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1  통권 166호     필자 : 유관지
[발행인통신]
‘상전(桑田)시대’의 사고와 방법에 매어 있지 않나요?


이번 ‘발행인 통신’에서는 지난달에 중국어문선교회 제주 이전 감사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에 갔을 때 겪고, 느꼈던 것들을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엉뚱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중국교회니까요

감사예배는 월요일인 16일에 있었는데, 저는 하루 먼저 제주도에 가서, 모슬포에 있는 강병대교회(强兵台教会)의 주일예배 설교를 하였습니다. 강병대교회는 그곳에 있는 공군부대의 교회 이름인데, 50년 전에 제가 그 공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 작년에, 알고 있는 목사님이 그 교회의 군목으로 부임하셨기에 “부대에 들어가 볼 수 없을까요?”했더니, “가능합니다. 설교도 하세요.”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초에 모슬포에 육군제1훈련소가 만들어졌는데 그 훈련소의 이름이 강병대이어서, 훈련소의 교회를 지었을 때 이름이 저절로 강병대교회가 되었는데, 1950년대 후반에 공군에서 인수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 보니 근처에 있는 해병부대의 장병 십여 명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설교 시작부분에서 “육군이 세운 교회에서 공군과 해병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삼군협력이 가장 아름답게 이뤄지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합니다.” 했더니 장병들이 모두 웃더군요.  


문득, 마음속에 ‘중국에서 군선교가 가능해지고, 군목제도가 실시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허황된 일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중국공산당이 ‘당원들은 어떠한 종교도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공식화하고, 이를 강화하고 있는데 웬 엉뚱한 생각이냐고 하시겠지만, 중국의 교회에는 엉뚱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주도가 이렇게 중국선교의 ‘핵심기지’로 부상하여 선교전문단체가 제주도로 이전한 것도 분명 ‘엉뚱한 일’에 속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점심식사 후에 50년 전에 일하던 작전실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부대는 레이더로 영공을 감시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데, 암실인 작전실에는 레이더스코프들이 있어서 ‘관제경보병’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병들이 눈을 부릅뜨고 스코프를 지켜보면서 항적(航迹)이 포착되면 얼른 상황판 담당자에게 거리와 방위를 불러주고, 상황판 담당자는 그것을 상황판에 그리고, 그것을 보고 그 항적이 어떤 비행기인지 식별하는데, 이것이 50년 전에 제가 하던 일이었습니다.  


만일 무슨 비행기인지 알 수 없고 위험성이 있어 보이면, 전투비행단에 비상대기를 하고 있는 전투기가 출격하는데 그렇게 되면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붉은 등이 들어오고, 긴장이 작전실에 꽉 차는 일을 몇 번 겪었습니다. 작전실에 들어설 때, 레이더스코프 앞에 앉아있는 장병들을 대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50년 전의 나를 만나는 것이 될 것이어서 미리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레이더스코프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상황판도 없었고 근무자들도 몇 안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까 안내하는 분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고참 부사관이 제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지금은 달라졌다고, 이곳의 안테나가 항적을 포착하면 중앙부대로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그곳에서 다 조치를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항적을 식별하는 일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일을 컴퓨터가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컴퓨터의 영향력을 말하는 자리에서 “‘BC’는 ‘Before Computer'의 약자입니다.”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선교중국’의 ‘블루오션 시대’를 마음껏 열어가게 하옵소서
!

모슬포를 뒤로 하고 제주시로 향하면서 문득, ‘우리의 중국선교는 어떠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50년 전의 광경을 그리면서 작전실의 문을 열었는데, 우리는 200여 년 전, 로버트 모리손, 허드손 테일러를 생각하면서 중국선교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100여 년 전 박태로(朴泰鲁), 사병순(史秉淳), 김영훈(金英勋) 목사 시절의 중국선교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또는 30여 년 전인 1980년대 전후, 중국이 개방정책을 씀으로써 중국선교가 재개되었을 때의 흥분을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등등,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1980년대 전후의 흥분은 저도 체험했고, 기억하고 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흥분 때문에 중국선교가 동력을 얻고 활성화가 된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습니다.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라는 뜻으로,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선교중국’이라는 ‘벽해’ 속에 있는데 ‘중국선교’라는 ‘상전’ 시대의 사고와 방법에 매어 있지 않은지 같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주도는 ‘푸른 섬’입니다. 바다가 푸르고 산이 푸릅니다. 6월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늘도 푸르고, 그러다 보니 공기도 푸른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하고, 마음도 따라서 푸르러지는 것 같이 여겨질 때가 자주 있다고 합니다. 이는 중국어문선교회 스태프 한 분의 고백입니다.  


주여, 푸른 제주도에서 선교중국의 ‘벽해시대’, 요즘 말로 하면 ‘블루오션 시대’를 마음껏 열어가게 하옵소서!  


중국이 그런 곳이 되도록

중국어문선교회의 사무실이 제주대학 정문 앞에 있어서 그곳에 가서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제주대학 앞에서 내려 사면을 둘러보아도 호텔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서 난감한 얼굴로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다가와서 “선생님, 우산이 없으시죠? 제가 기숙사에 있는 친구에게 남는 우산 하나 가지고 내려오라고 전화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친절이어서 놀랐습니다. 사정을 말했더니 “여긴 호텔 같은 것이 없어요. 건너가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야 해요!” 알려주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말대로 건너가서 마침 도착한 버스의 운전기사에게 어디로 가는 것이 좋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운전기사는 웃는 얼굴로 시청 앞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에 따랐습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졌고, TV는 계속해서 내일 하루 종일 태풍과 맞먹는 바람이 불고 비가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전예배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날씨는 행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요. 부슬비 속에서 진행되는 프로야구경기에서는 홈런이 나와도 응원단의 함성이 별로 높지 않은 법입니다. 그런데 아침 일곱 시쯤 되니 비가 그쳤습니다. 숙소에서 나와 TV에서 본 일이 있는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다시 제주대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날이 아주 맑아졌습니다. ‘요즘은 일기예보가 틀리는 일이 별로 없는데, 웬 일이야? 여하튼 고맙네!’ 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어젯밤에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중국어문선교회, 참 좋은 곳으로 이전했습니다. 우리는 중국 사람들을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중국이 그런 곳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오늘 날씨를 도와주시는 것 같습니다.” 했습니다.  


‘중국과 통일’을 다루려고 합니다

지난호의 <책 속의 중국>에 소개한 책에 대해 “(그 글의 필자는) 비기독교적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폄하, 희화화, 박해하는 사람으로 아무리 중국과 관련이 있는 서적이라도 여기에 홍보함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오자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일부 바로 잡았음)”하는 의견을 댓글로 제시한 독자가 계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책 속의 중국> 필자와도 상의하였습니다. 원래는 이번호에도 그 책의 후속소개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이런 과정을 거쳐 후속소개를 취소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의논에 응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호에 이어서 이번호도 “내 다문화사역, 선교중국의 작은 씨앗”을 기획의 주제로 했습니다. 그리고 “통일세대 세우기”를 다룰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중국을 통한 통일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중국교회가 북한의 복음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고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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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중국어문선교회 고문,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