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지난 4월과 5월 사이 한 달여 동안 제주에서 보내면서 ‘제주도 1년살기’ 계획을 세웠다. 이번 제주 여행을 끝내고 서울집에 돌아가면 다시 제주에서 1년 동안 살 집을 물색하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나 혼자 제주로 다시 내려올 생각이었다.
이번 우리 가족의 제주 여행은 배편을 이용한 여행이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갔다가 다시 배로 돌아오는 우리의 일정이 너무 멀기도 하고 손녀딸, 로아도 보고 싶어서 대구에 잠시 들렀다. 그런데 며칠을 지나는 사이에 큰 변화가 생겼다. 제주로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사실 남편 K 선교사와 나는 사역지를 옮기는 문제로 의견이 서로 갈렸었다. 남편은 제주도로 가자고 했고 나는 대구로 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제주로 갈 때에도 대구에 들렸다가 이틀 밤을 자고 대구에서 자고 갔었는데, 그때 적합한 집이 있긴 했었다. 서른다섯 평쯤 되는 그 집은 꽤 넓어 보였지만 지은 지가 40년 가까이 된 아주 오래 된 집이었지만 근처에는 경북대학교병원도 있고, 큰길가에 있어서 오피스텔처럼 사용할 수 있는 활용도가 많은 집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선교회 사무실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더욱이 근처 교회 목사님의 사택으로 쓰던 집이라는 말에 정감을 느꼈다. 교회를 관리하시는 장로님은 우리가 원하면 집을 빌려주겠다고 하시며, 선교사님이시니 더 저렴한 가격에 주시겠다고 하신다.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 대구 사위는 그 가격이면 이 근처 원룸 임대 가격에 비해 많이 싼 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대구를 포기하고 제주도로 갔던 것이다. 제주에는 이미 많은 선교단체들이 들어와서 사역을 하고 있었다. 사실 집값도, 물가도 생각보다 비싼 데가 제주도였다. 그때는 그래도 우리가 제주도에서 사역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는 외국인이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있으니 쉽게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선교 사역을 하기에 장점이 많은 지역인 것은 틀림이 없다. 또 우리 가족이 한 달여를 살아 보았으니 제주가 낯설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구에 들렸을 때 상황의 반전이 일어났다. 내가 얻고 싶었던 그 집이 아직도 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렇게 조건이 좋은 집이 아직도 안 나가고 있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일이구만" 왜냐하면 그 집은 대구의 중심지에 위치한데다가 비록 지은 지가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최근에 살던 분이 이사를 가자 교회는 싱크대 상판을 인조대리석으로 새로 해놓았고, 14자나 되는 새로 짠 하얀색의 붙박이 옷장은 수납공간으로 사용하기에 넉넉했다. 그뿐인가! 실크벽지로 새로 도배한 집은 고급스럽기까지 했던 것이다. 게다가 거실과 안방에는 에어컨도 이미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괜찮다 못해 훌륭한 집이 나가지 않고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격도 비싼 편이 아닌데. 우리가 세를 들지 않겠다고 하자, 장로님은 부동산에도 집을 내놓았는데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나는 딸네 집에서 한 주 넘게 있으면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이 집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붙잡고 계셨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다시 교회를 관리하시는 장로님과 집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장로님은 집에 세를 들겠다고 여러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었지만 실제로는 아직 아무와도 계약이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실은 저희가 그 집에 세를 들고 싶어요. 월세를 조금만 내려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장로님께 여쭈었다. 얼마 뒤에 장로님께 연락이 오셨는데, 월세 10만 원을 깎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보증금 천만 원에 40만 원의 월세를 내기로 하고 계약을 하였다. 나는 계약을 하면서 거실마루에 니스칠을 해줄 것과 방충망을 새로 갈아줄 것 등등, 몇 가지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장로님은 흔쾌히 다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서울 변두리에 있던 선교회 사무실은 대구의 중심지로 부랴부랴 옮기게 되었다. 선교회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싱크대, 의자 30개, 온수기, 가스 스토브 등등 대구까지 가져가지 않아도 될 물건들은 세 군데로 나누어 선물을 하였다. 어려운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 노숙자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께 필요한 물건들을 골고루 보내드렸다. 나도 시작할 때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누어 주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그냥 나누는 것이다. 내가 그저 받은 은혜를 베풀면 나도 누구한테 은혜를 도로 받게 된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그렇지 않은가? 대구 중심지에 원룸 정도 얻을 돈으로 서른다섯 평의 집을 얻게 된 것만도 큰 은혜가 아닌가! 거기다가 깨끗하게 수리되고 모든 설비가 잘 되어 있는 집. 가스레인지도 3구짜리 새것으로 갈아놓았고 그릇을 씻어 놓을 수 있는 선반도 새로 달아서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모든 전등은 에너지 절약형 LED등으로 다 갈아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 볼 것이 없었다. 이제 청소만 하면 된다. 아들한테 청소 도구를 사 가지고 오라고 해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웬 사람들이 찾아왔다. 부동산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 집을 세 얻으려고 보러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 이사올 사람들이라고 하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갔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이 집을 얻지 못할 뻔했다. 우리를 대구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곳에서 함께 일하실 것을 기대한다. 우리 가족이 제주도에서 신나게 여행을 즐기는 동안에 하나님은 이 집을 힘껏 꼭 붙잡고 계시다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한테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대구는 남편 K 선교사가 중국인유학생 사역을 시작하려고 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대구에는 이미 많은 유학생들이 있으며, 유학생 사역을 하고 있는 대학교수들도 많은 곳이다. 유학생사역자 모임에 참석하며 알게 된 분들도 꽤 많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대구는 내 사랑하는 손녀 로아가 있기에 더욱이 중요한 곳이다. 사실 10년 만에 우리 가정에 선물로 찾아온 로아를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만큼 최근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없다. 이제 대구의 중심지에서 외손녀를 안으며 기쁨을 회복하고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도 힘차게 새 출발해 보련다.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창 24:28 상반절)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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