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  통권 61호     필자 : 왕쓰웨
[중국 사역 체험기]
도시 지식인 가정교회의 고민과 문제

 

중국 교회에서의 말씀강해 방법
외국인이 개척한 가정교회의 지도자인 쑹춘메이(宋春美), 리언광(李恩光) 두 자매로부터 그들 가정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상담하면서 그들 교회 역시 말씀사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들은 새 신자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말씀강해나 교회에서 다년간 봉사한 자들에 대한 전문교육은 담당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였다. 쑹 자매와 리 자매가 나의 로마서 강해 훈련과정에 참여한 것도 그들 자신이 성경강해 공부를 간절히 원하였기 때문만 아니라, 배우고 난 후 교회에서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따라서 나는 중국에서 성경을 강해할 때 특히 성경의 단권을 강해할 때, 본문의 석의와 말씀의 맥락을 분명히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이 말씀이 어떻게 목회사역에 접목될 수 있는지도 제시하면서 또 해당 성경말씀을 올바로 강해하는 방법과 교수(敎授)방법도 아울러 소개해야 했다. 그럴 때만이 말씀강해를 배우러 오는 교회 지도자들의 다양한 필요와 목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쑹 자매와 리 자매도 바로 이런 말씀강해를 듣고 배우길 원하였다.
 

설교보다 대화를
말씀사역을 마칠 무렵 지도자 훈련의 총 책임자인 루(盧) 형제는 나에게, 돌아오는 주일에 쑹 자매의 가정교회에서 설교를 해 달라는 부탁을 쑹 자매를 대신하여 부탁하였다. 나는 중국에서 사역할 때 특수한 경우와 상황이 아니면 일반 성도들이 참석하는 가정교회의 주일예배에서는 설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 성도들이 참석하는 가정교회는 비록 많은 성도들이 모임에 참석하나, 참석자 모두가 보안에 대한 의식이 있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강사가 설교한 사실이 부주의하게 입 밖으로 전달되면 교회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나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루 형제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였고, 만약 일반 성도들이 모이는 집회가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과의 대화나 좌담회 같은 것을 원한다면 승낙할 수 있다고 하였다. 루 형제는 내 말을 듣고 난 후 내심 기쁜 내색을 하면서 나를 신뢰하는 눈빛이었다. 루 형제는 저녁 식사 후 설교 대신 주일저녁 때 쑹 자매 가정교회 지도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하겠으니 참석하여 질의응답에 응해달라고 하였다. 

  로마서 집중과정은 금요일에 끝마쳤다. 토요일에 나는 쉬면서 루 형제 가정교회 계열의 지도자들과 식사와 대화 시간을 가졌고, 일요일 오전에는 루 형제 가정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였다. 루 형제의 15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예배드리러 왔던 사람은 무려 백여 명이나 되었다.

  주일 오후 루 형제의 안내로 자전거를 타고 어느 고급아파트에 도착하여 정문 옆에서 조금 기다리자니, 루 형제는 나에게 건너편에 있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면서 따라 가라고 하였다. 나는 그 사람을 따라 고급 아파트 속으로 간격이동을 하면서 들어갔고, 몇 분 후 앞서 갔던 그 사람은 내 쪽으로 얼굴을 한 번 돌린 후 어느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재빨리 들어가 4층쯤 올라가니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벨을 누르자 30대 후반의 남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쑹 자매와 리 자매가 “왕 선생님, 오셨습니까?”라면서 나를 기쁘게 맞아 주었다.
 

일방적인 정답제시보다는 토론으로 함께 답 찾기
그 아파트는 쑹 자매 가정교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장(張) 자매의 집이었다. 장 자매와 그의 남편은 각각 외국인 회사에서 중견 간부로 꽤 많은 급료를 받고 일하고 있으며, 이 아파트는 최근에 구입한 아파트라고 하였다. 실내장식이 매우 고급스러웠고, 응접실에는 일제 아이와(aiwa) 오디오 세트와 54인치 파나소닉(panasonic) 텔레비전, 그리고 가죽 소파도 갖추어져 있었다. 그 날 그 집에는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쑹 자매 가정교회의 지도자들이며, 대부분 30대 연령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며, 얼굴 표정도 매우 밝았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와 대화를 하면서 5시쯤에 식사를 시작하였고, 식사 후에 과일과 차를 들었다. 본론적인 대화는 식사가 끝난 후 비로소 진행되었다.

  그들은 나의 신분과 출신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내가 그저 북쪽에서 온 전도자 왕 선생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하면서 그들은 내가 중국의 현지인이 아니라 해외에서 온 화교라는 것을 눈치 챘음을 그들의 눈빛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나의 출신지와 신분을 다시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괜히 알아서 좋을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직업 등을 소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쑹 자매가 먼저 대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나는 먼저 5분 정도 그들을 격려하는 말을 한 후 이제 자유롭게 대화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은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보다는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신학이란 무엇이며, 신학공부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천주교의 제2바티칸 공회의 주요 결정사항은 무엇이며, 영향성과 의미는 무엇인지? 직업의 신학적 의미는 무엇이며, 직업을 갖고 사역해야 하는지 아니면 직업을 포기하고 사역에만 집중해야 하는지? 기독교인은 복음전도의 책임이 있지만 사회문제를 담당해야 할 책임도 있지 않은지? 기독교인은 사회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공헌해야 하는지 등을 질문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 듣기’를 원하는 그들에게 나는 그들이 듣고자 원하는 ‘나의 대답’을 먼저 제시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사실 그들 대부분이 대학 교육을 받은 엘리트이므로 소위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들을 존중하면서 해답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일반적인 질문 말고도 그들은 교회의 다양한 목양의 문제까지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도시 가정교회의 목회상담의 제 문제
신도들에게까지도 일반화된 임신중절 수술 문제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 지, 결혼 전 이성과 이미 동거하고 있는 자매와 형제에 대해 어떻게 권고해야 하며, 이혼상담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특히 불신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당하는 자매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외국인과 자매가 교회를 지도하고 이끄는 일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신도들도 있는데, 이 문제가 최근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고 하였다. 일부 신도들은 중국인이 이끌어도 별 무리가 없는 교회인데 왜 지속적으로 교회의 최고 결정권이 외국인 설립자에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인을 축출하자는 소리도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한편 자매가 교회의 모든 행정과 사역과 모임들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형제들이 교회로 들어와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교회 내에는 자매를 대신해서 교회 사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헌신된 형제 사역자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 쪽 자리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쑹 자매는 나에게 “왕 선생님, 우리 세포소조(細胞小組) 교회는 어떻게 해야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심각하게 질문을 하였다. 순간 모든 사람이 숙연해졌다. 쑹 자매는 그들의 세포소조의 교회가 친교, 찬양과 기초적인 양육 위주의 교회이기에 기존 가정교회나 삼자교회와 비교할 때 장점도 많이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을 할 수 없다고 한탄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나 심지어 최고 결정권을 갖고 있는 외국인 지도자들도 이미 지도력의 한계에 와 있다고 하였다. 쑹 자매는 솔직하게 외국인들은 그들의 교회에 대해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발전을 원하지 않으며, 교회의 발전을 위한 집회 내용의 변화와 다른 가정교회와의 교류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쑹 자매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몇몇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찬성의 뜻을 나타내었다. 순간 나는 이 모임이 잘못하면 외국인 설립자에 대한 성토대회 내지는 비판모임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하여 대화의 방향을 잘 이끌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절대로 나의 위치와 자리를 벗어나는 발언과 처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단지 지도자 훈련 강사이며, 초대받은 선생일 뿐이기에 현지 교회에 대한 정면적인 비판이나 비판에 대한 무분별한 동조를 해서도 안 되는 입장이었다. 쑹 자매는 그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토론하고 난 후 다시 외국인 설립자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였다. 문제는 직시하지만 은혜는 잊지 않는 그의 인격과 말솜씨에 감명을 받았다.
 

사도행전 2장의 교회론과 성령론
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해 그들과 함께 답의 실마리를 찾아 나갔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나의 견해를 분명하게 피력하기도 하였다. 또 쑹 자매와 다른 지도자들이 제시한 교회의 목양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도행전 제2장을 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사도행전 2장은 교회의 탄생과 형성 그리고 내용에 대해 잘 말씀해 주고 있다. 만약 그들이 사도행전 2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회론의 말씀을 깨닫고 숙지하여 교회 목양에 적용한다면 그들이 제기한 많은 의문점도 풀릴 것이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나는 사도행전을 열심히 강해하였으며, 그들도 열심히 듣고 필기하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 나는 ‘교회에 있어 성령의 주체성과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하였다.

  11시가 다 되었는데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는 11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면서, 내일은 월요일이며 나를 제외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직장으로 출근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말을 재빨리 끝맺고 우리 자신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자고 제의하였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 같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의 기도소리는 작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간절했다.

  내가 그 고급 아파트를 떠난 시간은 11시 반이었다. 그들은 선생인 나를 배려해 나를 먼저 보냈고, 나는 길 안내를 하겠다는 주(朱) 형제와 함께 집을 나섰다. 주 형제는 아파트 정문 건너편에서,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루 형제를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을 곁눈질하면서 수차례 확인하였고, 마지막으로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다시 한 번 나의 눈과 더 마주치고는 곧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조금은 서운해 하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을 보낸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만 힘차게 내딛는 그의 발걸음 소리도 말이다.


왕쓰웨|  목사·중국복음선교회 중국선교사훈련원 교무처장·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