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  통권 200호     필자 : 시과
["중주"와 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중국을주께로〉가 되기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여호수아 1:7)

〈중국을주께로〉 발간 200호 기념 원고청탁을 받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을주께로〉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중국에 대한 유익하고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고, 중국선교에 대한 큰 도전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사역에 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울러 지금 현재 직면한 문제보다는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비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두 발은 땅을 딛고 앞으로 걸어가도록 만드셨는데, 여기서 땅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며 공중은 우리의 이상과 신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듯이 우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이해하고 여기에 기초를 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때 한 발은 위로 들리고 다른 한 발은 땅을 딛어야만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밟게 되는 땅의 상태를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정확히 파악하며 내딛게 됩니다. 우리의 이상과 신념이 아무리 높고 확고할지라도 현실에 기초하여 한걸음씩 전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현실을 망각한 소명의식이나 사명감만으로 사역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시 높이 뛰어오를지라도 바로 현실이라는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높이뛰기 선수는 그 키를 훌쩍 뛰어넘는 점프를 하지만 다시 떨어지는 충격은 뛰어오른 높이에 비례하여 커진다고 합니다.
 

비전과 사명감에 고무되어 달려가면서도 우리는 현재 처한 상황을 망각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늘 앞을 향하게 만드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몸을 옆으로 돌리거나 뒤를 돌아볼 때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늘 현재라는 시간 속에 우리의 몸을 맡기고 미래를 바라보며 걸어가야 합니다. 과거를 생각할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정부가 온 국민에게 미래의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과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왼쪽이나 오른쪽을 바라볼 때도 우리 몸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의 사역을 다른 사람들의 사역과 비교를 하면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심할 경우에는 그로 인하여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몸을 옆으로 돌리다가 잘못하여 삐끗하게 되면 오랜 시간 그 통증으로 인하여 고생하듯 그 시험에서 벗어날 때까지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팔과 두 손은 우리의 사역을 말합니다. 우리의 지체 가운데 가장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두 팔과 두 손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고 얽매이게 됩니다. 현실이라는 환경에 얽매여 육신의 일을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신념과 이상에 중심을 둔 사역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일을 할 때 한 손만 가지고 일을 하면 불편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한 손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지라도 두 손을 함께 사용하게 되면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역을 할 때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들과 함께 협력하여 사역을 하면 좀 더 편안하고 능률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동역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은 하나입니다. 손도 발도 귀도 눈도 둘이지만 우리의 입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은 오직 주님이 주신 말씀이어야 합니다. 과거를 이야기할 때도 현실을 이야기할 때도 또 미래를 이야기할 때도 오직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며 그 말씀이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고 소망을 주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뒤를 보고 이야기하거나 옆을 보면서 이야기할 때는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거나 옆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는 불편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포하는 말씀은 미래의 비전과 사역에 중심을 둔 말씀이 더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두 귀입니다. 귀는 서로 반대편에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두 귀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한 귀로는 듣고 한 귀로는 흘려버리라고 두개의 귀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고 만들었다면 한쪽 귀에서 반대쪽 귀를 통해 바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두 귀의 중간에는 우리의 머리가 있습니다. 한쪽의 말을 듣고 판단하지 말고 이쪽저쪽 말을 다 들어보고 판단하여 말하라고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말에도, 부정적인 말에도, 칭찬하는 말에도, 욕하는 말에도 혹하지 말고 한편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잘 판단하여 말하고 행동하여야 할 것입다.
 

 

그 다음은 우리의 두 눈입니다. 우리의 두 눈이 앞에 하나가 있고 뒤에 하나가 있다면 앞뒤를 동시에 볼 수 있어서 참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앞뒤에 하나씩 만들지 않고 다 앞에 두셨습니다. 두 눈을 가지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편향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미래를 바라보아선 안 됩니다. 긍정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사역의 계획을 세워서도 안 되고 부정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계획을 세워서도 안 됩니다.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함께 검토해야하며 한국 사람의 관점과 현지인의 관점을 함께 가지고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머리입니다. 발은 땅에, 몸은 앞으로, 머리는 하늘로 두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목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분별하며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200호를 맞는 〈중국을주께로〉가 지금까지 이 대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사랑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또 다른 역사를 위해 중주가 앞으로 나가기 위하여 오늘의 현실을 잘 진단하고 나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미디어 시대이며 유튜브를 중심으로 개인 미디어 시대를 향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국을주께로〉와 우리들의 사역도 이런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적응 할 것이며 또한 우리의 사역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냉철한 현실의 진단이 있어야 하고 또 다가오는 미리 시대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 중주에서 다루어지고 그런 글들이 지속하여 계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양한 계기로 중주와 선교회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새로운 소망이 생기고 또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설정하기도 하며 새로운 도전과 힘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중국을주께로〉를 통해 사역의 문이 열려지고, 선교회를 통해 동역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미래 사역의 목표를 설정하고 앞으로 전진 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중국을주께로〉가 미래의 세대에 대한 사역의 준비를 할 수 있는 멋진 사역의 비전을 제시 해 줄 수 있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시과 | 순회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