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또래, 그리고 교육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체가 가정이라고 한다면 그 두 번째는 학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학교는 청소년, 청년기의 또래 집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사회생활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미래를 펼치기 위한 기본 지식을 습득하는 비전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학교가 이러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곳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많을 것이다.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반 학생들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탈북민으로서, 말 그대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하는 입장에서 학교는 때로는 꿈과 희망, 우정이 꽃피는 곳이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인 경우가 많다.
이현숙과 유해숙은 탈북 청소년 7인에 대한 심층 면접을 통해 이들의 남한 적응 기간에 나타난 각종 낙인 현상과 그 대응에 대해서 조사했다. 위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 청소년들은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의심받고, 감추고 싶은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가난하고 구제해야 할 사람이 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특히 고학년일 경우 학업에 있어서 도저히 일반 남한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성적 나쁘고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자신감 부족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탈북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폄훼(貶毁)되거나 무시당하고 심할 경우 비인격적인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도움을 받아야 할 교사들한테서도 선입견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는 증언도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탈북민이 같은 동네에 사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상처받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탈북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크게 해친다. 많은 탈북 청소년들이 생소한 이 땅에서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또 자신의 출신을 창피해하며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하는 등 자기 자존감이 낮고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기 쉬운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남한 적응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도 기준으로 총 930명의 대학생 탈북민들 중 약 30%에 해당하는 282명이 휴학이나 재적 상태였으며, 2013년 상반기에도 1,147명의 학생 중 237명가량이 휴학 중이거나 재적을 당한 상태였다. 추가적으로 탈북 대학생 132명을 대상으로 휴학 이유를 조사해보니 휴학자의 40%는 학업을 따라갈 수 없거나 영어실력 부족 등을 휴학의 이유로 꼽았다. 그리고 36.7%는 생활비 마련과 다른 가족을 돕거나 다른 가족의 남한행을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서 등의 경제적인 이유를 꼽았다. 남북하나재단에서 진행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탈북민 출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생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교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에 응답자 59명 중 22명(35.5%)이 팀별 활동을 꼽았다. 또한 교과 수행 관련해서 기존에 부각되었던 영어 능력의 부족 외에도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 부족 등도 주요한 어려움으로 꼽혔다. 또 생활비를 조달하는 경로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46%가 본인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한다고 응답하였다. 대학과 전공에 대한 만족도는 80%대로 높았으나 28%의 학생이 휴학 경험이 있었고 자퇴를 고려하는 학생도 10명(16%)이나 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탈북민 대학생들이 교우관계, 경제적 어려움, 대학 교육을 위한 기초 학업 능력 등 다양한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탈북 학생들이 탈북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 학교현장에서 학업 경험의 차이로 인해 진도를 맞추기 어려운 남한 학생들 틈에서 고생하기보다는 탈북민을 위한 대안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선택한다. 아무리 대중 캠페인과 교육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일반 학생들과 교사들의 탈북민에 대한 인식 변화와 이해 증진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또 탈북민에 맞는 교육과정이 요구되기도 하기 때문에 대안학교의 필요성이 높다. 대안학교에서는 탈북민의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단순히 학업 성취도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지도와 상담 등의 측면에서도 이득이 있다. 또 기독교 재단에 의해 설립된 대안학교는 탈북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안학교 가운데 일부는 영세하거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하여 제공하는 교육 수준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대안학교는 탈북민 학생들이 끼리끼리 모임으로써 남한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사회 적응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 출신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중국어에 능숙한 선생님이 요구되는 데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며 이는 일반 학교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역할 앞서 언급한 낙인 효과 관련 연구에서 응답한 탈북 청소년들이 낮은 자존감과 각종 낙인 효과를 극복하는 데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은 바로 남한 출신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탈북 청소년, 청년들에게는 자신을 편견 없이 대해주는 친구,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많은 탈북민 가정이 해체되거나 온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신의 보호자가 되는 부모 역시 전혀 낯선 환경에서 삶을 새롭게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자녀에게 알맞은 조언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그럴 만한 여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이들을 꾸준하게 돌보고 사랑해주며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친구와 멘토가 절실하다. 남북하나재단이나 각 대학과 NGO에서는 탈북 대학생들을 위한 예배대학과 멘토링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진로와 취업 관련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가 단기적, 일회성인 경우가 많으며 탈북 대학생들이 어려워하는 학업 성취와 관련된 학업 지원 프로그램은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교회라면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탈북민 대안학교 가운데 상당수가 교회나 기독교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교회와 직간접 연관되어 살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사회의 시선보다는 교회가 더 따뜻하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클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탈북 청소년, 청년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부터 이들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를 극복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라는 이들의 배경에 얽매여 필요 이상으로 동정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배척하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이 전달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탈북 청소년과 대학생 한 사람 한 영혼이 어떤 배경이나 특징 때문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북한 체제에 별 연관도 없었고 경험도 적은 이들이 정치적인 북한의 이미지로 인한 편견의 소리와 부당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안 될 것이다. 먼저 개개인의 자존감이 회복되고 자기의 출신이 북한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거나 거리끼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때 거기서부터 통일 한국의 주역으로 본인이 가진 특별한 강점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가 바로 복음 안에서 이들의 꿈을 북돋고 격려해주는 친구와 멘토로서 역할을 감당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탈북 청소년들 가운데 상당수는 따라갈 수 없는 학업, 가정 문제, 사회 적응의 어려움 등 보통의 남한 학생들보다 더 큰 긴장과 압박감에 시달리고 이런 답답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탈선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큰 결심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도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어떤 특별한 행사나 규모 있는 큰 도움이 아니라 먼저 친구가 되기 위해 우리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내딛는 첫걸음이어야 한다. * 이 글은 <선교타임즈>(2017년 7월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한 것입니다.
사진 | 연합뉴스 캡처 한국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