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국 한인 교회의 현주소
현재 중국에 있는 한인 교회는 ○○개 정도가 된다(보안상 정확히 밝히지 못함-편집자 주). 이미 재중한인교회연합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중국 교회를 향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다.
중국 내 한인 교회들은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이민 교회와 다른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대개 상사 주재원, 유학생들로 이루어져서 4년 정도 안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형태의 교회는 한국의 대형 교회에서 팀 사역자들을 파송하여 여러 방면의 일을 서로 도와가며 잘 감당하고 있다. 또한 어떤 형태는 한국 교회의 연장선상으로 오로지 한인 사역에만 제한하여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중국 교회와 중국 성도를 향한 사역의 접목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한인 교회의 형태를 ‘선교적 목회’와 ‘목회적 선교’로 구분하여 말할 수 있다. 선교적 목회란 목회의 방향성이 선교에 있는 것을 말하고, 목회적 선교는 목회가 중심이고 선교는 부차적으로 하는 방향성을 가진 사역을 말한다. 한인 교회는 이 두 가지에 모두 관심을 갖고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갖게 된다. 현실적으로 목회와 선교라는 두 방향성이 혼재된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목회 현장을 중점으로 하는 한인 교회 사역자는 목회적 선교를 지향하게 되고, 반대로 선교에 현장성을 두는 한인 교회의 사역자는 선교적 목회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재중국 한인 교회의 특수상황
그러나 위의 형태는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 있는 교회라 하더라도 선교에 대한 관심이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 목회적 선교일 것이고, 반대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선교에 두고 있다면 그것은 선교적 목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있는 한인 교회와 중국에 있는 한인 교회는 여러 의미에서 그 역할의 차이가 있다. 창의적 접근지역인 중국에서 한인 교회 사역은 환경적인 제한을 받으며, 직접적인 선교현장에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대개의 한인 교회 사역자들은 선교사로 파송되어 중국에 오게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중국선교의 창의적인 접근으로써의 한 방편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창의적 접근지역에서의 한인 교회의 역할은 그 외의 지역과는 다른 양상을 띄게 되는 것이다. 창의적 접근 지역의 한인 교회는 두 가지의 역할을 가진다. 하나는 목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교의 기초적인 터(Base came)로써의 역할이다. 한인 교회는 이 두 가지 사역 즉,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 모두 제한을 받으면서 감당을 해야 하는 특수한 입장에 있다. 이러한 현장성을 이해해야 한다.
한인 교회의 중국선교 통로 역할
한인 교회가 선교의 기초적인 터로써의 역할을 어떻게 감당하며, 베이스캠프로써의 한인 교회의 가치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한인 교회는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다. 즉 한국 교회에게 있어서는 선교의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중국 교회에 대하여는 한국 교회의 얼굴의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즉 한인 교회는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의 교량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은 한인 교회가 활성화되고 있는 단계이지만,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가 되면 한국 교회가 어떻게 중국 교회에 건전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선도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한인 교회는 나름대로 이러한 정보망을 이루어 한국 교회에 도움이 되기 위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협력체제가 잘 이루어질 때 한국 교회가 중국 교회를 향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국 교회들이 대개 각개 전투를 해왔기 때문에 그 효율성을 제대로 감당하지도 못했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한국 교회는 중국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 오리엔테이션이 안 된 상태에서 중국선교를 할 때에는 반드시 몇 년 간의 실수를 통한 교육비(?)를 지출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에 있어서 한인 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의 입장에 있다고 하겠다. 본토의 예루살렘 교회가 한국의 교회라면, 현지에 있는 안디옥 교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바로 한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의 안디옥 교회의 정책과 한인 교회
성경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의 역할과 한인 교회의 역할을 비교하여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안디옥은 당시 로마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 가는 제3의 도시였다. 안디옥에서는 헬라어를 썼기 때문에 유대의 히브리어인 ‘메시아’가 헬라어인 ‘그리스도’로 번역되어 사용되어졌다. 믿는 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려 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행11:26). 초대교회의 시작은 예루살렘이었지만 그 중심은 안디옥이었다. 주후 4세기까지 안디옥에는 25만 명이 살았는데 그 중 10만 명 이상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40%의 복음화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볼 때 중국 역시 안디옥과 유사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의 기독교인은 7천만 명에 달하고 있고, 매일 2만 5천명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교회의 시선이 중국 교회에 향하고 있다. 선교역사의 흐름을 살펴볼 때 중국 교회는 차세대 세계선교의 주역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성도 수를 가지고 있는 반면, 사회주의 체제의 특수한 제도와 상황 가운데 있는 것이 중국 교회의 독특한 상황이다.
안디옥 교회가 초대 기독교의 선교기지가 될 수 있었던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교회였다. 사도행전 11장 20절에 보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였다”고 했다. 이는 후에 바울이 말한 대로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함께 예수의 후사와 지체가 된’놀라운 사건이다. 안디옥 교회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형성된 교회였던 것처럼, 중국 교회와 한인 교회 역시 연합을 통해 이 정신을 이어갈 수 있다. 중국 교회는 더 이상 이방인들이 아닌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 한국 교회의 선교는 중국 교회를 형제 교회로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형제 교회와의 연합을 누가 주도할 수 있는가? 두말 할 나위 없이 이것은 한인 교회의 몫이다. 한국 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한인 교회가 중국 교회와의 통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하는 사역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데, 이제는 현지 중국인 사역자를 한인 교회와 연결하는 패러다임의 전환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현지 중국인 사역자들과 한인 교회 혹은 성도와의 자매결연을 맺는 것이다. 현장성이 더욱 강화되고 언어가 이미 가능한 성도들끼리 교제하며 상호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에 있는 주재원이나 유학생들이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게 하고, 그들을 중국 교회로 연결하는 일들을 감당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중국 교회와 한인 교회와의 접촉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한 때문에 계속적으로 역할을 제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결국은 어떤 마인드로 중국에 있는 한인 교회와 한인들이 그 역할과 의무를 감당하느냐가 결정적이다.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구제에 앞장 선 교회였다. 주후 46년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일어났을 때 3백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조를 보냈다(행11:28~30). 이러한 모델은 한인 교회와 한국 교회와의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실제로 한인 교회는 한국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다. 물질적인 부분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잘 섬길 수 있다는 것을 한국 교회는 인식해야한다. 또한 자체적으로 자립하여 중국 교회를 섬길 때에 그 효율성은 상당한 것이다. 현장성에 맞는 구체적인 섬김이 될 것이다.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스스로 선교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힘썼다. 예루살렘 교회가 선교하게 된 것은 핍박으로 흩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기도 중에 선교의도를 가지고 선교사를 파송한 최초의 교회이다. 어쩔 수 없이 선교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신한 것이다. 열린 교회, 사랑과 헌신이 있는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고, 선교하는 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는 것을 안디옥 교회는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장성 있는 교회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현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곳보다도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선교사 파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한인 교회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개 이러한 부담을 가지고 선교의 전진기지, 베이스 캠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시도하는 것은 한국교회에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선교사들을 한인 교회에서 훈련(언어, 선교감각, 교회이해, 말씀, 문화, 선교지 탐방 등)하여 재파송하는 사역이다. 중국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아직 훈련되지 않은 선교사 후보들과 이곳에서 동역하면서 훈련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와의 긴밀한 연결 가운데서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한인 교회는 한인 교회의 의미만으로는 그 부가가치가 없다. 주께서 주신 현장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그럴 때에 한 선교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연합적인 힘을 가지고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삼겹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 인프라의장으로써 역할을 감당하게 될 때에 한인 교회의 가치가 진정 드러나게 될 것이다.
넷째, 안디옥 교회는 영성이 분명한 교회이다(행13:2). 예배와 기도를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였다. 선교는 돈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주도하는 영적 분위기 없이는 어떤 사역도 진정으로 성공할 수 없다.
선교사를 통해 현지인들이 전달받는 것은 사실 지식이면에 있는 영성일 것이다. 중국 교회가 한인 교회를 통해 보는 것도 사실 교회의 영성이다. 한인 교회는 현지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 멀리 있는 한국 교회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한국 교회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한국교회를 평가하고 느낄 것이다. 한 한인 교회가 그 자체의 신분을 망각하고 중국 교회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고, 선한 통로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위치에 있는 한인 교회의 속성을 잘 알고 영적인 통로로써의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사역을 위임하는 교회이다(행13:2). 안디옥 교회는 사명과 은사와 전문성에 따라 사역자를 따로 세우는 교회였다. 선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다.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선교사, 즉 지도자급 선교사를 배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인 교회는 현장성에 목적성을 갖는 교회이다. 다시 말해서 한인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인들의 영적인 관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한인 교회 성도들은 1~2년 정도만 되면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떠돌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잘 되면 성경적인 나그네 의식을 갖고 분명한 목적성을 갖는 신앙인이 될 수도 있다.
한인 교회는 교회의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현장성 있는 선교단체의 성격도 있다. 결국 목회도 선교도 사람을 통하여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현장을 위해서 훈련시키며, 파송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인 교회는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현지에서 훈련된 지도자들을 파송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여섯째, 금식하고 기도하는 교회이다(행13:3). 신생 교회가 그 교회의 중심 지도자 두 명을 선교사로 파송하는 결정을 한 것은 믿음의 행이이다. 믿음은 기도의 산물이다. 적게 기도하면 적은 믿음을 얻지만, 많이 기도하면 큰 믿음을 얻게 된다. 인기 없는 교역자를 쉽게 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은 위험천만이다. 온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가장 탁월한 사역자를 파송하는 것이 제대로 선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위해, 그리고 그 사역에 목숨을 걸고 후원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는 바로 이런 금식을 하기까지의 기도와 후원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교는 교회 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전도, 리더십, 헌신, 영성, 위임, 기도, 이 여섯 가지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선교․ 목회․ 교사
바울은 3가지 전문적인 안목으로 그의 사역을 감당했다. 바로 선교사요, 목회자요, 신학자로서 살았다는 것이다. 바로 한인 교회의 사역자들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적 선교든지 선교적 목회든지, 사역자에게는 선교와 목회와 교사의 사명이 있다.
이제 한인 교회에 대한 양상도 변화될 것이다.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고 훈련이 덜 되어져서 그렇지만, 한인 교회가 중국 교회를 향해 분명한 사명을 깨닫고 서서히 일들을 감당할 때에, 선교사 개인과 단체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잘 감당하게 될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인드인 것이다. 그 다음이 방법이다. 중국의 현장성과 전문성에 있어서, 한인 교회가 그 생각이 열리고 중국 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마인드가 열린다면, 무궁무진한 파워풀한 역할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김성국 | 중국선교사․ ○○ 한인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