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3  통권 183호     필자 : 김영철
[중국 영화]
《29+1》-행복의 선택 -

 


펑슈후이(彭秀慧, Kearen Pang)는 홍콩공연예술아카데미(香港演艺学院, HKAPA) 출신의 여성감독으로, 동명의 연극 《29+1》을 2005년부터 2013년까지 8년 동안 91회나 무대에 올려 연기, 시나리오, 감독 등 1인 다역을 소화해냈다. 《29+1》는 펑슈후이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2016년 10월 홍콩아시아영화제 폐막식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2017년 5월 11일 홍콩에서 상영되었다. 2017년 2월 미국 세도나(sedona)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극본상을, 5월 프랑스 니스(Nice)국제영화제에서 외국어 영화 최우수 감독상 등을 수상하였다.
 

영화는 여성의 시선으로 시나리오를 해석하고 연출하여 주목을 받았다. 29살 동갑내기 두 여성의 서로 다른 성격과 생활 이력을 소재로 삼았다. 책임감이 강한 ld린뤄쥔(林若君, 周秀娜 분)은 직장에서 승진은 하였지만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린다. 치매를 앓는 연로하신 아버지, 남자친구는 있지만 관계적으로 불안한 상황, 주변 친구들의 결혼은 점점 늘어만 간다. 황톈러(黄天乐, 郑欣宜 분)는 작은 음반가게에서 10년간 점원으로 있는데, 짝사랑은 해보았지만 제대로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고, 성격은 그녀의 이름을 반영하듯 낙천적이다. 그녀의 꿈은 아이돌 스타인 장궈롱의 영화 《붉게 노을 지는 파리(日落巴黎)》를 동경하여 파리 에펠탑을 보러 가는 것이다. 린뤄쥔은 집주인이 갑자기 아파트를 팔아서 오갈 데 없게 되자 잠시 파리로 여행을 떠난 황톈러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가 두고 간 자서전 같은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고, 황톈러와 심리적 교감을 나누면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한다.


인생의 계단

공자는 인생의 단계를 연령별로 나누고, 30세에 이립(而立)이라 했는데(《논어[论语]·위정[为政]》) 이는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확립하여 도덕, 경제, 가정, 사회에서 자립하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톈러는 사람은 30살에 누워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공자의 말을 비틀었다.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육체의 변화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인 압박감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황톈러는 30대에 접어들어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린뤄쥔은 버스에서 대학시절 남자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여자 나이 30살이 되면 급하강 곡선을 그린다고 조롱하며 은퇴준비를 위한 보험상품을 소개했다.
 

공자는 인생을 15살, 30살, 40살, 50살, 60살, 70살 등 10년 주기로 바라보았다. 린뤄쥔이 근무하는 회사 라 까사(La Casa) 여사장 일레인(Elaine, 金燕玲 분)은 토성이 태양을 회전하는 시간처럼 여자의 인생주기는 30년이라고 했다. 대개 사람들은 29살, 39살 49살 같은 인생의 교체기에 불안과 기대가 뒤엉킨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게 된다.
 

영화 속 두 여성처럼 29살은 30대로 접어드는 전환기이며 정신과 경력은 성숙단계에 이르지만 신체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고민과 위기감, 과거에 대한 미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되어 심리적인 방황을 겪는다.
 

여성의 인생에서 나이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여성의 나이를 타이틀로 한 중화권 영화들이 주목을받았다. 홍콩 쉬안화(许鞍华, Ann Hui) 감독의 《여인사십(女人四十, SUMMER SNOW)》(1994), 대만 유명 배우 장아이자(張艾嘉)가 감독한 《20 30 40》(2004) 등이다. 이들 영화는 여성이 미혼, 결혼, 청년, 중년, 노년 등 인생의 각 단계에서 직장과 가정을 오가면서 겪는 애환에 관심을 기울였다.
 

성공과 행복의 교차
영화 속 능력 있는 두 명의 직장 여성 린뤄쥔과 그의 사장 일레인은 일과 삶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일레인은 성적이 좋은 학생은 성적이 발표될 때 초조하고 불안해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오히려 자유롭다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는데 이것은 현대인의 초조함을 잘 대변해 준다. 초조와 불안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중에 하나는 선택에 관한 문제로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일이나 직업을 갖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존중을 받기 위해서 일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존중을 받기는 어렵다. 또한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 여성과 남성 등 문제로 대립과 갈등이 생긴다. 상사는 부하 직원의 일의 속도가 느리고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부하 직원은 상사에게 부하 직원이 자신보다 일을 잘 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트린다. 직장 여성들은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이 저평가를 받거나, 남성에 의존해야 일이 성사된다는 편견과 싸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인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은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관객에게 삶과 인생에 대해 부단히 질문을 던지고 사색하게 한다. 인생은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성공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가? 인생은 누구나 종착역이 있기에 매일 거꾸로 세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 속에 살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영화 속에서 우리가 인생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을 다시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린뤄쥔은 직장에서 일에 매진하여 얻게 된 성공보다 소중한 가족에 대한 상실의 아픔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린뤄쥔은 아버지가 길에서 쓰러져서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던 일, 아버지 손에 이끌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장난 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께 어디 가고 싶은지 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지만 평소 딸의 전화번호는 기억하여 수시로 전화를 걸어 집에 밥 먹으러 오라고 재촉할 때 직장인인 린뤄쥔는 귀찮았다. 직장에서 고군분투하여 얻은 승진은 그녀에게는 가족 상실의 고통을 배가시켜 줄뿐이었다.
 

기억과 선택
린뤄쥔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회사에 사직서를 내며 아픔을 겪으며 높은 곳에서 빈 허공을 내딛는 절망감에 빠졌다. 그녀는 과거의 모든 일은 자신의 손에서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린뤄쥔은 동갑내기 황톈러와 정신적 교류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고통과 상실은 결코 자신이 통제할 수 없고 단지 고난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황톈러는 어머니를 잃은 후에 무기력감에 빠져서 세상에서 온갖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황톈러는 살면서 힘들 때마다 하나, 둘, 셋을 세고서 입을 벌려 "히~"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인생을 단순하고 즐겁게 살아가자고 제안하며 고민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가 세상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황톈러는 어릴 때 놀던 오락실을 다시 찾고 구멍가게 할머니를 만나서 기쁘게 포옹하고, 예전에 다니던 맛집을 찾아 마냥 즐거워하였다. 친구 장한밍(张汉明, 蔡瀚亿 분)은 지금 다른 곳에서도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은 특별하다고 대답하였다.
 

황톈러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딸을 많이 걱정하였다. 그녀는 나이가 많고, 변변한 직업이 없고, 돈도 없고, 외모도 빼어난 편은 아니다. 황톈러는 자신이 돈을 많이 벌거나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세상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을 뿐이다.
 

황톈러는 세상에서 좌절을 겪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전적 일기를 써보기로 작정한다. 국어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던 일, 미술수업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던 일, 세뱃돈으로 장궈롱 앨범을 샀던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였다. 감사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는데 특효가 있다.
 

황톈러는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남학생을 처음 만났던 전철역에서 다시 만나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거북해하고 황톈러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구도 거절하였다. 황톈러는 전철 안에서 멀찌감치 서서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으면서 행복해 하였다. 여성인 황톈러에게 분명 억울하고 황당해 보이는 이 장면은 행복은 세상과 남에게 있지 않고, 자신의 시선에 달려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린뤄쥔이 17살 때 실연당할 때 위로해 주었던 남자친구는 과거 그녀와 함께 사러 갔던 음반을 버리고 상하이에 3주간 출장을 간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린뤄쥔은 세 번이나 친구의 결혼에 들러리를 섰다고 투덜대지만 남자친구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였다. 여행을 떠나자는 여자친구에게 남자친구는 여행보다는 그 돈으로 차를 바꾸는 게 낫다고 제안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전화한 여자친구에게 잠을 자는 게 낫다고 말했다. 남자친구가 출장을 간다고 해서 짐 정리를 도우러 온 린뤄쥔이 회사 일에 몰두하자 그는 화를 내며 핀잔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찾아오는 권태기, 공리적 가치관, 변심 등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린뤄쥔의 남자친구 양쯔하오(杨子豪, 杨尚斌 분) 와 대조되는 인물이 황톈러의 어린 시절 친구인 장한밍이다. 장한밍은 황톈러와 7세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인데 20여 년 동안 여전히 친구로 지내며, 황톈러의 몸을 상하게 하는 다이어트를 말리고, 황톈러의 어린 추억이 묻어있는 곳을 함께 다니고,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다 주며 기뻐하였다. 황톈러가 유방암 절제수술을 앞두고 고백 못하는 장한밍에게 연인이 되자고 말하였더니, 장한밍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건강 회복을 최우선으로 챙겼다. 물처럼 담백한 친구는 격정과 낭만은 부족하지만 좋은 연인의 자격을 갖추었다. 
  
황톈러는 자신의 오랜 꿈인 파리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10년 동안 일하던 음반가게의 주인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가게 주인은 그녀에게 떠날 수 있는 만큼 멀리 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황톈러에게 주인은, 떠나서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돌아오라는 말을 건넨다. 점원과 주인은 갑을관계가 아니라 가장 좋은 친구이며 피를 나눈 가족 같은 관계로 보였다.


다시 꿈꾸며

황톈러는 어릴 때 학교에서 아이돌 가수 팬 회장이 되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다시 적으라며 꾸중하셨다. 선생님은 간혹 학생에게 꿈이나 비전을 물어보지 않고 미래의 직업을 묻는다. 어린 세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올린 자막은 “매 단계 또한 0에서 시작된다.”이다. 이것은 영화를 관통하는 장궈롱의 노래 제목 《0에서 시작해요(由零開始)》와 일치한다. 장톈러가 키우는 두 마리의 거북이 이름은 매기(Maggie)와 체리(Cherie)인데, 영화 《붉게 노을 지는 파리(日落巴黎)》에서 장궈롱과 열연한 장만위(張曼玉)와 종추홍(鍾楚紅)의 극 중 이름이다. 영화에서 장궈롱에 대한 추억과 경의가 곳곳에 배어있다.
 

29는 20대의 마지막이지만 30대를 준비하는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29+1》이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0,12)라고 기도하였다. 우리 나이가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든 세상을 밝고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품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지?

 






 

사진 | 네이버 영화에서 캡처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김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