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jpg) 몇 년 전 신문에 실렸던 4컷짜리 만화의 내용이 떠오른다. 풍요 속에 살며 물질 귀한 줄 모르는 젊은 손자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차례로 훈계하는 내용이었다. 첫째 컷: “이 할아비는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소나무껍질도 제대로 못 먹었다!” 둘째 컷: “이 아비는 한국전쟁 때 풀죽도 제대로 못 먹었다!” 셋째 컷: 손자가 자기 방으로 가는 장면 넷째 컷: (손자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음료수를 마시며 하는 말) “아이 씨! 남 다이어트 하는데 먹는 얘기만 하고 있어!!” 철이 없고 말뜻도 못 알아듣는 손자처럼 고생을 모르는 채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풍자한 내용이었다. 어려웠던 과거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요즘같이 모든 것이 풍부하고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을 대하다 보면 때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내가 좋으면 하는데 내가 싫으면 조금도 안 하려 하고, 인내와 절제가 부족하고, 고통을 통해 성숙해지는 시간을 생략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해 보인다. 사람을 대할 때도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애인이나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냥 내가 외로우니까 사귀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떠안을 생각은 별로 없으며, 구질구질한 것도 딱 질색이고, 내가 싫으면 언제고 쉽게 떠나버린다. 소위 ‘쿨(Cool)하다’는 말을 좋은 뜻으로 여기고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는 바보짓이라고 여기면서 너무 쉽게 감정을 정리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연륜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누구라도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연륜이 짧다 보면 사고의 범위가 좁기 마련이지만 그 요인이 연륜의 부족만은 아닐 것이다. 감사를 망각한 채 교만해져 있는 것, 내 이익이나 소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 편한 것에 길들여져서 참고 인내하려 하지 않는 것, 어려운 환경을 겪었으되 초심을 잃어버린 것 등등, 나이가 많아도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싶은 점이 계속 발견되기도 한다. 청(清)나라 때 원매(袁枚, 1716-1798)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다. 그가 쓴 《황생차서설(黄生借书说)》이란 글을 보면 그에게 책을 빌리러 온 황생(黄生)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는 내용이 나온다. “책이 산처럼 쌓인 가난한 선비 집도 있지만 부귀한 사람의 집에 책이 많은 법이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치고 그 책을 제대로 읽는 이가 또 몇이나 있겠는가? (…) 나는 어려서 책을 좋아했다네. 그런데 집이 가난해서 책을 살 수 없었어. 장(张)씨 집에는 장서가 풍부했지. 하지만 빌리러 가면 빌려주지 않았어. 그냥 돌아오면 그날 밤 꿈에 책이 보일 만큼 책 욕심이 많았다네. 그래서 책을 읽기만 하면 금방 기억하곤 했지. 그런데 뒷날 벼슬아치가 되고부터는 달라졌어. 봉급으로 책을 사들였지. 책상에 그득하게 쌓아두자 이젠 먼지가 끼고 좀이 슬었어. 그때서야 책을 빌려보았을 때 정말로 열심히 읽었던 것과 젊었던 그 세월의 아쉬움도 알게 되었지. (汗牛赛屋, 富贵家之书, 然福贵人读书者有几? (…) 余幼好书, 家贫难致. 有张氏藏书甚富. 往借, 不与, 归而形诸梦, 其切如是. 故有所览辄省记. 通籍后, 俸去书来, 落落大满, 素蟫灰丝时蒙卷轴. 然后叹借者之用心专, 而少时之岁月为何惜也!)” 이 글을 대하고 있자니 문득 인터넷도 없고 각종 매체도 없었던 과거 학창 시절의 공부방법이 생각난다. 책 한 권을 외우듯 공부해야 직성이 풀렸고, 한 줄의 문장을 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뜻을 새기고자 했으며, 자료를 보려면 직접 도서관 이곳저곳을 발로 뛰어야 했었고, 컴퓨터가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써야 했던 우직한 시절 말이다. 그 시절 그렇게 힘들게 공부한 내용은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첨단 인터넷 시대를 살면서 넓게는 알아도 깊이가 부족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 중요한 것을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나 힘들 때면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 고향은 태어나고 자란 곳,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새롭게 태어난 경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었던 승리감, 내 인생의 명장면이 되었던 순간, 눈물 나게 따듯한 사랑을 느끼게 해준 이와 만남, 처절한 고통을 인내로 이겨낸 경험 등등, 사람마다 다른 형상으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고향이라는 것이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녹슨 감동으로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은가? 그동안 고향 같은 나만의 소중한 체험을 내가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만의 그 소중한 정서를 더 이상 황폐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뼘 깊은 서정을 갖고 소중하게 주변을 대하다 보면 모든 것이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부족한 내게 웃어주는 분들이 귀하게 느껴지며, 미약한 힘이라도 얼마간의 결과를 얻게 되면 한없이 감동하고, 아쉬운 상황에도 스스로 풍족해 하며 얼마라도 주변과 나누려 하는 소박함을 가질 수 있어 좋다. 그러한 경험과 생각은 나를 계속 키워주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나만의 귀한 고향과 같은 서정이 된다. 일찍이 당대(唐代) 한유(韩愈)가 《送孟东野序(맹교(孟郊)에게 보낸 서문)》에서 역사에서 눈물이 많았던 위인들을 열거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면 울었다(不平则鸣).”라고 한 것은 그들이 고통의 강을 건넌 이후 생활에 깊은 느낌을 지니게 된 것에 주목한 것이다. 나를 겸허히 돌아보고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의로운 눈물이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사진 | 바이두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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