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3  통권 195호     필자 : 나은혜
[나은혜 선교문학]
내가 김포에 살게 된 이유


지지난 주에 대구에 사는 큰딸이 외손녀 로아를 데리고 김포 우리 집에 왔다. KTX를 타고 올 줄 알았던 큰딸은 대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서 우리 집에 왔다. 사위가 해외 출장 중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혼자 오는 것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기차보다는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우리 집 ‘황금소돌이’(2000년식 소나타골드)를 몰고 가서 귀하디귀한 외손녀 로아와 큰딸을 영접해서 자동차에 태우고 김포 집으로 돌아왔다. 큰딸과 로아는 일곱 밤을 자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다. 물론 이번에도 우리는 김포공항까지 딸과 외손녀 로아를 배웅해 주었다. 그런데 떠나면서 큰딸은 “아빠 엄마가 김포에 사셔서 우리가 혜택을 보네요.”라고 한다. 큰딸은 그냥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한 것 뿐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한줄기 소망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이 되었다. ‘김포, 김포’라고 하면 나에게는 김포공항과 김포쌀밖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던 곳이었다. 그런 내가 굳이 김포에 살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생겼음이다. 
 

김포는 내가 처음 살아 보는 동네이다. 그리 멀지 않은 서울 서쪽의 끝자락인 양천구 신월동에는 살았을지언정 경기도 김포에서 내 삶이 자리 잡게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김포에 살아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했던 것 같다. 김포 풍무동을 미래에 우리가 살 동네로 정한 것은 일단 서울과 가깝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우리 부부는 노후를 어디서 보내야 할까 함께 고민하며 우리가 살 집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집값이 비싼 서울지역은 우리에게 적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서울과 가까운 김포를 선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김포 풍무동은 김포공항에서 8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밖에 안 되기에 남편 K 선교사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텅 빈 농경지에 건축이 시작된 아파트는 썰렁하게 보였지만 나는 전연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선교지에서도 개발이 끝난 지역의 집값은 엄청나게 비쌌지만 개발 중인 지역에는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집값이 저렴해서 살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큰딸이 자기 딸을 데리고 비행기로 왔다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에 숨겨둔 나의 내밀한 기대와 소망이 실현된 첫 증거를 보는 듯하여 기쁘고 감사하기만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김포에 살게 된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남편은 우리 삼남매가 어릴 때부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대로 선교하는 가문’으로 성장하게 도와 달라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남편의 마음과 같았기에 남편과 같은 뜻의 기도를 하였다. 하지만 나의 세 자녀들 중에 아직 아무도 선교사로 나가지는 않았다. 큰딸과 사위는 의료선교사로 나가기 위한 희망을 가지고 훈련을 받고 있다.
 

또 부부가 함께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막내딸 부부가 선교사로 가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막내는 선교사로 살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자녀들이 선교지로 나가게 되었을 때 부모인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어야 자녀들이 찾아오기에 가장 좋을까를 생각하고는 했었다. 자녀들만이 아니라 손자 손녀도 찾아올 것을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가 공항 가까운 곳에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선교지에서 대부분이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게 될 테니까 공항 가까운 곳에 살면 자녀들이나 손자 손녀들이 편리하게 찾아와 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면에는 나의 지난날의 경험이 준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이 선교지에서 돌아오면 머물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서글픈 경험이 있다.
 

교회에 마련된 게스트룸은 단기 이용은 가능하나 조금이라도 장기가 되면 옮기고 또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한국에 머물 공간이 있는 선교사들은 게스트하우스에 구애를 받지 않고 한국에서의 일을 처리하고 선교지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부러웠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우리 부부는 노후를 함께할 장소로 공항에서 가까운 지역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선교사가 될 자녀들과 후손들을 돕기 위한 쉼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내가 김포에 살게 된 이유이다.
 

내가 김포에 살게 된 이유가 좀 싱거울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때문에 비록 국내선이지만 김포공항을 이용하여 친정집을 다녀가는 큰딸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자녀들의 전조를 본 것 같았다. 해외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친 몸으로 돌아온 선교사자녀에게 알뜰한 쉼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선교사의 심정이다. 이렇게 이 가을에도 선교에 관련된 내 꿈이 영글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사진 | 네이버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