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전업자녀(全职儿女: 풀타임자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전업자녀’라는 용어는 중국의 신조어로 ‘취안즈얼뉘(全职儿女)’라고 읽는다. 전업자녀란 직장이 없는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살면서 집안일, 심부름 등을 전담하고 부모에게 월급을 받는 청년들을 말한다. 최근 중국의 청년실업률이 높아지자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노동자’로 고용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한 것이다. 전업주부처럼 가정의 살림을 도맡아 한다는 점에서 전업자녀와 전업주부는 비슷한 점이 있지만, 전업자녀는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전업자녀의 대부분은 정규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대학원 진학을 위해 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 싶어 하는 대학 졸업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찾기 위해 스펙을 쌓으면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전업자녀를 ‘전일제자녀(全日制孩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업자녀가 중국에서 화두에 오른 것은 2022년말부터다. 전업자녀들이 중국 소셜미디어 플랫폼 더우반(豆瓣)에 직접 토론 포럼을 개설하면서 대중과 미디어 매체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전업자녀를 향한 중국 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청년들이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컨라오쭈(啃老族: 캥거루족)가 따로 없다”면서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컨라오(啃老)’는 ‘노인을 갉아먹다’라는 뜻으로 젊은이들 중에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을 비꼬는 신조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본질적으로 ‘컹뎨(坑爹)’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들을 비난했다. ‘컹뎨’는 ‘아버지를 곤경에 빠뜨리게 할 만큼의 대형 사기를 친다’는 뜻으로 매우 황당한 상황에 접하거나 아주 큰 사기를 당한 경우에 사용하는 신조어이다.
그러나 전업자녀는 단순히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기생하는 컨라오쭈와는 다르고, 자포자기한 채 그냥 누워서 빈둥대는 있는 ‘탕핑(平躺)’과도 다르다. 부모에게 일정한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컹뎨라고 할 수도 없다. 이들 대부분은 높은 학력과 비교적 확실한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으나, 치열한 취업 경쟁으로 당분간 집에 머물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들은 전업자녀로 살면서 공무원 시험, 대학원 진학, 취업 등을 준비하거나 구직 활동을 계속한다. 또한 이들은 부모를 대신해서 가사 노동을 해야 하고, 부모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집안일을 하거나 시장을 보러 마켓에 갈 때 동행해야 하고, 부모의 말동무가 되어 주어야 하고, 부모가 주선하는 맞선에도 나가야 한다.
중국의 21세기교육연구원(21世纪教育研究院) 원장 슝빙치(熊丙奇)에 의하면, 전업자녀의 핵심 문제는 사람들마다 가족의 경제 상황이 다르고, 자신이 추구하는 직업이나 성공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전업자녀가 될 것인지의 여부는 오직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전업자녀를 선택한 청년들 중에는 만족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나름대로의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일부는 직장에 다니다가 너무 지쳐서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면서 재충전한 뒤에 다시 일할 기회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일부는 부모의 요구로 연로한 부모의 신체적 돌봄과 가사노동에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취업을 기피하고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부모의 재산을 갉아먹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사회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현재 중국 청년들은 계속 상승하는 높은 집값 때문에 집을 사기 힘든데, 거기에 더해 경직된 노동시장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이유가 청년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부모에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가정에서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낙인에 맞서기 위해 가정 내에서 전일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농업과 건설업 등의 분야에서는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상태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을 고용하는 첨단기술과 교육산업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대량 해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으며,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업자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일보(经济日報)를 비롯한 매체들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중국의 전체 인구(16-59세) 실업률은 대체로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올 8월 기준으로 중국 실업률은 5.2%로 나름 괜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국의 청년(16세∼24세) 실업률은 21.3%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이 지난 2월에는 18.1%, 3월 19.6%, 4월 20.4%, 5월 20.8%에 달했다. 사실 이것은 공식적인 집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청년 실업률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 7월 20일 베이징대학 국가발전연구원 장단단(張丹丹) 교수는 “전업자녀들을 실업자로 간주한다면 실제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인 21.3%의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 청년 실업률이 실제로는 46.5%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앞으로는 청년 실업률을 집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보면 청년 실업률이 심각한 상황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올 7∼8월에 대학을 졸업한 신규 대졸자들이 취업 시장에 가세하면서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전업자녀의 삶을 살고 있는 중국 젊은이의 대표적인 경우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시아투데이(2023. 9. 21)의 보도에 의하면, 20년 전부터 중국에서 화제를 모았던 천재 소년 장신양(张炘炀, 28세)이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현재 무직이라고 한다. 중국의 유명한 천재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빈둥거리게 만들 정도라면 중국의 청년 실업이 상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辽宁)성 출신인 장신양은 10세에 톈진(天津)공정사범대학에 입학했으며, 13세에 베이징공업대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이어 16세 때는 전국적 명성을 보유한 명문인 베이징항공항천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의 전공은 응용수학이었다. 다소 늦기는 했지만 그는 24세에 수학 박사 학위를 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 그는 아무런 직업을 얻지 못했고, 현재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에게 의존해 살고 있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전업자녀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문사에서 15년간 기자로 일한 녠안(念安, 40세)은 현재 전업자녀로 살고 있다. 2022년 업무 조정 과정에서 그녀는 새로운 부서로 이동했다. 새 업무는 까다롭고 내용은 복잡했으며 매우 전문적인 일이라서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다. 24시간 긴장 상태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지쳐서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전업자녀를 제안했다. “네가 사직하면 우리가 재정을 지원해 주겠다. 네가 만일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되면 그때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 된다. 그러나 네가 직장을 구하기 싫다면 그냥 집에 있으면서 우리와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네가 우리를 돌봐 주면 우리가 받는 퇴직연금 월 1만 위안(약 180만 원) 중에서 40%인 4000위안(약 72만 원)을 월급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부모의 제안을 받아들인 녠안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자녀의 삶을 살기로 했다. 부모는 그녀에게 아침에는 한 시간 동안 춤을 추라고(운동) 요구했다. 그런 후에 그녀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야채와 식료품을 샀다. 부모는 가끔 그녀와 같이 나가서 쇼핑을 하고는 했다. 집 안에는 모든 전자제품이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저녁에는 아빠와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이 외에도 녠안은 여행 계획을 잘 짜서 매달 1~2차례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그녀의 업무다. 가끔 아버지가 밖에서 술을 드시는 날에는 아버지의 ‘대리운전’ 기사가 되기 위해 달려간다. 그 외에 나머지 시간은 그녀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녠안의 견해에 따르면 전업자녀가 되려면 먼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저축이 충분하게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1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 돈으로 부모와 같이 집과 차를 마련했다. 그리고 매월 일정 금액은 은행에 저축을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가족들 간에 사이도 점점 좋아지고 저축도 점점 늘어났다. 그 이유는 가족들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없었고, 부모의 연금이 매달마다 안정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만약에 경제적으로 기본적인 보호 장치가 없었다면 그녀는 감히 사직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전업자녀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항저우(杭州) 다창에서 8년 동안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왕커(가명, 35)는 지난 2월에 퇴사를 결심했다. 체력소모가 심하고 경쟁이 극렬한 프로그래머 업계에서 35세가 되면, 임원 승진을 목표로 계속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업종으로 전직해야 할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고 한다. 왕커는 제3의 선택을 했다. 저장(浙江)성에 있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왕커는 “이직을 하기 위해서 지금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면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효도도 하고 돈도 벌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업자녀가 되어 장보기, 요리하기, 부모님 심부름 하기 등 집안일을 하면서 이따금씩 부업 삼아 온라인으로 대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중국의 부모들은 노후를 위해 자녀 양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데, 자녀가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를 잘 돌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중국 허난(河南)성에 사는 이 씨(21)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자녀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녀는 요즘 가족들을 위해 식료품을 사고 요리도 하면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그녀는 부모한테 한 달에 6천 위안(약 110만 원)을 받고 있는데, 그의 월급은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중산층 급여에 해당하는 꽤 괜찮은 금액이다. 미국 CNN 방송이 그녀와 ‘중국 전업자녀’에 대해서 인터뷰를 할 때, 그녀는 “더 많은 돈을 주는 직업도, 더 나은 삶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그녀는 전업자녀로 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 대도시에서 일하는 대졸자 평균 초임은 월 5,990 위안(약 108만 원)이었다. 예전에 비해 월급이 많이 올랐지만 그 월급으로는 도시에서 비싼 집세를 내면서 생활하기에 빠듯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 집에서 전업자녀를 하게 되면 집세나 생활비를 안내도 되고, 일정한 금액의 월급도 받으니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 당국이 청년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서 ‘대졸자 농촌 보내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 씨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가족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 사회에서 부모에게 효도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키우는데, 왜 자녀는 부모를 도와주고 대가를 받아야 하는가 라면서 따지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자녀가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중국 관영 인민망(人民网)에 따르면, 중국에서 전업자녀가 늘어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학력 청년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 자녀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경제력이 있는 부모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민망은 전업자녀라는 신개념 직업이 가능해진 이유는 일부 부모에게 그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데다가 부모가 자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겹치면서 ‘유연한 취업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에서 전업자녀로 사는 것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직장인들이 가입하는 중국 사회보장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사회보장보험은 의료보험, 양로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 등을 말하는 것으로 중국의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이다. 그러나 전업자녀는 취업 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에 시달려야 되고, 취업을 해서도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가혹한 업무 환경)’ 상황에 놓이게 되는 청년들에게 ‘대안 일자리’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청년들이 전업자녀를 함으로써 부모와 자녀 모두 진심으로 행복하다면, 구직을 포기하고 전업자녀로 사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아무튼 당분간 부모의 가사일을 도와주고 부모에게서 월급을 받는 전업자녀가 중국 사회 현상으로 새롭게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https://baike.baidu.com/item/%E5%85%A8%E8%81% 8C%E5%84%BF%E5%A5%B3/62921730 ▶https://zhidao.baidu.com/question/1841414486612367100.html ▶https://baijiahao.baidu.com/s?id=1766031235170449203&wfr=spider&for=pc ▶https://baijiahao.baidu.com/s?id=1768677846879812477&wfr=spider&for=pc
사진 출처 | 바이두 석귀희 | 본웹진 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