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추방된 이후 새로운 사역지를 놓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 추방된 다른 사역자들을 만나보면 그들 역시도 ‘새로운 사역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듯 했다. 그러던 중 같은 지역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님이 말레이시아 난민학교 사역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 부부가 그 사역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권해주셨다. 처음에는 갑자기 웬 난민 사역 했는데,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면서 어떻게 사역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정탐도 해볼 겸해서 다른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가보기로 결정했다.
중국 경유 비행기도 탈 수 없는 블랙리스트 우리 가정은 한 주 먼저 방글라데시를 가서 둘러보고 말레이시아에서 다른 가정과 합류하기로 했다. 방글라데시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니 중국 광저우(廣州)를 경유하는 비행기가 최단시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추방되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데 문제가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여행사에 알아보니 출입국 검사대를 통과하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갈아탄다고 했다. 여권을 확인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광저우 경유 방글라데시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비록 짧은 시간을 광저우에서 머물지만 중국땅을 다시 밟는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기대감도 잠시 우리는 또 중국 공안들에게 연행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비행기가 광저우에 도착했는데도 승객들이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공안 두 명이 기내로 들어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공안들은 우리 둘을 지목하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와 여권을 압수하고 연행했다. 미리 준비해놓은 미니버스에 우리를 태우고는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
그리고는 출입국 검사대가 가까운 조그만 방에 우리를 감금했다. 잠시 후 다시 들어와서 우리를 출입국 검사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출입국 관리 공안이 나의 여권을 뒤지며 중국 비자를 찾았다. 몇 번 찾더니 보이지 않자, 나에게 비자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이 사람들이 우리가 중국에 입국하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우리는 중국이 아니라 방글라데시로 가는 것이기에 비자가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뒤로 가서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다시 되돌아와서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처음 감금했던 조그만 방에 다시 가뒀다.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공안들과 항공사 직원이 와서 우리를 방글라데시행 비행기 승강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압수한 휴대전화만 돌려주고 여권은 승무원에게 주면서 우리가 방글라데시에 도착할 때 돌려주라고 지시했다. 비행기는 이륙하고, 우리 둘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일단 중국에서 추방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중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라도 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안들에게 연행되는 일을 또 경험하니 더 이상 중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경험 있는 한국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위한 훈련과 동역을 필요로 하는 화인교회 방글라데시에서 일주일의 여정을 보내고 우리는 드디어 말레이시아로 출발했다. 말레이시아 공항에 도착하니 깔끔한 공항청사가 눈에 들어왔다. 입국절차는 간단했다. 한국인은 90일 무비자여서 여권에 입국도장만 찍으면 끝이었다. 현지에 계시는 선교사님을 통해 숙소예약을 했는데, 숙소는 우리가 공항에서 직접 찾아가야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택시를 잡아주는 스마트폰 어플인 그랩(Grab)을 사용하면 내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갈 수 있는데 우리도 이 어플을 유용하게 이용했다. 또 이 어플을 통해 차를 부르면 목적지까지 요금이 얼마인지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바가지를 쓸 일이 없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쿠알라룸푸르 암팡(Kuala Lumpur Ampang)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 지역은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한인촌으로 숙소 주변에 한국인이 하는 마트, 음식점, 카페 등이 있었다. 덕분에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해서 쓰기에 편리하였다. 한국에서 출발한 다른 선교사가정과 합류한 뒤 안내를 해주기로 한 현지의 선교사님을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여기서 화교교회와 협력 사역하시는 한 선교사님을 만났다. 이분 역시 중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이셨다. 우리처럼 추방되신 것은 아니지만 나오시기 전 중국 공안들이 몇 번이나 불러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이제는 중국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었고 할 수 없이 중국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이분은 말레이시아에 와서 화인(華人)교회들과 협력 사역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말레이시아에는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과 오래전부터 말레이시아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있다. 후자를 여기서는 화인(華人)이라고 부른다. 말레이시아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화인교회가 있었다. 우리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갈보리교회라는 화인교회를 탐방했는데 예배당 규모가 5,000석이었으며, 주 예배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중국어 예배는 별도로 드리고 있었다. 이렇게 말레이시아에 큰 규모의 화인교회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은 화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주요 인종을 보면 말레이족과 중국인 그리고 인도인이다. 말레이족은 인구수가 가장 많으며 정치와 행정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하다. 반면에 중국인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화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그들의 교회 또한 부유한 편이다. 많은 현지 한국선교사님들이 우리가 중국에서 왔다고 하니 화인교회들과 협력 사역을 이야기하였다. 왜냐하면 중국어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선교사가 화인교회들과 협력해서 사역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한다. 한국인선교사가 화인교회에 명함을 내밀고 함께하자고 했을 때 그들은 대부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화인들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교제하고 돕는 일을 하면서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다보면 그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잡는다는 것이다. 우월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하기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로 다가갈 때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화인교회는 경험 있는 한국선교사들이 와서 선교를 위한 훈련과 동역을 필요로 하고 있다. 중국에서 추방된 선교사들 중에는 오랜 시간을 중국에서 사역해온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이러한 화인교회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준비된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반드시 해야 하는 난민학교 사역 말레이시아 방문 이튿날, 우리는 난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난민학교를 방문하였다. 내가 말레이시아를 방문하게 된 직접 계기가 된 것도 난민학교 사역이어서 빨리 보고 싶은 조바심이 있었다. 때마침 우리가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때가 현지 공휴일이어서 모든 학교들이 휴교를 하였는데 다행히도 난민학교는 정상 수업을 하고 있었다. 상가 건물 안에 위치한 난민학교는 층층마다 교실과 강당, 교무실, 교재준비실 등 수업에 필요한 시설들을 잘 갖추고 있었다. 교실마다 학년별로 아이들이 작은 책상에 앉아서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다양한 나라(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난민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다. 난민학교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난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선교하는 사역이다. 말레이시아에 유엔난민기구 산하에 2015년 현재 등록된 난민학교는 12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한국선교사가 운영하는 학교는 7개가 있다. 난민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중에는 기독교 교육이 포함되어 있는데 중동에서 온 무슬림들이더라도 아이들을 공부시키는 데 거부감이 적고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복음을 접하고 성경을 배우게 함으로써 성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스스로 신앙고백을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선교의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 난민학교 사역을 둘러보면서 정말 귀한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 아이들의 대부분은 무슬림의 자녀들이다. 사실 그 아이들의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들은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 난민의 신분으로 말레이시아에 와서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기독교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모두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감시나 무슬림들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이슬람권에서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사역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난민학교 사역 역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운영에 많은 재정이 필요하고 교사 수급이 쉽지 않으며 난민들의 이동이 잦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학교 사역은 정말 필요한 사역이며 미래를 내다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 말레이시아에서 이루어지는 사역들을 남은 일정 동안 돌아보았다. 우리가 탐방한 사역들은 GP선교훈련센터, 도시교회 사역, 원주민 사역, 문화센터 사역 등 이었다. 필자는 중국에서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했던 터라 개인적으로 말레이시아 무슬림 사역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는 법적으로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위법행위이며 적발되면 추방을 당하게 된다. 말레이시아 무슬림들은 대부분 말레이족들이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 사역을 하려면 말레이어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말레이시아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어는 바로 인접국가인 인도네이시아어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언어를 배우고 말레이시아에서 사역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무슬림 사역은 어느 이슬람 국가이든 위험하고 쉽지 않으며 열매를 보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았다. 선교사들의 비자발적인 출국은 어쩌면 하나님이 좀 더 필요가 있는 곳으로 재배치하시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선교지에 정착한 지 2년 반, 이제 사역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 중에 나는 아무런 정리도 하지 못한 채 하루 만에 그 땅을 떠나야 했다. 한동안 그 충격으로 내가 겪은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하심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휴식과 디브리핑의 과정을 보내고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나서야 내가 비자발적으로 사역했던 곳을 떠나게 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각 지역으로 믿는 자들이 흩어지면서 오히려 복음의 지경이 더 넓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교사들의 비자발적인 출국은 어쩌면 하나님이 좀 더 필요가 있는 곳으로 재배치하시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역을 하다가 비자발적으로 나오신 분이 말레이시아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만나고, 현지에서 배운 언어로 그들과 교제하면서 자유롭게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나 중국에서 나온 선교사들이 동남아 화인교회들과 협력하여 선교자원을 개발하고 동원하는 것, 중국 신장(新疆)지역 선교사들의 비자발적 출국과 최근 선교의 문이 열리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상황 등, 현재 열방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과 계속해서 비자발적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는 선교사들의 상황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선교사들을 재배치하시는 과정인 것이다.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나 역시 새로운 사역지를 정하고 거기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내가 비자발적으로 사역지를 떠나게 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이었는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비자발적으로 선교지를 떠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자발적이든 자발적이든 어쩔 수 없이 사역하던 곳을 떠나 새로운 사역을 준비해야 하는 선교사들에게 사역지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선교현장을 직접 탐방하며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막상 선교지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고 하면 관련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보안을 요구하는 선교지 같은 경우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그나마 현지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끼리 서로 탐방했던 지역에 대한 정보를 나누면서 조금씩 다른 선교현장의 상황과 필요를 알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좀 더 다른 선교현장의 상황을 듣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교연합단체에서 비자발적으로 귀국한 선교사들을 위해 사역의 재배치를 위한 정보교류와 워크숍 등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일 없다면 새롭게 선교지를 정해야 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그러한 모임을 개최해주길 건의해본다.
전진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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