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3  통권 264호     필자 : 김영철
[중국 영화]
《여우 아저씨(老狐狸, Old Fox)》 _가난한 소년의 유혹과 시련

이 영화는 대만 샤오야취안(萧雅全, 1967- ) 감독이 2018년 《아버지와 아들(范保德, Father to Son)》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4번째 장편영화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이번 영화도 부자지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샤오야취안은 2000년에 첫 장편영화 《명대추축(命帶追逐, Mirror Image)》을 선보이고, 2010년 연출한 《타이베이 카페 스토리(第36個故事, Taipei Exchanges)》는 《말할 수 없는 비밀(不能說的秘密)》의 여주인공 역을 맡았던 구이룬메이(桂綸鎂)가 주연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20여 년 동안 모두 4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샤오야취안은 다작 성향의 감독은 아니다.

2023년 제60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馬獎) 4개 부문에서 감독상, 조형디자인상, 영화음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최다 부문 수상의 기록을 세웠고, 샤오야취안에게 첫 번째 진마장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올해 제26회 타이베이영화제에서는 7개 부문에서, 제5회 대만 영화평론가협회상 4개 부문에서 입상하였는데 진마장에서 수상하지 못한 최고 작품상을 연거푸 두 번 거머쥐었다. 

대만에 주식투자 광풍이 몰아닥치던 1990년대, 아내가 죽고 나서 외아들 랴오제(廖界, 白潤音 분)를 키우며, 식당 일을 하는 아버지 랴오타이라이(廖泰來, 劉冠廷 분)는 월세방에 살면서 작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랴오제는 아버지가 일하는 식당의 사장이자 집주인 시에 사장(謝老板, 陳慕義 분)의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게 된다. 그 뒤로 랴오제는 아버지보다 더 새 집 장만에 대해 비현실적인 집착을 하게 된다. 

소년은 노인의 자화상
영화의 시작은 1989년 대만이다. 1987년 계엄이 해제된 대만은 민주화의 가속화와 경제발전이 급격히 이루어지며, 주가가 폭등·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같은 급격한 경제 성장은 빈부격차의 심화와 금융사기 등 사회 곳곳이 난맥상(亂脈相)이었다.

11살짜리 어린 아들 랴오제를 혼자 키우며, 식당에서 일하는 아버지 랴오타이라이는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서 내 집을 장만하여, 이발소를 차리고 싶어 틈만 나면 헤어커팅을 연습한다. 선량한 랴오타이라이 부자 곁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들이 있다. 댄서 출신인 시에 사장의 여비서 린전전(林珍珍, 劉奕兒 분)은 시에 사장을 대신해서 월세를 받으러 매달 찾아온다. 린전전은 랴오제가 굶었으면 밥을 사주고, 랴오타이라이가 독감에 걸려 출근하지 못하자 간호해 주었다. 

시에 사장은 비가 내리는 날 우연히 랴오제를 보고 자신의 차에 그를 태워 집까지 바래다준다. 집주인인 시에 사장은 랴오제를 처음 보았던 과거 일을 들려주었다. 퇴원하는 아내와 남편 랴오타이라이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내는 연신 신생아 랴오제를 안고 즐거워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남편은 적당히 하라는 눈치를 준다. 그때 랴오타이라이 부부 뒤에 있었던 시에 사장은 어머니의 사망진단서를 받으러 병원에 왔었다. 랴오제가 태어난 날이 시에 사장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시에 사장은 랴오타이라이가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인품을 지녔지만, 사회에서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약육강식 사회에서 온유함은 곧 유약함이며, 실패한 삶이라고 보았다. 시에 사장도 랴오제처럼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없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랴오제에게 말했다. “너에게 동정심을 끊어버리는 방법을 알려줄까? 아주 간단해.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찬물을 마셔, 둘째는 눈을 딱 감아, 셋째는 자신에게 나와 뭔 상관이야라고 말해.”

시에 사장은 자신의 고급 외제 승용차에 랴오제를 태우고 이야기하다가 유리창에 비친 자신과 대화를 한다. 이는 마치 같은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랴오제는 시에 사장의 어린 모습이고, 시에 사장은 랴오제의 미래 모습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랴오제는 시에 사장을 만날 때마다 자기 아버지에게 그 집을 팔라고 떼를 쓴다. 어린 시절 시에 사장 역시 집주인들에게 수도 없이 “어머니에게 세를 주세요.” 부탁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랴오제의 부탁에 ‘나와 뭔 상관이야’라며 거절했다. 수많은 거절을 겪은 시에 사장은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버렸다. 

불평등과 폭력 그리고 복수
시에 사장은 랴오제에게 말했다. “우리는 불평등을 이용해서 불평등을 창조해야 해, 누구는 불평등이 안 좋은 거라 말하지만 어리석은 거야, 불평등은 지도와 같아, 우리를 도와서 이기는 방향을 명확하게 보여줘. 강자와 함께하면 위로 올라가고 네가 약자와 함께 지내면 아래로 떨어지고 말지, 알겠니?” 그는 동정심을 버리는 것이 남에게 지지 않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나아가 불평등을 이용해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랴오제가 사는 건물 1층에는 외성인(外省人, 1945년 이후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사람) 노병(老兵) 출신 이 씨 아저씨가 국숫집을 하고 있었다. 이 씨 아저씨는 평생 모은 돈 300만 신대만 달러(NT$)를 금융사기에 휘말려 잃고 나서 자살하였다. 시에 사장은 가게를 찾아 향을 피워 제를 올리고 나서 춘제(春節) 이전에 나가달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시에 사장에게 자신들에게 집을 팔라고 부탁하자, 모진 말을 하며 거절하였다.

여비서를 수양딸처럼 여긴 시에 사장은 여비서가 자기를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자, 재떨이로 여비서의 얼굴을 때려서 피가 나고, 시커먼 멍이 들게 하였다.

초등학생 랴오제는 자신을 괴롭힌 세 명의 중학생에게 보복하였다. 시에 사장은 랴오제에게 공장에 설치된 cctv에 중학생의 어머니가 찍힌 사실을 알려주었다. 랴오제는 중학생에게 그의 어머니가 공장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아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위협을 느낀 중학생 세 명은 달아났다. 시에 사장은 공장에 cctv를 설치해서 직원들을 감시하고 흠잡아서 감원하는 데 사용했다. 공장에서 해고된 한 중학생의 어머니는 랴오제에게 cctv에 찍힌 내용을 아들에게 말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다.

시에 사장은 자신의 고급 외제 스포츠카에 랴오제를 태워서 세 명의 중학생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시에 사장과 랴오제는 통쾌한 복수에 신나 했다. 시에 사장은 남에게 더는 당하지 말고 살라고 당부하며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 랴오타이라이는 집을 사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돈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난을 벗어나 집을 갖고 싶어 했다. 랴오제는 시에 사장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을 버리고, 자신을 괴롭히던 중학생들에게 협박으로 되갚는다. 

랴오제는 시에 사장과 만난 이후 집을 사는 것에 더 집착했다. 약자에서 강자로, 빈자에서 부자로 변하고 싶었다. 성공 지향적이고 냉혹하고, 교활한 시에 사장은 자기 스스로를 고독에 빠지게 하였고, 친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멀리하고 국제의료봉사단에 합류하였다가 죽었다. 그는 또 이해심은 자신의 발전과 성공을 방해하고, 선량함은 자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지만, 잔인함과 냉혹함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물질과 영혼의 가난
랴오타이라이와 랴오제 부자는 서로 의지하며 착하게 살았다. 1990년대 대만 주식 폭등에 모든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도 폭등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내 집 마련 꿈은 갈수록 요원해졌다. 

이들 부자(父子)는 수돗물을 아껴 쓰고, 추운 날 샤워 후 가스불을 빨리 끄라고 재촉한다. 야근할 때 도시락을 챙긴 아버지의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자전거다. 아들이 감기에 걸리자, 휴가를 내고 보살핀다. 아버지는 자기 남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는 아들을 위해 직접 예복을 재봉틀로 만들었다. 또 아버지가 만들어 입힌 학교 운동복으로 인해 아들은 밖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버지 랴오타이라이는 이렇게 아끼고 절약해도 갈수록 살기가 힘들었다. 절약해서 집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체념한 듯 아들에게 말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기도 하지만 더 많은 이는 고통 속에 살아간다. 우육면 집의 이 씨 아저씨는 사기를 당해 목을 매었다. 관객은 시에 사장의 폭력과 사기꾼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랴오타이라이는 선한 사람이다. 시에 사장은 선악이 교차하고, 자기 여비서에게 폭력마저 불사하지만 랴오타이라이와 랴오제 부자에게는 연민을 느낀다. 랴오제는 아버지와 시에 사장의 좋은 점들을 배우며 성장한다. 

영화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시에 사장은 랴오제에게서 어린 시절의 자기의 모습을 떠올리고 집을 팔기로 결심한다. 그는 랴오제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 하지만 랴오제는 시에 사장에게 자신은 당신과 다르다고 말한다. 시에 사장은 친아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똑같이 말한 것이 떠올랐다. 랴오제는 시에 사장에게 당신도 분명히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에 사장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서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다가 상처를 입고 돌아가셨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동정심을 포기한 시에 사장, 하지만 그의 영혼은 메마르고 고독의 길에서 헤매었다.

온유돈후한 결말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예술성을 희생하며 교육적인 의미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자는 이 영화를 한국 영화 《기생충》과 비교도 하지만 잔인함과 냉혹함을 여과하지 않은 《기생충》에 비하여 아이의 성장 우화 같은 이 영화는 중국 전통 미학인 온유돈후(溫柔敦厚)함을 내세웠다. 

늙은 여우(老狐狸, 陳慕義 분)라 불리는 시에 사장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공리주의 가치관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선량함, 인내심, 양보, 포용 등 도덕성을 대표하는 랴오타이라이는 아들을 위해 무한한 사랑을 주고 희생하는 아버지의 대명사다. 하지만 랴오타이라이는 아들에게 이 씨 아저씨 유가족에게 집을 양보하기로 했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나와 뭔 상관이냐며 대들었다. 아들이 남의 고통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 들자, 화가 나서 아들의 뺨을 때렸다. 

공리주의에 대한 혐오와 각성을 촉구하는 영화에서 시에 사장은 랴오타이라이가 이 씨 유가족에게 집을 양보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현실과 이익에 굴복하지 않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에 늙은 여우인 시에 사장은 가난한 이에게 돈과 양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이익과 성공을 눈앞에 두고 남을 다치게 할망정 이기고 봐야 하는지? 남을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지고 말지? 동정심은 현대 사회에서 실패와 같은 의미인지?

감독은 학교에 있을 때, 사람을 대하거나 창작할 때 랴오타이라이처럼 자신에게 정직하고 엄격하며, 사회나 직장(광고업)에서는 늙은 여우처럼 교활하게 타인을 설득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영화는 도덕과 이익, 선량함과 부유함·성공 등 이원 법적인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장성한 아들 랴오제는 아버지처럼 사용한 커터 칼의 끝부분 칼날을 두꺼운 마분지에 잘 싸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상처 입지 않도록. 또 그는 찬물을 마시며 부자에게 주택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기지를 발휘해 수익을 창출하였다. 아버지의 선량함과 시에 사장의 실리 추구를 흡수한 랴오제는 건축가로 성장하였다. 

이 영화의 일본어 제목은 《늙은 여우 11살의 선택(オールド・フォックス 11歳の選択)》 이다. 늙은 여우 뒤에 11살의 선택이란 말을 추가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여우는 총명하지만 다소 사악한 이미지가 있다. 구미호는 중국 고대 신화 서적 《산해경》에도 실려 있다. 순진한 11살의 소년 랴오제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늙은 여우 같은 시에 사장을 만났다. 랴오제의 미래는 아버지처럼 선량하거나 늙은 여우처럼 교활할 수도 있다. 혹은 영화처럼 두 사람의 좋은 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허우샤오셴의 긴 그림자
이 영화는 허우샤오셴(侯孝賢), 양더창(杨德昌),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1962- )는 1993년 《영화가 시대를 기록할 때-허우샤오셴과 양더창(映画が時代を写す時-侯孝賢とエドワード・ヤン》 다큐 영화를 연출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허우샤오셴의 영향을 받았다. 

샤오야취안은 부감독으로 허우샤오셴과 협업했었다. 허우샤오셴은 《여우 아저씨》 이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샤오야취안이 30살일 때, 부단히 늘 도전하는 허우샤오셴 감독에게 자신은 나이가 들수록 담력이 작아진다고 토로하였다. 허우샤오셴은 “나이가 들수록 담력이 작아지는 게 아니라, 성공 때문이야 성공하게 되면 더는 모험을 하려 들지 않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성공은 사람을 얽매이게 한다. 샤오야취안의 이 영화에는 허우샤오셴의 영화적 요소뿐 아니라 삶의 철학도 녹아들어 있다. 알츠하이머로 요양 중인 허우샤오셴 감독의 건강을 기원한다. ♣





♣ 사진 출처 | 바이두
♣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