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  통권 172호     필자 : 김용희
[선교사의 삶과 사역]
제주도에서 이어 쓰는 남은 단역배우 인생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며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나는 하나님이 왜 선교지에서 내게 미술의 은사를 주셔서 미술을 전공하여 미술심리치료까지 공부하게 하셨는지 깨달았다.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 절실했던 중국의 개척교회에서 두루두루 마음껏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배당의 꽃꽂이며 교회에서 진행되는 행사에서 장식하는 일을 도맡다시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다. 게다가 주일학교에서도 게시판을 꾸미고 교구를 만드는 등 미술과 관련된 일로 섬기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하자 교회와 조금 떨어진 곳에 공동체가 예배할 적당한 공간을 찾았는데 좀 허름해 보이는 창고를 빌렸다. 창고를 예배당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의 손이 좀 가야 했다. 그래서 시멘트로 휑한 벽에 천을 둘러 온기를 불어넣고 따로 제단을 만들고 정성을 다해 제단을 꾸몄다. 그때 이러한 미적 감각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항상 ‘주님께 쓰임받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더니 ‘이렇게 응답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나님은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방문미술심리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통해 그 아이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 가정의 문제까지 볼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가정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강한 마음을 느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들은 자들이 모두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즉시 변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니 아이들이 점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가정도 느리지만 변화되기 시작하더니 서너 가정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되니 수업을 받고자 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났다. 이렇게 가정을 방문하여 미술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해주는 것이 문화선교구나 하는 감사함이 내 마음을 뛰게 했다. 중국선교의 도구로 조건 없이 사용해달라고 기도하다가 더 자세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이렇게 복음전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미술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 아이들의 가정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중국 사회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해준 미술학원

몇 달이 지나 어학연수 중에 만나 교제를 나누었던 믿음 좋은 한국인집사님을 만났다. 그 집사님은 선교를 위해 미술학원을 크게 운영하고 있는 분을 소개해주시며 만나보라고 나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원장님을 만났다. 그 원장님은 중국의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중, 같은 마음으로 다음세대선교에 동역할 경력이 있는 원장 격의 선생님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실 지를 기다렸는데 함께 일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해주셨다. 미술학원은 중국 대도시의 대형백화점 안에 있어서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었는데, 한국 교육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퍼포먼스미술학원이었으며, 원장과 부원장인 나를 빼고는 모든 직원이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 직원들은 13명, 그리고 300여 명의 회원을 관리해야 하는데, 매달 한국돈으로 1500여만 원 상당의 재정이 들어가는 큰 사업이었다.  


중국의 개척교회를 같이 섬기며 중국의 다음세대를 만날 수 있는 학원으로 인도해주셔서 중국 사회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다시 고난의 도가니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원장님과 나는 매일매일 기도와 말씀을 나누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에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먼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창의력 증진수업과 심리미술을 하며 말씀을 전하게 하셨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던 직원들이 하나 둘 내게로 찾아와서 고민을 이야기하며 상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마음이 열렸고 기도로 한 명 한 명씩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미술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중국 사회를 깊이 경험하게 하셨다. 중국의 20-30대 젊은이들의 재정, 직장, 이성, 동거, 낙태 등 실질적인 문제를 알게 하셨고 기도하게 하셨다. 열심히 섬기면서 감사하면서도 때로는 사역에 지치고, 사회주의 문화와 충돌에 지치고, 생각처럼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지쳤다. 게다가 배워도 배워도 늘지 않는 중국어, 그로 인해 깊이 소통하지 못해 지치고, 또 친구인 듯 친구가 아닌 듯 알 수 없는 중국인들에 대해 더 지쳐갔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건만 미술학원은 재정난으로 점점 더 어려워져서 결국 문을 닫아야 했고, 학원측에서 배려해준 숙소와 비자도 자동으로 끝이 나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마음 편히 쉴 곳도 없을 뿐 더러 지금 당장 돌아갈 비행기표 한 장 살 돈도 내겐 없었다. 


그래요, 주님! 여기까지 인가 봐요

그래요, 주님! 여기까지 인가 봐요. 이미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셨고 열매를 보게 하셨고 누리게 하셨음에 감사하며, 다음 발걸음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 갑자기 친구가 집을 보라고 했다. 내가 미술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이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주인이 싼 값에 내놓았다고 했다. 50여평의 넓은 개조형 아파트여서 거실에서 미술학원을 하기에 딱 좋다는 것이었다. ‘주님, 제겐 1위안의 차비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런 집은 학원을 하기에는 참 좋겠지요. 그 집을 보아야 하나요?’ 주님은 웃음을 머금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며 큰 기쁨과 평강을 주셨다. 


다시 기쁨과 평강을 선물로 주신주님은 정말로 큰 미술학원을 내게 허락해주셔서 주님 나라를 위한 더 큰 꿈을 꾸게 하셨다. 모든 재정과 필요를 공급해주시고 중국의 비싼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게 된 미술학원에서 경험한 실패를 통해 다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실 준비를 주님은 나 몰래 준비하고 계셨다. 수업과 숙소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소를 예비해주셨고 아파트단지 안에서 문화선교를 하니 정부의 압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미술학원에 수업이 없을 때는 개척교회사역자들의 기도모임과 주일학교교사모임, 청년예배장소로 쓰여졌다. 여러 절기와 휴일에는 중국청년들을 초대해 복음을 전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그 덕분에 내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준 D자매와 나는 엄청 바쁘고 감격스러운 나날을 보냈어야 했다.  


역시 하나님을 믿는 선생님은 달라요

미술을 통해 맺어진 관계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가정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미술수업을 하며 직접 복음을 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는 프로젝트형 수업 아이디어를 주셨다. 모든 창조물과 모든 미술의 주제는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첫째 날 빛과 둘째 날 궁창, 그리고 여섯째 날 사람의 창조까지를 수업의 주제로 삼았다. 수업을 하기 전에 기도하고 찬양과 말씀을 선포하며 시작했지만 복음을 직접 전하며 하는 수업이어서 방해와 어려움도 많았다. 그래서 동역하는 팀과 함께 더욱더 준비기도모임에 집중하며 찬양과 말씀을 선포한 후에 수업을 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듣는 중국아이들이 왜 자꾸 자기들이 모르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냐며 물어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순간순간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고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점점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을 인식하며 알고 싶어 했다. 수업이 끝나면 한 명 한 명 모든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보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족의 안부를 물었더니 부모들이 기도제목을 주며 기도해달라고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한두 명씩 교회로 인도되기 시작했다. 역시 하나님을 믿는 선생님은 다르다며 아이들이 아파서 열이 나도 온다고 떼를 쓰고 성격도 많이 변했다고 했다. 감사! 감사합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한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들추어 업고 찾아왔다. 아이가 열이 40도가 넘고 눈은 돌아갔다며 정신 없이 횡설수설했다. 듣자 하니 놀란 그 아이 엄마는 선생님이 예수 믿는 선교사이니까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병원에 다녀왔냐고 묻는 말에 그 아이의 엄마는 이것은 영적인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울다가 웃다가, 눈이 풀렸다 하는데 선생님이 생각나서 달려왔다고 했다. 나와 D자매는 왕 되신 하나님은 구원자시며 치료자이심을 선포하며 전심으로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렸다. 그렇게 땀을 흘리며 기도한지 20여 분이 지났을까 주님은 역사하셨다. 아이의 몸에서 열이 내리고 정신도 돌아오고 풀렸던 눈도 돌아왔다. 아이와 엄마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진짜 살아계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접기도를 드리고 그 아이와 엄마를 교회로 인도했을 분만 아니라 주님의 자녀가 되어 일대일 제자양육훈련과 함께 매주 가정예배를 함께 드리는 가정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할렐루야! 


제주도에서 이어 쓰는 남은 단역배우 인생

그렇게 주님이 내려주시는 은혜와 감동으로 5년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점점 더 심해진 정부의 압력 때문에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별안간 모든 것을 버리고 30분만에 짐을 싸서 몸만 빠져 나왔다. 나의 모든 것이 되었던 주님, 미술학원은 정리할 수밖에 없었고 사랑하는 동역자 D자매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남겨둔 채로 사랑하는 중국 땅을 그렇게 허둥지둥 떠나왔다. 그 당시 우리 모든 팀이 압력을 받고 있었고 우리팀의 리더십 또한 심한 심문과 미행, 압력과 어려움으로 인해 함께 기도하며 겨우 비행기를 탔다. 긴장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한달 동안은 꿈에서도 공안들에게 시달렸다. 한국까지 잡으러 오는 공안들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주님의 위로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매번 격려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시고 확인해주셨는데 왜 갑자기 준비도 없이 이렇게 또 쫓아내시다니. 9년전 알 수 없는 이유의 고난으로 인해 선교의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3년이 지나서야 깨달았으니, 이 또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지 모르겠다. 귀국 후 하나님은 독일과 유럽의 중국인 사역을 통해 중국 안에서 중국 사람들만 바라보던 나의 눈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인에게로 확장시켜주셨다. 이젠 보내주신 제주도에서 이곳에 와있는 중국인유학생들과 다음세대, 많은 중국근로자들, 불법체류자들에게 보다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남은 단역배우의 인생은 주님의 것이니 오직 주님 뜻대로만 사용하여주소서. 내게 주신 미술의 은사를 통해 더 많은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주소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김용희 | 경배와찬양 문화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