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  통권 232호     필자 : 강진구
[중국 사회와 문화 이야기]
광군제(光棍节)와 애국 소비, 궈차오(国潮)

광군제를 견제하는 공산당
미국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가 있다면 중국에는 ‘광군제’가 있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가 추수감사절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이어지는 연말에 벌어지는 할인행사로서 자본주의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면, 중국의 광군제는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이 디지털 시대에 자본주의 꽃과 같은 소비문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원래 11월 11일에 벌어지는 광군제는 숫자 1이 나란히 4개가 배열된 모양에 착안하여 독신남이나 애인이 없는 남성을 뜻하는 중국어 ‘광군(光棍)’을 붙여서 시작되었다.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阿里巴巴)는 2009년 11월 11일을 사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살 수 있는 특가세일을 통해 솔로들을 위로한다는 취지의 행사로 시작했지만, 오늘날에는 평소에는 값이 비싸서 사지 못했던 물건을 점찍어두었다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비의 날로 변모하였다.
  
13회째를 맞이한 금년 광군제는 예전과 달랐다. 지난해까지는 11월 11일 단 하루에 집중적으로 진행했던 대규모 할인행사였지만, 금년에는 11월 1일부터 11일까지 이어지는 기간행사로 바뀌었고, 다만 11월 1일부터 3일까지의 1차 프로모션과 11월 11일 당일의 2차 프로모션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장시간의 행사 기간을 설정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기간을 길게 가질 경우 집중적인 소비가 일으키는 위화감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정부는 광군제의 벼락같은 소비를 중국 경제의 부흥을 대내외에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왔지만, 빈부격차의 심각성이 가져올 위험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경계하는 중이다. 
  
지난 7월 1일에 있었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은 기념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중요한 말을 남겼다. “당과 각 민족의 분투를 통해 우리는 첫 번째 100년 목표를 달성했고 중화 대지에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실현했다. 이는 중화민족, 중국 인민, 중국공산당의 위대한 영광이다.”
  
시진핑 주석의 입에서 나온 ‘샤오캉’의 원래 의미는 모든 중국인들이 편안한 의식주와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를 뜻한다. 중국인들이 이 말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지만 적어도 중국이 절대적 빈곤의 상황을 극복했다는 데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시 주석의 얘기대로 중국은 놀라운 경제성장 덕분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절대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이 뿌리내리면서 발생하는 상대적인 빈곤, 혹은 양극화한 빈부격차가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시 주석이 양극화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다 함께 잘살자’는 뜻의 ‘공동부유(共同富裕)’이다. 그는 공동부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민 중심의 발전 사상을 유지하고, 높은 수준의 발전을 통해 공동부유를 추진해야 한다.” 
  
어떻게 공동부유를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중국 인민들의 빈부격차에 따른 심리적인 불만이라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공산당 정부는 광군제의 미친듯한 소비를 진정시킴으로써 광군제에 참여할 수 없는 빈곤층의 마음을 살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광군제 성공이 남긴 숙제, 궈차오(国潮)
광군제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2021년 광군제는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와 2위 업체인 징둥닷컴(JD.COM, 京东)이 8894억 위안(약 164조 4500억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거래액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기록한 7697억 위안보다 16% 늘어난 규모다. 
  
액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중국 인민들의 참여 열기 또한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들은 택배를 통해 받게 마련이다. 중국 국가우정국이 광군제 기간인 1일과 11일 양일 동안 취급한 택배 물량만 하더라도 1일 5억 6900만 건과 11일 6억 9600만 건에 달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2020년도 전체 택배 물량이 33억 7천만 개인 것을 감안하면 광군제 단 이틀 동안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소비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광군제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소비를 주도한 층이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중국의 MZ세대이며, 이들이 ‘궈차오’라는 애국주의 소비를 지향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궈차오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랜 역사 가운데서 중국인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중화사상(中华思想)을 기반으로 세계 최대의 인구를 무기로 빠르게 성장한 경제력을 통해 세계 최대의 강국인 미국과 겨룰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의 GDP가 처음 집계된 1952년, 당시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679억1000만 위안에 불과했다. 그러나 개혁과 개방정책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한 중국은 2020년 GDP 101조5986위안(약 1경 7300조 원)을 달성, 40여 년 사이에 무려 275배에 이르는 폭풍 성장을 이루었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2019년에는 1인당 GDP 1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미국 GDP의 70.2%까지 뒤쫓으며 미국의 최대 경쟁국이 되었다. 최근 미중 간의 갈등 속에서도 중국이 물러설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MZ세대가 보여주는 궈차오는 힘든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애국이 아니라 든든한 나라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애국인 셈이다. 

  

궈차오는 소비하는 물건에 따라서 3세대로 구분된다. 1세대 궈차오는 저가노동력으로 값싼 생필품을 만들던 시절의 애국소비로써 의류와 식품 등 생활필수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차츰 기계산업과 디지털 등 산업 등이 체계화하면서부터는 자동차와 휴대폰을 중국산으로 구매하는 2세대 궈차오가 출현했다. 3세대 궈차오는 영화, 만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선별적인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며, 정부의 통제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과 같은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노출된 영화들은 공식적으로 중국 내 유통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중국의 대중들이 못 보거나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유통의 과정을 거칠 수 없기 때문에 한류콘텐츠가 중국에서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중국 최고의 흥행영화로 기록된 《장진호(长津湖)》는 3세대 궈차오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진 이 애국주의 영화는 미국에 맞서 조선(북한)을 도왔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전쟁으로 받아들이는 중국식 역사관을 반영하여 중국 밖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내부적으로 애국소비에 가장 적합한 문화상품으로 인식되었다. 

돈 쓰는 법도 배워야 한다
광군제를 보고 있노라면 한창 배가 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더 이상 중국이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려준 광군제지만 광적인 소비가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온전케 보일 수 없는 노릇이다. 새 물건을 사고 얻는 일이 기쁨과 위안을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짧은 순간일 뿐이다. 또다시 물건을 사야 하는 소비의 욕구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소비하는 법도 배울 필요가 있다. 원하는 것을 무한정 얻을 수도 없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이왕 물건을 사려면 환경과 이웃을 생각하는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교육이 중국에서도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사진 | 바이두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