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통3.jpg)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주> 가족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또 중국의 14억 영혼을 변함없이 아니, 지금 더 사랑하고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이제 ‘신중국’ 건국 70년의 해, 2019년의 하반기가 시작되었는데요, 하반기에 중국 사역과 관련해서 밝고 시원한 소식들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중국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무겁게 만들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의미가 있고, 교훈이 있지요. 그 의미와 교훈을 잘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국 사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중국교회의 어려움에는 ‘특별한’ 의미와 교훈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깨닫고 용기를 가다듬는 하반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백구은’이라고 했을까? <중주> 가족들 가운데는 베순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베순은, ‘베쑨’으로 많이 표기되기도 하는데, 중국의 항일전쟁 시기에 종군 의사로 참전하여 많은 도움을 준 캐나다 출신의 흉부외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수술 중에 입은 상처 때문에 패혈증에 감염되어 1939년 11월 1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890년 3월 3일에 출생했으니 50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생애를 기록한 것이 됩니다. 국내에는 베순의 일대기가 《닥터 노먼 베쑨: 세계를 감동시킨 한 휴머니스트 의사의 일대기》라는 제목으로 1991년에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 찾기’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저자는 테드 알렌과 시드니 고든이고 역자는 천희상입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생명의 칼, 정의의 칼 (The Scalpel, the Sword)》인데 1950년대 초에 캐나다에서 출간되었고, 중국어를 비롯하여 19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출간 1년이 조금 지나서 14쇄(刷)를 찍었고, 2011년에는 양장본이 나온, 베스트셀러입니다. 국내에는 베순을 소개하는 책이 이것 말고도 두어 종이 더 있습니다. 베순의 풀 네임은 헨리 노먼 베순(Dr. Henry Norman Bethune)인데, 중국어로는 ‘亨利·诺尔曼·白求恩’라고 적습니다. 중국어로 번역된 이름을 볼 때마다 ‘베순’을 왜 ‘백구은’이라고 번역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베순을 중국어로 바꾸면 ‘備孫’이 될 것이고, ‘白求恩’은 ‘바이추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서 ‘흰 머리의 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번역했다는 것을 읽었는데, 베순의 사진들을 보면 머리가 크게 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求’자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白’은 ‘피부가 흰 사람’ ‘백인’이라는 뜻이고, ‘求’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수없이 구해주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求恩’은 ‘은혜를 구한다’는 뜻이 되어, 기독교적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베순의 아버지는 장로교 목사였는데, 부자들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베순은 가난한 환자들을 돕기 위해 늘 힘썼는데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중국의 베순 사랑 중국의 베순 사랑과 추모는 실로 대단합니다. 중국에서는 백구은을 ‘중국 인민의 영원한 친구’로, 또 ‘중국의 은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오쩌동(毛澤東)은 베순이 종군 의사로 일할 때, “백구은이 하는 일은 전적으로 도와주고 그의 명령에 따르라”라고 휘하 지휘관들에게 지시했고, 그가 사망한 직후인 1939년 12월, “베순을 기념하며(紀念白求恩)”라는 글을 발표해서 그를 추모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 혁명열사릉에 묻혔고 그 지역에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스자좡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이 세 개나 있습니다.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는 그를 기념하는 백구은의과대학이 있습니다. 이 대학은 국내의 여러 기관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여기에서 공부한 한국인들도 여럿이어서 우리나라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창춘의 백구은의과대학은 거리에 연접해 있기 때문에 ‘길거리대학’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3년 전에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갔을 때 원래 선교목적으로 세워졌던 병원을 잠시 방문했는데 백구은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는 것을 보고 급하게 메모해 두었는데, 그 메모지를 찾지 못해 여기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네요. 캐나다에도 요크대학교에 그의 이름을 딴 의과대학이 있고, 그레이븐허스트의 그의 생가는 캐나다 정부에서 매입하여 노먼 베순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몬트리올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의 탄생 100년이 되는 1990년에는 중국과 캐나다에서 공동으로 그를 기념하는 같은 디자인의 우표가 발행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중국 청취자들의 편지를 많이 받던 방송선교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오는 편지 봉투에 서양인 의사가 수술을 하는 광경이 인쇄된 우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선교사 같아 보이는데…’ 했더니 중국 직원이 “그 사람 대단한 공산주의자예요”라고 가르쳐 주더군요. 베순은 공산당원이었고 그것을 늘 자랑했습니다. 과연 잘하는 일일까? 베순에 대해, 특히 중국이 베순을 대대적으로 추모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베순만 흰 머리의, 또는 흰 피부를 가진, 중국의 은인일까?’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초기에 중국에 들어간 선교사들은 중국에 복음을 전하면서 중국의 의료와 교육과 사회개선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점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순은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을 중국에서 일했는데, 선교사들 가운데는 그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을 중국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헌신적으로 일한 분들이 많고, 중국에 묻혀 있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베순은 공산주의자로서 마오쩌동이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치열하게 중국을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하루에 18시간 이상을 환자를 돌보았고 의료진 양성 등 많은 일을 하면서 하루에 10건의 수술을 했는데, 69시간에 115명을 수술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중국이 베순을 은인으로 기억하며 추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자기들을 도운 다른 백인들, 특히 선교사들을 제국주의 침략의 앞잡이로 몰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공평하고 정당하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은 여러 신분으로 중국에 들어가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을 돕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추방하기 바쁜데 그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도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월간지들 가운데는 7월호와 8월호는 합병호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원 휴가 등 여러 이유 때문이지요. <중국을주께로>는 합병호가 없습니다. 7월에 이어, 8월에도 변함없이 <중주> 가족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여름 햇살만큼이나 뜨거운 <중주> 가족 여러분의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사진 | 바이두 유관지|중국어문선교회 고문,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