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이미 아카시아 꽃이 지고 초여름에 들어설 때이지만, 이곳 중국의 동북삼성엔 이제야 아카시아 꽃눈이 터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여름은 한국보다 한달 가량 늦게 시작되었다가 8월 말쯤이면 날씨가 오슬오슬 해지지요. 그래서 겨울은 두 달쯤 빨리 시작됩니다.
누구보다도 추위를 많이 타는 제가 처음 중국에 와서 첫 겨울을
아주 공포심으로 맞이하였는데, 영하 30~40℃를 오르내리는 엄동설한에도 실내는 난방시설이
대체로 잘 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겨울을 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난방비를 대부분 집 주인이
내는데 정부에서는 집 주인의 월급에서 약간의 난방비를 제한다고 합니다. 난방은 대체로 11월 중순경에 시작하여 4월 말 경까지 넣어주는데,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같은 날 넣었다가 같은 날 끊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5월과 10월이 제일 추운 때라고들 합니다. 중국의 삼대 풍토병중의 하나가 몸에 바람이 드는 풍습병인데, 이곳
사람들은 옷을 아주 많이 입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선풍기 나올 때가
되어야 내복을 벗습니다. 실제로 5월에 야간 침대기차를 타고
가다가 아침에 화장실에 나가보면 내의를 입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내복 차림의
남정네들을 보고 기겁을 했지만 차츰 이런 모습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차를 기다리느라 대합실에
있어보면 잠옷 차림의 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보통 10시간씩
기차를 타는 일이 다반사여서 대부분 야간 침대기차를 타게 되는데, 기차를 타면 곧 자야 되니까 아예
집에서 외출복은 가방에 넣고 잠옷을 입고 나오는가 봅니다. 이런 잠옷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은 아침 시장에서나
공원에서도 가끔씩 볼 수가 있지요.
중국의 출퇴근 교통수단은 자전거가 많이 이용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일을 나가는 이 나라에서 여성들은 바람이 많이 부는데도 짧은 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달립니다. 그러면 속옷이 내비치고 보이는데도 본인이나 보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갑니다. 이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처럼 속옷, 겉옷, 잠옷, 외출복, 실내복
같은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곳의 여성들은 런닝셔츠 안쪽의 레이스가 드러나게 겉옷을 입습니다. 하기야 겉옷 못지 않게 비싸고 예쁜 속옷을 아무도 못 보게 꼭꼭 여미는 것은,
어쩌면 실리(实利)를 따지는
이들의 관점에선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아무튼 이들은 우리네만큼 남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편한 대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도 한국에서처럼 정장 차림의 외출복을 거의
입을 일 없이 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네 체면문화가 퇴색되는 현장입니다.
전찬미/ 중국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