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예금이나 송금 등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사업이나 주택 구매 등 단시일 내에 비교적 규모가 큰 자금 조달이 필요한 경우 대출을 받지 못한다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금융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금융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서 국가가 은행을 운영하는데 주민들의 은행에 대한 불신이 커서 이용률이 저조하다고 한다. 개인에게는 대출을 하지 않는 등 제공되는 서비스도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돈주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금융이 발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최근 북한은 지역 상업은행이 신설되는 등 금융 제도에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카드 사용이 증가하고 모바일 송금과 결제 서비스가 점점 더 널리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 따라 서민들의 사금융 이용도 상당히 위축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주민들의 금융 환경이 여러 변화를 맞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북한의 최근 금융 정책과 금융 환경의 변화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러한 북한의 경제적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우려되는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북한 금융 시스템과 사금융의 발달 금융은 화폐나 통화의 융통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이다.1) 즉 돈이 오가는 것, 돈의 흐름을 뜻한다. 우리와는 달리 사회주의 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북한이다 보니 과거 북한에서는 돈의 중요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대부분 물품은 국가에서 배급해주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소액의 월급이 지급되기는 했지만, 이 돈은 국영상점이나 농민시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되었다. 기업들도 국가의 계획과 제공된 자원으로 제품을 만들어 공급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나라 안의 모든 돈은 자연스럽게 은행이나 국영상점 등을 통해 국가로 회수되었고, 조선중앙은행이라는 단일은행이 모든 돈의 흐름과 관련된 생산 및 거래 활동을 통제하는 “원(북한돈)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북한 경제가 90년대 극심한 침체를 겪고 배급이 중단되고 시장이 대두하면서 금융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현금 화폐의 기능이 확대되고 그 유통이 활발해진 것이다. 주민들이 끊긴 배급 대신 장마당을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화폐를 이용한 거래가 확대되었다. 기업들도 시장에서 자원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기업의 현금 거래 및 보유가 확대되었다. 시장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돈주’ 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돈의 흐름을 전과 같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자본을 축적한 돈주가 등장하는 현상은 당국에 달갑지 않았다. 특히 돈이 국가로 회수되지 않고 개인이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현금 누수 현상이 발생했다. 국채 발행 등이 불가능한 경제 상황과 세금이라는 제도가 없다시피 했던 국가 시스템 속에서 은행은 국가 재정과 기업 활동을 위해서라도 회수되지 못한 만큼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북한 돈의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09년 화폐개혁은 북한 당국이 돈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또한 용납할 수 없는 개인의 사적인 자본축적을 ‘징벌’하는 과격한 대응이었다. 구권과 신권을 100:1의 비율로 교환해주면서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을 10만 원(후에 50만 원으로 확대)으로 제한한 이 조치로 인해 북한 돈으로 재산을 모아왔던 사람들은 그 재산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결과를 맞아야 했다. 이러한 과격한 정책은 당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달래겠다고 당국은 김정일 하사금을 배부하고 노동자들의 월급을 신권 기준으로 100배로 인상하는 등 돈을 대대적으로 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돈의 가치는 급속도로 떨어져 버렸고, 북한 주민들은 수년 만에 신권 기준으로 백분의 일 수준이어야 할 물건값이 오히려 구권 당시 가격보다도 비싸지는 초인플레이션이 터지고야 말았다. 화폐개혁의 실패는 북한 주민에게 북한 돈과 은행에 대한 신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이제 북한에서 북한 원화는 일정 단위 이하에서 거래용으로만 주로 사용될 뿐 물건의 금액 단위가 커지거나 가치를 저장해야 할 경우에는 중국 위안화나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하였다. 일종의 달러라이제이션2)이 이루어진 것이다.
북한에서 시장은 더욱 활성화하였고 그에 따라 송금이나 대출 등 금융 서비스에 대한 필요는 증가하였으나, 신뢰를 잃은 공금융(은행)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러자 사금융이 그 대안으로 부상했다. 돈주들이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송금이나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개인은 물론이고 시장을 통해 자원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들까지 자금 조달처 확보라는 측면에서 돈주를 찾기 시작했다. 비록 불법적인 활동이기에 상당히 높은 수수료와 이자를 부담할 수밖에 없었지만 주민들은 사금용 이용을 통해 부족한 금융적 필요를 채워 왔다.
최근 북한의 금융 정책과 금융 인프라 개선 근래 북한에서는 금융 정책의 변화가 관찰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상업은행 제도의 개선이다. 북한은 2006년에 상업은행법을 제정하기는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런데 2015년 북한은 중앙은행법과 상업은행법을 개정하면서 기존 중앙은행의 지역 지부에서 상업 업무 관련 부분을 떼어 내어 지역 은행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중앙은행의 ‘○○도 지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 지점에서 예금과 대출 등의 업무를 ‘○○도은행’이라는 상업은행으로 분리시키고, 그 지역의 저금소3)를 상업은행화한 것이다.4) 그러면서 ‘카드’ 업무도 상업은행의 업무로 추가하였고, 상당한 이율의 예적금 상품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송금 업무나 카드 사용, 예적금 상품을 통해 개인에게 묶여 있는 돈들을 국가(은행)로 회수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또한 기업들도 현금 돈자리(계좌)가 신설되고 이 계좌에서는 법정가격이 아닌 시장가격과 유사한 협의가격에 의한 거래가 허용되었다. 그리고 돈주와 기업 간의 대차 거래를 은행의 중계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 회색지대에서 이루어지는 금융 활동을 제도 내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5)
카드 사용의 활성화와 모바일 금융 서비스 제공 등은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하고 편리함을 제공하는 상당히 매력적인 서비스로 꼽힌다. 북한은 2010년 외화를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나래 카드, 2015년에는 계좌를 연동한 북한돈(내화)용 전성 카드 등이 출시되어 사용되고 있다. 전성 카드의 경우 주민들의 송금에 주로 쓰인다고 하는데 기존 사금융에서 제공하는 송금 서비스에 비해 수수료가 저렴하고 상당히 외진 지역에도 무리 없이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6) 또한 북한은 온라인 상점 결제를 카드와 연동하고 전자 결제와 송금 등을 돕는 ‘울림’이라는 앱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7) 울림 앱을 이용하면 비교적 낮은 수수료(약 1∼2%)로 송금 업무를 이용할 수 있다. 북한의 휴대폰 보급률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오프라인에 비해 편리한 모바일 송금 서비스는 주민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NK경제[사진 출처] 북한 당국이 표방하는 이러한 금융 정책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고 시중의 유휴 자금을 회수하려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북한은 21년 전자결제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의 1조는 전자결제 사업을 통해 “현금류통량을 줄이고 무현금류통량을 늘이며 화페류통을 원활히 하는 데 이바지한다”라고 밝히고 있다.8) 여기서 무현금화폐는 실제 시장에서 사용되는 돈이 아닌, 국가기관과 기업소 간의 거래에 사용되고 국가계획에 맞추어 생산과 재료조달을 위해 장부상으로만 처리되는 돈을 의미한다. 계획 이외의 생산과 거래를 위한 현금 사용을 줄이고, 개인의 유휴화폐를 무현금결제로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로 전자결재 확대를 언급한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경제 운영 방향은 금융 정책을 넘어 국가 상업망 활성화 등의 움직임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최근 북한은 편의점, 백화점 등 국영상점 및 개인이 운영하지만 국가 소유인 상점을 확대 설치한 반면, 국영상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불법적으로 운영하던 미용실이나 이발소 등 각종 상점에 대해서는 단속을 강화했다. 양곡의 경우 개인 판매를 제한하고 국가 운영의 양곡판매소로 일원화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경봉쇄로 수입이 급감하면서 시장에는 유통할 상품이 부족해졌고 민간의 시장 활동은 위축되었고, 그와 동시에 국가가 운영/통제하는 상점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은 강화되었다. 이렇게 시장 활동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창출되는 이윤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북한의 시장에 대한 통제력 강화 정책은 과거에 시도했던 시장을 반대하거나 없애는 것과는 다른 국영부문이 시장에 적극 참여해서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움직임인 것으로 평가된다.9)
여전히 제한된 금융 환경과 우려점들 최근 금융 분야에서 보이는 북한의 변화는, 발전하는 전자금융 등에서 나타나듯 주민들이 전보다 더 편리하게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북한 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화폐개혁과 같은 극단적 조치 대신 시장의 기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정책을 펼치는 모습은, 통화량 조절을 통한 물가 안정 등을 고려할 때 필요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금융 분야를 비롯한 경제 정책 전반에 자리하고 있는 반개혁적 의도와 민간 부분의 약화는 우려스럽다. 먼저 현재의 정책이 북한 주민들이 잃어버린 공금융(은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만한 것인지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정권 시기에 탈북한 탈북민 212명을 대상으로 한 이주영, 문성민(2020)10)의 사금융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은행예금액은 가구당 1달러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탈북민 69명을 대상으로 한 이수룡 외(2019)의 북한의 금융 이용 실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2.6%가 은행(저금소) 이용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용하였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연 1회 정도의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11)
제공되는 금융 서비스가 여전히 예금과 송금에 국한되고 자금 조달을 위한 대출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한계점이다. 북한 사회에서 시장이 가지는 의의 중 하나는 주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모종의 혁신과 발전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전에 없었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대출이나 대부 서비스는 이러한 기회를 더욱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반 서민은 좋은 아이디어나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업화할 자금 마련이 어렵다. 대출은 고리대로의 변질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 등에 주의한다면, 주민들의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혁신과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빈민층을 위해 무담보 소액대출(약 10% 이율로)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인력거나 구두닦이, 소규모 축산업 등 사업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빈곤을 타파할 수 있도록 돕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적절한 금융서비스 제공이 빈곤 타파와 주민 생활 개선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북한 경제 정책 기조를 고려할 때, 공적인 금융에서 개인에 대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사금융이 그 대안으로 역할을 해왔지만 확실한 대체재라고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도가 미비하다 보니 대출자의 신용 확인이나 대출 회수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돈주들도 지인 외에는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12) 실제로 앞서 언급한 이주영, 문성민(2020)13)의 연구에서 응답자 중 약 27.8% 만이 사금융을 통해 신용 거래 및 대출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의 종류도 대부분 유통 과정에서 단기로 돈을 빌리는 외상 거래 성격의 장사 밑천이나 지인 간의 금전거래, 농촌에서의 곡물 고리대에 머물렀던 반면 수공업이나 어업 등 산업생산 부분에 투자하기 위한 대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수룡 외(2019)14)의 연구에서도 응답자의 32.9% 만이 돈을 빌려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빌린 목적은 장사(58.3%)나 생계비(37.5%)가 주를 이루었고 사업자금 마련 목적은 4.2%에 불과했다. 돈을 빌리는 곳도 70%가 이웃 등 지인, 20%가 친척이라고 답한 반면에 돈놀이하는 업자는 4.4% 수준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아직까지 북한에서 시장을 통한 혁신이나 기업가정신을 이야기할 만한 금융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대유행과 장기간에 걸친 국경봉쇄의 여파는 서민들의 사금융 활동을 더욱 위축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돈주들은 크게 권력형과 시장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권력형 돈주는 당 간부나 관료들과 유착관계를 통해 부를 창출하는 이들이고, 시장형 돈주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권력형 돈주와 결탁하여 활동하는 상인들이다.15) 또 그 규모에 따라 대형 돈주(주로 권력형) 또는 중소형 돈주(주로 시장형)로도 구분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국경봉쇄와 시장 활동 위축으로 시장형 돈주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일각에서는 70%가 넘는 돈주들이 몰락했다는 소식도 들린다.16) 반면 권력형 돈주들은 당국이 추진하는 여러 대형 건설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오히려 그 세를 넓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주민들의 금융 생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시장형 돈주가 중심이 되는 시장에서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소농을 대상으로 한 개인 대부 활동이 축소되었을 반면, 주로 대형 돈주들이 참여하는 국가기관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형 대부는 확장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지선(2023)은 사금융이 일반 주민보다는 특권층을 중심으로 비대해졌을 것으로 보고, 향후 경제 수축과 통제 강화의 변화 속에서 특정 권력층에 속하는 관료와 (권력형) 돈주에게 부가 집중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17)
▲북한 주민들, 2023년 새해 뜻깊게 맞이/연합뉴스[사진 출처]
북한 사회의 불평등이 완화되고 주민 생활이 개선되어야
북한의 금융 정책과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볼 때,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이 북한의 경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체제 유지를 위한 핵개발과 통제 강화가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주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도 외부와 교류 확대와 민간 경제 활동 활성화가 국가 경제 발전을 이루는 방향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은 시장 활동을 공식화하고 기업소나 협동농장 운영에 자율성을 확대하는 등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고, 수년간 꾸준한 경제 성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속된 핵실험으로 인한 대북 제재 강화와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버티기에 돌입했고, 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내세우는 자력갱생과 버티기 기조는 결국 국내의 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함을 뜻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강화된 대북 제제와 국경봉쇄는 시장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왔던 주민들의 경제 사정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지만, 국내에 있는 외화가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통제하고 포섭하는 데에는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었다. 양곡 전매제의 경우 식량난이 심해지는 등 주민들의 피해가 오히려 가중되었지만 식량 유통을 국가가 통제하고자 하는 당국의 의도는 관철된 것이다. 금융도 기술 발전에 따라 편의성이 증대된 측면은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국의 통제 강화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만큼 한계가 있어 보인다.
북한 체제의 이러한 모순은 점점 더 심해지는 불평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얼마간 경험했던 경제적 활기나 기회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일부 돈주들도 몰락하거나 위축되는 형국이다. 그런 가운데 국가 권력과 그에 결탁한 계층은 나라의 제한된 자원을 더욱 독점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체제 유지를 위해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주민들에게 희생을 주문하지만, 그 희생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주민들의 경제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은 축소시키면서 이를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외치는 북한 당국의 행보는 모순적이다. 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이러한 모순이 사라질 수 있을까? 금융을 중심으로 북한 경제를 살펴보면서 들었던 이러한 의문에 대해 속 시원하게 답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북한에 핵과 자력갱생이 아닌 진정한 이민위천(以民爲天)과 개인의 자유/인권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 북한이 체제 모순에 빠져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소수의 지배연합이 자원을 독식하는 현상이 중단되고, 서민들의 삶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개선되길 바라며, 특별히 경제적으로 소외받고 배제된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도록 관심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자.
* <북한개발소식> 2023년 12월호(통권 218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게재하였습니다.
미주 1) 한국민속문화대백과 사전. 2)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은 달러가 자국 내 통화의 기능을 완전하게 대체했거나 국내 통화와 달러가 병행해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3) 조선중앙은행 산하 동 단위 조직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예금 입출금 업무를 담당한다. 4) 황수민, 양문수 (2020), “김정은 시대 ‘북한식’ 금융개혁에 관한 연구”, 국가전략 제 26권 1호 (2020년 봄호), 174-175. 5) 위의 글, 176-177. 7) 손광수 (2023), “북한의 금융정보화와 전자결제법 함의”, KDI 북한경제리뷰 2023년 2월호, 48-50. 8) 위의 글, 50-52. 9) “펜데믹을 전후한 북한경제의 변화와 전망”, KDI 북한경제리뷰 2023년 9월호, 11-13. 10) 이주영, 문성민 (2020), “북한주민들의 비공식금융 이용에 관한 연구”, 경제발전연구 제26권 제4호, 54. 11) 이수룡 외 (2019), “북한 금융의 현황 및 주민 이용 실태 분석”, 월간 북한 2019년 5월호, 130-132. 12) 이주영, 문성민 (2020), 앞의 글, 54. 13) 위의 글, 45-68. 14) 이수룡 외 (2019), 앞의 글, 132-133. 15) 김윤희 (2015), “북한 사금융의 흐름과 구조 동학에 대한 탐색”, 세계기역연구논총 33집 3호, 88-90. 17) 이지선, 《김정은 시대 북한의 사금융 동학과 변화 가능성》, 서울: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23), 67-69.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북한 조선중앙은행 건물/자유아시아방송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