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3  통권 181호     필자 : 배다니엘
[고전을 통해 생각해보는 현대인의 삶]
“군자의 즐거움과 소인의 즐거움이 서로 다르나니”

이백(李白)의 행적을 찾아간 날은 날씨가 흐렸었다. 난징(南京)에서 버스로 마안산(马鞍山)에 도착한 뒤 택시를 타고 이백이 달을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채석기(采石矶)로 향했다. 택시기사 아줌마는 떼떼거리는 안휘성(安徽省) 사투리로 연신 말을 건네며 중앙선을 넘나드는 과속을 하고 있었다. 채석기공원에 들어가 노년의 마른 얼굴을 한 이백 동상이 있던 삼성각, 이백의 가묘인 의관총, 이백 기념관과 태백루, 달을 잡으려다 장강(长江)에 빠졌다는 착월대 바위 등을 두루 둘러보았다.
 

채석기 정상 착월대 바위에서 안개로 몸을 감싼 장강이 누런 물줄기를 품고 흘러가는 정경을 바라보던 그 순간, 벅찬 감격에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고1 때 영화 취권에서 성룡이 이백의 시를 읊던 모습에 반해 중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이백이 죽은 지 1,240년 만에 드디어 그가 만년에 시를 짓던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감격 때문이었다. 문득 택시에서 내릴 때 이처럼 흐린 날 뭐 볼 것 있다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느냐하면서 의아해하던 택시기사의 말이 생각나 빙그레 웃음을 지어보았다. 그 기사는 모른다. 20여 년 동안 내 마음속에 품어왔던 소중한 소망이 이 순간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감격을!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아쉬워들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속에서 기쁨과 감격 등의벅찬 감정이 어느새 사라지고 세상에 별다른 신기한 일도 없으며 삶의 흥미나 의욕도 무뎌간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전조증상이 계절의 변화를 크게 못 느끼고 자주 무언가를 잊어먹으며 무슨 일을 해도 즐거움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때로는 이 말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인들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 매일을 창조해나가는 지혜를 강조했건만 무엇으로 매일을 신선하게 채울지 막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일시의 가벼운 낙이 아니라 마음 깊은 즐거움을 얻고 싶은데.
 

사실 즐겁고 기쁜 중에는 바른 판단이나 사색할 틈이 별로 없다. 슬프고 우울한 환경 속에서 생각이 더 깊어지고 고독한 중에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 인간은 기쁨을 추구하며 살기 원하는 욕망과 속성을 지닌 존재이다.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중국 동진(东普)시대에 도연명(陶渊明)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힘들게 관직에 올랐지만 부당한 구속이 싫어 관직을 내던지고 낙향하여 술과 시로 여생을 즐겼다는 인물이다. 가난한 삶이라 몸소 농사에 임할 수밖에 없었고, 집이 불에 타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자식들도 공부를 게을리 해서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의 마음만은 항상 자아를 누리는 즐거움 속에 있었다고 한다.
 

《음주(饮酒)》 제5수 [도연명(陶渊明)]

结庐在人境(결려재인경) 사람들 사는 곳 속에 오두막 짓고 살아도
而无车马喧(이무거마훤) 마차의 시끄러운 소리 없다
问君何能尔(문군하능이) 어찌해서 그럴 수 있느냐 물어보면
心远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세속과 멀면 내 사는 곳도 절로 한적해진다 답한다
采菊东篱下(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见南山(유연견남산) 아스라이 남산을 바라본다
山气日夕佳(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해질 녘에 아름답고
飞鸟相与还(비조상여환) 나는 새는 서로 어울리며 돌아가누나
此中有真意(차중유진의) 이 삶을 누리는 중에 참된 즐거움이 있으니
欲辩已忘言(욕변이망언) 말로 표현하려 해도 이미 말을 잊은 경지로다
 

비록 세속과 절연하지 않았어도 내 마음이 청빈하니 한적함을 누릴 수 있고 평온한 심정으로 주변의 꽃과 새를 바라보는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 자신이 누리는 삶은 참된 즐거움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지극한 경지라 하였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진다.
 

맹자(孟子)는 부모가 살아있고 형제가 무탈한 것(父母俱存 兄弟无故),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것(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 천하의 인재를 얻어 교육을 시키는 것(得天下英才教育之)군자삼락(君子三乐)이라 하였다. 선인들이 말한 군자의 즐거움(君子之樂)을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좀 싱겁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 중요한 기준이 숨겨져 있음이 발견된다. 바로 청빈한 마음의 유지이타적인 삶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남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 의와 선을 행하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보았으니 나의 이득을 먼저 살피고 일시의 즐거움을 탐하는 낙(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정한 낙(乐)이라 하겠다.
 

사람들이 흔히 부패하는 삶에 빠지는 것은 그 속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쾌락 뒤에는 어김없이 허무와 후회가 밀려온다. 이와 반대로 참된 즐거움을 얻게 되면 형언할 수 없는 보람과 자신만의 긍지가 그득해져 오래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인간은 쉽게 재미에 빠져들고 부패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진정한 재미를 발견한 이에게는 부패가 들어갈 틈이 없는 법이다. 더구나 그 즐거움이 오랜 시간 노력해서 얻은 진실한 즐거움이거나 타인도 기쁘게 하는 즐거움이라면 그 얼마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것일까! 매 순간 진실한 즐거움을 창조하면서 나와 주변을 밝힐 수 있기를 염원해본다.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