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  통권 187호     필자 : 류소망
[특집] - 특집/ 나의 중국 사역 이야기(2)
사라져가고 있는 언어 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


햇살이 따스해서 참 좋았던 겨울의 어느 날, M종족의 마을에서 촌장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결혼식은 마을 최대의 축제입니다. M민족의 전통문화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지요. 그런데 천년 가까이 한곳에 정착하여 살아온 소수민족 M종족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와, 이날의 결혼식에서는 특별히 전통방식의 혼례와 신식 결혼식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은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되자, 촌장 집 가장 안쪽 가운데에 마을의 덕망이 있는 승려가 흥겨운 얼굴로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그리고는 아카시아 나무를 태우면서 축복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촌장 집에는 이내 연기가 자욱해지고, 승려의 굵고 낮은 주문 소리가 온 집안에 퍼져나갑니다. 참으로 엄숙한 순간,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승려가 외우는 축복의 주문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승려가 외우는 주문은 인근의 유명한 T불교의 불경 언어로서, 종교적으로 오래 전부터 승려들 사이에서만 전수되는 경전 속의 언어일 뿐 그들 M민족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M민족은 3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인근의 다른 산지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T불교를 신봉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T언어를 그들의 언어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T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라마승려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M민족에는 그들의 고유한 언어가 있습니다. M언어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학교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M언어뿐만 아니라 국가 공용어인 H어를 활발하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M마을의 어른들은 늘 걱정합니다. 아이들이 행여나 M언어를 쓰지 않는 날이 오지나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승려의 주문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도 이제 한숨 돌리고 잠시 쉴 곳을 찾아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사회를 보던 마을의 어르신이 갑자기 저를 앞으로 불러내었습니다. 얼떨결에 앞자리로 나간 저를 옆에 세워두고 마을 어르신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결혼식에 아주 고귀한 분이 참석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분입니다. 이분은 우리 M민족 사람들의 친구이고, 마을 촌장의 친구고, 특별히 지난 수년간 우리 민족을 위해 언어를 연구하고 문자를 만들어 주고 있는 분입니다. 바로 류 선생님입니다. 류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정말로 사랑해서, M민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류 선생님께서 오늘 결혼을 하는 신랑 신부를 위해 축복의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앞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저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직 한 번도 결혼식 주례사를 해 본적이 없던 저로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난 6년 동안 제가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해 왔고 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저를 향한 따스한 눈망울을 앞에 두고, 제가 축복의 말을 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과 신부를 축복합니다. 앞으로 아이도 많이 낳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촌장님의 가정도 복을 받기 원합니다.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M민족 전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가정마다 부모와 자녀가 모두 행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랑스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M민족이 전통과 문화와 언어를 잘 발전시키기를 원합니다. 가장 바라는 것은 M민족의 영혼이 복을 받아, 오늘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M종족은 최근 10년 동안 급속도로 외부 문화의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고 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민족입니다. 제가 6년 전 처음으로 산속 깊은 곳, 아무도 찾지 않는 M종족의 마을을 찾아 사람들을 만났고, 시간이 흘러 촌장과 승려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그들은 저에게 그들의 속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언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지금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M언어를 말하고 있고 아이들도 태어나면서부터 M언어를 배우지만, 그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얼마지 않아 국가공용어인 H언어를 배우고 읽고 쓰게 됩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M언어보다 H언어를 더 많이 쓰게 되어 나중에는 M언어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산 아래에 있는 M민족의 다른 마을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가정에서 부모들이 일부러 아이들에게 M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공용어로만 말하도록 하고 있다며, 그래서 그 동네에서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모두가 M언어를 말할 줄 모르게 되었다며 마을의 어른들은 혀를 찹니다. 누군가는 “이게 다 M언어를 기록할 문자가 없어서 되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M민족이 멍청하고 무식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글자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은 있지만 기록할 문자가 없는 M언어는 당연히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오랜 시간 동안 M언어에 대해 누구도 연구를 해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M민족의 마을을 찾았을 때 류 선생은 앞으로 M민족의 언어를 연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원한다면 M언어로 문자를 만들 수도 있고, 그 글자를 M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을의 승려와 촌장은 반색을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껏 내려오는 M민족의 전통문화와 노래와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모두 기록할 수도 있겠네요.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읽히고, 아이들이 M민족의 문자로 글을 쓰도록 하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M민족 문화를 전수해 줄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촌장과 마을의 어르신들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M민족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M민족의 언어처럼 현대화의 바람에 따라 소수민족의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유라시아 등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언어를 다음세대에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언어생존력(language vitality)을 1단계(전 세계적 통용언어)부터 10단계(완전 소멸)까지 구분하여 나타낸 “세대간 언어중단 계수”(EGIDS)를 기준으로 볼 때, 기록된 문자가 없는 언어 가운데서 아이들까지도 모두 그 언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 제6단계, 부모세대에서만 그 언어를 말할 수 있고 아이들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제7단계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당수의 언어가 6단계와 7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이미 너무도 많은 언어들이 7단계를 지나 8단계 너머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소수민족의 언어가 사라지면, 복음을 전할 때 공용어로 전할 수 있게 될 테니, 우리가 할 일이 줄어들게 되고 보다 편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일면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해서 가장 염려하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학자나 정부, 혹은 다른 외부인들도 아닌 바로 그 민족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언어를 지키고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언어가 곧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그들 중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글자를 만들고, 문자를 보급시키고, 언어를 계발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선교사가 이들에게 다가가서 언어 소멸의 위협을 받고 있는 그 민족을 위하여 언어를 연구하고, 문자를 개발하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글자에 담아내어 후손들한테 전수해 준다면, 이는 그들 소수민족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교사와 선교사가 전해 준 글자와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선교의 미완성 과업들,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수많은 미전도종족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 민족의 언어를 연구하고 보존해 주는 일을 할 사람에 대해서 만큼은 마음을 활짝 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박 2일의 결혼식이 끝나고 산속 마을을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신랑 W군이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습니다. 두 손으로 저의 손을 꼭 잡은 W는, 저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삼촌, 우리 M민족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늘 말씀하시기를, 삼촌은 항상 우리 마을과 우리 M민족의 문화와 언어를 위해 좋은 일을 생각하는 분이니, 삼촌이 하는 말을 하나 하나 잘 새겨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한국 삼촌! 저와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 모두 삼촌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민족을 위해 많이 도와 주세요.”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가운데서 성경번역선교사들이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그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급변하는 언어 환경 속에서 그들 민족이 원하고 있는 그 무엇을 함께 공감하며, 그 언어를 통해 섬겨 준다면 말입니다.




 

 

류소망 | 성경번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