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을 택한 까닭은
아무개 목사는 꽤 실력 있다고 알려진 선교사로 벌써 7~8년째 중국선교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일정한 지역 여기저기에 교회와 선교 목적의 사업체, 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면서 국내에도 많은 후원자와 후원교회를 확보하고 있다. 언젠가 이 분과 동행하여 중국의 어느 공항에 내렸는데, 커다란 석유난로를 비롯해서 짐이 적지 않았다. 통관이 오래 걸릴 것이고, 자칫하면 관세를 요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찍이서 공항 직원 한 사람이 대열에까지 다가와서 아무개 목사와 반갑게 악수를 한다. 그러더니 결국 일행을 인도해내서 가장 먼저 입국심사를 마치게 해 준다. 과연 아무개 목사의 실력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다음 순간은 더 놀라웠다. 짐들이 컨베이어를 타고 나오자 모두들 X-ray 검색대를 통과시키면서 세관검사를 받는데, 조금 전에 다가왔던 직원은 우리 일행의 짐 모두를 검사없이 통과하라며 검색대 옆으로 이끈다. 커다란 석유난로 2대를 비롯한 덩치 큰 화물들이 ‘세관검사면제’로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 채 5분이 안 걸렸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와보니, 그 공항 직원은 업무용 차를 몰고 따라와서 우리 뒤에 서 있었다. 나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아무개 목사는 여전히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커다란 석유난로 1개는 그 직원 몫이었다. 일이 여기까지 이르자, 아주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도 그 기분을 뭐라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얼굴이 굳어진 것은 확실하다. 그 목사님이 ‘쉬운 길’을 택한 것이 씁쓸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선물과 뇌물과 향응으로 ‘칭커(請客: 접대)’ 하면서 권력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중국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덕에 호텔에 들면 남보다 싼 요금을 내고, 관용버스를 빌려서 선교지 방문자들을 편리하게 안내하고, 공안당국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피하는 등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물론, 이 선교사가 성경의 말한 바 ‘공의’와 ‘사랑’ 에 대해서 모를 리 없다. 필자는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쉬운 길’ 을 택하는 데는 일정한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국의 종교관계 악법들이다. 외국인의 선교를 금지하고, 서로간의 전도를 금하고, 주일학교를 통한 미성년자 전도를 금하고, 교회 설립을 자유롭지 않게 하는 등의 종교법은 분명 악법이다. 따라서 한국 선교사들은 그 신분에서부터 ‘위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을 어기지 않고서는 선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국사회 자체가 ‘법치’ 혹은 ‘민주적 사회질서’ 에 관한 한 현저히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 포괄적이기는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는 오늘날 사실상의 자본주의 사회를 꾸려가는 중국 인민들이 그 자본주의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질서를 알지 못한 채, 이기적인 본능만이 작용한다는 총체적인 불일치가 자리잡고 있다. 절대권력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시민사회’ 가 부재하고, 언론은 부패한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태에서 정책결정은 항상 밀실에서 행해질 것이고, 인민들의 본능은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그 정책을 넘어설 대안을 찾아 헤맨다. 이 점에서 선교사도 홀로 신사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셋째는 부정부패를 용인 혹은 조장하는 조치들이다. 중국 정부는 “각 단위는 스스로 운영비를 마련하라.”는 지침을 만들었고, 따라서 공공기관이 영리사업을 하게 되었다. 공안국이 호텔을 운영하기도 하고, 관용차를 돈을 받고 기사와 함께 빌려주기도 한다. 이 차량에 관광객이 타고 있더라도 관용차인지라 검문도 무사통과, 법규를 어겨도 별 탈이 없고 관광이 금지된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있다. 각 언론사는 더 이상 국가로부터 운영비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보도 통제는 여전하다. 이들도 ‘스스로 살아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서 기사인지 광고인지 모를 지면을 만든다. 경찰에게, 공무원에게, 언론인에게 스스로 운영비를 마련하라고 하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돈으로 바꿀 궁리를 하게 마련인데, 그 일을 국가가 장려한 것이다. 이는 누가 봐도 불합리하며, 중국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부패사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선고 후 즉시 처형하는 ‘지나친 처벌’ 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현실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중국사회를 불투명하고 불합리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들이 존재한다. 현지 언어와 정서에 능통하지 못한 선교사들이 현지인의 관행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고, 그 관행은 잘못하면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부정부패의 고리들인 것이다.

“워웨이런민”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을 흔히 ‘꽌시(關係)’ 와 ‘칭커’ 사회라고들 말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법이나 원칙보다는 “거기서 일하는 아무개를 아는가? 그와의 관계가 좋은가?” 를 먼저 묻는다. 이 명제에 긍정적 답이 나오면 법이나 원칙이 금하고 있는 일도 건너뛸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꽌시’란 ‘법’, ‘원칙’, ‘합리성’의 반대말로 쓰이고 있다. 그 결과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부정부패가 결국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거니와, 중국도 역시 다리가 무너지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등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꽌시’가 좀 다르게 작용하는 예도 볼 수 있었다. 중국 교포인 김아무개 씨는 한국인 (선교)기업의 직원이다. 열린 사고를 가진 ‘덩샤오핑(鄧小平) 공산당원’인 그는, 젊은 시절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했던 사람이다. 나이든 뒤에도 한때의 혁명가로서의 열심과 성실성이 남아있다. 그는 가끔 옛동지들을 데려다가 회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이들이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처럼 건네는 말이 “워웨이런민(我爲人民: 나는 인민을 위한다).”이었다. 이런 인사를 건네면서 그들은 성실하게 일했고 저렴한 비용만을 청구했다. 때로는 꽌시와 칭커가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을 두고 정리해 보건대, 관시는 부정적 영향이 크면서, 간혹 긍정적으로도 ‘법과 원칙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었다. 

우리는 중국 사회에 복음을 전하려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복음은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영혼들을 거듭나게 함으로써 그 삶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해적을 신사로 바꾸었고, 우상숭배자와 불신자들을 건전한 신앙인으로 만들었고, 범죄자를 성직자로, 침략자를 보호자로, 자린고비를 자선사업가로 변화시켰다. 삶의 변화는 결국 문화의 변화로 꽃을 피웠다. 이렇게 ‘문화’가 변화된 사회는 때때로 법과 상식을 넘어서 사람을 사랑하고 보호한다. 누구나 아는바와 같이, 복음은 선교사의 선포와 삶을 통해서 전해진다. “워웨이런민”을 외치는 중국인들은 비록 선교사가 고용한 일꾼이 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선교사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선교사의 지시를 이행하면서, 그에게서 과연 중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덩샤오핑의 공산주의보다 나은 ‘신령함’을 느낄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해 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입술로 선포한 내용도 그 삶에서 체현되는 순간에 비로소 사실로 인정하는 치밀함이 그들에게 있다. 중국사회에서 귀에 듣기 좋은 말이란 너무나 흔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런 마당에, 선교사가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여 ‘공의’ 와 ‘사랑’ 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고, 여느 중국인들처럼 꽌시와 칭커, 그리고 뇌물로 쉬운 해결만을 추구한다면, 현지인들에게 존경받기 힘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도 실패할 것이다. 

B시에서 활동하는 김아무개 목사는 이런면에서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그는 중국인들이, 허술한 상대방에게는 허술하지만, 논리정연한 설득과 철저히 순서를 지켜서 행하는 일에는 관대하고 협조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워웨이런민’의 씨앗(주인이 창조시에 인류 모두에게 부어주신 일반은총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이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다고 할까? 그는 커다란 농업회사를 경영하면서 각종 인허가 문제, 용도변경 문제, 건축문제, 직원고용 문제 등 돈만 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공의’에 입각한 해결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하나하나 성공할 수 있었다. 한번은 실수로 개발제한지역의 삼림을 훼손한 일이 있었는데, 중국 임업국에서 과도한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그는 임업국을 찾아가 그렇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원상복구를 약속하며 해결을 시도했다. 그 결과 과도한 벌금은 1/20로 줄었고, 임업국 관리는 그의 친구가 되어 차후의 일에 대해서는 미리 자문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때에도 항상 현지인 직원들은 운전사로, 통역으로 함께 하면서 그를 관찰한다. 그리고 직원 한 사람에게서 결국 진정한 신앙고백이 나온다.

사랑과 공의의 복음 
혹시 이 글이 “중국법을 잘 지키자”는 준법정신을 설파하는 것으로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 필자는 본 주제와 관련하여, 중국선교의 일면을 “실정법을 초월하여 그보다 더 큰 사랑과 공의를 전하는 일”로 정의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교사는 그 신분에서부터 실정법을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교수로, 학생으로, 사업가로 들어갔을 때 중국 관리들이 선교사에게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발견하면, 이후 그의 진짜 신분이 밝혀져도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특유의 ‘꽌시’시스템이 순기능을 하는 셈이다. 계속해서 종교법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더 큰 주권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은 세상 위정자의 권위와 비교할 수 없이 크므로 우리는 그 법을 넘어가되, 거기에 매여있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온갖 지혜를 총동원해야 하며, 그러한 노력이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받을 때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한편, 여러 가지로 곤고한 처지에 놓여있는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질서에 대해서는 그들의 법보다 더 온전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법을 소개할 수 있는 정도의 ‘험한 길’을 제시하고 싶다. 혹시 건축업자인 성도가 부정한 돈을 헌금한다면 그것을 거부하고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이 뇌물과 향응에 의한 쉬운 해결을 제안한다면 뿌리치고, 불편하지만 공의로운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 스스로 특권을 누리는 것이 법적인 하자가 없더라도 주님의 공의를 거스린다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모범은 결국 “성서중국”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사회 전반에 공의와 정의가 흐르고 그 기원이 주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 드러날 때, 주님이 중국인에게 주신 ‘일반은총’은 빛을 발할 것이며, 하나님을 대항하여 높아진 사상들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편만하게 될 것이다. 이 때에는 우리가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악법들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중국선교에 임하는 사역자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총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전하게 선포할 각오로 기도하기 바란다. “복음의 후진국이니까 먼저 어떻게든 설교할 환경을 만들고 보자”는 적당한(?) 각오로 일반 사업가들과 다름없는 생각을 한다면 지금의 선교에 실패할뿐더러, 앞으로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힘을 제한하려는 반쪽짜리 선교이며, 후배 선교사들에게도 동일한 고통을 지우는 제자리 걸음이 되고 만다. 현장에서 애쓰는 헌신된 선교사님들에게 입술로만 과도하게 짐 지우는 듯 하여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성령과 말씀께서 이르시는 바를 거역할 수 없음을 밝히며, 모든 중국 선교사님들을 축복한다. 

 윤빅또르/ 前 중국 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