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7.4  통권 191호     필자 : 문민주
[단기선교 경험기]
일상의 은혜를 느끼며
중국선교지 방문기

살림을 시작한 뒤로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해서 널고 개고 심지어 다림질까지, 이제는 이것들이 나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리고 그 일상이 날마다 반복의 연속이 되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 내 일상이 가끔은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남편은 늘상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 어디나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내고, 세상에도 보여주라고 힘주어 말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편이 강단에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목사와 결혼했다. 설교에서 말하는 그런 일상이 가능한 것일까. 일상에서 하늘나라를 온전히 경험하지도 못하는데, 세상에 보여주기도 해야 한다니 이를 어째, 정말 괴로웠다. 
 

이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운 날에는 얼른 마음을 정리하려고 하나님 앞에 내뱉듯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마치 길고 지루한 싸움을 그냥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미안하다는 한마디의 말을 툭 내던지고 돌아서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에도 없는 감사로 하루하루가 그냥 지나갔다.
 

“사모님도 이번에 중국선교지 방문할 때 같이 가시지요.”
 

담임목사님께서 시무권사님들을 대상으로 계획된 선교지 방문 일정에 부교역자인 남편과 함께 나까지 초대해주셨다. 나는 교회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선교지에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잠시 내 일상을 접어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선뜻 가겠다고 대답했다.
 

우리 교회가 단기선교를 가기 위해 선교지 방문 준비모임을 가지면서 중국 정부가 승인받지 않은 모든 종교활동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가 새로운 종교사무조례를 시행으로 중국선교사들의 관리를 강화하면서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비자발적으로 출국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와 같은 단순(?) 방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신청한 단체 비자가 거절되면서 중국선교사로 사역하셨던 담임목사님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지인 중국을 떠나 국내에서 목회를 하신 지가 벌써 8년이나 되었는데도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에 참으로 놀랐다. 과거에 중국선교사였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에 많이 염려도 되었고 담임목사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선교지 방문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의 방문 계획은 은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중국의 ○○도시에 도착해서 ○○지역을 찾아가서 한 번 둘러보고 다시 처음의 도시로 돌아와서 이번 선교지 방문 계획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함께 모여서 사도행전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함께 묵상하고 받은 은혜를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묵상 뒤에는 각 지역에서 오랜 시간 사역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의 강의를 들었다. 선교사님들은 각자의 사역보다 우리 교회가 함께 품고 기도하는 후이족(回族)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또 중국 안의 다양한 사역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셔서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의 삶에서 만난 하나님의 이야기도 나누어주셨다.
 

강의가 끝난 뒤에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그 지역을 둘러보았다. 우리 교회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후이족을 품고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에서도 ○○지역에서도 후이족들을 만나볼 수 있는 모스크를 찾아갔다. 마침 라마단 기간이 막 끝난 시기라서 사원 안이 한가하기는 했지만 정해진 시간에 따라 기도하는 무슬림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또 기도하는 마음으로 후이족 거리를 걸으며 이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모습으로 삶을 누리는지 잘 살펴보았다.
 

보안상의 이유로 후이족이 모여 살고 있다는 마을에는 갈 수 없었다. 후이족들이 전통적 삶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마을이라고 하는데 갈 수가 없으니 아쉬웠다. 담임목사님이 계획대로 함께 오셨으면 후이족 마을까지도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다.
 

후이족들을 만나는 것만큼 귀했던 시간은 바로 복음이 전해진 흔적들을 보는 것이었다. ○○지역에서는 윌리엄 보든(William W. Borden, 1887-1913)을 기념하며 세운 복음병원을 방문했다. 윌리엄 보든은 결단하며 준비한 시간만큼 중국에서 강력하게 사역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라는 그의 삶의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다. 윌리엄 보든의 믿음의 고백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까지 찾아와서 병원을 세우고 사람들을 섬기며 예수님을 전했다.
 




중국에서 일정 중간 중간마다 선교사님들은 말과 행동을 조심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이 외국인이나 선교사들에 대한 경계를 더욱 심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선교사님들의 가정을 방문할 때는 무리지어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세 사람씩 나누어서 이동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큰 목소리로 직분을 불러가며 이야기하는 것도 주의했다. 우리 역시 우리의 방문으로 인해 선교사님들의 일상에 피해를 주지 않기를 날마다 기도했다. 
 

주어진 일상을 피해온 내가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다니, 참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같이 잘도 반복되던데, 그게 무너질까봐 두려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싫은 것은 일상 그 자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스트레스와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그곳에도 일상의 스트레스는 가득했다. 선교사님들은 우리팀의 방문이 아니더라도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지낸다고 하셨다. 특히 중국에 살지 않는 자녀들과 통화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하셨다. 전화도 도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신앙적인 권면이나 격려를 마음껏 나눌 수 없어서 마음이 더 아프다고 하셨다. 일상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하셨다.
 

한 분은 중국에서 사역한 지 18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집 밖에서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또 다른 한 분은 난청이 있어서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다. 모국어도 입모양을 보지 않으면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데 외국어는 얼마나 어려우실까. 그런데도 다들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그냥 꾸역꾸역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중국땅을 사랑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자신들을 이곳으로 부르신 것을 알기 때문에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 그게 바로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이제 내가 버티고, 꾸준히 견디는 것도 사랑의 한 표현이라는 것을 배울 때가 된 것 같다. 빛깔도 향기도 없는 일을 참는 것,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나의 일상을 견디는 것, 나조차도 의미를 두지 않는 날들을 버티는 것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해주신다. 그런 버팀과 견딤도 사랑이다. 그 어디나 보냄을 받은 그 자리에서 각자의 수고로움을 오래 참고, 견디는 사랑을 부어주시고 알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문민주 | 동인교회 단기선교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