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5  통권 184호     필자 : 데이비드 조
[기획]
히말라야 권역 선교


히말라야선교 실행의 의미

중국 역사 가운데 중국이 세계 기독교 역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결정적 기회가 있었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Kublai Khan, 1215 - 1294. 忽必烈, Hu-pi-lieh in Chinese)이 그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를 통해 기독교 교황에게 기독교 가르침과 7가지 학문에 뛰어난 지식인 100명을 몽골로 보내어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 기독교 문명을 가르쳐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1)
 

이 요청은 당시 동유럽, 페르시아 그리고 일본까지 침공했던 그의 막강한 왕권의 영향력 아래 있던 여러 국가들의 운명을 바꿀만한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 편지를 받아야 할 교황 클레멘트4세(Clement IV세)는 사망한 뒤였다. 3년 뒤인 1271년에 선출된 후임 교황 그레고리 10세(Gregory X)는 겨우 수사 2명을 파송했으나 그나마 전쟁이 무서워 2년 뒤에 되돌아 오고 말았다.2) 기독교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결정적 기회를 놓친 것이다.
 

금세기에 기독교가 선택해야 할 중요한 결정적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히말라야 권역 선교를 실행하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창조 이래로 이날까지 티베트, 네팔, 부탄, 그리고 일부 인도와 파키스탄 등지에 분포된 13억 이상의 영혼들을 두려움이라는 어둠의 세력으로 묶어 복음의 빛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영적 어둠의 요새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산맥은 세계 최대의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인도라는 이념 간의 장벽, 그리고 무신론의 종주국 중국과 힌두교의 종주국인 인도 사이의 종교적 대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또한 히말라야는 지리적 고립과 외부의 폐쇄로 인하여 세계선교 운동의 주요 관심에서 소외되어 왔다. 이처럼 히말라야는 영적, 종교적, 정치•사회적인 강력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관계로 히말라야선교의 결과는 세계 권력 이동에 직접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3) 따라서 시대의 마지막 날에 히말라야에 존재하는 모든 잊혀진 종족과 숨겨진 종족, 방언을 복음 앞에 노출시켜 그리스도 앞에 세우는 전략적 선교가 필요하다.

본 발표자가 실행하고 있는 히말라야선교는 히말라야산맥이라는 지리적 장애를 뛰어넘어 히말라야산맥 북단에 자리한 중국 티베트의 수도인 라사(Lhasa)와 산맥 남단에 자리한 인도 동부의 실리구리(Siliguri)를 ‘선교축’(宣教轴, Mission-Axle. M. A)으로 삼고 이 선교축을 서로 복음으로 연결한 뒤 이 두 도시 즉 선교축에 각각  연결되어 있는 히말라야 남북단을 평행으로  흐르는 세계 문화의 통로인 실크로드(Silk Road)와 갠지스 문화통로(Ganges Cultural Transition)를 상하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히말라야 남북단에 평행으로 누워있는 두 문화통로 선상에 자리한 도시들 가운데 선교 수행에 적절한 도시를 선교거점 즉 ‘중간 선교축’으로 삼고 선교축들을 상하좌우로 거미줄처럼 복음으로 연결하여 히말라야영역 안에 거주하는 종족들과 방언들을 복음 앞에 세우는 것이다. 이때 선교축을 상호 연결한 것을 ‘선교축선’(宣教轴线, Mission-Axle-Lane, MAL)이라 부른다.4)
 

중국교회나 한국교회가 히말라야선교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시대 전망적인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이다. 히말라야선교에 참여는 부흥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중국교회가 개체 교회의 부흥에서 선교 중심적인 교회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또한 부흥의 꼭지점에서 기울기 시작하는 한국교회의 영적 추락을 멈추게 하고 교회부흥과 세계선교로 재도약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히말라야선교는 관련 국가의 기독교 발전은 물론 세계 기독교 발전에도 기여하는 시대적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히말라야 권역 선교의 중요성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은 땅: 사회•문화적, 영적 중요성

히말라야산맥은 아시아 중부의 서북 방향에서 남동쪽을 가로지르는 약 2500킬로미터 길이와 200-300킬로미터의 폭을 가진 거대한 띠 모양을 하고 있다. 산맥은 왼쪽의 아프가니스탄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하여 – 파키스탄 - 인도 라다크(Ladakh) - 네팔 – 시킴 – 부탄 – 아루나찰 프라데쉬(Arunachal Pradesh) – 나갈랜드, 그리고 오른쪽의 미얀마 일부에 이르기까지 펼쳐진다. 히말라야는 아시아인들의 삶의 근원이 되는 아시아 주요 7대 강인 인더스, 갠지스, 브라마푸트라(인도), 양쯔강과 야롱강(중국), 메콩강(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그리고 살윈(Salween, 미얀마)강 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히말라야는 상당수의 아시아인들에게 삶의 근거지가 된다.5)

아시아 산물의 대부분은 히말라야에서 생성된 구름과 이슬, 비로 이루어진 강물을 받아들인 결실들이다. 히말라야를 의존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약 13억에 이른다. 이들은 자기들 고유의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유사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외부로부터 지리적, 사회적, 혈통적, 언어적으로 극도로 고립되고 폐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복음에 노출되지 않은 미전도종족들이다. 또 히말라야는 현란할 정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풍광을 지닌 수많은 고산들과 깊은 골짜기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히말라야의 지리적 고립과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요소들로 인하여 사람들한테 존엄함이나 근접할 수 없는 힘으로 비추어지고는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많은 전설과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Buddhism과 Brahminism의 공통된 교의를 가진 인도의 종파) 등의 종교와 유사종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히말라야는 아시아인들에게 생활 근거는 물론 종교적 사상체계 형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히말라야는 아시아의 삶과 정신체계를 형성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는 교회가 히말라야선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할 이유이다.
 

 

 

땅 끝, 히말라야: 세계선교 운동관점에서 본 중요성
히말라야는 세계선교에 있어서 진정한 땅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래 교통수단의 발달로 먼 거리 개념의 땅 끝은 이미 극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상에서 수직적 땅 끝인 히말라야는 여전히 전대미답의 선교 처녀지로 남아 있다. 히말라야산맥 지역에서 해발고도 4000킬로미터 이하의 고봉들에 대해서는 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언덕(Hills)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산에는 이름도 붙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해발 8000킬로미터 이상의 고봉은 모두 히말라야산맥에 다 있다. 높은 산과 골짜기에는 외부로부터 분리, 고립된 소수종족들과 잊혀진 방언종족들이 무수히 거주한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모든 민족과 나라와 종족과 방언이 다 나아와 주님을 경배할 것을 예언한다(계7:9). 그러나 이날까지 세계선교는 민족, 나라, 종족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방언 중심의 선교(Language–Oriented-Mission)는 세계선교 운동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히말라야는 자기만의 방언을 보유한 많은 소수종족들이 숨겨져 있다. 그동안 히말라야선교는 수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일정한 인구 수에 이르지 못한 종족은 선교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통계 중심 선교, 효율 중심 선교 운동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제 히말라야선교는 세계선교 운동의 주변자(Periphery of the world mission)의 자리에서 선교 운동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교축선을 활용하여 히말라야 전역을 복음 앞에 노출시키는 선교전략은 세계선교에 두 가지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그동안 주로 수평 방향 즉, 동서 방향으로 진행되던 세계선교의 흐름을 수직 방향 즉 남북 방향 내지 교차형 선교 흐름을 제공 함으로써 세계선교 활동의 촉진과 효율적 선교의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둘째, 그동안 지리적 접근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산발적이며 비체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히말라야선교의 편중성과 비효율적 접근을 극복하여 히말라야 주거인들을 복음 앞에 노출 시키는 총체적 선교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히말라야선교를 위한 전략적 접근은 세계선교의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저들을 결박할 것인가: 반기독교 영적 세력 대결로서 히말라야 선교의 중요성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행하신 바를 드러내는 도구이다(시19:1). 히말라야의 폐쇄성으로 인한 두려움과 신비감에 기인한 지나친 경외심은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는 현지의 내부자나 히말라야의 풍광을 동경하는 외부자들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히말라야 선교는 어둔 영적 세력을 그리스도 예수 앞에 노출시키는 종말론적 영적 전쟁의 현장이다.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히말라야가 생성된 수만 년 동안 히말라야 거주민들과 주변 종족들이 두려움으로 어둠의 세력을 숭배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선교는 히말라야를 전략적 대상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왕권을 선포하는 선교가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둠의 세력이 거짓의 왕 노릇을 하는 동안 기독교는 수만 년 동안을 침묵해온 것이다. 히말라야선교는 하나님의 영광에 도전하는 영적 세력을 결박하는 치열한 영적 대결 현장이다.
 

일어나라, 때가 가까웠느니라: 종말론적 사건으로서 히말라야선교의 중요성
히말라야선교는 여러 측면에서 종말론적인 성격을 품고 있다. 종말론적이라 함은 이 시대에 최종적이며 일회적 사건으로써 반드시 실행되어야 절체절명(绝体绝命)의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첫째, 히말라야선교는 어둠의 세력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거주민들을 어둠의 종 노릇하며 살게 할 것인지 아니면, 빛 가운데로 불러내어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할 것인지를 결정짓게 하는 치열한 대결 과정이다.
 

둘째, 히말라야선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강력한 정치, 문화, 종교적인 잠재력을 지닌 중국과 인도를 복음으로 연결하여 세계선교의 완성에 기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전략적 선교이다.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과 인도를 복음으로 연결하여 세계선교의 완성을 위한 선교전진기지로 세우는 전략적 접근이 시도되지 않았다는 것은 세계선교의 맹점이라 할 수 있다. 히말라야선교의 실현 없이는 양국이 복음 안에 손잡는 일을 기대할 수 없으며, 또 중국과 인도의 동시 복음화 없이는 세계복음화의 완성도 기대할 수 없다. 히말라야선교의 시기나 진행이 어떤 이유로든 밀리면 세계선교의 완성도 그만큼 밀리는 것이다.
 

셋째,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히말라야선교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히말라야선교의 실현 여부는 영적 결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나아갈 것인지 어둠의 세력에 밀리는 부끄러운 자리에 머물 것인지를 가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중국교회는 히말라야선교를 통해 부흥 중심의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로 전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영적인 기울어짐을 멈추고 세계선교를 위한 재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중국교회가 히말라야선교를 품어야 하는 이유들

중국교회는 히말라야선교를 위한 강력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히말라야산맥과 지리적으로 가장 넓게, 그리고 가장 많이 나누고 있다. 중국은 티베트, 네팔, 부탄, 미얀마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함께한다. 또 중국과 연접한 종족들은 히말라야종족들과 혈통과 언어, 문화적 유사성을 많이 공유하고 있다. 인종과 혈통적으로는 몽골계로써 히말라야 남단인 네팔, 부탄의 산악지대, 시킴과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 대부분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북단인 중국 티베트와 인도 라다크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언어적으로는 몽골-버마계 방언(Mongol-Burma Linguistic)을 사용한다. 특히 티베트어가 네팔과 중국의 국경지대는 물론 부탄, 시킴, 인도의 라다크와 히마찰 프라데쉬, 그리고 아루나찰 프라데쉬, 나갈랜드 북부까지 넓게 사용되고 있다. 부탄의 종카어와 티베트어는 동일한 알파벳을 사용한다.
 

정치, 문화, 종교적 유사성은 지리적 근접성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인도에서 전파된 불교는 히말라야 양단에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불교도의 교류는 양단 사이에 지금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히말라야 동부에 자리한 부탄의 불교 지도자들이 중부 히말라야 네팔은 물론 서부 히말라야인 라다크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넘나들며 영향을 끼치고 있다.6) 그리고 힌두교의 필그림지역의 상당수가 중국 티베트에 자리한다.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산맥 양단은 근대 이전에는 거의 국경 구분 없이 친밀했던 역사를 지녔다. 티베트의 귀족 또는 왕족들은 산맥 남단인 부탄, 시킴 등에 국가를 세워 통치하기도 하였으며7) 반대로 네팔의 고르카왕(Gorkha King)이 티베트와 부탄을 공격하기도 했다.8)

위에서 언급한 히말라야산맥 거주민들 사이에는 혈통, 언어, 정치•문화적 유사성과 함께 생활습관은 물론 종교, 철학 등 사고체계와 세계관까지도 유사성을 보인다. 그리고 기독교 활동에 있어서는 히말라야 거주민들이 사는 티베트, 부탄, 네팔, 파키스탄 등지에서 핍박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교회는 히말라야선교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중국교회는 히말라야선교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둔 숨겨진 보검이라 할 수 있다.
 

중국교회의 성장과 선교의 기회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교회의 발전 과정을 볼 때 지금이야말로 중국교회가 해외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상황을 맞았다고 본다. 수적으로는 상승의 파도를 타기 시작했고, 내적으로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낸 영적 강인함을 보유한 상태이다. 이러한 내외적 성장과 성숙은 건강한 선교의 역량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 기도하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구세대와 양적 성장을 경험하면서 현대 산업 사회에서 정보와 기술력에 노출된 신세대가 공존하는 중국교회는 그러한 구조 자체가 세계선교를 실행하는 큰 잠재력이라 할 수 있다.9) 중국교회가 보유한 선교 역량은 고난과 불편이 일반화한 사회적 상황과 강력한 티베트불교와 정령숭배자들, 드러나지 않은 어둠의 세력이 웅거하는 영적 진지와도 같은 히말라야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중국교회는 이러한 선교적 기회를 붙들어야 할 것이다.
 

중국교회의 미래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폭발적 성장을 누리고 있는 중국교회가 성장 최고점에 도달한 이후에 성장의 결과를 어떻게 유지하며 또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계획하고 있는가? 나는 중국교회가 내면적 성숙과 외부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요인을 중국교회를 선교적 체질로 자리 잡게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중국 격언에 偷梁换柱(tou-liang-huan-zhu) 즉 기둥을 훔쳐 가는 도둑은 대들보도 뽑아간다(Steal the beams, Change the pillars)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10) 중국교회가 외적 성장으로 인한 영적, 물질적 부유함을 즐기는 동안 복음의 본질인 그리스도라는 기둥이 뽑힐 수 있다. 지금 교회 안에 세속적 경향과 교회 내부의 분파주의적 경향이 뿌리 내리기 전에 교회를 선교적 체질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차후에 건강한 중국교회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11)
 

지금부터 지역 교회들을 접근이 용이한 히말라야선교 운동 등 전략적인 해외선교 또는 타문화권 선교에 참여시킴으로 성장과 안정된 교회에서 선교 중심적 교회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선교경험 없이는 선교적 체질을 터득할 수 없다. 지금 중국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이자 교회를 선교하는 체질로 바꿀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국력 성장에 따른 대외 개방정책이 히말라야선교를 시행할 기회이다. 선교실현을 결정하는 최종의 요소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상황을 선교 촉진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중국은 G2- 또는 G7 회원국으로 진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됨으로서 국내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해 다소 유화적인 태도, 교회의 외형적 확장에 대한 묵시적 인정, 교회의 대(对)사회적 접근에 대해 용인해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불법외국 자금의 유입과 외국선교사들의 국내 활동의 억제 현상이라는 반대급부를 불러오기도 한다. 중국교회는 이러한 정치적 흐름을 살려 자력적인 타문화권 선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중국 정부의 중요한 국책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and One Road, B & R)의 전략을 살펴보면 한국, 일본 등을 향한 동방통로, 유라시아 국가들을 향한 서방통로, 러시아를 향한 북방통로는 대체로 원활하게 열려 있다.12) 이와는 달리 히말라야가 자리한 남방통로 즉,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부분은 막혀있거나 약해 보인다. 중국교회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접근하는 남방통로를 정치나 경제력에 앞서 복음으로 먼저 열어가야 한다고 본다. 즉 히말라야선교를 통해 복음의 남방 일대일로(为福音南方一带一路)를 열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히말라야선교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먼저 히말라야 전역을 한 번에 아우르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접근성의 제한, 외부로부터 폐쇄성을 지닌 산악 현장을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을 유지하는 한 권역의 선교실현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선교적 효율은 낮을 것이다.
 

먼저, 권역 전체를 함께 품고 함께 세우는 전략이 선교실현의 시간 단축과 선교적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트랜스히말라야네트워크(Trans Himalaya Network)를 사례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다.13)

 


 

 

 

 

둘째, 선교전략적 요충지를 히말라야 전역의 곳곳에 선교축을 선정하여 서로를 복음과 선교로 상호 연결한다. 각 선교단체나 교회는 그들의 부름에 따라 각 선교축선을 담당할 수 있다.
 

셋째. 선교축선 안에 속한 지역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 인접 종족 사이의 문화, 언어, 종교적 유사성이나 동질성을 보유한 종족 또는 언어별로 연결하여 복음을 전한다. 이 개념을 실제로 적용한 성경적 사례는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단시간에 완성한 경우를 들 수 있다.14) 행정 또는 지역적 구분보다는 혈통과 문화적 동일성을 살려 삶에 연결된 선교를 행함으로 ‘뿌리로부터 선교(Grass Root Mission)’를 이룰 수 있다.
 

넷째 전략적 선교축선을 형성한 뒤 실제적인 선교 실행은 (1) 기도로 지역 안의 영적 세력 결박, (2) 선교축선 사이의 선교정보교환, (3) 현지 기존 인력의 최대한 활용, (4) 대내외적 총제적 협력을 유지하는 것 등이다. 이때 선교전략과 선교축선 형성과업은 외부자와 현지 기독교인 중심으로, 중보기도, 복음제시, 지역개발사역 등은 현지 기독교 지도자와 현지 주거민을 중심으로 실행하기로 한다.
 

세계복음화는 히말라야에서부터
히말라야는 창조 이래로 여전히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땅으로 남아 있다.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는 산과 같다. 히말라야선교는 이 시대의 교회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종말론적 과업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49장 11-12절을 통해 “끝 날에 시님 땅 곧 중국인들이 산악에 만들어진 대로를 따라 주님께 모여든다”고 약속했다.15) 산악의 대로 즉, 히말라야의 산길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드는 것은 타당하고 가능하다고 본다.
 

아시아교회 특히 중국교회는 히말라야와 가장 가까이 자리한 국가로서 히말라야선교를 위한 자생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선교할 자원으로서 폭발적 교회성장의 기회도 주어졌다. 이제는 선교를 실행할 때이다. 히말라야선교의 실현은 세계 최대의 복음 요청 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만나 폭발적인 복음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동서로만 흐르던 세계선교의 방향을 남북으로 원활하게 흐르게 함으로 세계선교 운동에 활력을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아시아와 중국 문화의 통로인 실크로드와 인도, 페르시아 문화의 통로인 갠지스강 지역의 통로가 서로 만남으로써 유례가 없는 독특한 문화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선교의 실행은 중국교회 내부적으로 교회성장에 안주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선교 중심적인 교회 체질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먼 길도 함께하면 가까워진다. 세계교회는 히말라야가 부르는 손짓에 따라 함께 나아갈 것이다.



미주               

1) Kublai Khan 은 기독교 종파 중 하나인 Nestorian 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궁정에서 부활절 예식에 참여하여 사복음서에 입 맞추기도 했다(Aldo Ricci. The travels of Marco Polo. 2003. New Delhi: Rupa Co. P.6. P.110.). 그의 어머니도 그 종파의 신도였다. 그는 마르코 폴로 일행한테 금박 통행증(Golden Paiza)을 주어 여행 중 신변 보호와 교통수단 제공을 돕게 했다. 마르코 폴로 일행은 귀국 도중 몽골의 후예인 이란(Iran)의 Arghun 왕으로부터 콘스탄티노플, 로마, 영국왕들한테 보내는 편지를 받아왔다. 그 편지에는 몽골과 기독교가 힘을 합쳐 이슬람을 공격하자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John Man.  Kublai Khan: From Xanadu to Superpower. 2007. London: A Bantam Book. PP.371-373).
2) Peter Jackson, The Mongols and the West: 1221-1410. 2014. New York: Routledge. pp. 167-196.
3) David Aikman. Jesus in Beijing: How Christianity is Transforming China and Changing the Global Balance of Power. 2003.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 PP. 288-289(중국 기독교와 국제관계를 참조할 수 있다.)
4) 선교축, 선교축선은 선교 실행 개념의 하나로서 특정지역 안에 선교적 기능을 보유한 도시들을 선교 기지로 선정하여 이들을 선교 기능적으로 상호 연결하여 선교그물(missional Nexus)을 만듦으로써 권역 내 선교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 개념은 조동욱이 2001년 고안하여 그가 주도하는 “히말라야 하이웨이 프로젝트”(Himalayan Highway Project)에 적용하고 있다.
5) Fisher James F., Ed Himalayan Anthropology: The Indo- Tibetan Interface. 1978. Mouton: The Hague.  
6) Cindy Perry, Nepali around the World. 1997. Kathmandu: Ekka Books. P. 11
7) Worden, Robert L."Origins and Early Settlement, A.D. 600–1600". Bhutan: A country study(Savada, Andrea Matles, ed.). Library of Congress Federal Research Division
8) Sino-Nepalese War of 1792, between Tibet and Nepal 에 대하여 아래를 참조하라. Rose, Leo E. (1971).Nepal; strategy for survival.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P.110. 
https://en.wikipedia.org/wik
i/Nepalese%E2%80%93Tibetan_War
.
9) Trans Himalaya Network는 2014년 히말라야 권역에 봉사중인 한인선교사들이 모여 선교축선 개념을 적용하여 선교 그물 (Missional Nexus )을 만들어 히말라야 전체를 복음 앞에 세우는 실행 모임이 다.
10) Nicolas Ostler, Empires of the Word: A Language History of the world. 2006. London: arper Collins Publishers. P.171.
11) David Aikman. Jesus in Beijing: How Christianity is Transforming China and Changing the Global Balance of Power. 2003. Washington, D.C.: Regnery Publishing.P.158.239 참조하라
12) http://www.wise.co.th/wise/Knowledge_Bank/References
/One_Belt_One_Road/OBOR_ING.pdf

13) Trans Himalaya Network는 2014년 히말라야 권역에 봉사중인 한인선교사들이 모여 선교축선 개념을 적용하여 선교그물(Missional Nexus )을 만들어 히말라야 전체를 복음 앞에 세우는 실행 모임이 다.
14) Nehemiah 6:15 반대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총체적 사전 준비와 구간별 책임부여라 볼 수 있다. 히말라야 선교도 선교축선 개념을 활용하여 이와 유사한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15) 11절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12절 혹자는 시님 땅에서 오리라, 시님을 중국으로 보는 해석은 고대부터 인정되어 왔다. C. F. Keil and F.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3 reprint, volume VII, pp. 266-268, Edward J. Young,  The Book of Isaiah,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2, volume 3, p. 282 등을 참고하라.

 






 데이비드 조 |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