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2  통권 178호     필자 : 왕빈
[기획]
중국교회에 건강한 신학과 실천 동력이 필요하다


신학이란 무엇일까? 많은 성도들은 “성경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신학이라니!”라면서 “신학은 높은 산과 같다”고 고백한다.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체계적인 진술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신학을 하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은 존재(경험)와 개념 사이에 논리적 다리를 놓고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결정적인 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건전한 신학에 대한 경시와 분별의 틀 상실에 따른 ‘거짓 복음’과 ‘왜곡된 신앙생활’의 만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세계교회가 중국교회의 성장세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중국교회가 올바른 신학을 통해 성도들을 양육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 ‘무너질 수밖에 없는 임시처소’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국기독교의 중대 과제 중 하나는 어떻게 신학을 하고 세상 속에서 ‘신학 됨’을 구현하는 일일 것이다.
 

중국 정부가 공인한 삼자교회의 신학은 국가와 사회, 가치관, 성경 등에 대해 ‘생각하는 교회’의 산물이다. 중국이라는 사회문화 환경과 조응해야 할 뿐 아니라 교회 안의 광대한 신도들의 사상과 감정, 삶 등 모든 상황을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일군의 신학자들은 삼자교회의 신학을 문화 변혁적 토착화신학, 정치적 토착화신학이자 ‘하나님의 선교’ 신학과 에큐메니칼 성격을 지닌 신학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진영에서는 공산당과 국가가 설정한 정치 입장에 충실하면서 현실에서 제기된 문제를 신학적으로 답하는 실천의 의미가 강하다고 평가한다. 기존 세계교회의 신학사상은 사회주의 정권과 당 노선을 위협하는 주장이자 삼자애국운동에 도전하는 요소로 간주된다.
 

이번 글에서는 삼자교회의 신학에 대한 보수적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삼자교회의 성경관을 알아보자. 삼자교회는 서양선교사들이 성경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교회를 세우는 것이나 인류 사회의 건설에 대해서는 중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성경 전체가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성경의 특정 부분이 특정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수 중국선교전문가들은 “삼자교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죄인을 구원하는 생명과 진리임을 부인하고 성경을 단지 사회주의 건설에 동참하도록 촉구하는 선전물로 전락시켰다”고 일갈한다.
 

둘째, 삼자교회 신학자들의 신론은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개를 펴나기보다는 사회주의통치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주재하심을 체험해 얻은 신에 대한 이해였다. 현실을 바탕으로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고 책임져 줌으로써 현실의 삶은 의미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끝까지 삶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주면서 현세를 긍정의 눈으로 보고 있다. 이것의 특징은 ‘하나님의 공의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며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어 이론적 제한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재자라는 것도 단지 모호한 언급만 되풀이할 뿐 어떻게, 어떤 이유에서 하나님이 역사의 주재자가 되었는지를 밝히지 않는다.
 

셋째, 기독론 사상은 우주적 그리스도, 성육신, 질고와 고난의 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논의를 회피하고 우주적 그리스도에서 신학사상의 해방을 추구한다. 그리스도가 우주를 주재, 총괄, 사랑하고 있다면서 그리스도는 우주역사 인간 사회와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스도를 성육신 된 존재로 간주한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 현실에서 인간과 인간이 이룩한 업적과 노력을 긍정하고 인간한테서 희망 요소를 발견하며 현실, 물질, 사회, 국가, 민족과 세계를 경시하거나 이탈하려는 관점들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즉 기존 전통 중국교회의 현세, 인간, 세계를 경시하는 경향과 이원론적 관점에서 제기한 신학의 문제들을 성육신으로 대답하고 있는 셈이다. 삼자교회의 토착화신학 권위자인 왕웨이판(汪维藩, 1927∼2015년)은 고난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이에 대해 질고와 고난의 주로서 그리스도론을 제시하였지만 고난을 정면으로 다루고 해석하기보다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질고와 고난을 짊어지시고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강조하는데 그쳤다. 따라서 삼자신학의 기독론은 현세에 대한 긍정이다. 형제 사랑을 만인 사랑으로 확대하고 예수의 형상이 신도들과 사회와 국가 인민을 위해 공헌하도록 고무시킨다.
 

넷째, 삼자교회 신학자들은 인간의 하나님 형상, 원죄, 인간의 본성, 비기독인의 도덕성 등을 중심으로 인간론을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타락, 죄, 기독인과 비기독인의 차이를 극소화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지녔으며 기독인이나 비기독인 모두 절대적 차이가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고 파악하지 않고, 다 같이 존중함으로써 사회주의 중국을 이룩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인간론을 좀 더 살펴보면 삼자교회는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손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는 중국 문화의 인성론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을 부인하는 것은 구원의 필요성을 배척하는 동시에 인본주의를 고양시키는 잘못된 사고이다. 삼자교회의 입장을 따르게 된다면 하나님은 단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섬기는 종에 불과하게 된다.
 

다섯째, 삼자교회 신학자들은 현세와 역사에 대한 이해, 성과 속의 문제, 창조와 구속의 관계, 천년왕국설 등을 중심으로 현세와 종말론을 전개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를 세속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로 분리시키고 세속의 역사를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배격한다. 인간의 역사란 통일체이며 오메가 포인트를 향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삼자교회의 종말론은 후천년설이다. 즉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그것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천되는 사회를 모색하는 것으로 성경 정신에 부합하므로 기독인들은 사회주의를 옹호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에도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중국선교전문가들은 결국 인본주의적 낙원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논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삼자교회 신학자이었던 딩광쉰(丁光训, 1915∼2012년)은 하나님의 사랑을 동력과 근원으로 한 ‘긴 창조의 역사’로 봤다. 종말과 관련해 중국기독교협회장이었던 선이판(沈以藩, 1928∼1994년)은 현세와 내세 사이에 일정한 연속이 있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이 종말을 실현하기 위해 태초와 태초이래의 역사과정을 모두 부정하고 현세를 파멸시킬 것에 대해선 의구심을 나타냈다. 현세와 역사에 대한 긍정의 견해와 역사의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생각은 통치의 현실과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하지만 사회주의 통치의 악을 간과하게 된다.
 

삼자교회 신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중국 특색의 신학을 만드는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군중운동을 통해 현세와 인간 본성의 문제, 신앙과 신령한 것을 토의해온 것이 1950년대 이래의 신학이었다면 1980년대부터는 믿음과 행위, 영성과 윤리, 역사의 종말과 현실의 역사 등을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90년대 들어 뤄관쫑(罗冠宗, 1920∼2011년)의 ‘신학사상과 사회주의 사회와 상호적응’, 한원짜오(韩文藻, 1923∼ )의 ‘신학사상의 활성화와 창조’로 발전됐고 삼자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딩광쉰문집(丁光训文集)’에 이르게 됐다. 이들은 한결같이 해외 기독교와 빈번한 교류, 해외 신학사상과 접촉을 통해 ‘중체서용(中体西用)’의 중국 특색의 신학이론을 주장했다. 특히 1998년 신학사상 건설운동을 공개 반대했던 난징(南京)금릉협화(金陵协和)신학원 지타이(季泰) 교수 등 삼자 안의 복음주의자들이 대거 축출됐고 ‘이신칭의(以信称义)’가 ‘이애청의(以爱称义)’로 바뀌는 등 신신학 흐름이 깊이 스며들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딩광쉰은 ‘하나님은 사랑이다’는 믿음과 중국사회주의 노선에 대한 신념은 같다고 역설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를 사랑하고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라는 논리다. 그는 “사회주의는 대규모의 사랑이며 사회제도를 위해 형성된 사랑이다. 다른 제도 하의 사회에서 고난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랑으로 통치하는 천국을 만들어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자고 했다. 복음주의권에서는 결국 이것은 정치신학적 의미의 사랑일 뿐 기독교의 사랑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논리가 확대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1998년에 발생한 창장(长江)유역 홍수로 인해 적잖은 인민해방군인들이 사망했다. 고귀한 희생자들이 어떻게 지옥으로 갈 수 있는가. 공자(孔子), 맹자(孟子), 인민해방군 모범 전사의 상징인 레이펑(雷锋) 등은 인민을 위해 살았는데 어떻게 지옥에 갈 수 있겠는가. 사랑으로 이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
 

반면 가정교회의 신학은 인간을 영·혼·육으로 나눈 뒤 어떤 것이 영에 속하고 어떤 것이 혼에 속하는지를 구분, 영으로 혼을 무찌르도록 주장하는 워치만니의 ‘삼원론적 인간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또 사역자와 성령 인도의 체험, 고전적 세대주의에 따른 말세론 등을 강조하는 가정교회는 학력 수준이 낮은 농촌의 노년층에 기반을 두었지만 1990년대 들어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도시가정교회가 늘어감에 따라 보다 건강한 신학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선교전문가들은 “가정교회가 신학의 한계성을 갖고 있지만 보수적이고 성경을 사랑하고 기도와 경건을 강조하는 등 복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긍정의 면이 많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가정교회의 건전한 신학 조성을 위해 한국교회의 보다 체계적인 지원과 함께 건강한 신학으로 무장한 목회자들을 양성하고 기존 사역자들의 재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중국 정부는 삼자교회 신학의 확립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에 부합되는 중국 특색의 기독교문화 건설을 주도하기를 바란다. 2005년 2월 22일 제7차 중국기독교 전국대표회의 제2차 회의에서 ‘신학사상 건설 공작을 진일보 개진하기 위한 구상’이라는 주제 토론을 통해 이 같은 점이 다시 강조됐다. 제7차 중국기독교 전국대표회의와 함께 제5차 전국기독교협회의 공동개최를 통해 ‘기독교 양회 출국 유학생과 진수생(进修生) 선출 파견 실시방법’을 상정, 통과시킨 것은 삼자교회가 학교의 운영과 외국 기존 교파를 중심으로 한 신학교류에 있어서의 한계를 성직자 혹은 신학생들의 해외유학과 진수과정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회의에서 매년 3분기 해외에 파견될 유학생들의 시험을 공고하고 베이징(北京)연경(燕京)신학원, 상하이(上海)화동(华东)신학원, 난징금릉협화신학원 등 전국 18개 주요 신학원과 각급 종교활동장소에 이를 공표할 것을 결의했다(현재 중국 정부가 공인한 신학원은 21개). 매년 삼자교회 이름으로 해외에서 신학을 공부할 유학생들이 선발됨으로써 과거 제도권 안에서 서구 정통 신학을 중심으로 한 학술교류가 금기시됐던 것을 삼자 스스로가 해외에서 배워옴으로써 삼자신학을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에 천명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중국교회의 바른 토착화, 건강한 목회 정착과 선교의 사명 고취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교회와 서로 교제하는 모습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바울과 초대교회 사역자들이 이방인 지역으로 가서 스스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장로를 안수 임명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그들의 사역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였던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또한 신학을 하나의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도구로 만들거나 이데올로기화한 것 역시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회개하며 중국에 바른 신학이 세워지고 성도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도록, 때로는 고민하며 기도하고 때로는 적극 도와야 할 것이다.






 

왕빈 | 중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