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복고풍을 타고 홍콩여성과 대륙 남성간의 잔잔한 사랑을 그린《첨밀밀》(1996)과 화려하고 웅장한 뮤지컬 영화《퍼헵스러브》(2005)를 제작했던 천커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차이나드림을 꿈꾸는 중국 청년들의 성공신화를 소재로 한《중국합화인》(2013)을 발표했다. 이 영화는 제29회 중국 진지장(金鷄奬)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중국합화인》은 자오웨이의 감독데뷔작인《우리가 잃어버릴 청춘》과 더불어 중국 청춘들에게 복고열풍을 일으키게 했다. 천커신 감독은《퍼헵스러브》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이별, 재회신에서 흘러나오던 추억의 명곡인 치친(齊秦)의 ‘바깥세상(外面的世界)’을《중국합화인》에 다시 삽입하여 복고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중국합화인》은 1980년대 초 대학생인 청동칭(成東靑, 黃曉明분), 멍샤오쥔(孟曉駿, 鄧超분), 왕양(王陽, 鴨大爲분) 세 명의 친구들이 절망을 딛고 일어나 동업으로 영어어학원을 개원하여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렸다. 사설 교육기관에서 영어교육, 유학 상담을 했던 신동팡(新東方)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제작하였지만, 실은 개혁개방 시대에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들을 그려낸 집체 서사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크레이지 영어’ 붐을 일으켰던 리양(李陽)은 영화 속의 왕양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레노버(Lenovo)그룹 창업자인 류촨즈(柳傳志),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馬云), 위성방송 SUNTV를 설립한 양란(楊瀾), 신동팡 설립자 위민훙(兪敏洪), 쉬샤오핑(徐小平), 왕창(王强) 등의 성공신화 주역의 이름과 사진을 올려 실화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천커신 감독은 이 영화에서 회고적 서사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중국 내의 정치적 흐름보다는 KFC나 1992년 제1세대 이동전화기 같은 시대적 아이콘으로 사회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영화 속에서 1993년 베이징올림픽의 신청 무산, 1999년 시나(sina)닷컴의 나스닥 상장, 홍콩영화의 세계적 인기와 가라오케에서의 광동 노래 열풍 등 지난 이야기를 담았다.
1978년 개혁개방의 기치는 영어교육과 미국유학에 대한 열풍이 불게 했다. 미국에 가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만연하였다. 이때는 한국도 미국 이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미국교포와의 결혼도 성행하였다.
《중국합화인》은 미국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국 청년이 중국에서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달려가는 것에 주목하여 영문제목을‘American dreams in China’라고 정했다는 후문이다. 사회에서 실패와 절망을 겪었던 세 명의 청년이 동업하여 중국에서 영어교육으로 승부수를 던져 자신들의 차이나드림을 실현하여 중국에 고학력이지만 실업에 직면한 수많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아이템으로 창업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변화하는 중국 속의 청년 G2, 위안화의 평가절상, 남중국해 충돌 등등. 우리는 중국 관련 뉴스를 통해 중국의 빠른 변화를 실감한다. 영화에서도‘변화’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세계에서 중국의 위상이 제고될 때마다 중국 청년들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고심한다. 청동칭은 교육으로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사회를 변화시켜 보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람들은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애쓰지만 자신은 변화를 거부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한편 이 영화는 배금주의와 성공지향을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영화 속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아니면 세상이 자신들을 변화시켰는가 라고 물었을 때 청년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변화시켰다고 대답하였다. 중국의 놀라운 발전과 성장은 경제 체제의 변화라는 모험을 무릅쓰고 일궈낸 것으로 청년들은 성공을 시대적 흐름의 산물로 간주하였다. 세 명의 성공한 청년들은 뉴욕 EES 출판사 측과 회의할 때 중국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만 미국은 변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멍샤오쥔은 동료들과 자신이 웨이터로 일했던 미국 식당을 찾아가 가난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전에 자신을 무시하던 식당 아줌마에게 자신이 중국에서 성공한 것을 자랑했다. 멍샤오쥔은 한층 높아진 중국의 위상을 미국의 도시 한 복판에서 콧대 높은 미국인들에게 당당하게 과시하고 싶었다.
차이나드림 꿈꾸는 중국 청년 세 명의 친구는‘오늘의 미국’이라는 강의에서 중국인 교수가 미국은 백인 위주의 사회로 다른 인종을 경시한다는 인종주의 폐단을 꼬집으며 미국인은 화교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러자 멍샤오쥔은 그건 상투적인 말에 불과하고 미국에 가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편견이라 고 지적하였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교수님에게 무례하다고 사과를 요구했다. 이는 곧 변혁기의 중국 대학생들 간에 국수주의와 친서방주의의 대립과 반목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동칭은 농촌 청년출신으로 치열한 입시경쟁 삼수 끝에 간신히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면서도 실력은 무척 떨어졌다. 청동칭은 학과장 자녀를 과외하고 과외비를 청구했다. 그러자 학과장은 청동칭이 불법과외를 했다는 명분으로 그를 징계위에 회부하고 교수직을 박탈시켰다. 대학 내에서 벌어진 불쾌한 일은 청동칭이 본격적으로 사설 영어교육에 뛰어들게 했다. 벽조차도 없는 폐허가 된 공장에서 영어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은 늘 손전등을 갖고 있다가 정전이 되면 일제히 선생한테 손전등을 비췄다. 이렇게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청동칭은 진정한 교육은 학생과의 올바른 소통임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주입식 교육보다는 자신이 영어공부를 할 때 실패했던 경험 등을 진솔하게 들려주면서 학생들의 공감을 얻었다. 왕양은 할리우드 영화 속의 대사로 영어를 가르쳤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멍샤오쥔은 자신이 미국에 가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국 대학연구소의 실험조교를 하다가 자기보다 늦게 유학 온 중국인학생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자신은 레스토랑 웨이터로 전락하고 여자 친구는 세탁소를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멍샤오쥔은 아메리칸드림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는데 청동칭과 왕양이 외제승용차로 마중 나와 멍샤오쥔을 호화주택으로 안내했다.
멍샤오쥔은 2천여 명의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학생들 앞에서 처음 강연할 때 자신의 암울했던 미국생활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멍샤오쥔은 아메리칸드림은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고 오히려 중국에서 자신만의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미국에 중국인유학생들이 가장 많아 중국 정부는 우수한 인재의 유출을 고심하고 있다. 유네스코통계연구소의 각국별 외국인대학유학생수(2012년 기준) 통계에는 중국이 69만4천명으로 1위를, 인도가 18만9천명으로 2위, 한국은 약12만3천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폐허공장에서의 영어교육은 공안에게 걸려 간신히 벌금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1999년 5월 8일 미군이 세르비아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한 사건이 일어나자 세 청년이 창업한 영어학원은 한순간에 매국노로 몰려 군중들에게 돌을 맞는 예기치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청동칭은 성난 군중을 향해 자신들을 공격한 미국인들에게도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고 외쳤다. 국내외에서 터지는 온갖 사건과 시련 속에서도 이들은 영어교육의 열정과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어학원 창립 멤버인 세 명의 동업자 내부에서도 갈등이 폭발했다. 멍샤오쥔은 미국에서 귀국하여 ‘신멍샹(新夢想)’에 합류한 후에 글로벌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청동칭은 주주들에게 회사가 좌지우지되어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것을 불안하게 여겨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결국 멍샤오쥔은 화가 나서 선양으로 떠나버렸지만 세 명의 동업자는 미국 EES와의 저작권 문제가 터지자 다시 의기투합하였다. 미국에서 TOEFL, GRE 등 영어시험을 주관하는 EES가 청동칭과 왕양이 설립한 회사 ‘신멍샹’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자 멍샤오쥔은 EES측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서 뉴욕까지 날아와서 6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냉대를 받고 거절당했다. 공식 회의 석상에서 세 명의 중국 동업자는 미국이 중국의 저작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자신들의 교재가 저작권 침해한 부분을 인정하였다. 또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영어교육 시장으로 그들의 회사가 미국 월가에 주식을 상장하여 EES가 주주가 되면 1500만 달러의 배상금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할 것이라고 회유하였다.
중국은 ‘신중국’을 표방하여 낡은 중국의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였다. 중국인들의 생활과 의식세계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고있다. 우리는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과거의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 중국의 미래 가능성과 무한한 잠재력에 초점을 두고 중국인과 진정성 있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동반자로서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절망에 빠졌던 세 명의 청년 동업자가 세운 어학원 ‘신멍샹’은 ‘새로운 꿈’이란 의미로 그들은 이젠 과거 중국인이 꾸었던 ‘아메리칸드림’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에서 자신만의 ‘차이나드림’을 실현할 수 있다고 세계에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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