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  통권 220호     필자 : 나은혜
[나은혜 선교문학]
단편소설 《회귀(回歸)》(최종회)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갔다. 윤이한테서 다시 전화가 온 것은 첫 번째 전화 이후 꼭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수화기를 든 오 선교사의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전화기 너머 윤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훨씬 차분했다. “선교사님, 놀라지 마세요. 의사선생님이 제가 위암 4기라고 하네요. 그런데 너무 늦어서 이젠 수술도 할 수가 없대요. 많이 살면 지금부터 3개월 정도 살 거라고 해요.” 오 선교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엄청난 소식을 어떻게 저렇게 평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사실이 아닐 거야. 괜히 나를 놀래 주려는 것이겠지. 오 선교사는 마음속으로 윤이의 말을 부정하며 짐짓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여보세요! 아니, 윤이야…, 뭐라고? 의사가 그 말을 윤이에게 했다는 거야. 그런 엄청난 말을….” 소리치듯이 말하는 오 선교사의 음성이 많이 떨려서인지 이번에는 윤이의 목소리도 조금 흔들렸다. “아니에요. 새언니와 같이 갔었어요. 의사선생님은 새언니에게만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제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새언니의 판단에 제가 죽을 준비를 하게 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이 들었나봐요.” 오 선교사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부르짖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윤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수화기 저편 윤이는 아무 말이 없는 오 선교사의 심정을 눈치라도 챘는지, 생뚱맞을 만큼 밝은 소리로 말했다. “선교사님, 저 괜찮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저 천국 데리고 가시려고 부르셨나 봐요. 선교사님이 저에게 천국 가는 길을 잘 가르쳐 주셨잖아요. 선교사님이 많이 기도해 주시니까, 저 천국에 갈 수 있겠지요.” 차분하게 이야기를 쏟아 내는 윤이가 오 선교사는 더욱 안쓰럽고 불쌍해졌다. 오 선교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윤이의 영적 엄마로서 윤이를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윤이에게 중요한 소망의 말을 해 주어야 해. 그게 지금 내가 할 일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오 선교사는 아주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이야, 잘 들어. 윤이는 이미 하나님의 딸이야. 언제 죽어도 이미 천국 백성이지. 성경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이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윤이는 의사의 진단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살릴 계획이 있으시다면 살아날 수도 있어. 우리 가족이 윤이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할께. 아무 걱정말고 믿음을 가져야해 알았지?” 그러나 윤이는 그 말에 크게 동요하는 것 같지도, 희망을 갖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조그만 소리로 “잘 알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저 이제 전화 끊을 게요.”라고 하더니 조용히 전화기를 윤이 편에서 먼저 놓았다. 윤이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 수화기를 한동안 들고 있던 오 선교사 역시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오 선교사는 소파에 무너지듯이 주저 앉았다. 속으로부터 울음이 끓어 올라왔다. 갑자기 거실에서 오 선교사의 통곡소리가 들리자, 가족들이 방에서 뛰어나왔다. 오 선교사가 흐느끼면서 전해주는 윤이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남편은 신음하듯이 “음…, 어떻게 이렇게 되도록 몰랐었지…, 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시다. 자, 오늘부터 윤이를 위한 다니엘 금식기도를 시작합시다.” 하였다. 슬픈 마음을 겨우겨우 가누며 오 선교사는 릴레이 다니엘 금식기도표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금식기도를 시작하였다. 그 후로 한동안 윤이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윤이의 한국 전화번호를 모르니, 이쪽에서 전화를 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한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윤이가 불쑥 전화를 걸어 왔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윤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선교사님, 저 마음이 참 홀가분해진 듯해요. 단지 두고 가는 아버지와 장애가 있는 남동생이 마음에 걸리네요.” 오 선교사는 윤이의 말에 마음이 너무 아파 도저히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중간에 윤이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마치 윤이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수화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윤이야, 무슨 소리야. 윤이는 죽지 않아.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잖아. 하나님께서 윤이를 꼭 살려 주실 거야.” 그런데 참 이상했다. 보통 이런 상황의 환자라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 드는 법이기에, 오 선교사의 소망을 주는 믿음의 말에 희망을 갖을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윤이는 달랐다. 윤이는 오 선교사의 격동하는 음성에 오히려 차분히 대답했다. “선교사님, 저 그렇게 위로 안 해주셔도 돼요. 이미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어요. 천국 가는 데 뭐가 그리 두렵겠어요.” 윤이의 이 믿음의 말은 오 선교사가 들은 윤이의 마지막 음성이 되었다. 

그 다음에 걸려온 전화는 윤이가 아니었다. 윤이의 올케언니였다. “여보세요! 오 선교사님이세요? 성윤이 학생 올케되는 사람인 데요. 윤이가 어제 떠났어요. 병원에서 제가 옆에 있는 가운데 너무도 평안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돌아갔어요. 제가 계속 찬송을 불러 주었지요. 그동안 저의 아가씨를 전도해 주시고 양육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것 너무 고맙습니다. 가족들을 대표해서 제가 감사를 드립니다.” 오 선교사는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온 가족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아직 작정한 금식기도도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흘쩍 윤이를 데려 가시다니…, 믿고 싶어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오 선교사는 윤이를 살려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 선교사는 마루 바닥에 널브러지듯 아무렇게나 주저 앉았다. 그리고 통곡하며 기도인지 원망인지 모를 말을 쏟아 내었다. “아니, 하나님! 의사가 3개월은 살 수 있다고 진단했다는데, 뭐가 급하셔서 진단받은 지 한 달만에 윤이를 데려가셔야 해요. 윤이를 그렇게 데려가실 생각이었으면 무엇하러 중국에는 보내셨어요?” 오 선교사의 통곡에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오 선교사는 분해서 못살겠다는 듯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 내고 있었다. 울음 속에 섞여 들리는 오 선교사의 애처러운 기도는 차라리 넋두리에 가까웠다. “하나님, 왜 저에게 윤이를 제자 삼으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렇게 데려가실 것이면서요. 정말 너무해요…, 으흐흐흐흑….” 넓은 거실에 오 선교사의 애잔하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꽉 차 버린 느낌이었다. 그만큼 무거운 슬픔이 온 집안을 사로잡았다. 딸 지영이가 오 선교사의 옆에 앉더니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울기 시작했다. “엄마, 윤이 언니가 장말 천국에 갔어…, 엉엉엉….” 모녀의 속절없는 통곡이 집안 가득찼다. 

며칠 후, 한국에서 윤이의 장례는 잘 치러졌다는 연락이 왔다. 이전에 윤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던 윤이의 믿음 좋은 올케언니였다. 윤이가 예수 믿기 전 그렇게도 괴롭히고 미워했던 올케언니였다. 그녀는 감사와 진정을 담아 이야기를 했다. “선교사님, 아가씨의 유해는 화장을 했어요. 그리고 아가씨가 결혼하기로 약속한 남자 친구가 아가씨의 유골을 대천해수욕장에 가지고 가서 바다에 뿌렸어요. 대천해수욕장은 아가씨가 남자 친구와 첫 데이트를 갔던 곳이라고 하네요.” 오 선교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망연자실 소파에 앉았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가만히 부엌 창문에 기대어 서서 창밖을 바라 보았다. 윤이가 까만 단발머리를 나풀대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금 막 달려올 것만 같았다. 오선교사는 현실을 잊어 버리고 싶었다. 오 선교사는 윤이가 보고 싶었다. 부엌 창문에 기댄 채 한국으로 나가기 전 윤이가 선물한 머리핀을 가만히 만져 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적 자녀요. 제자 삼은 윤이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갑자기 귓가에 윤이의 밝은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와∼! 선교사님 머리핀이 아주 잘 어울려요.” 창밖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빙빙 돌았다. 어느덧 가을인 모양이다. 

윤이가 죽자 함께 중국으로 유학을 왔던 지혜는 홀로 남았다. 더욱이 아파트식 기숙사를 함께 쓰고 있던 지혜는 윤이의 빈자리를 견디기 힘들어했다. 윤이가 치료차 한국에 나갔을 때는, 다시 돌아올 소망이 있으니 견딜 수 있었지만, 윤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지혜를 무척 힘들게 하였다. 더욱이 지혜는 윤이가 남겨 놓고 떠난 유품들을 정리해서 윤이의 부모님 집으로 보낸 후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오 선교사는 남은 제자인 지혜를 돌봐 주어야 했다. 오 선교사는 지혜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 도시의 가장 좋은 호텔의 맨 꼭대기 층에 있는 회전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지혜는 예상대로 몹시 기뻐하였다. “어머, 선교사님! 이 도시에도 이런 근사한 커피숍이 다 있었네요. 전 처음 와봐요.” 오 선교사가 설명해 주었다. “이 도시에선 제일 좋은 4성급 호텔이지. 이곳에 찾아오는 외국인들을 위해 지어진 호텔이야.” 그러자 지혜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할듯하다가는 입을 다문다. 오 선교사는 그런 지혜를 바라보면서 “지혜야, 무슨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말해 봐요.” 했다. 지혜는 “아…, …, 다른 게 아니고요. 잠시 윤이 언니 생각을 했어요. 언니가 살았을 때 이런 근사한 커피숍에 함께 왔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하고요….” 말을 해 놓고 지혜는 문득 눈을 들어 창밖의 흰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바람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오 선교사는 지혜의 아리고 슬픈 감정을 존중하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게 말이지. 진작 우리 셋이 함께 올 걸 그랬구나. 하지만 지혜야, 윤이는 지금 천국의 더 멋지고 근사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거야.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곳이니까 말이지. 그러니 지혜도 안심해도 돼요.” 지혜를 격려하여 진정시키고 여전히 바쁜 일상의 일을 하면서도, 윤이를 잃은 오 선교사의 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오 선교사는 윤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윤이를 향한 구원계획이 있으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곧 이세상을 떠날 윤이를 굳이 중국에 보내신 것이다. 그것도 오 선교사가 살고 있는 도시로 유학을 오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윤이를 처음 본 순간, 오 선교사가 이상할 만큼 명료하게 윤이를 제자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이 오자, 오 선교사의 여린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낙심하고 힘들었던 마음에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젠 윤이의 죽음을 슬퍼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윤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윤이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윤이의 죽음을 통해 생각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자, 오 선교사의 기도가 바꿔지기 시작하였다.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이나 안타까움이 아닌 그리고 원망도 아닌,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순복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윤이에 대한 인간적인 정에 얽매어 있을 때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변화였다. 오 선교사의 기도는 힘있게 바뀌어 갔다. 오 선교사는 우선 성경을 펴서 시편 116편 15절을 읽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이 말씀을 굳게 잡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극한 슬픔을 이기는 방법으로 기도밖에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동안의 신앙 연륜과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기도 중에 찬송가 369장이 떠올랐다. 특히 2절의 가사가 큰 위로가 되었다.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오 선교사의 현재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한 ‘죄짐 맡은 우리 구주’를 부르고 또 부르며 기도에 매달렸다. 

“하나님 아버지,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시편 116편 15절에 약속하셨습니다. 윤이는 주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입니다. 이제 윤이를 데려가셨으니, 윤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윤이를 대신하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오 선교사가 간절히 드리는 기도소리를 듣고 있는 가족들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에서 윤이의 죽음을 대신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해 달라는 기도제목은 빠지지 않고 올려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슬픔을 딛고 난, 오 선교사 가족에게 끊임없는 기도생활은 한 줄기 소망의 빛이었다. 가을도 깊어 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준민 선교사와 오혜영 선교사는 그동안 선교지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언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 대학생들을 전도하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윤이가 죽은 후에 기도에 집중하던 두 선교사는 담대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선교사가 현지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생들이 종종 집으로 놀러오곤 하였다. 학생들은 그동안 배운 한국어 실력으로 “이 선생님 계십니까?”라고 인터폰을 통해서 인사를 하며 찾아왔다. 찾아오는 현지 학생들은 언제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이는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한 오 선교사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이 선교사가 한국어를 두 학기에 걸쳐 가르치는 동안 학생들은 이 선교사의 집에 여러 차례 오게 되었고, 오 선교사가 정성껏 만들어 주는 한국 음식에도 학생들은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사실 학생들은 음식보다도, 이 선교사 부부의 사랑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현지 학생들은 자기네 학교에 유학왔던 윤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한·중수교를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여서, 그 대학에 다른 한국 유학생들은 없었다. 이 때문에 윤이와 지혜는 이 대학 학생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윤이의 죽음 또한 현지 대학생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학생들이 찾아오면, 두 선교사는 전도할 때마다 윤이를 예를 들어 젊음이 영원하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각 사람에게 죽는 날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며 죽은 후에 가야 할 곳이 천국과 지옥으로 정해져 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윤이가 가서 쉬고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현지 학생들은 두 학기 동안 함께했던 한국 여학생이 갑자기 죽은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영원한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윤이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그동안 중국에 와서 사귀었던 중국 친구들에게 천국을 소개하고 있었던 셈이다. 

“너희들도 나처럼 빨리 예수님을 믿어. 언제 죽더라도 천국은 확보해 두어야지. 나를 좀 봐 청춘의 나이에도 죽잖아. 너희들도 언제 죽을지 몰라. 그러니 빨리 예수님을 믿어야 해.” 윤이는 그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지혜 또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윤이를 알고 있었던 많은 현지 학생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전도할 때마다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오 선교사는 비로소 윤이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매주 현지 학생들이 찾아왔다. 오 선교사 부부는 음식을 잘 대접하고, 전도를 하였다. 

성탄절이 되었다. 이준민 선교사는 학생들 20여 명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성탄절에 파티를 함께하자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음식과 케이크를 준비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예수님 생일인데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을 것 같지 않냐고 묻고서는, 누가복음을 그대로 영화로 만든 《예수전》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중국어로 더빙되어 있어서 현지 학생들이 더 실감 있게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예수전》을 본 뒤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지는 듯 하였다. 그리고 이 선교사와 오 선교사는 시간을 두고 학생들을 불러서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대부분 마음이 열려 있었다. 전도하는 대로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전도대상은 대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지성이와 지영이도 자신들의 중국 친구들을 전도하기에 열심을 내었다. 특히 지영이는 더욱 열심히 전도하기에 힘썼다. 지영이와 지성이는 자기 친구들을 전도하고 싶어서 매주 토요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지영이와 지성이는 이번 토요일은 서로 자기 친구들이 오는 것으로 맞추었다고 하면서 경쟁적으로 토요일에 각자 자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하였다. 그리고는 오 선교사에게 “엄마, 이번 토요일에 내 친구들 오니까 떡볶이랑 김밥이랑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주세요.” 어느덧 음식을 대접하며 전도하는 엄마 오 선교사의 전도방법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지성이와 지영이가 된 것이다. 

이처럼 윤이가 죽은 지 몇 달이 안 되어서 40여 명의 현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성도의 죽는 것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윤이의 죽음을 통해서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던 것이다. 의인이 된 윤이가 죽어서 천국으로 가면서 선교지에 전도의 불을 붙이고 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윤이의 죽음조차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에 출연한 것 같이 느껴지는 1년여의 세월이었다. 유학을 온 윤이를 만나고, 윤이를 전도하여 양육하다가 윤이가 발병하여 간단한 병인 줄 알고 치료를 받으러 한국으로 나갔지만, 위암 말기인 것을 알게 되어 한국에 나간 지 한 달 만에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게 된 모든 사실이 말이다. 그리고 윤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선교지의 부흥, 그 짧은 시간에 집중적인 일대일 개인전도를 통하여 40여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온 것은, 지금까지 전도사역에 열심을 내어 온 이 선교사나 오 선교사의 삶 속에서도 처음 있는 놀라운 일이었다. 오 선교사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누군가가 연출한 드라마 속에 출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 선교사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그동안의 모든 사건들은 실로 드라마같았다. 선교지에 처음 도착해서 아이들이 타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힘들었던 것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복음을 들어야할, 선교지의 영혼들을 복음으로 이끄셨던 것이다. 윤이는 그 하나님의 복음전파 계획에 소중하게 쓰임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구원을 받고 마지막 인생을 승리한 후, 그녀는 영원한 희망의 나라로 돌아갔다.  

초여름이 다가온 어느 날 오후, 모처럼 이준민 선교사 부부는 거실 한편에 놓인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이들은 놀러 나갔는지 집안에는 두 사람만 있는 한적한 시간이었다. 오 선교사가 녹차를 타 가지고 와서 앉았다. 이 선교사는 찻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혜영 선교사는 남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방금 부엌에서 녹차를 타면서 창문으로 내다보는데, 꼭 윤이처럼 생긴 여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순간 저는 착각했어요. 아…, 윤이가 성경공부를 하러 지금 오고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러자 이준민 선교사는 더 뜻밖의 말을 한다. “그래요. 맞아요. 윤이는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일 거예요.” 오 선교사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서 “아니, 윤이가 이곳을 향해서 오고 있다니, 당신 무슨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선교사는 조금도 웃지 않고 오히려 정색을 하였다. “여보, 윤이가 죽은 후 화장을 해서 윤이 남자 친구와 처음 데이트를 갔던 대천해수욕장 바닷물에 뿌렸다고 했잖아.” 오 선교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래요, 그게 뭐 어쨌는데요.” 이 선교사가 말했다. “우리나라 서해의 바닷물은 이 땅의 황하로 흘러들어 오거든, 그러니까 윤이는 바닷물을 따라 흘러 흘러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일 거라고, 틀림없이. 윤이가 여기서 예수님을 믿었잖아. 그러니까 자신의 영적 고향이며, 영의 엄마인 당신이 보고 싶어서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야.” 남편 이준민 선교사의 잔잔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말을 들으면서, 오 선교사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오 선교사의 커다란 눈에 반짝하고 눈물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뚝뚝 식탁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이 선교사가 손을 가만히 내밀어 아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오 선교사의 뇌리에 문득 ‘회귀(回歸)’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떠올랐다. 마음속에 파문이 일듯이 오 선교사의 마음에 소망의 빛이 일순 밝게 비췄다. 그래, 회귀다. 윤이가 서해 바닷물을 따라 이곳으로 회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으로 회귀하게 될, 하늘나라가 기다리고 있다. 오 선교사의 입가에 비로소 살포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아직도 눈물 젖은 눈 그대로 오 선교사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남편 이 선교사의 커다란 손에서 자신의 한 손을 빼내어 남편의 손을 맞잡고 속삭였다. “그래요, 당신 말대로 윤이가 이곳을 향해 회귀하고 있네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희망이 가득한, 의미 깊은 시선을 주고 받았다.   






사진 | 픽사베이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