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홍기는 유월절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대사관은 우크라이나에 거주 중인 중국인들에게 우크라이나를 떠나라는 말 대신에 될 수 있으면 집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지시하면서 동시에 집 문 앞이나 자동차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红旗)를 달 것을 권고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가 전면적인 전쟁으로 돌입한 것을 생각하면 유사시 대피 사항이나 철수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라서 중국대사관의 이 같은 자국민 보호 전략은 다소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국대사관의 공지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서방 진영을 상대로 한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과 밀월관계가 탄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즉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러시아는 확실히 중국인을 자신의 편으로 여겨서 총을 쏘는 일은 없으리라 보았던 것이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러시아가 대승할 것이라는 예상은 중국인을 서둘러 대피시키기보다는 점령군인 러시아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천 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러시아의 정규군은 수일 안에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을 점령할 것이고, 혹시라도 시가전이 발생한다면 러시아군이 중국인들에게 발포하지 않도록 특별한 조치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고안해 낸 아이디어는 오성홍기를 달아 중국인임을 나타내는 일이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성홍기가 러시아군에게서 안전을 제공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였다. 중국중앙TV(CCTV)의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는 오성홍기가 동이 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오성홍기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종이에다 색연필과 심지어 립스틱을 이용해 오성홍기를 서둘러 그리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이 같은 언론 보도에 중국인들은 중국의 역량이 과시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죽음의 전쟁터에서 자국의 국기를 거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중국인들에게 오성홍기 부착은 마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죽음의 위기를 넘긴 것(출 12:21-23)처럼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부정적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대사관은 오성홍기를 달 것을 권고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6천 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 거주 중국인들에게 긴급히 별도의 공지를 보냈다. 내용인즉슨 “우크라이나 국민과 우호적으로 지내야 하며 사소한 문제로 다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면서 “중국인 신분이 드러나는 표식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고 강조했다. 오성홍기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는 적대적인 세력에 동조하는 표식으로 인식될 우려를 나타낸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미사일과 포사격을 피해 지하철 대피소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국민 가운데는 동양인의 경우 중국인 여부를 물어서 중국인의 입장을 거부하는 일도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호한 중국의 입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으며 미국과 E.U.의 강력한 경제제재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외환결제시스템은 막히게 되었고, 정상적인 수출입 절차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 사업하던 서방의 주요 기업들은 문을 닫았다.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올여름까지 끌고 간다면 러시아는 빵 한 개를 사기 위해 100미터씩 줄을 서곤 했던 구소련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중국은 서방세계의 제재를 비난했지만 그렇다고 러시아가 기대하는 만큼 우크라이나 침공을 적극 찬성하지도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월 26일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아날레나 베어복(Annalena Baerbock) 독일 외교장관과 전화통화에서 미국과 E.U.가 중심이 된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를 지지하지 않으며, 국제법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 제재는 더욱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5차례 동진 확대 상황에서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요구를 적절히 처리해야 하며 모든 국가의 정당한 우려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덧붙임으로써 러시아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 보였다.
전쟁 초반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지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다국적 평화유지군 결성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무력사용 권한 부여 및 제재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서방국가와는 다른 입장 차이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안보적 지지를 말할 수는 있어도 대놓고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에 대한 지원은 곧 중국이 경제제재의 대상 국가가 되어 그동안 일궈놓은 경제발전을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0일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을 때 당초 예상했던 것과 달리 왕이 부장의 입에서는 어떠한 지지 발언도 나오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화회담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대규모 인도적 위기를 막기 위한 러시아 및 각국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힘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옹호도 비난도 하지 않은 채 중립적인 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러시아는 중국의 동맹일까? 한때 화제가 되었던 된 씨스타 소유와 정기고의 듀엣곡 ‘썸’이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때로는 친구 같다는 말이/ 괜히 요즘 난 듣기 싫어졌어/ 너 요즘 너 별로야 너 별로야/ 나 근데 난 너뿐이야/ 난 너뿐이야/ 분명하게 내게 선을 그어줘/ 자꾸 뒤로 빼지 말고/ 날 사랑한다 고백해 줘 이 가사를 빌려서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비유하자면 ‘동맹인 듯, 동맹 아닌, 동맹 같은 너’로 표현할 수 있다. 아니 이보다 더 두 나라의 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처럼 서로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낼 것 같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필요에 따라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는 정치적 ‘썸’을 타는 관계로 보면 된다. 왜냐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국경을 맞댄 지역이 적지 않고 두 나라 모두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바람에 과거 역사에서 영토분쟁을 수차례 겪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를 무너트린 레닌과 사회주의 사상은 중국공산주의 설립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며 서구자본주의에 맞서 동지애를 발휘한 흔적 또한 적지 않다.
1925년 소련에서 만든 무성 만화 영화 <화염 속 중국>(China in Flames)은 당시 서구 열강들에 짓밟혔던 중국의 상황과 중국공산당을 지원하는 소련과의 우호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1차 국공합작이 진행되었던 시기라 양국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민족주의 혁명가인 쑨원(孙文)은 국민당이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받는 대중적 정당으로 확대되기를 원했고 소련의 코민테른(Comintern)은 당시 소수였던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들어가 세력을 넓히기를 바라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서구제국주의 열강에 저항하기 위해 소련과 중국이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만리장성에 흠을 내서 들어오는 기독교 선교사의 모습도 있다. 머리에는 가톨릭 신부가 쓰는 듯한 커다란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가슴에는 십자가를 걸고 있다. 서구 열강을 대표하는 미국은 코가 높고 거대한 배불뚝이 몸에 얼굴은 볼살이 터질 듯 탐욕스러운 캐릭터로 묘사함으로써 서구제국주의자들이 돈과 종교 그리고 무력을 이용하여 중국을 침탈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곧 소비에트 노동자들의 투쟁임을 주장하며 끝을 맺는다.
이념의 공유를 통한 시작은 좋았지만, 역사는 바뀌고 현실은 과거보다 강한 법이다. 마오쩌둥(毛泽东)은 소련이 아무르강과 우수리강 일대를 자신의 영토의 일부로 여기며 항행권과 자원 채굴권을 주장하자 이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며 중국은 더는 러시아의 기회주의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중히 선언하기도 했다. 1968년 1월에는 두 나라의 국경수비대가 무력 충돌을 빚었고 그 결과 몇 사람의 중국 민간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69년 3월, 또 한 차례의 충돌이 얼어붙은 우수리강의 섬에서 벌어졌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는 강의 특성으로 인해 양국 간의 충돌 위험은 늘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현재도 ‘아무르(Amur)’강을 ‘헤이룽(黑龙)’강이라 부르며 소유권 논쟁에서 결코 물러설 뜻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덩샤오핑(邓少平) 시절은 중국이 소련에게 이식된 공산주의로 인해 문화혁명이 일어났음을 인식하고 소련과 이념적 거리 두기를 시작한 때였다. 1984년 12월 7일자 중국 인민일보에는 ‘마르크스, 레닌의 이론은 현대의 역사발전을 저해한다’는 충격적인 사설이 실리기도 했다. 개혁개방정책을 펼쳤던 덩샤오핑의 대 소련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약자중심의 윤리관이 필요한 중국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러시아의 주장에 암묵적 지지를 보이는 데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속내가 미국과 나토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데 있음을 알고 있고, 군사와 경제 분야에서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중국으로서는 러시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미국과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와 세계는 결코 약자를 침공한 푸틴을 동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푸틴은 연설에서 틈틈이 성경을 인용하지만, 정작 성경은 약자를 돌보는 약자중심의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푸틴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고아와 과부는 어쩔 것인가? 포탄에 집을 잃고 나그네가 된 우크라이나의 난민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부르짖음에 분노하는 분이시며(출 22:22-24)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신 10:18)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진 | 바이두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