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4  통권 199호     필자 : 시과(西瓜)
[선교현장 이야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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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롬 12:14-15)

지난번에 여권을 잃어 버렸을 때 도움을 받았던 D권사님을 만나 보기 위하여 A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늦게 도착하였기에 먼저 저녁을 먹고 예배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픈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고, 그 다음날 한 집사님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한족(漢族) 목사님 두 분이 집사님과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과는 다르게 그저 인사만 하고는 자기들은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겠다고 하면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 느낌이 나를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행들과 점심을 주문하여 함께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뒤에 다른 교회 성도들이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017년 11월 A시에서 약 300여 명이 넘는 성도들이 다니는 한족교회가 문을 닫는 것을 시작으로 지난 1년간 다섯 개가 넘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 분이 교회가 문을 닫아서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목사님과 다른 성도들이 자기를 마치 벌레 보듯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킥킥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는 이제 어디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자기도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였다. 교회들이 문을 닫기 전에 사정상 삼자교회로 옮겼던 성도들도 자기들도 처음 갔을 때 그런 것을 많이 느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다른 성도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 되지 사람을 볼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다른 성도들이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고 목사님도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는데 어떻게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있냐며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5-6명씩 가정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겠냐고 하였더니 그것도 힘들다고 하였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사실 내가 양육한 성도들도 아니고 대부분 전혀 만나 보지도 못하였던 성도들이기에 내가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또 나에게 아주 좋은 방안이 있다고 하여도 내가 이들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다 만난 주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여 안타까워하고 있기에 마음이 아팠다. 더욱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마음은 더 아팠다. 이 일은 나에게 우리의 선교 방법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는데, 나는 이들 교회와 교류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내부 상황보다는 밖에서 보이는 외부적인 것만을 생각해 보았다.
 

먼저는 문을 닫았던 교회들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들 교회는 대부분이 큰 교회에서 담임목사님과의 갈등으로 인해 부교역자들이 성도들을 따로 데리고 나와서 세운 교회들이었다. 그러다가 보니 모(母) 교회와의 교류는 중단되고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것이다. 성도들이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외면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특히 중국교회 현실에서는 각 지역의 교회 양회(兩會) 회장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그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으니 어떤 문제가 드러났을 때 양회 회장인 목사가 정부에 그들의 문제에 대해 양해를 구하거나 부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 세력에 동정하여 핍박을 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선교사들의 지원을 받아 교회가 갑자기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말씀을 배우면서 그 믿음의 성장을 따라 천천히 성장하면서 먼저 믿은 성도가 나중에 들어온 성도들을 자신이 아는 만큼 가르치면서 성장하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서로 의논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이번 일처럼 갑자기 교회가 문을 닫게 되는 경우 소그룹으로 가정에 모여서 지속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자신들의 능력이나 역량과 관계없이 돈으로 교회를 세우고, 믿음이 아닌 다른 어떤 기대로 인해 모여진 사람들로 세운지 1-2년 만에 백여 명의 성도들이 모이다 보니 교역자들은 미쳐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가 커져 버리니 성도들의 양육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지역적인 문제이다.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 전도를 해서 들어온 성도보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성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도시 지역에 있다 보니 학업 문제로 또 직장과 사업 문제로 시골에서 이주해온 성도들이 많다. 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어 와서 담임교역자와 함께 동역하며 교회를 이끌고 나가려는 소속감이 없을 뿐 아니라 시골교회에서 서로 가족같이 모든 것을 공유하며 생활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사랑도 없고 성도들에게 관심도 없는 교역자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팽배해져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은 전도해서 나온 성도들에게 내가 있던 시골교회에서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였는데 하면서 시시콜콜 시골교회와 비교를 하면서 정감 넘치는 모습이 마치 교회의 표본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담임교역자의 약점을 지적하고 담임교역자가 소신을 가지고 성도들을 양육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성도들은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적인 성장에는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교회를 다닐 때는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있기에 수시로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 선교사들이나 목회자가 집회를 하러 오지 않아도 매일 새벽기도회를 드렸다. 그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열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도시로 이주해서는 생활이 바쁜 관계로 주일 낮에 드리는 한 번의 예배로 그들의 영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새로 교회에 나왔지만 주일예배 한 번만으로 믿음에 대해 알아가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교회에 나오면 좋다고 하니 또 다녀 보니 좋은 것 같아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다니고 있다.
 

다섯 번째는 교회 건물이 크기 때문에 건물을 유지하는 것에 더 큰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대형교회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까 작은 교회에는 성도들이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빚을 져서 건물을 얻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는 한국선교사들의 지원을 받아 좋은 건물을 얻어서 모인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넘는 많은 돈을 건물 유지를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도들의 믿음이 잘 자랄 수 있게 체계적인 교육으로 천천히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유지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어 (은혜를 받았다는 미명하에) 많은 헌금을 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것은 객관적인 자료로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중국선교를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많은 성도들과 교역자들과 교제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다.

이번 한(A시) 도시에서 많은 교회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그 지역 성도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교회의 이런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을 때, 한 선교단체에 소속된 분이 건물을 교회라고 말하며 건물을 숭배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형식과 내용,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 등 이런 흑백 논리는 믿음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 현재의 형편에서 우리가 어떻게 주의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성도들의 믿음을 든든히 세워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다른 사람을 양육할 수 있고 혼자서 적막한 사막에 떨어졌을 지라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또 영접하는 사람을 혼자서도 양육하며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이 일을 통하여 이 글을 읽는 모든 동역자들이 다시 한 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하여 선한 열매가 풍성한 사역이 되길 기원한다.

 




 

 

시과(西瓜) | 순회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