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  통권 190호     필자 : 김영철
[중국 영화]
《천사는 흰 옷을 입는다(嘉年华, Angels Wear White)》
-천사의 족쇄

 

이 영화는 2017년 11월 24일 중국에서 상영되었으며, 그해 제74회 베니스영화제와 제61회 런던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일 제54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马奖)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으며, 2018년 4월 21일 제9회 중국영화감독협회에서 최고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해변가 작은 마을 여관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샤오미(小米, 文淇 분)는 어느 날 카운터 업무를 보는 언니 리리(莉莉, 彭静 분) 대신 야간근무를 서다가 중년 남자 리우(刘) 회장이 초등학생 6학년 샤오원(孟小文, 周美君 분)과 신신(张新新, 蒋欣悦 분) 두 여학생의 방으로 밀치고 들어가려는 장면을 폐쇄회로(CC)TV 화면으로 지켜보다가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휴대전화로 녹화를 하였다. 그 후 성폭행사건이 학교와 학부모에게 알려지면서 경찰 왕두이(王队长, 李梦男 분)가 여관으로 조사를 나오고 변호사 하오지에(郝洁, 史可 분)도 샤오미를 찾아왔다 하지만 샤오미는 목격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녀는 미성년 취업자로 호적이 없어서 불법으로 신분증을 만들 비용 1만 위안을 마련하기 위해 리우 회장에게 접근하여 협박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폭행을 당했다. 
 

중국 여성감독 원옌(文晏)은 직접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4년여의 제작과정을 거쳐 영화를 완성하였다. 감독은 섬세하고 은유적인 수법을 잘 활용하였다. 특히 리우 회장의 얼굴, 사건의 경과, 폭행 등을 노골적으로 화면에 노출시키지 않았으며, 샤오원의 허벅지에 생긴 상처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폭행의 상황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떠올리게 하였다. 원옌 여성감독은 여성의 시선으로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섬세하게 조명하였다.
 

 

소녀와 여성의 상처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샤오미는 그저 자신이 여름에 태어났고 올해 16살이 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3년 전에 가출하여 열다섯 곳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해변가에 있는 여관에서 일하면서 숙식을 제공받아 머물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다른 곳에 갈 곳도 없다고 고백하였다. 그녀의 한 달 월급 600위안은 투숙객이 하룻밤 방값으로 지불하는 700위안에도 미치지 못했다.

호적이 없는 그녀는 미성년자로 여관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꼭 필요했다. 샤오미는 리리의 남자친구 샤오졘(小建, 王栎鑫 분)에게 1만 위안을 주면 신분증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듣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을 가지고 리우 회장과 거래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폭행을 당해 온몸에 상처를 입고 변호사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성폭행사건의 진실을 변호사에게 밝히게 된다.
 

가정마다 한 명의 자녀만 허용되는 산아제한정책 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무호적자가 되면 신분증이 없어서 교육이나 병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취업도 할 수 없어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샤오미가 가출해서 힘들게 사는 이유도 호적이 없거나 폭력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샤오미는 리우 회장이 어린 여학생들을 여관에 데리고 온 사실을 이상하게 여겨 리우 회장이 여학생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장면을 촬영했지만, 여관 매니저에게 입단속을 주문받고는 경찰에게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샤오미는 미성년자 신분에 간신히 얻은 직장을 잃게 될까봐 피해 여학생을 도와줄 수 없었다.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를 도울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의 무기력함을 보여준다.
 

샤오미는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샤오졘의 권고로 매춘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화장대에서 리리가 쓰던 귀걸이를 차고 화장을 한 뒤 흰색 원피스를 입고 손님을 기다리다가 TV에서 샤오원사건에서 경찰과 의사의 수뢰 혐의가 밝혀져서 처벌을 받게 되었고, 중국부녀자연맹이 취약 여성의 지원활동을 전개한다는 뉴스를 접해듣고 샤오미는 의자에서 일어나 전기스쿠터에 잠긴 자물쇠 사슬을 돌로 내리쳐 끊은 후에 넓은 도로에서 속도를 내었다. 샤오미 자신이 제공한 자료로 샤오원이 당한 폭행이 증명되어 위안과 용기를 얻고 여관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떠났다. 사회의 지원과 정의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초등학생 샤오원과 신신은 신신의 양아버지 리우 회장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늦어져서 샤오원은 어머니 웨이웨이(刘威葳)에게 꾸중을 들을까봐 귀가를 하지 못하고 여관에 묵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녀는 병원에서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전해 듣자마자 딸의 뺨을 때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 딸한테 심하게 욕설을 내뱉고 딸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딸이 좋아하는 옷들을 내동댕이쳤다. 그녀는 딸의 외모와 행실이 불행한 사건의 발단이라고 여기고 딸에게 왜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았냐고 야단쳤다. 그녀의 어머니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하는 일반적인 편견과 인식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웨이웨이는 밤마다 알코올에 취하고 남편에게 냉대를 받는 자신의 버림받은 불행을 딸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샤오원은 집에서 위로를 받을 수 없었고 의지할 대상이 없어 금붕어가 있는 작은 유리병을 들고 가출하였다.


천사의 수렁

경찰과 가해자는 초등학생 6학년 여학생 두 명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여 두 번째 신체검사를 받게 되었다. 의사들은 검사를 진행한 뒤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은 없었다고 밝혔다. 어린 소녀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상처를 두 번이나 공개해야 하는 것을 강요받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샤오원은 백색 병상에서 넋이 나간 듯이 침묵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어른들에게 의심받고 팽개쳐진 같은 느낌에 그녀는 반항기 가득한 눈초리로 어른을 노려보았다.
 

리우 회장, 신신 부모, 리리의 남자친구 샤오졘, 왕두이 경찰, 의사들은 성공, 출세, 금전, 명예를 위해 약자를 무참하게 짓밟는 군상(群像)을 상징한다. 신신의 부모는 샤오원의 아버지 멍타오(孟涛, 耿乐 분)에게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하면서 리우 회장이 자녀의 대학 학비까지 대주겠다는 말을 전하자, 멍타오는 사회정의를 내세우며 강하게 거부하였다. 리우 회장은 신신 아버지의 상사이며 그를 신신의 양아버지로 삼고, 신신의 부모는 성공과 출세를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면서 자식의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딸의 문제를 덮으려고 하였다.
 

리리는 남자친구 샤오졘이 소개해준 남자에게 구타를 당하고 임신까지 하여 낙태수술을 받고서 다음 생애에는 다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겠다고 울부짖었다. 그녀는 여관 매니저와 남자친구에게 온갖 멸시를 받고 해변가 여관을 떠났다. 샤오졘은 샤오미에게 신분증을 만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리우 회장을 협박하라고 매춘을 부추겼다. 샤오졘이 두 여성에게 베푼 호의는 그녀들을 삼켜버린 구렁텅이가 되어버렸다.
 

경찰 왕두이는 샤오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변호사에게도 말하고 이번 사건을 포기하고 다른 사건을 맡으라고 설득하였다. 여성인 하오 변호사는 왕두이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샤오원의 말을 믿고 진심으로 도우려고 하였고, 샤오미가 부득이하게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오 변호사는 영화 속에서 가장 독립된 인생을 살아가는 여성으로 그녀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은 그녀 같은 삶을 살기에는 아직 버거운 현실과 마주쳐야만 했다. 

 


샤오원의 아버지 멍타오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다가 딸이 아내한테서 도망쳐 나와서 딸의 사건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함께 수영도 하고, 집안일도 함께하며 딸을 학교에 다시 돌려보내려고 애썼다. 멍타오는 아버지의 오랜 빈자리를 메우려고 노력하였다. 신신의 부모가 가해자와 화해하자는 말에 거부하고 의사들의 이차 검사결과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는 딸을 위해 사회와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였다. 멍타오는 딸의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의 자리에 대한 자각을 하고 되찾으려고도 노력하였다. 멍타오의 아버지 형상은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신신의 아버지와 대조되고 영화 속 다른 남성들에 비하여 과장되지 않은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그려졌다. 
 

왜곡의 해체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에 마릴린 먼로의 조형물이 나오고, 주인공 샤오미와 샤오원은 여러 차례 이 조형물 아래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았다. 영화 속 마릴린 먼로의 조형물은 영화 <7년만의 외출>(1955년)에서 마릴린 먼로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바람에 펄럭이는 치마를 붙잡고 있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의 조형물이 광시(广西)성 구이강(贵港)에 몇 개월 동안 세워졌다가 2014년 6월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2018년 한국에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인제군 소양강에 마릴린 먼로 동상을 설치하여 여론을 들끓게 한 바 있다. 마릴린 먼로가 1954년 한국을 방문하여 미군 위문공연을 한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동상을 세웠다. 대중문화에서 마릴린 먼로를 자본주의와 섹슈얼리티로 평가하는 논쟁이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것처럼 본 영화에서도 마릴린 먼로 조형물에 대해서 선망, 유기, 폐기 등의 시선이 포착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샤오미가 바닷가에 세워진 마릴린 먼로의 대형 조형물을 둘러보다가 휴대전화로 치마 아래를 찍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 샤오미와 샤오원이 다시 찾았을 때는 마릴린 먼로 조형물의 다리와 하이힐에는 광고 전단지가 누더기처럼 뒤덮였다. 이는 마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두 소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영화의 말미에는 인부들이 마릴린 먼로 조형물을 철거하여 트럭에 실었다. 샤오미는 백색 원피스를 입고 단장을 한 채 전기스쿠터를 타고 마릴린 먼로의 조형물을 싣고 떠나는 트럭을 뒤쫓아 갔다.
 

새 출발에 대한 그녀의 기대와 용기가 드러나면서도, 도로 위 수많은 차들 속에서 질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그녀 앞에 펼쳐진 길이 요원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샤오미가 처음 입은 백색 원피스와 단장은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켰다. 조형물은 해체되어 폐기장으로 향하고, 샤오미는 그녀를 옭아맸던 과거와 이별을 고했다.




영혼의 순결

영화의 중국어 제목 자니앤화(嘉年华)는 카니발(carnival)이란 의미로 사람들이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을 말하며, 가장 아름다운 시간인 소녀 시절에 그들의 즐거운 시간을 빼앗아가는 현실을 투영하기도 하였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이다. 백색은 순결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른은 아이에게 백색의 순결을 강요하고 영혼의 순결을 헤아리지 않고, 신체적인 순결만을 따지는 현실의 위선을 풍자하였다. 상처를 입은 어린 여자아이는 순결을 잃었다고 지적하는 어른의 잔혹함을 고발하였다.
 

위선과 편견이 만연하여 경직된 사회에서 어린 소녀의 미래는 암울하고 상처는 되풀이 될 뿐이다. 초등생 샤오원의 미래는 청소년 샤오미의 모습이고, 성인 리리의 미래는 샤오원의 엄마 혹은 신신의 엄마가 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배려와 확신에 찬 하오 변호사가 될 수 있다.
 

영화는 2018년 4월 제23회 화딩장(华鼎奖) 중국최고영화상의 영예를 차지하여 사회적 책임과 공익에 부응하는 영화로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중국어 포스터에 "침묵을 깨자", "아이들을 구하자"라는 구호가 인쇄되어 있다. 감독은 방관자는 가해자라고 인식하고 침묵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영화인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미성년 성 침해는 중국이나 한국 어느 국가나 그 사회만의 일이 아니다. 여성영화나 여성주의 시선으로 제한하여 본 영화를 바라보는 것은 비생산적인 논의일 수 있다. 소녀에서 청소년 그리고 성인까지 이어지는 상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시급하다.

전 세계에 일고 있는 미투운동은 위드유(WithYou)로 확산되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신중히 고민할 때이다.

 





사진 | 네이버 영화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