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주님은 그 이름 마음에 새겼네, 세상이 주 이름 모른다 하기에, 오늘도 그 이름 열방에 새기리”
며칠 전 나를 눈물짓게 했던 찬양이다. 세상은 알아 주지 않는 나의 모습이지만 주님은 나의 이름을 그분의 마음에 새기셨다. 세상이 주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하기에 오늘도 나는 그분의 이름을 열방에 새기고자 한다.
생각하건대 내가 했던 중국 사역은 다른 한국인들이 했던 사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열심과 헌신으로 중국인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그들로 인해 속상해 하고 그들로 인해 즐거워했던 그런 사역, 이것은 모든 사역자들이 가진 공통점이 아닐까?
기타를 치며 중국인들과 찬양하고 기뻐하고, 함께 운동하며 땀 흘린 뒤, 성경암송을 체크하며 영혼의 불순물을 제거하던 그 시간들, 익숙하지 않은 중국어로 말씀을 준비하며, 청중보다도 내가 더 은혜를 받았던 것들, 형제자매들이 그들 부모님의 구원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그 모습들, 중국인훈련센터에 방문했을 때 뜨겁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그 열정, 현지 가정교회 지도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잤을 때 그 남편이 하루의 막노동을 마치고 들어와서 그 투박한 손으로 만져 주던 그 느낌, 낯선 소수민족 무슬림을 식당에서 만났을 때 그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금세 그들의 마음을 얻었던 중국 형제, 그런데 위에 말한 좋은 추억뿐만 아니라 힘들게 했던 일들도 많았다. 믿음이 좋은 형제로 잘 자란 줄 알았는데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듣지도 못한 자매를 결혼 상대자라며 데리고 왔던 그 형제, 급하다고 해서 2000위안을 빌려 주었는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어떤 형제, 젊은 나이에 가정교회 지도자가 되어 무척이나 교만해진 그 형제, 외국인이 가면 안 되는 지역에 가서 그 다음날 지역 파출소에서 조서를 써야 했던 씁쓸한 기억들.
이 모든 일을 되돌아 볼 때 나의 중국 사역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또 좋은 추억과 악몽 같은 일이 모두 섞여서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그나마 조금 덜 좌충우돌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이제 그 시간에 대해 정리하면서 몇 가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나기에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중국은 지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시진핑(习近平) 주석 체제 아래에서 그동안 계속되어온 집단 지도 체제는 사라지고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꿈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러 일으킨다. 그 꿈은 다음과 같은 역사관과 가치관을 배경으로 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로 중국의 역사는 제국주의로부터 치욕의 역사를 강요 받았다. 하지만 1950년 신중국이 건국된 이후 공산당의 지도 아래서 비록 실수는 있었지만 지금의 강력한 중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공산당이 없었다면 신중국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붉은 태양 중국이 강력한 초강대국으로서 평화롭게 굴기(崛起)하여 세계를 중화의 은택을 입는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모든 부패를 척결하고 중국 특색의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꿈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것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슬람에 대해서는 IS의 위험성을 부각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안전한 중국을 보장하기 위해 중국 안의 무슬림들을 탄압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12월 17일자 뉴시스는 “中 신장위구르에서 수만 명 실종… 공포의 경찰국가로 변모”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서는 지난 해부터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은 공포가 지배하는 경찰국가로 변모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사역을 하여야 할 것인가?
첫째, 주님의 때가 가까웠음을 기다리며 인내하며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인내하며 씨를 뿌린다는 것은 단기간에 갑자기 대량의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씨를 들고 다니다가 주님이 보여주시는 기회에 씨를 뿌리는 것이다. 씨를 뿌려도 싹이 잘 트지 않아도 계속 뿌리는 것이다. 이때 씨 뿌리는 사람이 선교사라면 이렇게 씨를 뿌리는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밥 먹을 씨앗들을 주는 사람들은 그 선교사를 파송한 혹은 후원하는 교회가 된다.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나 후원 교회나 모두 씨를 뿌리는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내하며 씨를 뿌리는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내하며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주님이 은혜를 주셔서 더 많고, 더 성숙한 중국인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다.
둘째, 나의 사역을 꽃 피우는 사역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역을 꽃 피우게 하여서 주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현지인들은 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안다. 어떤 선교사가 어떤 동기로 선교를 하는지 안다. 만일 어떤 한국선교사가 자신을 위해 사역을 한다면 그로부터 영향 받은 현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위해서 사역을 하게 된다. 중국인 그리스도인들은 안다. 어떤 한국선교사가 주님을 위해 사역을 한다면 그들도 주님을 위해 사역하는 사람이 된다.
셋째, 좋은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한다면 좋은 수단과 방법으로 일하라. 다시 말하면 좋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은 버리자.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이것은 좋은 목적이라고. 그런데 그들이 사용하는 수단과 방법은 진실과 거짓, 노력과 술수, 적당한 책임과 무책임으로 혼재되어 왔다.
중국선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다. 예전에 우리는 10억의 중국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선교했다. 참으로 거창한 숫자다. 그 숫자를 말하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벅찼다. 그런데 10억을 말할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우리는 10억이 아니라, 1억, 천만, 백만, 십만 혹은 만 명의 중국인들을 위해서 선교해야 한다. 그리고 이 1억, 천만, 백만, 십만 혹은 만 명의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선교의 대열에 나아가야 한다. 함께라면 누구와 함께인가? 동료 싱글 사역자와 함께, 남편과 함께, 아내와 함께, 다른 한국 사역자와 함께, 외국 사역자와 함께, 그리고 현지 사역자와 함께.
나보다 남을 더 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그들을 낫게 여기고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꿈을 통해서 주님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함께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면 우리가 세운 교회가 함께하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함께할 때 중국선교는 살아날 것이다. 함께할 때 우리는 중국인 형제들과 함께 세계선교에 이바지 할 것이다.
이제 함께하실 마음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중국선교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실 각오가 되셨습니까? 당신은 중국선교를 꽃 피울 각오를 한 것입니다.
좋은 목적뿐 아니라 좋은 방법을 도모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당신의 목적이 당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낮아지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김철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