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  통권 187호     필자 : 김의중
[특집] - 특집/ 나의 중국 사역 이야기(2)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나와 나의 동역자들은 ‘예수사랑 중국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며 중국인과 중국교회를 섬기는 작은 일을 실천해왔다.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금년에 중국교회와 중국선교는 큰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 2017년 중국 새 종교사무조례가 통과되어 올해 2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중국 안의 미등록교회들, 해외선교사들에게 극심한 탄압이 가해지고 있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지만 현재 중국선교를 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큰 틀에서 볼 때 고려해야 할 필수사항이 있다. 중국의 정치제도, 중국의 국민성 이해, 중국 전통종교의 이해에 대한 것이다. 현시점은 중국선교에 대해 깊이 있는 재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나의 중국선교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중국 사역은 독자적인 형태가 아닌 중국 정부, 중국교회와 공동설립, 공동협력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사회복지이든 교육이든, 교회선교이든지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 복지사역
 

1) 연변(延边)장애인복지관
1992년 중국선교에 관심이 있는 몇몇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모여 중국선교의 전망과 과제를 논의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했다.
 

“먼저 우리에게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 필자와 몇몇 목사님들 그리고 장로님들은 중국선교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연길(延吉) 동포들의 도움을 바라는 손짓에서 하나님이 중국선교를 위해 우리들을 부르심을 보았다. 중국은 공산권 국가로 실제 직접적인 선교는 불허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전문인 사역은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중국의 현행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가장 효과적인 선교방법은 복지선교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것을 계기로 1993년에 중국복지후원회(회장 김의중 목사)가 조직되었다. 이후에 중국 정부의 비준을 받아 연길에 연변사회복지중심 장애인복지관을 건립하였다. 한국에서 복지관장(선교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을 파송하여 복지를 통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당시 한국측 복지후원회 고문으로 추대된 전 체육부장관 이영호 박사 역시 복지선교를 향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복지사업은 선교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이웃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에 그 이상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충실한 선교방법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하는 것은 중국 연변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중국복지후원회의 복지선교사업을 여타 중국인뿐 아니라 북한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형제자매들에게 미칠 파급효과이다. 연변 거주 우리 동포들과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접촉과 왕래가 아주 빈번하기 때문에 연변에서 복지선교는 북한에 대한 적지 않은 간접적 선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중국복지후원회보, 통권 1호, 1994년, 16쪽).
 

당시 중국은 복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상태였으며 복지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생소하게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복지사역은 중국인들과 중국 당국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당시 연길지역에서 발행하는 한 신문에는 연길복지관의 사역에 대한 소개와 연길 시민들이 증언한 것을 싣기도 하였다.
 

2) 의란진경로원
연변장애인복지관의 성공적인 사업에 이어 연길시 흥안향(兴安乡)에 흥안향 경로원[의란진(依兰镇) 경로원]을 건립하기로 하여 1997년에 개관하였다. 당시 개관식에는 길림성(吉林省) 정부, 연변주정부, 연길시 정부 등에서 나온 230명의 중국 공무원이 참석하였고, 한국측에서도 28명이나 참석하여 성대하게 치러졌다. 중국 당국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현재 의란진 경로원에는 50여 분의 어르신들이 입소하여 생활하고 있다.
 

3) 안도현(安图县) 종합사회복지관
북한과 국경선을 가장 길게 가지고 있고 백두산을 포함하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종합복지관을 건립하였다. 당시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있던 때였다. 한국교회의 후원도 힘든 시절이었다. 당장 나라 빚을 갚기 위해 금반지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복지선교는 위기를 맞았다. 목회자 후원회와 평신도 후원회는 후원요청과 더불어 기도에 힘썼다.
 

중국복지후원회의 복지사역이 IMF구제금융의 한파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선교사역이 중단될 수 없다는 한국측 후원회의 믿음과 용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역설적이게도 한국교회를 향한 중국공산당 지방 정부의 신뢰가 지속적인 복지선교를 할 수 있게 하였다. 2000년 8월 350평 규모의 안도현 종합사회복지관이 준공되었다.
 

중국 지방 정부는 “본 경로원 건축을 위하여 사랑으로 후원하여 주신 한국의 중국복지후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글과 중국어를 병기하여 기념패를 설치하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동행한 기독교타임즈 기자는, “중국복지후원회의 선교양식은 인민 정부의 고위 공직자와 공산당 간부들과 함께 선교사업을 협의하고 결정하여 집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자가 들었던 사회주의 중국선교와는 전혀 다른 중국복지후원회의 선교적인 행보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라고 그 소감을 적고 있다.
 

기자는 계속해서 “선교사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는 않았지만 이미 공산당원들은 선교사들임을 알고 있었다. 중국복지후원회 또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된 선교단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방문단에 대해서 성심을 다해 예우했다.”(기독교타임즈, 제166호 2000년 9월 9일) 현재 안도현 종합사회복지관에는 70여 분의 어르신과 15명의 직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2. 교육선교

1) 중선소학교 건립
희망공정(Love and Hope Project)은 가난한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1989년부터 중국청소년발전기금회가 민간 기부금을 모아 전개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중국복지후원회의 복지선교가 바탕이 되어 중국 희망공정위원회 위원장 일행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교육사업은 나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교육과 복지는 나의 선교사역 가운데 가장 주요한 투 트랙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없어 배움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북경(北京)의 외곽에 소학교를 건립하기로 하였다.
 

사실 한국의 목회자에게 학비 지원수준이 아니라 학교를 세워 국제교류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중국 당국이 중국복지후원회를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북경청소년발전기금회 대표와 학교건립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인민 우호 왕래의 결실로 북경교외에 희망학교를 설립하는 일을 합의하는 자리를 갖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교육을 베푸는 일을 제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 앞으로 중국과 한국, 북한과 전 세계에 희망을 주는 일을 위하여 서로의 만남과 사업이 더욱 두터워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여 지어진 학교의 이름이 중선(中鲜)소학교이다. 중선이라는 이름에는 중국과 조선(한국)이라는 의미 외에 나의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있다. 나의 첫째 아들 선균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독서실에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그 보상금을 전액 중국 어린이들의 교육사업을 위해 내어놓았다. ‘중국’의 ‘중’자와 ‘선균’이의 ‘선’자를 한 글자씩 딴 ‘중선(中鲜)’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학교 건물벽에는 ‘중선패’가 걸렸는데 “세계를 사랑하고 중국을 사랑하는 한국의 한 아버지와 아들이 여기 중국 학생들의 교육의 터를 위하여 작은 사랑을 심습니다. 이곳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학생들이 장차 중국과 세계를 행복하게 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 중국을 빛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이후로 중선소학교는 한국 인천의 한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학생들이 양국을 오가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또한 학교 안에는 한국문화교육관이 있어서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 심양(沈阳)음악학교
음악선교를 위해 2007년도에 심양에 심양실용음악학원을 설립하였다. 심양시 교외에 건물을 짓고 중국 전역에서 온 청소년들이 이곳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음악공부를 하고, 졸업 후에는 교회의 음악사역자로 일하는 비전을 가진 학교였다. 재학 2년 동안 이들은 한 개의 전공악기와 세 개의 부전공 악기를 익혀서 졸업과 함께 파송하는 것이었다. 중국선교는 중국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형태의 선교신학과 전략을 뛰어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3. 교회선교
 

◆ 하북성기독교양회와 교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로 사회복지, 교육사업을 지나 교회 섬김의 문을 열게 되었다. 2011년 여름, 하북성(河北省) 기독교 양회(两会, 하북성기독교협회와 삼자애국운동위원회)가 교류를 원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이것을 시작으로 중국복지후원회와 하북성 기독교 양회와 교류가 이루어졌다. 하북성 종교국과 양회 지도자들이 내한하고 이들은 한국의 교회들을 방문하여 설교하고,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 은평천사원을 방문하였다.
 

이들의 방문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국 상황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한국측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북성의 기독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설교하는 강단의 교류를 가졌다. 이후에 하북성 기독교 양회와 교회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신학교와 교회음악과 교회학교의 발전을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이어서 문화교류, 종교정책 교류, 복지, 이단 문제 대처 등 보다 깊은 차원의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고 토의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한국교회와 하북성 기독교 양회와 교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만 유지된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선교의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한국선교 이대로 좋은가’라는 강력한 반성과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을 우리는 솔직하게 시인하여야 한다. 특히 중국선교에 대해서는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선교의 인적, 영적, 물적 자원은 가지고 있으나 확고한 선교신학과 선교현장에 맞는 선교전략의 개발을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다. 갈수록 중국선교는 어려워지고 있다.
 

필자의 중국선교는 섬기는 선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주님이 우리를 섬기셨듯이 우리 또한 섬겨야 한다. 섬긴다고 하는 것은 섬기는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대상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 민족을 위한 선교, 그 민족과 함께하는 선교, 그 민족이 하는 선교가 되게 하여야 한다. 선교우월주의, 실적주의, 선교사 파송교회 중심, 선교사 중심, 교회개척 중심의 선교는 재고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와 중국복지후원회의 선교는 섬김(후원)의 신앙을 가지고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하며, 중국 정부와 함께 복지, 교육, 농업, 지역개발을 위한 자연전도 방법을 통해 섬긴다. 나의 중국 사역 이야기가 중국선교를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격려와 도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의중 | 중국복지후원회 회장, 인천작전동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