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신예 여성 감독 왕시제(王希捷)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왕시제는 국립 타이베이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주목을 받았다.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이 영화는 대만 문화부의 우수 대본상을 받기도 하였다.
여주인공 엄마 예란신(叶兰心, 鲍起静 분)은 은퇴를 미루고 있는 미술학원 선생이다. 그녀는 퇴근해서 은퇴한 남편 뤄다웨이(罗大伟, 寇世勋 분)에게 밥을 차려주고,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방을 정리한다. 예란신은 요양원에 계시는 친정 엄마 쑨친팡(孙勤方, 于家安 분)을 주말에 집으로 모시고 와서 며칠 계시게 하려고 했지만 딸 뤄자닝(罗家宁, 柯佳嬿 분)이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된다.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아들 뤄자위(罗家宇)는 (대만에) 귀국해 농부가 되고 싶어 한다. 남편 뤄다웨이의 여동생 뤄전니(羅珍妮, 曹蘭 분)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면서 계획하고 있는 장례사업에 대해 오빠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아내와 엄마 삶의 무게 은퇴한 남편 뤄다웨이는 골동품을 정리하며 응접실 소파를 독차지하고 앉았다. 그는 또 소설의 수준을 논하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들을 책꽂이에서 치우라고 핀잔을 준다. 정작 자신은 골동품과 찻잔을 쌓아 놓고 가장으로서 호기를 부렸다.
자신의 작업실만 남겨주면 나머지 공간은 모두 양보할 수 있다며, 퇴직해서도 여전히 집을 작업공간으로 인식하는 남편은 아내에게 생선구이가 탔다고 반찬 투정을 한다. 그러나 정작 아내가 집을 비우자 계란프라이 만드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쓰레기 분리배출도 하지 못해 다시 집으로 들고 온다. 어느 날 남편 뤄다웨이는 챔피언 비둘기를 집으로 가져오는데, 그는 경주에 참가했던 비둘기는 버려진다는 사실을 듣고 놀란다. 이는 마치 퇴직한 뤄다웨이 자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미국에 거주하는 아들 뤄자위가 종신교수가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부부는, 아들이 귀국하여 교수가 되어 타이베이에서 함께 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들은 돌아와서 화롄(花蓮)으로 내려가 농부가 되겠다고 하여 크게 실망한다.
시누이는 부친의 그림을 팔아서 살림에 보태려고 하고, 장례사업을 시작하려고 오빠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요양원에 계시는 85세의 엄마 쑨친팡은 치매증상을 보이고, 여러 차례 넘어져서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누워 지낸다. 예란신은 주말에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싶어서,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방을 치운다.
하지만 딸 뤄자닝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돌아와서 그 방을 차지한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딸은 새로운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재기에 성공하기만을 바란다. 또 로자닝은 엄마 예란신에게 서서 볼일을 보는 아버지 때문에 오물이 묻은 양변기를 대신 닦아 달라고 조른다. 예란신은 사방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요구와 압박으로 언제든지 터질 것만 같은 시한폭탄 상태다.
예란신은 매일 아침 5시 59분에 기상한다. 6시에 맞춰놓은 자명종보다 1분 일찍 일어나서 시작하는 초긴장 상태의 하루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같이 반복된다. 남편이 밤에 잠들고서야 예란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리차드 기어가 나오는 미국 드라마를 몰래 볼 수 있었다. 남편이 온종일 혼자서 쥐고 있던 티브이 리모컨을 가지고 여유를 만끽한다.
30년 동안 일한 직장에서 은퇴를 앞둔 예란신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집에서도 청소, 식사 준비, 딸의 이직과 연애 생활, 아들의 귀국 등 신경을 쓸 것이 많다. 한편 직장과 집, 그 어디에도 그녀만을 위한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의 자리는 가장인 남편에게, 딸과 아들에게 점차 잠식되고 있다.
예란신은 남편의 작업실을 마련하고, 미국에서 귀국하는 아들 가족과 함께 살 큰 집을 보러 다녔다. 제자 리관팅(李冠廷, 李淳 분)은 모아둔 목돈으로 새집을 사려는 예란신에게 투자를 권유한다. 예란신은 고위험 투자지만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투자를 결심한다. 하지만 제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연락이 끊기자 초조해한다. 단기 고금리 투자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사실 이는 예란신 꿈의 일부였다. 예란신은 믿었던 제자 리관팅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세면대의 물에 얼굴을 잠그고 고통스러워했다.
딸은 돈이 없어 택배기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여 예란신이 대신 지불하고, 아들은 대만행 항공권을 구매해달라고 요구한다. 퇴직을 앞둔 그녀는 온갖 다중적 위기감에 빠져든다. 금전, 시간, 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폭발하기 직전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희생을 감내하며 고통에 허덕인다.
옛집과 세계여행 퇴직하면 세계여행을 시켜주겠다던 남편은 더 이상 말이 없다. 예란신은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부모님이 처음 마련했던 옛집에 놀러 가고 해외여행도 떠나려고 했다. 예란신은 엄마와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마쳤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찾는 방송을 하려고 안내 데스크로 갔는데 자신의 이름을 묻자 갑자기 대답을 못 한다. 예 선생님, 엄마, 딸, 아내란 말만 떠오른다. 가정과 사회에서 역할로서만 존재하던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는 대목이다.
딸이 도시락을 잊어버리고 문을 나서자 엄마 예란신은 쫓아가서 도시락을 건넨다. 그러자 딸은 장미꽃 한 송이를 감사의 표시로 건네준다. 여전히 딸의 뒤를 쫓아가면서 보호하려고 하자 딸은 더 많은 장미꽃 다발을 엄마에게 안겨준다. 장면은 바뀌어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뒤쫓아오자 예란신은 엄마에게 감사의 뜻으로 역시 장미꽃을 건넨다. 엄마는 예란신에게 장미꽃 다발을 건넨다. 예란신은 딸에게 받은 장미꽃 가시에 찔린다. 자신은 딸에게, 엄마는 자신에게, 대를 이어지는 엄마의 역할은 지속된다. 이러한 역할 속에서 감사와 보람을 느끼고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상처받기도 한다.
예란신은 요양원의 엄마 곁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꿈에서 여행, 사기 사건 등을 경험했다. 예란신은 마음 한편에 젊은 시절 화가가 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지 않은 회한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설령 그 길을 갔어도 꼭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서 포기했기 때문이다. 예란신은 엄마와 나눈 몽환적인 대화 속에 자식과 가정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또한 늙어서 가족을 잃고 혼자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영화는 아내의 요구가 있을 때 남편은 벽에 걸린 그림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엄마를 원더우먼처럼 여기고 의존한다. 세상의 엄마들도 누군가의 딸이며, 그들 자신도 꿈을 가지고 있는데, 주변에서 그것을 잊고 산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엄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함을 주지시킨다.
가족의 제자리 찾기 영화는 극적인 일이나 사건으로 아내와 엄마의 존재가 소중함을 말하지 않고 사소한 일상을 통해서 잔잔하게 들려준다. 현실, 기억, 판타지 등이 어우러진 영화의 전반부는 사실주의 경향을 보이다가, 후반부에는 몽환적 기법으로 일생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엄마에 관한 스토리는 영화에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영화는 양더창(楊德昌)의 《하나 그리고 둘(一一)》의 영향을 받은 영화로 타이베이 현대인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에 올라 최다 수상자로 주목받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서 슈롄(秀蓮, 楊紫瓊 분)은 반항아 십 대 딸의 엄마로서, 유약한 남편의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현실과 판타지 속에서 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족과 편안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일종의 사치인 미국 이민 화교 사회의 버거운 삶의 무게를 잘 보여준다. 여주인공 슈롄의 모습은 예란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집을 통하여 엄마와 아내를 이야기한다. 예란신은 미술 교실에서 자신이 정교하게 만든 집 미니어처를 들여다보았다. 집은 욕망, 갈등, 기억, 꿈, 자유 등 복잡하고 다양한 상징물이다. 영화 결미에 예란신은 처음으로 남편이 늘 앉던 응접실 의자에 앉아본다. 그리고 미국에서 비행기표를 사 놓았냐고 독촉하는 아들의 국제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남편의 권위와 고마움보다 부단히 요구하는 아들의 야박함에 도전하는 모습이다.
영화의 쿠키 영상에는 아버지 뤄다웨이는 비가 오는데도 대문 위의 비가림막을 수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장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남편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지붕 같은 존재로 비바람을 막아서 집을 보호한다. 영화 《세월신투(岁月神偷, Echoes Of The Rainbow)》에서 아버지가 폭풍우 치던 날에 지붕을 수리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영화 후반부는 환상적이고 다소 비유적인 기법으로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를 다시 정립하려고 한다. 마치 영화의 영문 제목 ‘Reclaim’처럼 분실한 것을 되찾고,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영화는 한 집안의 가장(一家之主)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의미의 가장을 세우고 남성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가장에 대해 재해석하려고 했다.
사진 출처 | 바이두(위)/네이버 블로그(아래)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