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2  통권 186호     필자 : 함태경
[특집] - 특집/ 나의 중국 사역 이야기
나에게 중국과 선교란?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 우연한 계기를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제 삶의 3가지 키워드를 재확인하게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선교’, ‘중국과 중국인’, ‘미디어’. 원고청탁을 받고 고민하다가 이들 키워드로 글을 써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선교’
모태신앙인이었기에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나의 구주가 되셨고, 학창시절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선교는 주님 나라에 갈 때 짊어지고 갈 나의 존재 이유가 됐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평생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선교를 할 것인지는 어렸을 때의 경험이 한몫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수많은 외국 목회자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설교자로서요. 직접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어린 마음에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한국인을 진정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고작 할 수 있는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몇 마디뿐이었습니다.
 

한국을, 아니 한국인을 사랑한다면 떠듬거린다고 해도 설교, 아니 기도만이라도 한국어로 할 수 있었다면 그 자체가 엄청난 감동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그 같은 한국어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후 수많은 (선교)집회에 참석했지만 외국인 강사 누구에게도 한국어로 된 설교나 기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꽤 세월이 지난 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대천덕 신부님(예수원 설립자)이나 오대원 목사님(예수전도단 설립자)을 만나기 전까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외국 목회자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주관적, 한정적 경험과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린 마음에는 분명 큰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한국어로 설교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지난한 작업이지만요. 그래서 저는 어렸지만 만일 외국에 가게 되면 유창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나라 말로 일정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상대방의 문화와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그들의 언어로 복된 소식(복음)을 전한다면, 예수님이 앞서 보여주신 것처럼 ‘복음의 상황화’를 한다면 주님의 재림이 다가올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두 번째 키워드가 만들어진 계기인 것 같습니다.
 

‘중국과 중국인’
대학에 진학한 뒤 8월 어느 날,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누구의 권면을 받은 기억도 없습니다. 저는 1981년 학번입니다. 그때만 해도 중국어는 인기 있는 외국어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중국을 ‘중공’이라고 칭할 때였습니다. 중국어 전공자가 아니었던 제가 당시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학원수강이나 교육방송 청취뿐이었습니다.
 

지금도 중국어를 배우게 된 첫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9월 첫날 YMCA학원 저녁 8시 30분 반이었습니다. 수강생은 3명. 강사는 당시 중국어 교육방송 강좌로 유명했던 송재록 인하대 교수님의 동생인 송재복 선생님이었습니다. 우선 송재복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아름답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노련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중국어의 성조(4성)까지 입혀지니 천상의 언어로 다가왔습니다. 그날부터 중국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제 전공과목보다 중국어에 더 집중했습니다.
 

초급과정을 넘어 중급, 고급과정에 이르기까지 수강생 중 중국어 전공자들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으로 학원수업에 빠지는 게 다반사였지만 저는 항상 제 자리를 지켰습니다. 어느 날에는 50분 수업시간 거의 대부분을 독차지한 적도 있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의 첫 질문을 받으면 대답과 질문을 계속 이어가다가 다음 수강생 차례로 넘어가지 않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설령 다른 수강생 차례가 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새 대화 중간에 끼어들어 제가 좀 더 많은 시간을 차지했습니다.
 

1년도 되지 않아 ‘중국어 <리더스 다이제스트>’, 중국어 고등학교 교과서 등을 독파할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중국어 배우기에 열중하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분명 화교들이 살고 있을 텐데, 그들 가운데 크리스천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 화교 크리스천 청년들은 어디에 있을까’ 이때 알게 된 곳이 정동 MBC(현재 경향신문사) 앞 한성화교교회 대학청년부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이면 한국화교들이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화교청년들이 저를 알아주든 몰라주든 저는 그 모임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말을 나누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화교대학생들과 접점이 점차 넓어졌습니다. 방학이면 대만 유학 중이던 화교대학생들이 가족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럴 경우 모임의 규모가 방학 전보다 커졌습니다. 저는 화교청년대학생들과 모임 뒤 분식집에 함께 가는 등 그리스도 안에서 관계가 깊어졌습니다.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받아 저를 위해 생일축하모임도 해주었습니다. 이 모임은 우여곡절 끝에 훗날 ‘띠지투완치(地极团契)’를 거쳐 중국복음선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국내에서 한국인과 화교들이 함께 시작한 유일한 중국선교단체입니다. 이때 함께한 형제자매들 가운데 현재도 중국과 화교권 선교사, 대학교수, 기자, 상사주재원 등으로 중국선교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임 때마다 중국어로 찬양하고 중국어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고백하고 화교 목회자들의 중국어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는 각자의 수준에 맞춰 중국어 초·중급과정, 중국기독교역사 강독과정 등에 참석해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여갔습니다. 저는 중국어뿐 아니라 중국문화, 역사, 철학 등에 심취해 전공공부보다 100배 이상 더 열심히 익히려고 애썼습니다. 그때의 열심(热心)이 세계 개신교의 중국선교 200주년을 맞이한 2007년 ‘선교중국(Mission China)’의 기치를 들게 되고 ‘한국중국선교협의회(중선협)’를 결성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젊은 시절 오랫동안 서로의 성격과 마음을 잘 알고 동역했던 터라 쉽게 의기투합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07 선교중국대회를 위해 중국복음선교회 대표는 물론 중국복음선교회 초대총무와 2대 총무 등이 실무책임자를 맡았습니다. 한성화교교회 목회자이자 중국복음선교회 대표인 유전명 목사님은 주관 단체 대표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한편 주강사인 지금은 고인이 되신 토마스왕 목사님 섭외 등을 맡아주셨습니다.
 

대만교회 목회자인 초대총무 이상란 선교사님은 성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식월까지 선포한 뒤 한국에서 상주하며 대회 진행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선교사님은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오실 화교권 강사들의 추천과 섭외를 담당해주셨습니다. 2대 총무인 박화목 선교사님은 ‘무명의 전도자’로 유명한 중국 가정교회 원로지도자 볜윈보(边云波)에 대한 주강사 초청과 함께 선택강좌를 맡아줄 중국선교사님들에 대한 추천, 섭외를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선교중국대회는 ‘No Title’, ‘No Glory’라는 관점에서 진행됐습니다. 이는 실무자들은 타이틀(직책)이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상임총무로 섬기면서 대회 기간 내내 사회조차 보지 않을 정도로 ‘No Title’, ‘No Glory’ 정신을 구현하려고 애썼습니다. 핵심실무진 모두 섬김이 역할만을 하도록 했습니다.
 

2007 선교중국대회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행사였습니다. 보통 기독교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할 때면 규모와 예산 조달 등을 감안한 조직을 구성합니다. 고문, 대회장, 부대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만드는 것도 그 일환이지요. 하지만 저는 선교중국만큼은 규모와 예산을 염두에 둔 조직을 통해 진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대신 ‘가치’로 동역자들을 모은 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을 직접 목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했던 것은 ‘믿음선교(Faith Mission) 정신’이었습니다. 대회 시작 전까지 예산은 제가 낸 씨드머니 ‘5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대회를 앞두고 동역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나님이 이 씨드머니를 통해 어떻게 일하실 지 우리는 볼 것입니다. 이 대회가 마무리될 때 우리는 분명 확인할 것입니다. 특정인이 있었기 때문에 이 대회가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직접 하셨습니다.” 비전과 가치에 동참할 실무진이 일부 구성되면 그 외는 하나님이 준비된 사람들과 재정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2007 선교중국대회는 일반 집회 외에도 학술콘퍼런스,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 선교 200주년 기념 사진전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미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에서도 강사로 많이 참여했습니다. 3가지 행사를 동시에, 그것도 재정이 없는 상태에서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역자들의 온전한 헌신으로, 대회를 위해 따로 모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대회 진행비(일부 강사 항공료와 강사비 등)는 물론 할렐루야교회에 장소사용료와 숙식비 등을 낼 수 있는 재정까지 채워주셨습니다. 재정 일부가 남았을 정도였습니다. 이상란 선교사님은 할렐루야교회 관계자와 장소사용비 혜택 협의를 통해 대회 이후 하스데반 선교사님의 ‘경배와찬양’ 모임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까지 했습니다. 선교중국대회는 2007년 중국복음선교회가 주관단체로 섬긴 이후 지금까지 2년마다 계속되고 있습니다. 격년으로 열리는 대회 외에 2013년 대만에서 제1회 선교중국고위전략회의까지 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2007년 선교중국이 시작되면서 나누었던 ‘No Title’, ‘No Glory’ 정신을 중선협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가기를 기대합니다.
 

미디어
세 번째 키워드 미디어는 현재의 일과도 매우 밀접합니다. 대학교 4학년생이던 1988년 9월 국민일보에 입사해서 2012년 퇴사 전까지(그중 1995년 2월부터 2001년 1월까지 대만과 중국에서 유학시절은 빼야겠지만) 저는 미디어 전문사역자라는 정체성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현재 CGNTV를 섬기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종이자 학자. 저널리스트로서 살겠다는 비전의 연장선입니다. 저는 누가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행전인 누가복음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주님의 길을 따라갔던 크리스천들의 삶과 고뇌, 승리를 담고 있는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그처럼 저도 주님의 길에 동참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어떤 형태로든 담아내 동시대의 크리스천들이나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비기독인들에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적인 언어, 즉 ‘시장언어(Market Language)’로 하나님의 복음은 물론 중국과 중국인, 화교권에 대해 글이나 영상으로 변증하고 싶습니다. 《네버엔딩 스토리-중국의 유대인 7막7장》, 《알았던 선교, 몰랐던 중국》 등을 펴낸 것도 이 사역의 일환입니다. 앞으로 펜을 놓지 않고 곳곳에 기고하는 것도 이에 대한 연장선입니다.
 

지난 2월 1일 중국은 새로운 종교사무조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선교사들이 특정지역에서 수십 명이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종교사무조례 시행 전후 세계선교계는 중국 상황 변화를 더욱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에 앞서서 초월적 세계선교의 그림을 완성해놓고 계시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특히 중국 사역을 하고 있는 분이나 중국 사역을 꿈꾸고 있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헌신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있을 때도 그분은 바로 옆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어떤 것도 복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세계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것만은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이도 그분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선택해서 그분의 일에 동참하게 하신 것만 해도 큰 감격이자 은혜입니다. 그가 언제까지 우리를 쓰실 지는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아울러 2007년에 주창했던 선교중국 콘셉트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선교중국은 중국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인이 있는 모든 곳, 즉 세계 곳곳에 중국인의,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선교적 교회(공동체)가 세워져서 자민족 복음화에 앞장서는 한편 세계 곳곳에 중국인들의 협력으로 모든 민족의, 모든 민족에 의한, 모든 민족을 위한 선교 플랫폼이 만들어져서 결국 하나님의 세계선교지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와 한국크리스천은 한국과 중국, 중국과 세계(화교권 포함)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중국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선교일본’, ‘선교필리핀’, ‘선교베트남’, ‘선교영국’, ‘선교프랑스’ 등 모든 나라의 크리스천들이 이 같은 콘셉트로 주님이 오시는 날을 준비하면서 선교를 시작하고 선교를 완성하면 좋겠습니다. 선교중국은 이 개념을 전 세계 크리스천들과 나누기 위한 하나의 예인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만 받아야 합니다. 모든 열매는 이 땅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없어질 때 주님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 표어가 아니라 삶을 통해 보여질 때만이 참다운 위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주님뿐 아니라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앞선 삶을 통해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길은 결코 불가능의 도전이 아닙니다.

선교의 한랭전선이 구축된다고 해도 하나님은 또 다른 온난전선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공동체가 제도화할 때가 아닌 하나님이 함께하는 생명공동체이었을 때 세상이 결코 이기지 못했음을 잘 알지 않습니까. 모든 중국 사역 동역자들이여, 힘을 내십시오. 온 마음으로 성원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함태경 | CGNTV 경영전략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