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한국교회는 2030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중 여성선교사는 얼마나 될까? 전세계의 선교사 중 여성선교사의 비율은 65%이며, 한국의 선교사 중 여성선교사의 비율은 55%로 남성선교사보다 약간 많은 숫자이다. 이러한 통계로 볼 때 세계선교와 중국선교에 여성선교사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을 필요로 하는 과거사회에서는 여성보다는 비교적 힘이 센 남성들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로 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민감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많은 곳에서 여성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성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남편과 함께 선교지에 나가서 남편을 내조하면서 사역하는 부인선교사와 독신여선교사로 나눌 수 있다. 필자는 본고에서 중국에서 사역하는 여성선교사 특별히 독신 여성선교사에 국한하여 다루고자 한다.
선배 독신 여성선교사들
일찍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중국선교 사역에 동참했던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많이 있었다. 해외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도 있었고, 한국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무슨 사역을 했는가? 대표로 독신 여성선교사 몇 명만 살펴보고자 한다.
미남침례교회가 파송한 로티 문(Lottie Moon; 1840-1912) 선교사는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1873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중국 북부(산동성)로 가서 독신으로 살면서 39년 동안 선교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했다. 당시는 여자가 해외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용기 있게 부르심에 순종했다. 그녀는 남성중심의 선교사역에 맞서 여성선교사의 임무는 단순히 남성의 보조나 여성적인 일에 역할이 제한되어서는 안되며, 전도사역이나 교회 세우기 등을 동등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녀는 1885년부터 중국의 촌락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였고, 지역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설립했으며, 1889년 침례교 선교사의 도움으로 교인들에게 침례까지 주었다.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침례받은 사람이 1,000여 명에 달했다. 그녀는 중국어를 배워 중국어로 사역을 했고, 중국 옷을 입었으며, 철저히 중국인과 동화된 삶을 살았다. 1900년 의화단 사건과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정치적 불안과 거듭된 기근 속에서 죽어가는 중국인들이 늘어났다. 그녀는 가난한 중국인들을 사랑으로 섬기다가 결국 자신도 영양실조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던 중 1912년 미국에서 파견된 의료진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영국의 독신 여성선교사인 글래디스 아일워드(Gladys Aylward 1904-1970)는 런던의 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정규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선교사의 부르심을 받고 중국내지선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훈련을 수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꿈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중국으로 보내실 것을 믿으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지니 로슨(Jeannie awson)이라는 중국선교사가 누군가 와서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고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글래디스 아일워드는 중국에 도착하여 처음에는 지니 로슨을 도와 양쳉의 여인숙에서 일하다가 로슨이 죽자 양쳉지사로부터 중국 시골 여자들의 발을 조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전족퇴치운동)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선교사역에 꽃을 피웠다. 그 후 일본과의 전쟁기간 동안 중국을 위해 구호물품 조달하는 역할을 하다가 1940년 100명이 넘는 전쟁고아들을 데리고 태국 국경지역의 안전지대로 피난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대만에서 사역을 하면서 각처에 초청되어 강연활동을 하였다.
한국교회 최초의 중국 여성선교사는 김순호(1902-1951년)이다. 그녀는 1931년 9월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교단총회의 인준과 장로교 여전도회 인준을 거쳐 파송된 여성선교사이다. 그녀는 중국 산동에 파송되어 먼저 언어연수를 한 후에 1934년부터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1936년 사역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까지 선교지역 17곳을 순회하면서 부녀 교리반을 맡아 말씀을 가르쳤고,사경회와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김순호 선교사는 안식년을 맞아 1936년 8월 귀국하였다가, 1939년 겨울에 다시 만주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녀는 유창한 중국어로 만주 부녀자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쳤고, 글을 모르는 부인들에게는 중국어를 가르쳐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1942년 9월 선교사직을 사임하고도 1943년 9월까지 1년간 더 자비량으로 선교사역을 하였다. 그 후 김순호 선교사는 귀국하여 신의주 제 2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하면서 평양신학교에 출강하는 등 바쁘게 지다가 1951년 51세로 북한 공산당원에 의하여 순교 당했다.
현재 독신 여성선교사들의 선교사역
현재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파송한 독신 여성선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파송을 받지 못한 채 개별교회의 파송을 받거나 개인적으로 나와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독신 여성선교사들 중에는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선교사도 있고, 결혼을 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된 여성선교사들도 있다. 본고에서는 이 둘을 모두 독신 여성선교사로 취급하며(이하‘여성선교사’로 칭함), 이들이 지금 중국에서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신학을 가르치거나 제자훈련의 사역이다. 어떤 여성선교사는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기간 동안 중국인들과 같이 합숙하면서 집중적으로 가정교회 지도자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또 어떤 여성선교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중국 형제자매들을 만나 성경을 가르치면서 제자훈련 사역을 하고 있다.
둘째, 캠퍼스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사역이다. 학생신분으로 대학교에 남아 계속 공부하면서 대학생들을 전도하거나 이미 믿은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또 이들을 대상으로 컴퍼스 내에 예배모임을 시작하여 주일마다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셋째, 가정교회 개척사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개척 사역은 남성선교사들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최근 들어 많은 여성선교사들도 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농민공들을 대상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가정교회를 개척하여 말씀사역을 하고 있다.
넷째, 주일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사역이다. 여성선교사 본인이 직접 주일학교 교사를 양성하거나 한국에서 어린이사역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중국 가정교회에 연결해 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또한 주일학교에 필요한 교육 자료, 도구, 교육기기 등을 공급하는 사역도 함께 하고 있다.
다섯째, 교회 찬양 사역자를 양성하는 사역이다. 음악에 은사가 있는 여성선교사는 중국교회의 찬양사역을 담당할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기타 연주, 피아노 반주, 성가대 지휘, 찬양 인도하는 법 등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여섯째, 고아원 운영 등 구제사역이다. 버려진 고아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돌보거나 농촌에서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불해 주는 희망프로젝트에 동참하여 중국 어린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일곱째, 다양한 전문인 사역이다. 여성교사들은 교육기관의 교수나 행정요원 혹은 교사(유치원, 피아노, 한국어, 컴퓨터 등)로 사역하고 있으며, 병원의 의료인(간호사, 물리치료사, 약사 등)이나 기타 전문적인 직업을 통해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신 여성선교사들은 남성선교사와 다름없이 여러 분야에 걸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의 독신 여성선교사들은 중국선교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
남녀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선교사들이 타 문화권에서 외국어로 사역을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안타깝게도 중도에 탈락하는 선교사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독신 여성선교사의 탈락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겪는 어려움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교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다. 독신 여성선교사들은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낯선 땅에서 홀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지적, 감정적, 정서적 필요를 채울 수 없어서 외롭다. 독신 여성선교사가 부인선교사와 가까이 지내기에는 공통되는 화제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독신 여성선교사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홀로 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선교지에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탈락하기가 쉽다.
둘째, 선교사로서 자질과 준비가 부족하여 겪는 어려움이다. 선교지에 나가기 전에 적절한 훈련과정을 통하여 소명을 재점검하고, 사역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철저한 준비없이 열정만 가지고 나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여성선교사는 안식년에 한국에 들어가서 다시 신학을 공부하거나 선교훈련 등의 재충전을 얻고 돌아오지만 또 어떤 여성선교사는 다시 일어날 힘조차 없어 고국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셋째, 재정후원에 관한 어려움이다. 각 교단 선교부나 선교단체에서는 신학교를 나오고 요구하는 선교훈련을 받으면 파송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문제는 교단 선교부나 선교단체가 요구하는 선교 모금액을 독신 여성선교사 자신이 파송교회를 찾아서 목표액을 채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심지어 교단 파송을 포기하고 개별적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여전히 독신 여성선교사의 파송과 후원에 대해 인색하다. 어떤 경우에는 후원을 약속 했다가도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독신 여성선교사의 후원금 지원부터 끊어 버린다.
넷째, 선교지에서 독신 여성선교사의 위상과 역할,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낮기 때문에 팀 사역에 어려움이 있다. 대부분의 남성선교사들은 자신과 동일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선교사일지라도 상대가 여성선교사라면 그녀를 동역자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의 보조자 정도로만 여긴다. 따라서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성선교사들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다섯째, 독신 여성선교사를 위한 체계적인 선교정책의 부재이다. 한국교회의 교단 선교부나 선교단체들은 남성선교사 위주의 시스템과 가정을 가진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관리정책만 준비되어 있을 뿐 독신 여성선교사들을 돌보기 위한 시스템이나 선교정책은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그래서 독신 여성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소외 되거나 방치되어 안식년이나 퇴임 후에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책이 없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신 여성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교회의 교단선교부나 선교단체들의 선교정책이 남성선교사 위주로 되어있고, 독신 여성선교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이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독신 여성선교사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신 여성선교사들을 위한 제안
하나님께서 독신 여성선교사를 당신의 동역자로 부르시고 중국선교의 사역을 맡기셨다.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활발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와 파송단체는 실제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남성선교사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독신 여성선교사는 남성선교사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독신 여성선교사는 남성선교사의 보조자로 그의 사역이 잘 되도록 옆에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녀선교사 모두는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동역자로 평등하게 부름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와 남성선교사들은 잘못된 인식을 전환하고 독신 여성선교사를 존중하고, 세워주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독신 여성선교사를 파송해 주고, 다방면으로 돌보아 주며, 지속적으로 재정을 후원해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계속해서 선교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동안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의 선교정책은 남성선교사 중심의 선교사역과 남성우선의 재정지원을 지향해 왔는데, 이제 독신 여성선교사에게도 눈을 돌려 사역에 필요한 체계적인 정책수립과 지속적인 재정 후원이 이루어 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셋째, 선교지에서 능력과 은사가 있는 독신 여성선교사의 리더십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성선교사도 리더로 사역할 수 있도록 권한을 이임해 주어야 한다. 만약 남녀선교사가 한 팀으로 사역을 하는 경우에는 분명한 업무 분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의 보조자 역할만 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여성선교사의 은사와 능력이 개발되도록 재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안식년에 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고, 적극적인 지원과 후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물론 여성선교사 자신이 먼저 자신의 실력향상과 영성, 은사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넷째, 독신 여성선교사에 대한 복지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여성선교사가 안식년에 들어와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머물 수 있는 장소 제공, 다양한 수련회 참석 등 영적으로 재충전할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또한 노후 보장과 은퇴 후의 대책이 현실적으로 세워야 한다. 대부분의 독신 여성선교사는 은퇴 후에 돌아갈 곳이 없다. 평생을 선교지에서 사역하다가 은퇴한 독신 여성선교사에게는 머물 수 있는 주택을 마련해 주는 복지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다섯째, 독신 여성사역자에게 선교사역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현재 일부 교단에서는 여성목사를 안수하고, 여성사역자가 성찬과 세례 등을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어떤 교단에서는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세례를 줄 수 없는 여성선교사는 남성선교사에게 부탁하거나 아니면 현지교회, 혹은 현지인 사역자에게 부탁해야 한다. 한국 여성선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현지인 남녀사역자들은 현지교회의 규정에 의해 세례를 줄 수 있는 데 반해, 한국 여성선교사는 한국교회의 교단 규정 때문에 세례를 주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어느 교수의 말처럼 신학과 전통은 구별되어야 하며, 한국 여성선교사가 한국교회와 교단의 전통 때문에 선교지에서 사역하는데 제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가는 말
중국수교(1992) 이후 시작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올해로 근 20년에 이른다. 필자는 감히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과보다는 열매가 많았다고 평가해 본다. 그리고 그 20년간의 선교 여정에는 독신 여성선교사들의 눈물과 헌신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독신 여성선교사들과 함께 중국에서 일하고 계시며, 더 많은 독신 여성선교사를 추수의 현장인 중국으로 부르고 계신다. 이제 한국교회의 교단선교부나 선교단체는 독신 여성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선교지로 나갈 수 있도록 거기에 합당한 선교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미 사역하고 있는 독신 여성선교사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및 정책수립, 사역지에 필요한 권한 부여, 그들에 대한 목회 관리와 중도탈락 방지를 위한 상담활동을 실시하고, 선교지에서 겪는 어려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 지속적인 재정후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퇴임 후 복지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독신 여성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동등한 동역자로서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며,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장예진│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