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5  통권 184호     필자 : 김주한
[쉬어 가는 페이지]
동양의 근대화와 현대신유학 (현대신유학의 여정12)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어떤 이가 현대유자(现代儒者)인가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가 ‘유가적 정감을 갖춘 학자’라는 점에서는 논란이 적을 것이다. 유가적 정감을 지닌 학자와 순수한 유가철학의 연구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으니, 바로 역사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은 주로 중국문화와 유학에 대한 온정적인 경의와 동정적인 이해이고, 중국문화와 유학이 압제를 당한 것에 대한 울분을 마음속에 지니며 유학의 전도와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 그러나 유학이 학문과 수양의 기초가 없고 단지 문화와 도덕상의 관심만 있다면 진정한 유학자가 될 수 없다. 20세기 신유가의 대부분이 중국철학사 및 유학사상사에 대한 정밀한 연구를 학술적 기초로 삼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이 시대가 서양철학의 충격과 현대문화의 도전에 직면하여, 학술과 이론상에서 유학을 정리하고 재구축해야만 철학사상의 지평에서 바로 설 수 있고 논쟁의 상대방에게 존중받을 수 있고 다른 사상계와 합리적으로 상호작용함을 형성할 수 있으며, 또한 지식인을 설득하고 사회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문화적 분위기를 쇄신하여 유학의 전면적인 부흥에 견실한 기초를 놓을 수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진래-


서구적 근대화의 충격과 전통문화 비판

서구열강의 침탈로 시작된 동양의 근대는 동아시아의 유구한 역사문화에 큰 상처를 남겼다. 과학과 기술로 표상되는 근대화는 곧 서구화와 같은 이름이었고, 서구적 시각에 종속되면서도 서구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는 전통의 부정과 자문화에 대한 혐오로 나타났다. 서세동점의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동아시아는 각각 중체서용, 동도서기, 화혼양재와 같은 개념들로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서구가 제시하는 근대적 가치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평가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오랜 시간 동아시아의 전통을 낙후하고 개조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서구적 개발논리만이 근대적 인간이 추구할 방향이었다. 전통은 곧 죽은 전통이었고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며 착취하거나 착취당하거나 혹은 착취를 당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서구열강이라는 외부적 근대화에 의한 충격보다 스스로 전통을 폐기하고 서구적 근대의 경쟁체제로 돌입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근대는 ‘자기부정’의 역사를 걸었고 그 상처는 겉은 양복을 입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도시인의 아득한 그리움 같은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근대를 보내고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중국이 미국과 나란히 G2의 반열에 올랐을 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외쳤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본래의 자기를 찾으려는 문화열과 국학열의 열기가 일어났다. 먹고 살 걱정이 앞설 때 문화의 품격을 먼저 이야기할 여력은 없다. 그러나 다시 먹고 살 걱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사람은 다시 자기의 존재와 품위를 확인시켜줄 문화를 찾는다. 자기를 부정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으로 다시 자기를 찾으려는 역사 속에 현대신유학의 여정이 있다.
 

동양적 근대화의 태동과 전통문화 부흥
동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양에 반대되는 비서구의 개념으로 서양이 주체가 되어 경계를 지어 놓은 것이지만 현대신유학자들은 동양이라는 ‘비서구’의 범주에 고립되지 않았다. 때로는 서양적인 방법론을 동원하기도 하고 서양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동양의 깊이를 말하면서 동양이 ‘비서구’가 아닌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정신임을 강조했다.
 

현대신유학자들은 20세기에 살면서 근대라는 시간이나 비서구라는 공간에 매여 있기 보다는 그들이 주목하는 전통을 통해 유구한 세월 동안 동아시아를 호령한 중국의 정신을 품고자 했다.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문화보수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사상의 흐름이 2012년 시진핑이 제시했던 중국몽(中国梦)과 전통문화학습에 대한 국학열(国学热)이 합쳐져 중국의 근대적 상처가 이제는 마치 사소한 흉터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유학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대신유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순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나면서 서양과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할 때, 문화를 서양이 아닌 동양에서 찾고, 현실이 아닌 전통에서 찾아서 이를 ‘중국식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현대 중국의 성장과 비전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눈을 돌려 유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과 현대신유학자들이 추구한 전통문화와 유가적 부흥의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신유학자들은 여전히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맹렬하게 투쟁하던 시대의 긴장 속에서 서양이 줄 수 없는 고유한 동양적 가치에 주목했고 이것을 실현하고자 했다. 곧 동양을 비서구로 인식하던 환경에서 서양을 ‘비동구’로 인식하려고 했던 것이다. 서구 근대화의 개발논리와 비교되는 동양의 개발논리를 구축하려고 하지 않고 근대적 개발논리가 아닌 동양인의 도덕정감, 조화의 사회 등의 전통가치를 일관되게 주장했다는 점에서 보다 주체적인 시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서양과 경쟁하려는 의도의 정치적 ‘개발논리’는 포함될 수 없다.


탈근대시대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대화

올 한 해 동안 현대신유학자들의 사상을 짧게나마 살펴보면서 전문적인 학술개념보다는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려 한 ‘현대신유학’의 정신을 엿보려고 애썼다. 두유명, 줄리아 칭, 진영첩, 장입문 등의 인물들과 유교종교론과 유교비종교론의 논쟁을 더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중국 사상계가 주목하는 유학 개념이나 인물들을 더 소개할 수 있길 바란다.
 

현대신유학의 ‘현대’와 우리가 사는 ‘현대’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사상은 국가나 민족, 종교와 같은 근대적 가치들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더 이상 긍정의 것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이념이 가득찬 상상과 권력의 공동체로 여과 없이 비판한다. 이러한 탈근대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전통문화의 공동체 지향성과 현대문화의 개인 지향성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 지가 현대신유학의 활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신유학이 제시한 인간의 덕성(德性)을 통해 공동체에 숨는 무비판적인 대중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참여와 연대 없는 개인으로 도망치지 않는 수기치인의 균형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다.

 





사진 | 바이두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