 큰딸은 또 어머니 혼자서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다고 주장했고,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남편한테 가족을 위해 돈을 얼마나 보내줬냐고 따지고 들었다.
쑤용허는 아내와 큰딸이 자신과 동거녀를 받아줄 가능성이 없고 같이 살게 되면 집안에 분란만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어, 다시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쑤용허는 농민공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항저우 24번가를 찾았다. 항저우 24번가는 여러 채의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과거에 천막 노점식당을 하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으로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서 쑤용허는 동거녀 천친메이와 함께 삼륜차에 간이침대를 싣고 공사장 근처 공터를 찾아 나섰다. 감독은 쑤용허는 현재 우시에 있는 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럭저럭 지낸다고 전했다.
호구가 있는 고향을 떠나 농민공 생활을 하는 그들은 자녀교육, 가족의 취업, 가계대출, 연금, 퇴직금, 의료혜택 등 사회적 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자녀 세대까지 빈곤이 대물림되고는 한다. 중국의 도시화와 초고속 성장 속에 수많은 농민공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생존할 공간조차 보장되지 않아서 가난과 노화, 질병 등 낮은 삶의 질에 허덕이며, 고향과 가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등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로, 무정한 남편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수많은 농민공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은 2014년 호구제도개혁안을 마련하여, 중소도시와 대도시 주변 위성도시에서 농촌 출신들에게 도시 호적(戶籍)을 발부하였다. 아울러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1억 농민과 기타 도시 상주인구가 도시 호주(戶主)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노력했지만 취약하고 소외된 계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노후생활과 가정의 안정을 보장받아 삶의 질이 향상되기를 소망한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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