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  통권 232호     필자 : 쑨빈
[선교나침반]
중국교회에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지난 11월도 중국교회와 기독인들을 둘러싼 외부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첫 번째 장면으로 11월 8∼1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를 꼽을 수 있다. 국가주석 시진핑(习近平) 당 총서기는 ‘역사결의(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과와 역사적 경험에 관한 결의)’를 통해 유일한 ‘당의 핵심’이라는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다 같이 잘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 중·미관계 관리, 대만 문제 등 국내외 난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장기집권이 가능한 틀을 마련했다.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9기 전국대표대회로 제2기 시진핑 통치시대가 열린 이래 2018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헌법에서 국가주석 3연임 제한 조항이 삭제되면서 시작된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통치 구조가 속속 완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의 발전이 모든 사람의 일상을 실시간 감시할 뿐 아니라 정부의 통치 능력과 통제를 강화할 것이며 그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장면이다. 로이터통신의 지난 11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허난(河南)성 정부가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이 지역을 방문한 특정 인물, 즉 기자와 외국인 학생 등을 실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사업계획을 지난 7월 29일 정부의 한 사이트에 올렸다. 200여 쪽에 달하는 이 계획안은 사진, 얼굴 특징 등으로 인물을 검색·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기자의 경우 빨강·노랑·초록 등 3단계로 분류하고 기자가 허난성 내 호텔에 투숙하거나 허난성행 항공권을 구입하면 경보를 울리도록 한다. 방범카메라(이하 CCTV)로 실시간 위치도 추적한다. 요주의 인물은 추적·통제될 뿐 아니라 동적 분석과 위험 평가까지 한다. 허난성 정부는 지난 9월 17일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업체 중 하나인 둥롼(东软·Neusoft)과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11월 중순까지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겠다고 계획했는데, 현재 이 시스템이 가동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허난성 정부도 관련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이 덧붙였다. IT 기업 둥롼은 안면인식 기술로 수급자를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중국 지방 정부의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사실 외국인 동태 등에 대한 모니터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인 기자와 외교관 등이 거주지 외의 지역을 방문하면 외사담당 공안이 휴대전화로 연락해 방문 목적을 캐묻거나 숙박 호텔로 직접 찾아오고는 했다. 과거에는 호텔 체크인을 해야만 도착 사실이 공안에 통보됐다. 그러나 기차 등 장거리 대중교통 이용 시 실명제가 시행되면서 예약과 동시에 동선이 파악된다. 중국 정부는 2019년부터 이동통신 가입 때 얼굴 정보를 등록하게 했다. 아파트 단지 출입 등록, 휴대전화 앱(응용프로그램)에 가입할 때 신분증 외에도 얼굴 정보를 요구받기도 한다. 중국 거리 도처에 있는 CCTV와 인공지능 기술이 결합되면서 중국 정부는 원하는 대상을 언제든지 어디서든 추적, 감시할 수 있게 됐다. 화상 감시와 통제 범위를 넓히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험 요인을 감시·예측하고, 안면인식 기술로 통치 능력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인 듯하다.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철저한 관리·통제 못지않게 중국 정부가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가통용 언어·문자 교육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11월의 세 번째 장면이다.


홍콩 명보(明报)의 12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 판공청은 전날 발표한 ‘신시대 언어와 문자 작업 전면 강화에 대한 의견’을 통해 소수민족 지역에서 푸퉁화(普通话) 보급을 늘리고 홍콩·마카오에서 푸퉁화교육을 지원해 푸퉁화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에는 푸퉁화 보급률 85%를 달성하고, 2035년에는 국가 통용 언어와 문자가 전국에 전면적이고 충분하게 보급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현재 푸퉁화 보급률은 80% 정도로 전해진다. 과거보다 보급률은 높아졌지만 소수민족 거주지나 농촌지역 보급률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국무원은 소수민족 거주지의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모두 푸퉁화로 된 3개 과목의 통합교재를 채택해 중학교 졸업 시 푸퉁화 사용 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게 하고, 고교 졸업자는 푸퉁화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광둥화(广东话)와 번체자(繁体字)를 사용하는 홍콩에서 푸퉁화와 함께 중국에서 사용하는 중국어 표기법인 간체자(简体字) 보급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마카오와 광둥성 주요 9개 도시를 묶은 웨강아오(粵港澳), 대만구(大湾区·Great Bay Area)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등에서 푸퉁화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문화적 동질성은 국가 정체성의 가장 깊은 수준이며 민족 통합의 뿌리이자 민족 화합의 혼”이라며 “국가 공용 언어와 문자 보급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중국 교육부는 지난 6월 ‘중국언어문자사업발전보고서’를 통해 홍콩이 푸퉁화와 간체자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현지 시험 체계에 푸퉁화가 포함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소수민족 학교에서도 중국어(语文) 등 일부 과목의 교과서를 국가 통일편찬 서적으로 바꾸고 수업도 푸퉁화로 진행하도록 했다. 네이멍구(内蒙古)자치구에서 이 때문에 몽골족 수천 명이 반대시위를 벌였다. 푸퉁화 교육 확대가 몽골 고유 언어와 문화를 점차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네 번째 장면으로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대만 집권 민진당을 후원했다가 중국에서 ‘분리주의자’ 지원기업으로 낙인 찍혀 거액의 벌금 부과와 시정명령을 받은 대만 위안둥(远东)그룹을 들 수 있다. 위안둥그룹은 지난해 대만 총선에서 민진당에 5800만 대만달러(한화 약 25억 원)를 기부한 민진당의 최대 후원자였다. 쉬쉬둥(徐旭东) 위안둥그룹 회장은 지난 11월 29일 대만 연합보 기고문에서 “항상 대만 독립에 반대해왔다”며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가 현상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줄곧 ‘92공식(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1992년 합의)’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왔다”고 밝혔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2월 1일 보도했다. 쉬 회장은 “대만 정치인들은 주로 선거 득표에 마음을 쓰고 큰 틀의 산업 전략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면서 “14억 대륙 시장의 기회를 억압하는 것이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고 역설했다. 이 기고문이 중국 상하이(上海)시, 장쑤(江苏)성 등 5개 지방 정부에게서 위안둥그룹 계열사들이 환경보호와 토지사용, 생산안전, 세금납부 등에 관한 각종 법규를 위반한 혐의로 4억 7400만 위안(한화 약 885억 원)의 벌금과 추징세액을 부과받은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 대만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고 양안관계를 파괴하는 이들이 대륙에서 돈을 버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앞서 밝혔다는 점에서 국가의 핵심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국내 기업은 물론 국외 기업도 표적 수사와 단속의 대상이 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상의 네 가지 11월의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100년 전 중국공산당이 창당된 1년 뒤인 1922년 제1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비기독교운동(非基督敎运动)’이 결의된 이래 일련의 반기독교물결이 일어나 중국교회에 또 다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지만 이를 계기로 자립과 토착화운동이 보다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중국교회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중국화를 비롯한 ‘종교의 중국화’라는 현재 도도한 흐름 속에서 교회와 기독인들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녹록지 않지만, 모험으로 나서는 믿음의 행진이 중국교회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잠시 1920년대도 돌아가 보자. 1922년부터 1927년까지 일련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기독교를 반대하면서 주도했던 비기독교운동은 이성적, 논리적 공개 토론을 통해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반제(反帝), 반군벌(反軍閥) 혁명사상으로 발전해나갔다. 또 과학을 앞세워 종교는 비과학적이라며 반대했다. 반기독교 풍조는 그러나 지식인들 가운데 기독교 교리가 널리 소개되고 중국교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해 자립과 토착화(본색화)를 시대적 과제라고 인식하게 했다. 이는 분명 청말(淸末)에 있었던 반기독교운동과는 궤를 달리한다. 중국의 전통문화와 충돌하는 갈등 속에서도 민중의 삶으로 점차 스며들어 가던 기독교는 비기독교운동을 통해 강하게 저항을 받게 됐다. ‘비기독교학생동맹’을 결성한 상하이의 학생들은 1922년 3월 9일 ‘베이징비기독교동맹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는 같은 해 4월 4일부터 9일까지 베이징의 칭화(清华)대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기독교학생동맹’의 제11차 대회를 조준한 것이었다. ‘세계기독교학생동맹’은 현대 학생들에게 어떻게 기독교를 전할 것인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그리스도화할 것인가, 현대 학생의 교회 안에서의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할 계획이었다. ‘비기독교학생동맹’은 국립대학이 특정 종교단체에 이용되면 안 된다는 표면적 이유를 내걸었지만 기독교가 제국주의의 앞잡이이고, 과학의 정신과 개인의 자유에 반한다면서 공격했다. 이후 ‘광둥중국사회주의공청단’의 격월간지 ‘선구’가 비기독교학생동맹호를 내고 비기독교운동을 적극 전개했고, 베이징대에서 ‘비종교대동맹’이 조직되고 선언문도 발표했다. 상하이의 한 기독교학교에서 한 학생이 퇴학당하면서 1924년 8월 상하이에서 비기독교동맹이 새롭게 조직됐고 외국인 선교단체에게서 교육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운동도 일어났다. 1925년 전국적인 민족주의 사상과 반열강 반제국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과거 단순 학생운동에서 벗어나 정당, 문화단체까지 합세한 비기독교운동이 일어났다. 1926년 이후 ‘비기독교대동맹(1925년 12월 상하이에서 새롭게 결성됨)’은 국민당 북벌군과 결탁해 외국선교사 살해, 교회와 학교 파괴, 약탈을 자행했다. 1927년 전국의 8000명 선교사 중 5000명이 철수하거나 중국을 떠났다. ‘기독교청년회’는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호소력을 상실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기독교 자체의 개혁과 갱신으로 꿈틀거렸던 것이 20세기 초반부터 이어온 자립운동과 토착화운동이었다. 외국의 교회, 선교단체로부터 독립해 중국적인 교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다 활발히 일어났다. 1917년에 시작된 참예수교회(真耶稣教会)부터 예수가정(耶稣家庭), 소군(小群), 기독도회당(基督徒会堂) 등이 대표적이다. 외국 선교사가 아닌 중국 기독인들이 중심이 되는 중화기독교회(中华基督教会), 중화침례회(中华浸信会), 중화순리회(中华循理会), 중화행도회(中华行道会) 등을 통한 자치, 자양, 자전의 중국 기독교의 질적 성장도 시도됐다. 기독교가 제국주의 문화를 의미하지 않고, 중국 문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독교의 보편성을 설명하고 기독교를 중국 문화와 관련지으려는 노력이 다소의 진전도 가져왔다. 중국교회는 중국 기독교인의 관리와 재정사용권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1920년대와 2021년 오늘의 콘텍스트는 매우 상이하다. 하지만 교회에 대한 시선은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사회주의 중국에서 기독교는 경계대상을 넘어 척결대상이 될 수 있다. 언택트와 컨택트가 공존하는 시대에 중국교회와 기독교인의 모임과 움직임은 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본질은 고수하되 비본질에 대해서는 보다 열린 마음과 시각이 필요하다. 아울러 갈수록 관계에 목마를 수밖에 없는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셨듯이 여전히 부족하지만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애쓰고, 남다른 일상과 가정을 가꾸기 위해 힘쓸 때 우리의 주변은 작은 기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중국교회와 기독인들에게는 아직 기회와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내일의 태양은 뜨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오늘의 우리는 그 자리에만 머물 뿐 아니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현재에 보다 충실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중국화를 뛰어넘는 참된 대안이 된다면 중국공산당도 국정 철학의 일환으로 매우 이질적인 기독교적 가치를 차용하여 역설적으로 그 가치를 실현하는 전무후무한 중국공산당이 되지 않을까 깜찍한 상상을 해본다. 결코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사진 | 신화사(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9기 6중전회)가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림)→바이두(위에서부터)
쑨빈 | 중국인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