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만히 살펴보건대 옛 성현들이 사람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뜻은 의리를 강론하여 밝힘으로써 그 몸을 닦고 그런 뒤에 그것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려는 것이지, 한갓 많이 보고 힘써 기억하여 문장으로 이름을 날려 이익과 녹봉을 취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와 반대로 되었다. 그러나 성현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던 법은 경전 속에 다 남아 있으니 뜻있는 선비는 진실로 마땅히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묻고 변별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치의 당연함을 알아 반드시 그렇게 하기를 자신에게 권면한다면 저 규약과 금지조항을 갖추는 것을 어찌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기를 기다릴 것이며, 그런 다음에 지키고 따르는 것이 있겠는가?” -주자 <동규후서(洞規後敍)>-
사장지학(詞章之學)과 의리지학(義理之學) 오늘날 학생들의 장래희망 1, 2위는 연예인과 공무원이라고 한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고, 수많은 시험들을 통과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출세와 명예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을 때, 공부는 남에게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논어의 첫 구절에서 공자는 배움의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유학의 공부는 글을 잘 짓고, 암기하여 시험에 합격하고 높은 지위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마음을 닦고 본성대로 사람다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부이다. 공부에 즐거움이 없다면 그 공부는 자신을 실현하는 공부가 아니라 욕심으로 마음을 짓누르는 공부가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송대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통해 선비계층이 정계로 진출하여 ‘공무원’의 역할을 수행하던 시대이다. 정부 공교육의 커리큘럼이 출세를 위한 글공부에 전념하였을 때, 유학자들은 이에 반대하여 지방에서 사학을 일으켜 철저히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공부를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지식이 넘쳐나지만 사람냄새가 그리운 시대에 공부의 목적과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말로 우리의 선한 본성을 일깨우고, 사람을 사랑하고, 이 세계를 존중하며 더욱 아름답고 희망찬 역사를 위해 우리의 탐구심을 사용해야 한다. 유학자들은 정치를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실현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공부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솔함과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주자, 백록동서원의 규율을 확립하다 백록동규(白鹿洞規)는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중건하고 학생들에게 제시한 서원의 규율이다. 성리학자들은 수양과 공부로 정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정치를 행하는 것에 큰 회의감을 또한 갖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가운데 살면서 자연과 우주의 이치로부터 인간마음의 본성을 생각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실천을 이끌어 내는 성리학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정치로서 실천하는 것의 한계를 직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구도를 기본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성리학자들의 관심은 언제나 수기였다. 수기는 처세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이치에 닿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와 관련된 것이다. 정부주도의 관학이 아닌 서원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은 모두 이러한 성리학 교육의 신념과 소명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국 서원의 규율이라는 것은 단순한 학칙이나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세칙들을 자세히 논하는 것 이상으로 성리학 세계관의 이상에 따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집중하고 하늘의 이치대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성인됨을 추구하는 학문을 하겠다는 목표의식 그 자체였다. 서원만의 규율을 통해 세상에 타협하거나 지금에 안주하는 공부가 아닌 늘 새롭게 마음을 갈고 닦아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순수성을 견지하고자 한 것이다. 오륜, 자신의 마음수양을 통한 인간관계의 회복 백록동규는 유학의 공부가 인륜을 밝히는 공부임을 강조한다.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으로 대표되는 오륜은 오늘날 갑과 을의 관계와 같은 지배와 피지배의 상하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본성을 지닌 하늘과 같은 사람들을 각자의 자리와 지위에서 어떻게 배려하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묻는 일이다.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를 통해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달리한다. 공부는 이러한 사랑과 관계들을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묻고(審問), 신중히 생각하고(愼思), 분명하게 변별하고(明辯), 이를 통해 독실하게 실천하는(篤行) 것이다. 사람들은 공부를 남을 지배하는 도구쯤으로 생각한다. 공부를 잘할수록 교만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학의 공부라는 것은 공부를 잘할수록 인간관계를 더욱 잘 살피고 더욱 겸손하게 예를 갖춰 사랑하는 일이다. 퇴계는 인륜의 근본이 되는 이 공부가 바로 ‘심법의 요체’를 얻는다는 의미에서 일반 서민이나 학자나 제왕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다. 곧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공부를 마음속에 깊이 품어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이 공부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가. 유학의 공부는 늘 이 질문을 마음 깊이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욕심은 때때로 진리를 곡학아세(曲學阿世)하고 관계를 파괴한다.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면서 인간의 기술은 편안함을 안겨주었지만 마음의 평안함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퇴계는 황폐해졌던 백록동서원을 주자가 중건한 것을 약술하면서 백록동이라는 이름이 당나라 때 과거 공부를 하지 않고 순수한 학문을 흠모하던 이발이라는 사람이 은거하여 흰 사슴을 기르며 유유자적하였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퇴계 또한 한평생 벼슬길에서 물러나 유유자적한 은자의 삶을 살고 싶어 하였던 것을 보면 세상 안에 살면서 순수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며,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오히려 세상의 분주함에서 한걸음 물러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공부를 통해 성급히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조급하지만 세상의 부귀영화에 연연함을 떨치고 우리 가까이의 관계들을 돌아볼 때 비로소 새로운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퇴계는 이상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등의 다섯 그림은 천도(天道)에 근본하고 있지만 그 공효는 인륜을 밝히고 덕업에 힘쓰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설명하였다. 성리학 세계관이 하늘과 자연의 조화와 질서에 근거하여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사회의 관계를 ‘하늘마음 한마음’으로 그려가는 마음의 수양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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