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3  통권 201호     필자 : 하보라
[선교현장 이야기]
사랑했던 그 땅을 떠나오며

중국 정부는 종교탄압을 강화하기 위해서 2017년부터 ‘신종교사무조례’를 만들어 공포하였다. 이 조례를 일 년 동안 시범적으로 시행해 오다가 2018년 2월 1일부터 본격 실행하였다. 설마설마했던 종교 탄압은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 미풍으로 불어오던 외국인선교사 추방의 바람은 어느새 태풍으로 변했다. 중국 도처에서 사역하던 외국인선교사들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서, 대대적으로 출국 초치를 당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중국에서 사역하던 한국선교사들이 추방되어 귀국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선교사를 추방하는 방법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공안이 선교활동 현장을 덮쳐서 선교사를 취조한 뒤에 추방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종교관리담당자들(혹은 안전국 직원들)이 직접 선교사의 집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그들은 선교사를 데려가서 취조한 후에 비자를 말소시키고 곧장 출국 조치한다. 이때 중국 지역의 상황에 따라서 선교사들은 구치소에 며칠씩 구금(拘禁)되기도 하고,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몰수당하기도 한다. 또 다른 형태는 선교사가 비자를 연장할 때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거나 혹은 비자는 일단 발급해주고 현지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할 때 입국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는 첫 번째 방식에 해당된다. 중국 종교국 직원들이 공안들을 대동하고 직접 사역하고 있는 현장으로 찾아왔다. 졸지에 현장범(?)으로 붙잡히게 되었다. 2018년 여름 어느 주일 오후, 중국의 한 도시 한족 가정교회에서 기도회를 막 마치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종교국 직원들이 공안을 대동하고 교회로 들이닥쳤다. 여자 공안까지 합쳐서 어림잡아 20여 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캠코더를 들고서 교회 내부와 참석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찍었다. 다른 한 사람은 중국 형제자매들에게 신분증을 내놓으라면서 그들의 신분증을 하나하나 모두 걷었고, 필자는 여권도 빼앗겼다.

그들은 2대의 경찰차를 교회 밖에 이미 준비해 놓고 있었다. 당시 교회에 있던 모든 중국 신도들과 한국인인 필자를 분리해서 각각 다른 차에 타게 했다. 차에 오르자 한 여자 공안이 필자의 중국어 성경책과 성경공부 교재, 휴대전화, 지갑 등을 빼앗아 갔다. 중국 신도들을 태운 경찰차는 먼저 파출소로 향했고, 필자를 태운 경찰차는 필자의 집으로 갔다. 그들은 집 주소를 이미 알고 있었다. 10명의 공안들이 방에 들어가서 컴퓨터(데스크톱, 노트북, 아이패드, 유에스비 등)와 사역 관련 자료들, 개인 재정 장부, 훈련 받고 있는 중국인 명단, 사역일지 등을 찾아내어 상자에 모조리 담아갔다. 그때도 그들 중 한 사람은 필자와 방의 내부를 계속 캠코더로 찍어댔다. 영장도 없이 외국인의 집에 쳐들어와서 물건을 함부로 뒤지고, 사진을 찍어대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오후 3시 조금 넘어서 인근 파출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취조는 밤 1시까지 장장 10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들은 중국 신도들과 나를 따로따로 취조를 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대비를 해왔건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처음 당하는 취조에 많이 놀란 탓인지 팔다리는 떨렸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을 연거푸 마셔가면서 긴 시간 조사를 받았다.

10시간 동안 취조를 받는 가운데 취조 장소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조사를 받은 장소는 파출소의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대략 7-8명의 중국인들이 그곳에 앉아 있었고, 그 가운데 한 여자는 필자에게 신종교사무조례를 보여주기 위해 책을 펼쳐놓고 있었다. 취조 책임자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취조 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기록했다. 그의 옆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미 필자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있는 듯 했으며, 질문에 답할 때마다 입을 씰룩거리면서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취조할 때 같은 질문을 서너 번씩 되풀이해서 물었고, 강제로 빼앗아 간 휴대전화와 노트북의 자료를 비교하면서 조사를 이어갔다. 어느덧 3시간이 흘렀고,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그들은 도시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이 와중에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취조 받는 내내 얼마나 목이 타던지 엄청나게 많은 물을 마셨다. 좀 과장해서 한 달 먹을 물을 그날 다 마신 것 같다. 

저녁 때가 되자 취조 장소에 같이 있었던 중국인들은 퇴근을 했는지 다 사라졌고, 처음 취조했던 책임자만 남아있었다. 파출소 옆 건물로 옮겨서 다시 취조를 받았다. 새로 옮겨간 사무실은 이전 방보다 넓었고, 컴퓨터가 놓여져 있었다. 잠시 후에 새로 젊은 남자가 들어와서 그동안에 취조했던 내용을 다시 묻거나, 보충 질문을 하면서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자료가 A4 용지 5장, 그는 그것을 출력해서 필자에게 건네주었다. 내용을 읽어보고 매 장마다 서명하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미 시계가 저녁 9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이제 모든 조사가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젊은 직원이 다시 파출소의 다른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파출소 한쪽 모퉁이에 마련된 구치소의 옆방이었다. 아주 작은 방에 책상이 하나 있었고 책상 위에는 수갑이 놓여있었다. 책상 맞은편 천장에는 전등이 하나 달려있었는데 그 불빛이 너무 강했다. 아마도 잠을 자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인 듯 했다. 말로만 듣던 구치소를 내가 사랑하는 중국에서 오게 되다니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서 다시 4시간 동안 취조를 받았다.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수갑을 채우겠다고 협박을 했다. 평소 안구건조증이 있었기에 천정의 전등에서 내리쬐는 강한 불빛 때문에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필자를 다시 취조한 그는 A4 용지 2장의 자료를 더 만들어냈고, 읽어보고 서명을 하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새벽 1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취조가 끝나자 한 조인 듯한 2명이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컴퓨터와 유에스비, 여권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들을 돌려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을 청하여 보았지만 너무 갑작스레 당한 큰 충격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구치소 전등의 강렬한 불빛 탓이었는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서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 후에도 며칠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화요일 오후 그들은 컴퓨터를 돌려주겠다고 다시 찾아왔다. 컴퓨터를 돌려준 뒤에 필자를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또다시 2시간여 동안 취조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하루걸러 한 번씩 만나서 보충 취조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총 6번 그들을 만났다. 그들이 전화를 해서 며칠 날 다시 만나자고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가슴이 벌렁거려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텅 빈 방에서 하나님께 홀로 도움을 구했다. 그들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사용하며,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회유하여 그들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당시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다른 선교사들에 대해서 물어올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괴로웠던 당혹감, 영장도 없이 집에 쳐들어와서 함부로 뒤지고, 컴퓨터와 물건들을 강제로 가지고 간 그들의 야만적 행동과 휴대전화와 컴퓨터의 자료들을 허락 없이 조사한 그들의 무례함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리고 허락도 없이 얼굴과 집안 곳곳을 캠코더로 촬영한 것에 대한 불쾌감, 또 사생활 하나하나까지 남에게 노출되었다는 것에 대한 수치감 등등.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낮에는 집에서 짐을 정리하면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퇴근한 중국 형제자매들이 돌아가면서 필자의 집으로 찾아와서 같이 식사하면서 교제를 했다. 때로는 그들과 같이 울면서 중국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중국 신도들과 끝까지 교제를 나누면서 잘 마무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날도 중국 형제자매들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서 환송해주었다. 그렇게 하여 필자가 중국 안에서 했던 14년간의 선교 사역은 막을 내렸다. 이제는 더 이상 중국 안에서 성경 말씀을 배우고 싶어하는 목마른 중국 형제자매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국에 있는 중국선교단체에서 10년, 중국에서 14년 총 24년간 중국선교 사역을 하였다. 종종 사람들이 어떻게 중국선교를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사실 특별한 이유 없이 중국이라는 나라가 좋았고, 중국어 공부가 재미있었고, 중국인들을 사랑했다. 아마도 필자는 중국과 중국인을 짝사랑한 것 같다. 중국선교를 위해서 청춘을 불태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그 땅을 밟을 수 없고, 그리운 중국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 없다. 지금도 종종 그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 가끔 위챗(微信)을 통해서 안부를 묻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뿐이다. 개인적인 소망은 중국에 더 남아서 사역을 하고 싶었지만 중국 정부의 새종교사무조례에 의해서 부득불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교회가 이번의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더욱더 견고해지고, 외국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자립하는 교회로 서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필자는 오늘도 다시 하나님께 기도한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어딘지 말씀해달라고. 그리고 영육의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어서 담대히 그 길로 달려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필자가 한 중국선교 사역은 중국교회 역사 중에서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사용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린다. 할렐루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보라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