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JPG)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은 즐거움과 따듯한 정이 가득한 드라마였다. 필자의 경우 미국에서 이 드라마를 보았는데 덕분에 이국땅에서 온 가족이 함께 웃고 눈물 흘리는 소중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가족이 모두 모이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이 드라마를 함께 본다는 불문율까지도 만들어서 지켰다. 많지 않은 식구인데도 함께 모이기 어려운 현실임을 생각할 때 가족 사이의 화합에 도움이 된 고마운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다. 비단 우리집만이 아니었다. 미국에 사는 교포들 역시 카톡방에서 드라마 정보를 나누고, 모였다 하면 스토리와 배우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를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은 옛날을 회고하며 이 드라마를 즐겁게 볼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 미국에 있었던 교포들은 어떤 감흥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보았을까, 도대체 어떤 요인이 경험하지 못한 사회를 보면서 회한을 느끼게 했을까. 1980년대 초에 도미한 시애틀(Seattle)문인협회의 S선생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저는 (드라마의) 그 시대를 한국에서 살지 못했기에 그 시간은 제 인생의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그 드라마를 통해서 생의 한 부분을 반추할 수 있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 딸 역시 그 드라마의 열성팬이었습니다.” “아니 따님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도 못했을 텐데요?” “예, 그래서 비싼 돈 주고 자막 있는 것을 구해 보았답니다.” 구수한 사투리 대사와 한국의 감성을 이민 2세대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필자에게 S선생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제 딸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학생이라 우리와 따로 사는데 그 드라마를 본 뒤로 좀 더 자주 집에 찾아오고 부모님에 대해 더 많은 효도를 하려고 애쓴답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스스로 감동을 받아서 그렇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정을 두텁게 해준 이 드라마에게 무슨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몇 년 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보니 부럽기도 하고 배우고도 싶은 미국 사회의 좋은 점이 눈에 보인다. 사람 사이에서 ‘정직과 존중’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담백한 인간관계와 공정한 일처리, 개성의 존중을 가능하게 하고, 각자 자신의 몫을 지불하는 ‘더치페이’ 방식은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며,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각종 파티에서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를 열다 보니 부담 없는 참여를 가능하게 한다.
열댓 명 미국 아줌마들이 모여 브런치를 먹으면서 친근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원탁을 돌며 각자의 카드 하나하나를 결제하던 식당 직원의 모습이 이국적으로 느껴졌어도 그 합리성에는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다. 그런데 필자의 경우 미국 문화 중 이해가 가지 않는(정확히 말하면 싫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대표되는 것이 ‘Tip 문화’였다. 특히 식당이 Tip을 내는 대표되는 곳인데, 음식 값에다 따로 부가되는 약 10프로의 세금(Tax), 그리고 그 총액에다 다시 15~25프로 정도 얹어서 주는 Tip이야 말로 필자에게는 몇 년을 살아도 극복하기 어려운 문화적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왜 Tip에 대해 거부감이 생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와 미국의 인간관계를 돌아보았다. 우리네 전통은 인(仁)과 의(义)를 중요시하면서 정(情)을 나누는 삶을 살아왔다. 사람 사이에 ‘인의(仁义)’라는 도리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정이라는 융통성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특히 정이라는 같은 글자에 대해서는 중국보다 한국에서 그 느낌의 범위나 실천의 정도가 더욱 심원했다.
정은 과하면 유약에 빠지게 되고 모자라면 인간미가 없어지는 칼날 같은 양면성을 지닌 감정이다. 인의를 중시하던 우리네 삶에서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어질고 올바른 응대를 중시했으며, 정을 나눌 줄 알았기에 타인에게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섬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서빙하는 분이 많은 서비스를 친절하게 해도 별도의 Tip을 요구하거나 주지 않는다. 내가 받은 서비스 정도에 맞추어 혹은 별다른 정 없이 의례적으로 주는 Tip은 서양문화에 불과하다. 그저 온 손님이 귀하고 맛있게 먹고 가는 모습이 기쁘며 내 정성을 알아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편을 보면, 양혜왕이 자기 나라를 방문한 맹자와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가 보인다. “선생(맹자)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저의 나라에 오셨으니 장차 저의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으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로움을 이야기하십니까? 오로지 어짊(仁)과 올바름(义)이 있을 뿐입니다. ... 진실로 올바름을 뒤로하고 이로움을 앞세운다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린 자가 없었고, 올바르면서 그 임금을 뒤로 제쳐둔 자가 없었습니다. 왕이라면 어짊과 올바름만을 말씀하셔야지 어찌 꼭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叟不远千里而来, 亦将有以利吾国乎? 孟子对曰王, 何必曰利, 亦有仁义而已矣. ... 苟为後义而先利, 不夺不饜. 未有仁而遗其亲者也, 未有义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义而已矣, 何必曰利?)】 부국강병의 열망과 의지가 커서 이익만을 추구하던 양혜왕이 깨닫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건넸던 맹자의 조언이었지만 결국 탐욕 앞에 진리는 빛을 잃고 만다.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 자본주의의 강력한 욕구 앞에 소박한 너그러움과 올바른 양심이 때로 맥을 못 추는 것처럼.
그러나 약 2300년 전 강조되었던 이 어짊과 올바름에 대한 의식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간절한 의식으로 인식된다. 인간관계에서 공허함이 느껴질 때 내 자신을 추스르며 조용히 기도하는 신앙이 우선으로 요구된다 할 것이다. 먼저 믿음으로 위안을 얻고, 인으로써 마음을 넉넉하게 하며, 의로써 공정한 면모를 보이고, 정으로써 주변을 따듯하게 하는 것, 바야흐로 ‘응답하라 멋진 인간미여!’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아닌가 싶다. 고전은 그렇게 시대를 거스르며 우리에게 새롭고 신선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 배다니엘 | 남서울대학교 글로벌지역문화학과(중국지역 전공)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