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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원로이신 큰아버지 방지일(方之日) 목사님 덕분에 나는 믿음의 가문에 속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동시에 그분이 중국선교를 하셨기 때문에 ‘나도 어서 선교사가 되어야 하나’ 하는 은근한 부담을 갖기도 한다. 아마 그래서 이렇게 원고청탁을 받게 된 것 같고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실 나는 2세대 선교사라는 범주에 들어갈 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 범주를 조금 넓게 잡아본다면 포함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흔쾌히 글을 썼다.
가문의 영광
우리 집안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초기 기독교 집안이다. 증조할아버지 되시는 방만준(方萬俊)이 우리 할아버지 방효천이 태어나던 해인 1898년에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를 받은 증조할아버지는 참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 성씨 촌인 그 마을에서는 예수 믿는 것을 대놓고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증조할아버지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처럼 자기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경작할 땅을 찾았는데 그에게 주어진 땅은 거의 경작이 불가능한 아주 몹쓸 땅이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신앙생활을 하듯 그 땅을 지극 정성을 다해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시며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참으로 많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힘겨운 일은 신앙의 핍박이었다. 그의 신앙을 못마땅하게 여긴 주변 사람들이 그의 집에 불을 질렀지만, 불은 맥없이 꺼져버렸다고 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불에 타지 않아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그 증조할아버지께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맏아들 방효원과 셋째 아들 방효정은 목사가 되었고 사위 홍승한 역시 목사이다. 방효원 목사와 홍승한 목사는 한국교회가 최초로 중국에 파송한 선교사가 되었다. 자손들 중에는 목사가 20명이 있고 선교사가 7명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그의 손자이며 방효원 목사의 맏아들인 방지일 목사이다. 그분은 1911년생으로 올해 101세이다. 일찍이 평양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전도사로 목회사역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목회를 하던 중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을 입고 아버지 방효원 목사의 대를 이어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20년간의 중국선교는 한국의 선교역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의 공산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영등포교회에서 목회사역과 총회장을 역임하시며, 교계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더욱이 70세에 은퇴한 이후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월요일마다 목회자들과 함께하는 성경 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계신다. 그 기간은 실로 기네스북에도 오를만한 것이다. 큰아버지께서는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는 신념으로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말씀을 전하고 계신다.
그의 신앙의 뿌리는 방만준 할아버지의 믿음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선교사였던 아버지가 집을 종종 비우셨기에,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할아버지의 신앙을 보고 배우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손자에게 말로 신앙생활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일상의 경건한 모습은 손자에게 좋은 신앙의 거울이 되었다. 그의 신앙은 먼저 아들에게 계승(繼承)되어서 최초의 중국선교사가 되었고 또한 손자에게도 이어져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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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를 안은 방지일 목사님 - 나이차 95세 정도(사진출처 | 방지일 목사님 홈페이지) |
필자는 방만준 할아버지의 넷째 아들 방효천 할아버지의 손자다. 방효천 할아버지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에 둘째인 방문일 아버지의 맏아들이다.
모태신앙의 축복
필자가 태어나보니 우리 가족은 다 예수를 믿고 있었다. 소위 모태신앙인 것이었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으므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주일마다 교회에 가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당연한 듯 살았지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수련회를 통해서였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였지만 그것은 믿음의 가정에서 내려오는 종교적인 전통 때문이었다. 수련회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대속해주셨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새롭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모태신앙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매주일 교회에 가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보면서 불쌍한 생각이 들곤 했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은근히 자부심을 느꼈었다. 그러나 청년시기에 접어들면서 모태신앙에 대한 회의가 생겼다. 그 당시, 세상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감동이 되었고 그런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기조차 했다. 나는 그런 생활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만 그런 급격한 감동적인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모태신앙인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도 세상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삶의 전환을 경험했던 분들의 신앙을 존경함과 동시에 내가 모태신앙인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 온 가족이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겠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고, 일찍 주님을 만나는 체험도 했고, 청년시절 헌신하는 삶을 결단하기도 했지만, 목사가 되거나 선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좋은 직장이 주어져서 자연스럽게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시절에 신앙훈련을 통하여 받았던 감동은, 어떤 모습으로든 아름다운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게했다. 그 작은 다짐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6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목사로서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 특별한 직장인의 경험으로 신고식을 미리 한 셈이다. 국가기관인 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그리 힘겹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소명 받은 직장인 사역자로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어떻게 신앙적인 갈등을 풀어가야 하는지 등이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교회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못한 채 혼자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견디어 온 것 같다.
직장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신앙인인 것이 드러났으며, 대단하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 직장생활을 한 것 같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직장 내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양육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엔지니어로서 은사가 있었다면, 그대로 그 직장에 다니면서 직장인사역자로서도 소중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직장에서 하는 일에 기쁨이 사라지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쪽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신학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주변에서 목사가 되려면 애초에 신학대학을 가지 왜 공과대학에 들어오고 엔지니어가 되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질문에 나는 애초에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실제로 직장생활의 경험은 목회사역을 하는데 아주 좋은 준비가 되었다. 이 경험은 후에 전문적인 직장사역을 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직장인으로 하여금 춤추게 하라
미국에 있는 리폼드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후에 조금 더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서,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며 가르치는 사역에 헌신하기로 했다. 두란노 서원에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면서, 한국교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영역에서 준비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공부한 것을 나누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내게 생각지도 않았던 방법으로 기독교 기업인 이랜드에서 사목으로 섬길 기회를 주셨다. 기독교 기업이기는 하지만, 다시 직장이라는 환경에 들어가면서 직장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1991년에 직장사역연구소를 열면서 직장사역에 대한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들이 신앙인이기 때문에 부딪히게 되고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들을 알았다.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간과할 수가 없었다. 바쁘고 힘든 직장인들에게 말씀의 따뜻한 위로로 힘을 주어야함을 알았다. 직장생활의 선(先)경험을 바탕으로 말씀을 연구하며 기도했다. 먼저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직장 속에서 사역했던 경험을 생각해보니, 주님께 헌신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주어진 일터에서 얼마든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나누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직장사역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는 확고부동한 크리스천이지만 직장 속에서는 신앙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들이 일터에서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결국에는 직장 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비교적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조차도 교회 안에서는 헌신된 삶을 살면서도 직장에서는 그렇게 적극적인 신앙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서 평신도사역자로서 일터에서 선교사적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직장사역의 비전이다.
아직 한국교회 내에 직장인 사역을 이해하고 동역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특히 지역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의 직장사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목회자들의 관심사는 지역교회 내부로 향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의 삶을 통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의 직장사역은 목회자들의 의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많이 진행하고 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장래 목회자들에게 직장사역의 비전을 가르치고 있다. 성도들이 일터에서도 신앙을 드러내고 진정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그곳을 선교의 현장으로 삼도록 목회자들이 돕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직장을 선교의 현장으로 삼도록 도와야 한다.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 신앙이 직장생활의 원동력이 되어, 동료들과의 관계의 폭이 더 넓혀지고 깊어져 춤추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사역은 교회나 목회자와 무관한 사역이 아니라 교회의 확장이며 목회의 확장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직장사역연구소에서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성경적인 직업관을 소개하고,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직장 속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말씀을 연구하여 직장 내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역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을 공급하고 있다. 자매 기관인 직장사역훈련센터에서는 여러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생들에게 직장사역에 관련된 훈련을 시키고, 지역교회에서는 ‘소명 아카데미’를 통해서 성도들을 직장사역자로 훈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연구사역과 훈련사역 모두 아직은 미약하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한국교회 안에서 직장사역이 자리 잡게 하는 시작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랜드사역
이랜드는 30여 년 전에 작은 가게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지금은 국내의 대표적인 기독교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랜드 회장 박성수 형제와는 대학시절부터 함께 동역했던 영적인 친구이다. 그래서 이랜드 내에서 사목으로, 영적인 자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 기업은 생산의 이윤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업에 사용하기 때문에도 귀하지만 그 이전에 기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경영하는 일 자체가 귀한 일이다.
이랜드가 흠 없이 완전한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있는 많은 크리스천 기업인들에게 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이랜드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업을 경영하려고 할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세상 속의 일터에서 일하는 흩어져있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더 풍성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만 시간과 힘을 사용하도록 하지 말고 세상 속에서 성도들이 그들의 삶과 하는 일을 통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가르쳤으면 좋겠다.
선교적 목회를 꿈꾸다
가르치는 사역이나 직장사역 역시 내게 맡겨주신 사역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나님은 또 다시 비전을 보여주시며 교회사역으로 인도하셨다. 이미 섬기고 있는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교회 사역을 담당하기는 어려웠는데, 가정교회에 관한 그림을 보여주셔서 뒤늦게 교회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예배당이 없이도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에 착안하여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가 시작되었다. 직장사역이 흩어진 교회를 위한 사역이라면, 전통적인 교회사역은 모인 교회를 위한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작은 교회이기는 하지만 목회를 하면서 직장사역과는 또 다른 경험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목회사역의 현장인 가정교회는 교회개척이 쉽지 않은 선교지에 적합한 교회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목회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규모는 작지만 친밀한 가정교회가 많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더욱이 선교를 꿈꾸는 사람들, 특히 전통적인 교회개척이 어려운 국가에서는 가정교회 형태로 모임을 갖는 것이 안전하고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선교지로 파송받기 전에 가정교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연구하며 준비하는 것도 좋다. 미국의 몇몇 가정교회 공동체들은 단순히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를 위한 준비로서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교회에서도 선교를 위해서 이와 같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오래전부터 선교사역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았다. 선교지 방문도 해보고, 선교사들의 간증도 들었지만 선교비전은 내게서 멀게만 느껴졌다. 선교사역에 가까이 접해보면 볼수록 선교사역은 나와 관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문화적인 차이, 특히 음식과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선교에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더 들어버린 지금, 조금씩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가지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그 방향을 인도하셨다.
첫째는 안식년에 랑스어를 배우는 기회를 가지면서 새로운 지역에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저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는데, 그곳에서 한 해를 보내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와 불어를 사용하는 불어권 아프리카 나라들에 대한 선교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가장 오랜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가장 이교적인 나라가 되어버린 프랑스,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불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불어권 아프리카가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물론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고 있다.
둘째는 중국에 가서 중국인 크리스천들에게 직업의 소명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새로운 선교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아직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의 기본이지만, 이미 믿는 크리스천들이 세상 속에서 영향을 미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선교사역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의 젊은 크리스천들과 직장사역의 비전을 나누면서 지금 중국을 위해서는 이런 사역도 중요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이 직장에서 일하면서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갈 수만 있다면 이제 ‘중국선교’가 ‘선교중국’으로 나아가는데 더욱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비전만 갖게 된다면 우리는 엄청난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비즈니스 선교이다. 직장사역을 해오면서 직장인들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비즈니스 선교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선교는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런 전통적인 선교를 하기 어려운 지역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것은 직장사역과 뿌리를 같이 하기 때문에 직장사역의 연장으로 비즈니스 선교 즉 BAM(Business As Mission)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서 말했던 아프리카 불어권이나 무슬림 지역, 그리고 중국 같은 곳에는 BAM을 통해서 선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비록 내가 비즈니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교회에 비즈니스 선교가 자리 잡는 일에 헌신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선교 - 계승(繼承)사역
교육학 학위를 받았지만 신학교에서 가르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직장사역에 관해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그래서 여러 신학교에서 직장사역에 관해 가르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과목이지만 신학생들에게 직업과 직장사역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2005년부터 합동신학교에서 교수사역을 감당하였는데, 전통적인 신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교과목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중요하고 필요한 교과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직장사역론과 직장목회, 그리고 일상생활의 신학을 가르치면서,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삶의 현장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 기관들도 목회현장에 대한 이해를 더 폭넓게 해야 한다는 생각했다.
선교사역에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문득 우리 가문의 선교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큰아버지 방지일 목사님의 선교사역을 보면서 내가 그분을 계승하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게 선교의 길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나도 2세대 선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번 가족 모임 중에 큰아버지께서는 “쓸 만한 사람”이 되려면 건강을 잘 지키라고 권면하셨다. 그분이 내게 2세대 신앙인으로, 2세대 목회자로, 2세대 선교사로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감사하게 된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지역이나 나라가 정해진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부르심의 날이 온다면, 언제든지 뛰어나갈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크리스천은 누구나 선교사이며m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다음 세대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비전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과 선교의 비전을 계승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방선기 | 직장사역연구소 소장, 이랜드 사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