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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3  통권 211호  필자 : 유관지  |  조회 : 2717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지금은 사순절입니다

‘정말’의 ‘따불’, 없어져야
<중주> 가족 여러분, 정말, 정말, 안녕하십니까? 저는 매달 보내 드리는 이 ‘발행인 통신’을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종의 투식어(套式語) 내지 의례어(儀禮語)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지난 2월호에는 “<중주> 가족 여러분, ‘정말’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정말’이라는 말을 그것도 앞뒤로 따옴표를 해서 넣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코로나19라는 정식 이름이 나오기 이전이어서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썼지요.

이번 호는 “<중주> 가족 여러분, 정말, 정말, 안녕하십니까?”라는 말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정말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썼는데요, 이런 것을 속된 말로 ‘따불’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 이유는 잘 아실 것입니다. 코로나19의 확장세가 정말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제 발원지인 중국은 좀 멈칫하는 것 같은데 국내가 야단입니다. 따불의 배를 ‘따따불’이라고 하는데 이대로 나가다가는 다음 호에는 정말이라는 말을 따따불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982년까지는 야간통행 금지가 있었습니다. 밤 12시부터는 특별히 허가 받은 사람들 외에는 거리에 다닐 수가 없었는데요, 그래서 통행금지 시간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이 택시를 향해 “따불!”이라고 외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미터기에 나오는 요금의 배를 줄 테니 태워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통행금지 시간이 더 가까워지면 “따따불!” 했습니다. 통행금지가 없어지고 교통질서가 잡힌 다음에는 이런 광경이 사라졌는데요, 코로나19의 확장세가 빨리 변곡점을 맞이하고 나가서는 종식되어, 정말이라는 말을 따불로 쓰는 일은 이번 호로 끝나야 하겠습니다.

냅다 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난 2월 26일은 ‘성회(聖灰)수요일’이었습니다. 성회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로서, 예전에는 이 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이라고도 하지요. 사순절은 부활절 이전,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는 40일간을 말합니다. 여기 40일이라고 한 것은 주일을 뺀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46일이 됩니다.

2020년의 사순절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2월 26일에 시작되어 부활절인 4월 12일 전날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올해의 3월은 ‘사순절의 달’이라고 불러도 좋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에는 경건과 절제에 힘써야 합니다. 목회를 하고 있을 때 교인들에게 사순절 기간에는 결혼식을 삼가고, 잔치 같은 것도 사순절 뒤에 하는 것이 좋다고 권면하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주간에는 담임목사에게 결혼주례 부탁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순절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예전에는 사순절 기간에 교회 앞을 지나노라면 ‘사순절 특별 40일 새벽기도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현수막을 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온라인 영상으로 대체하고 있고, 더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 외에는 모이지 않고 있으니까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갖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드리지 않다 보니까 ‘드리지 못하는’ 사태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사순절은 이렇게 부담스럽게 여겨야 할 절기일까요? 그저 냅다 달리기만 하는 사람을 장한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사람은 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또는 멈춰서 바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에너지 배분은 잘 하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항해하는 배나 비행기는 때때로 위치와 항로를 정밀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1983년에 KAL 007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다가 소련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추락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의 원인은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발표되고 있지 않지만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삶의 속도를 좀 늦추고 여러 가지를 돌아보고 살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사순절은 매우 유익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를 하고 있을 때 교인들에게 “사순절은 일 년의 십일조입니다. 사순절을 잘 지키면 일 년의 신앙생활을 잘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하고는 했습니다. 또 “사순절을 잘 지켜야 부활절을 부활절답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 교회의 예전색(禮典色)은 보라색인데 보라색은 수난, 참회, 준비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순절에 수난의 의미에 대한 묵상과 참회와 부활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라는 물을 충분하게 채워야 부활의 환희라는 분수가 솟구칩니다.”라고도 했지요.

사순절 속의 사순절
1970년대 후반기에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정책을 택했고, 교회도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의 외적인 팽창이 폭발적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중국선교’라는 말도 ‘선교중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럴 때 중국교회는 그리고 중국을 사랑하는 우리는 얼마나 차분한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으며, 또 뒤를 돌아보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중국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아서 반가웠으나 그 가운데 문화대혁명기의 박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는 놀라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한참 부흥할 때 차분하게 앞을 내다본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저 달리기에만 바빴던 것을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나니까 그때 <중주>가 그런 특집 하나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참 후회가 됩니다. 그러다가 2년 전부터 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2년 전에 중국교회의 사순절과 같은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2018년 2월에 시작된 사순절과 같은 성격을 가진 기간 안의 사순절입니다. 중국교회가 그리고 중국사역에 부름 받은 우리가 지금 이 시기의 의미를 잘 생각하며 보내야 합니다. 뒷날 중국교회가 다시 비상(飛翔)의 여건을 만났을 때 바르게 솟구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코로나19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가 수습된 이후 시진핑이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참 궁금합니다. 이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깨닫는 것이 없고 따라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아니 오히려 독재를 더 강화한다면 시진핑은 결정적인 큰 위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종교에 대한 시진핑의 정책도 변화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변화가 예측되는지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사태와 중국교회에 대해서 깊이 있는 글을 기획 글로 실었습니다. 집필해 주신 쑨빈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진 | pixabay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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