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문학1.JPG) 우리 가족이 선교지인 이곳에 들어왔을 때가 1997년 3월이었다. 남편이 A성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교수로 있으면서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해 5월 1일 노동절에 A성 교육위원회가 그 도시에 있는 모든 대학교에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들을 초청하여 관광을 시켜주었다. 매년 연례행사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갓 선교지에 들어온 우리 가족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관광을 신청하여 절경으로 유명한 황산엘 가게 되었다. 3박 4일 일정이었고 호텔에서 묵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외국인 교수들을 돕기 위해서 따라온 각 대학의 외사처 주임 선생들이 외국인 교수들을 다 나오게 해서는 호텔 무도회장에서 춤 파티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남녀 상관없이 무도회장에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자기네끼리 춤을 추었다.
춤을 전혀 못 추는 남편과 나는 인사치레로라도 잠시나마 그 모임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곤란한 것은 현지인 외사처 남자 선생들이 다가와 내게 춤을 신청할 때였다. 그럴 때 마다 남편 선교사는 아주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피할 수 있는 별 방법이 없으니 남편은 나를 데리고 무도장으로 나가서 그저 왔다 갔다 춤추는 흉내만 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어 우리가 빠져도 분위기가 깨지지 않겠다 싶을 때 우리 부부는 잽싸게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춤추는 것은 퇴폐적인 것이라고 교육 받고 자란 내게 있어서는 현지인의 춤 문화는 문화충격이었다. 머리로는 ‘이것이 이 사람들의 문화니까 자연스러운 거야’ 하면서도 감정은 ‘저건 나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몹시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당시 현지인 외사처 선생들이 우리를 얼마나 콱 막힌 사람들로 보았을까? 독일이나 서구에서 온 교수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춤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선교지에서 10년을 보내고 나서야 현지인들의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뭇 달라졌다. 춤을 일상생활의 운동처럼 아주 건전하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상당히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아침마다 공원이나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예술이다. 주로 부채나 칼을 이용해서 그리고 음악에 맞춰서 하는데 하나의 공연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때때로 산책을 하다 보면 아침 운동인데도 똑같은 색깔의 옷을 맞춰 입고서 그들 특유의 아침 춤을 추거나 요가를 한다. 이처럼 그들은 운동이든, 춤이든 즐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사람들 중 하나가 중국 사람들이라고 한다. 많이 갖고도 행복은커녕 자살을 선택할 만큼 불행하게 살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서 비록 가난해도 잠잘 집이 있고 세끼 밥을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혹은 이웃들과 춤과 운동을 즐기며 즐겁게 사는 이들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행복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다. 남이 나를 행복한 것처럼 봐줘도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무엇 하겠는가?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 참 많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 즐기며 자족하며 사는 것이다. ♣
♧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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