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3  통권 264호     필자 : 백석
[선교나침반]
총체적 선교와 기독교 미디어의 길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로잔대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많다. “WCC(세계교회협의회)와 궤를 같이한다”,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한다”, “이단성(신사도운동 등)이 제기되는 신학자와 단체의 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다”, “발람의 꾀, 로잔” 등. 진실을 추구하는 주장이 아닌 일방적인 사실 왜곡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논거가 부족한 아무 말 대잔치와 같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부 성도들은 오해와 혼란에 휩싸인다. 세계복음주의 선교운동인 로잔대회가 어떤 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지도 못한 채. 

로잔언약(1974년), 마닐라선언(1989년), 케이프타운 서약(2010년) 등 로잔의 각종 문서를 읽었다면 허황한 궤변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미전도 종족선교, 총체적 선교(통전적 선교), 10/40 창(window), BAM(Business As Mission) 등 주요한 세계 선교전략은 모두 로잔대회의 손길을 거쳤음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로잔은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가닥을 하나로 함께 묶어내면서도 전도의 긴급성(urgency), 전도의 우선성(primacy), 복음의 중심성(centrality)을 분명히 드러냈다. 로잔은 과거나 현재나 ‘운동’이지 ‘조직’이 아니라는 점에서 WCC와는 차별화한다.
 
총체적 선교로 좁혀 생각해 보자. 제1차 로잔대회에서 남미의 젊은 신학자 르네 빠디야(René Padilla)가 제시한 견해다. 그는 복음을 남미의 사회·정치적으로 상황화했다. 즉, 교회의 임무로서의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비행기의 두 날개와 같이 동시에 필요한데, 이 두 가지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은 사회적 행동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제1차 로잔대회를 이끌었던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총체적 선교에 대해 완전히 동의했다. 제3차 로잔대회 신학위원회의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존 스토트는 신학적으로, 또는 시간 순서에 따라 기독교의 사회적 행동은 사회 활동적인 기독교인을 필요로 하고, 사람이 사회적으로 활동적인 기독교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르네 빠디야의 총체적 선교는 철저하게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복음의 광범위한 차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교회의 총체적 선교 사명도 이해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총체적 선교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복음주의 선교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복음을 알리고, 구현하고, 가시화하는 것이다. 복음은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선포돼야 하기 때문에 복음의 선포는 복음을 드러내는 삶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총체적 선교를 실천하기 위해 기독교 미디어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해진다. 특히 현시점이 ‘디지털 미디어선교 시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필자는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이 제4차 선교물결 시대, 디지털 미디어선교를 확연히 드러냈다고 주창해 왔다. 현대 선교신학의 거장 랄프 윈터(Ralph D. Winter)에 따르면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 차례 선교물결이 있었다. 제1차 물결은 해안선교 시대(1792년∼1910년), 제2차 물결은 내륙선교 시대(1865년∼1980년), 제3차 물결은 미전도 종족선교, 전방개척 선교 시대(1934년∼?). 

제1차 선교물결 시대는 1792년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의 《이교도 선교방법론》 출간부터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가 열린 1910년까지로, 교단 선교부와 유럽교회 중심으로 지리학적 전략을 갖고 선교에 힘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선교물결 시대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1865년 CIM(China Inland Mission) 설립부터 1980년 에든버러 ’80(The Edinburgh ’80 consultations)과 태국 파타야 COWE(The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까지로, 교단 선교부보다는 선교회 그리고 유럽교회보다는 미국교회 중심으로 해안이 아닌 내륙이라는 지리학적 전략을 갖고 선교에 힘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3차 선교물결 시대는 특화된 선교단체와 비서구권 우세, 종족 집단에 초점을 둔 비지리학적 전략을 갖고 선교에 힘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34년 캐머런 타운센드(Cameron Townsend)와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3차 선교물결 시대는 두 사람의 과테말라와 인도에서의 각각의 선교 경험을 통해 언어, 부족, 동질 집단 개념을 일반화하고 성경 번역 과제의 시급성과 교회성장운동을 널리 알렸다. 이후 랄프 윈터를 중심으로 미전도종족 선교운동, 전방개척 선교운동이 일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물결은 인류 역사의 제1차 산업혁명, 제2차 산업혁명, 제3차 산업혁명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깊은 영향을 받으며 진행돼 왔다. 

제4차 선교물결인 디지털 미디어선교란 개인, 공동체, 교회 등이 기독교 복음과 가치, 일반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기독교 영역과 용어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기존 미디어(위성, TV, 라디오, 신문)와 뉴미디어(소셜미디어, 스마트폰) 등 모든 미디어 수단과 어(문)법을 활용해 “모든 곳(사람)에서 모든 곳(사람)까지” 전달하고 응답하는 선교방식을 일컫는다. 이는 전통적인 교회개척과 제자훈련, 교육선교, NGO선교, 이주민선교, 난민선교, 디아스포라선교, 전문인선교 등 모든 선교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총체적 선교가 될 수 있다. 특히 신앙과 신학이 교회, 신학교, 기독교인 가정 등 기존 기독교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고 공적·사적 영역에서 소통, 감동, 위로, 공감, 공유, 공생의 후생 가치를 실현하도록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선교는 총체적 선교의 또 다른 행태다. 미디어의 중요성은 필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이에 대한 힌트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에서 있었다. 당시 세계 교계지도자들은 케이프타운 서약을 통해 전통 미디어와 기성 미디어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의 창조적·통합적 활용과 상호보완을 촉구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 선교사들조차 이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미디어는 디지털 미디어선교 시대에 걸맞게 그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 살아가도록, 특정 요일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일상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생활신앙’이 가능해지도록 기독교 미디어의 선도와 분발이 요구된다. 기독교 미디어가 다루는 이슈 중 기독교인들이 관심 없는 ‘그들(특정 그룹)만의 리그’에 집중돼 있는 것이 적지 않다. 그러니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소구력을 갖는 콘텐츠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가능성이 우리 주변에 있다. 신앙이 아닌 전문성을 내세워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가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콘텐츠(유튜브 ‘셜록현준’, tvN ‘벌거벗은 세계사’ 등)로 많은 구독자나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틈틈이(?) 기독교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있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캐스팅 파워를 지닌 기독교 미디어는 어떤 기사를 쓸 것인지, 어떤 영상을 만들 것인지 관계없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THINK 정신이다. “T=True 진실한가, H=Help for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가, I=Important 중요한가, N=Necessary 필요한가, K=Kind 겸손이 담겨 있는가.” THINK 정신으로 아젠다를 설정, 기사와 영상을 명품화하고 깊이와 넓이를 보다 담보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합을 맞추면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기존 미디어의 소통방식을 보완하고 창의적인 확장·융합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기독교 미디어 종사자는 성경에 정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공의와 사랑)을 각자의 콘텐츠를 통해 드러내고, 전문가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탁월성으로 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디어 공급자가 수요자(소비자)의 참된 필요에 귀 기울이고 콘텐츠를 만들 때 재정적 토대까지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 과정과 범위, 제작 속도와 방향, 시간을 조절하는 지혜 또한 필요할 것이다. 재미(흥미), 감동, 위로(힐링), (간접) 경험, 정보, 보상 (의미) 등 6가지 요소를 갖추지 못한 기독교 미디어 콘텐츠는 구독자나 시청자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독교 미디어가 개인과 사회, 국가를 넘어 전 지구적 공동체성과 문화 변혁이라는 총체적 선교의 온오프 하이브리드 모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재 중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중국 특색의 총체적 선교 모델이다. 이 글에서 제시한 기독교 미디어의 길을 중국 기독교인들의 사역과 삶에 적용, 응용한다면 보다 창의적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본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백석 | 중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