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신예 감독 황진(黄进, Chun Wong, 1988- )이 연출한 《매드 월드》는 올해 3월 9일에 홍콩에서 개봉되었고, 4월 7일에 중국 대륙과 대만에서 동시에 상영되었다. 본 영화는 2016년 제53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马奖)에서 신인감독상•여우조연상, 2017년 제36회 홍콩영화제 진샹장(金像奖)에서 신인감독상•여우조연상•남우조연상 등을 수상하였다.
올해는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8일까지 ‘홍콩영화 1997-2017’을 열었는데, 《매드 월드》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황진 감독은 홍콩시티대학 크리에이티브 미디어스쿨(香港城市大学 创意媒体学院) 출신으로 《매드 월드》황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오늘의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인 ‘일념무명(一念无明)’은 ‘한 가지 생각과 빛이 없다’는 두 단어로 조합된 것이다. 한 가지 생각은 수많은 생각을 불러오지만 생각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가끔은 한계에 부닥치고, 실수를 반복하며,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더 극단으로 치닫기 일쑤이다. 우리는 때로 무지하거나 지나친 집착으로 상대방한테 상처를 주거나, 또 자신의 존재를 너무 가벼이 여겨 스스로 상처를 받곤 한다. 냉혹한 주변 사람과 세상은 도움의 손짓을 거부한다.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우리 주변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큰 아들 아동(阿东, 黄世东,余文乐 분)은 집을 떠나 트럭을 운전하며 힘겹게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아버지 황다하이(黄大海, 曾志伟 분)와 미국 유학 중인 남동생 아쥔을 대신하여 치매에 걸린 어머니 뤼완롱(吕婉容, 金燕玲 분)을 혼자 돌본다. 어느 날 욕실에서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어머니가 갑자기 죽게 되자 아동은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1년 뒤, 아버지는 아들을 집에 데려오고, 아들은 재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사회적응이 녹록지 않았다. 사랑하면서도 쉽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사이가 가족과 연인,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족 사이의 상처는 회복이 참으로 쉽지 않다. 특히 사회 소외계층한테 가해지는 고통과 압력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가족들이 극단의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빈번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일회성 관심과 생색내기 정책이 전부다. 그때뿐이다. 현대 도시인들한테 익숙하지만 애써 외면당했던 문제에 대해 홍콩의 젊은 신예 감독이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시나리오를 쓰고, 편집하였다는 것이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병든 부부와 가족 가족은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 다층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에, 하나로 결속되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의 갈등을 겪으면서 관계가 깨진 유리병처럼 산산조각이 나기도 한다. 가족의 관계망에서 부부는 핵을 이룬다. 부부의 갈등은 경제, 학력, 성격, 그들의 가정 배경 등이 자녀의 인지 왜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데 다양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자녀가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은 선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깨지게 되며, 더 나아가 부부의 갈등은 자녀에 대한 학대, 자녀의 정서불안을 초래한다. 주인공 아동의 조울증은 부부 문제에 기인하여 또래관계, 학교생활,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나고 남녀관계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가족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면서 정체성에 방황을 겪게 되고 낮은 자존감이 인지 왜곡을 불러온다. 아내 뤼완롱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고학력자로 운전기사인 남편이 성에 차지 않으며, 가정에 소홀한 남편을 원망한다. 남편 황다하이는 결혼한 첫날부터 아내한테 시집을 잘못 왔다는 불평을 듣고는 집으로 들어가길 꺼리다가 홍콩과 중국 대륙을 넘나드는 고된 트럭 운전을 시작하였다. 자식의 눈에는 병든 아내를 돌보지 않는 무정한 아버지로 보였지만 아버지는 휴식 시간도 아끼면서 두 아들의 학비를 보태느라 고군분투하였다. 부부의 만남이 줄어들고, 부부의 대화의 부재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해의 벽을 높이 쌓게 했다. 불행한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저마다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여긴다. 영화 속에서처럼 정신질환 환자나 치매 환자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가족은 피할 수 없기에 중재자가 없이 방치되면 의도하지 않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뤼완롱은 오랜 세월 병마와 싸우는데, 의지하고 싶은 둘째 아들은 귀국하지도 않고, 자신에게 등을 돌린 남편은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자, 그런 자신이 가 고통스런 존재라고 반복해서 외쳤다. 아들 아동은 어머니가 그의 효심을 알아주지 않고 미국에 있는 둘째 아들 아쥔만 찾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아동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자는 여자 친구한테 손찌검을 하여 결국 헤어지게 되고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직장조차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씻는 것을 거부한다. 아동은 어머니의 몸과 옷에 밴 소변 냄새를 참지 못해 어머니를 다그치며 욕실로 보냈다. 어머니는 자신이 씻기 싫어하는 이유를 묻지도 않는 매정한 아들을 바라보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밖에서 떠도는 남편과 다름없다고 욕을 퍼부었다. 무조건적인 희생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인내와 고통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가족 사이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을 부른다. 부모의 편애로 자녀는 비뚤어진 자아가 형성된다. 둘째만 편애하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은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주최하는 가족 동반 여행에서 부모님이 아쥔과 떠나고 자신은 홀로 학교에 남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늙으신 아버지께 과거의 기억을 꺼냈다. 아동은 어린 시절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몸은 성인이 되었어도 마음은 성장을 하지 못한 채 멈추었다. 어느 날 아동은 여자 친구가 남자친구인 자신을 용서하고 두 사람이 교제를 다시 시작한다는 간증을 듣고 사람들 앞에서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서 교회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동은 이 일로 조울증이 재발하여 종일 울면서 씻거나 외출하지 않고 음식도 거부하였다. 그렇게 속을 태우던 아버지가 아들한테 ‘비정상’이라고 화를 내며 몰아붙이니 아동은 아버지의 베갯머리에서 장도리를 꺼내 보이면서 발작하는 아들이 겁나서 숨겨놓는 아버지야말로 ‘비정상’이라고 쏘아붙인다. 삶에 지친 가족은 더 이상 서로한테 의지가 되어 주지 못하고 서로를 할퀴게 되고, 세상도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는 현대 사회를 감독은 ‘미친 세상’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이 영화의 영문 제목으로 덧붙였다. 아버지 황다하이는 아동의 병세가 악화되자 고민하면서 둘째 아들 아쥔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아쥔은 미국 생활이 바빠서 돈은 좀 부쳐주겠지만 홍콩으로 돌아가 가족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아동을 병원에 재입원시키라고 권유하였다. 미국 유학생 아들의 성공은 부모의 막다른 인생길에서 생존의 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가족 구성원의 자구 노력은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선한 이웃,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황다하이는 중국 대륙에서 온 여성 위스나이(余师奶,税洁 분)가 외출할 때 그녀의 아들 위궈(余果, 陈学文 분)를 돌봐주곤 했다. 아동이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서 슈퍼마켓에서 괴로워하며 울면서 연신 초콜릿을 입에 넣고 있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휴대폰을 꺼내 들고 촬영하는 것을 위스나이는 행인들 속에서 그저 바라만 본다. 황다하이의 이웃들이 모여서 다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아동을 내보기로 의논하고 있을 때, 위스나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동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걱정된다고 고백한다. 황다하이는 천식이 있는 그녀의 아들 위궈가 길에서 발병해서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고 간다면 어떻게 되겠냐고 반문하였다. 길에 쓰러진 행인은 자신의 부모, 형제자매일 수도 있다. 이웃을 돌보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사랑하는 길이다. 황다하이와 위스나이 그리고 이웃들이 옥상에서 아동과 위궈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들은 모두 아동이 위궈한테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황다하이는 아들 아동을 오해한 것을 미안해하고 아들과 포옹하면서 화해하였다. 영화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로 대미를 장식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어 마음을 써야 자세히 볼 수 있어.” 눈에 보이는 겉모습보다 소중한 내면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다. 믿음과 사랑 같은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느끼는 것이다.
국가는 오래 전부터 약자를 돌보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중국은 선진시기에 어린이, 노인, 가난한 사람, 더불어 장애를 포함한 병든 이를 세금감면 등 정책을 통해서 국가에서 돌봐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주례(周礼)》] 송대(宋代)에는 복전원(福田院), 거양원(居养院) 등이 노인, 거지, 장애인과 병자들을 돌봐주었고, 원대(元代) 혜민국 양제원(养济院)과 혜민국(惠民局)에서 이런 구휼 활동을 지속하였다. 한국에는 고구려시대 을파소의 진대법, 고려시대 상평의창이 있었다. 현대 국가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제일의 화두로 복지를 손꼽는데,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자폐증 성인, 지적장애 청소년에게 매달 1000위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 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건강 문제는 4명 중 1명이 앓고 있다고 밝히고, 정부가 올해 정신건강 분야(정신건강 증진체계 강화, 치매 국가책임제 등)를 국정과제로 채택한 것을 환영하였다. 조울증 환자 아동은 친구 직장 동료에게 조롱을 당하고 기업으로부터 재취업 기회를 박탈당하여 사회에서 영구 제명되었다. 아동의 유일한 친구는 꼬마 위궈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옥상의 토마토를 심고 길렀다. 이웃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아버지 황다하이는 아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이사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 아동은 치매 어머니를 혼자서라도 돌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았다.
병들고 아픈 이웃의 무거운 짐은 개인이나 가족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자신과 이웃을 위하여 선한 이웃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조현병 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예단하는 SNS나 언론의 자제가 필요하며 국가의 계속되는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과 지원이 절실하다.
사진 | 네이버 영화에서 캡처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