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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통권 202호  필자 : 김영철  |  조회 : 4466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大象席地而坐, An Elephant Sitting Still, 2018)》
-무기력한 현실과 머나먼 이상

이 영화는중국 대륙의 젊은 신예감독 후보(胡波, 1988년 7월 20일-2017년 10월 12일)의 첫 장편 영화이면서 유작이다. 후보는 산동성 지난시 출신으로 베이징영화대학(北京电影学院) 감독학과를 졸업하였다. 본 영화의 원작이자 동명소설 《코끼리는 그곳에 있다(大象席地而坐)》는 소설집 《대열(大裂)》에 실렸고, 《대열》은 2016년 제6회 대만 세계화문영화소설(世界华文电影小说)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제55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马奖)에서 최우수 영화상과 각본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고한 감독 후보의 어머니는 웨이부(韦布) 역을 맡은 배우 펑위창(彭昱畅)의 부축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는 수상의 말을 전했다. 세계적인 대만 감독 리안은 진마장 최고 작품상을 시상할 때 감독의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싶다고 밝혀 청중에게 감동을 선사하였다. 25일간 하루에 3시간씩, 몽롱한 영상을 담아내기 위해 새벽과 황혼 무렵 촬영을 강행한 이 영화는 러닝타임 230분으로 편집되었다. 감독은 여의치 않은 조건에서도 연출과 원작의 각색, 편집을 도맡아 하면서 그의 재능과 열정을 쏟았다.

왕샤오솨이(王小帅)와 류쉔(刘璇) 부부가 이 영화의 제작과 프로듀서를 맡았다. 왕샤오솨이는 1989년 베이징영화대학을 졸업한 제6세대 대표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독립영화로 2001년 《북경 자전거(Beijing Bicycle, 十七岁的单车)》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프로듀서인 왕샤오솨이는 대본을 보고 감독에게 영화의 후반부 수정을 요구하였지만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제작사는 영화가 가정과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파헤쳐 영화의 분위기가 침울하고 상영시간 또한 길어서 영화관 상영을 고려하여 짧은 편집본을 요구했지만 감독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제작사는 후보의 감독직 해약과 편집에서 손을 떼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후보는 영화판권 소송에 휘말려 결국 29세의 젊은 나이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제작사는 감독이 죽고 나서 감독이 편집한 버전을 고수하기로 하고 판권과 수입을 감독의 부모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하였다.

영화는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4명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고등학생 웨이부(韦布, 彭昱畅 분)는 아버지에게 아침부터 욕을 먹고 학교에 갔다. 그는 학교에서 일진인 위솨이(于帅, 张小龙 분)가 친구를 괴롭히는 것을 손으로 제지하다가 위솨이가 계단에 넘어지면서 학교에는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웨이부는 도망을 갔다. 웨이부의 동기생 황링(黄玲, 王玉雯 분)은 이혼한 어머니와 둘이 사는데 화장실의 누수 때문에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황링은 학교 부주임과 스캔들에 휘말리고 이를 알게 된 부주임의 부인이 집에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자 황링은 집을 뛰쳐나왔다. 위솨이의 친형인 조폭 위청(于城, 章宇 분)은 좋아하는 여성에게 거절을 당하자 절친한 친구의 여자와 잠을 자고, 이를 발견한 친구는 위청 눈앞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웨이부의 이웃인 노인 왕진(王金, 李从喜 분)은 출세를 꿈꾸는 아들과 며느리가 딸의 학교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한다며 왕진에게 양로원에 들어가기를 독촉하였다. 이 4명의 남녀 주인공은 멀리 내몽골자치구 만저우리(满洲里)에 있는 이상한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이 영화 속에 담긴 정감은 절망, 사랑, 희망 등 다양한 편이다. 세대와 남녀, 서로 다른 인물들이 삶의 벼랑 끝에 서서 하루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아 주인공들이 오랫동안 그들을 억압했던 감정과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였다.
 

 


수렁에 빠진 절대고독
현대 도시인은 가정과 사회 어느 곳곳에서나 불안감에 자주 휩싸인다고 한다. 사회의 위기는 가정의 위기이며 가정의 위기는 사회의 위기이다. 곤경에 처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정에서 위로를 받지도 못할 뿐 아니라 가족에게 상처를 받고는 한다. 위청, 웨이부, 황링, 왕진 이들 4명 모두는 가정에서 불화를 겪었다. 자식은 부모에게 따뜻한 온정을 느끼지 못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딸을 좋은 학군에 보내기 위해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왕진을 양로원에 보내려고 하였다. 왕진은 양로원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이사를 미루었다. 왕진은 어느 날 자신이 아끼던 강아지가 큰개에게 물려서 죽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양로원에 들어갈 상황이 되었다. 퇴역군인인 왕진은 아들이 성공해도 자식에게 부모에 대한 존경이나 효도를 바라지도 못하고, 이사의 걸림돌이 된 존재로 전락하였다. 애완견이나 유기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늙은 부모와 노인에 대한 감독의 잔잔한 애련의 정이 묻어났다.

웨이부는 전직 경찰인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고 학교에 가지만 학고에서는 일진에게 시달리고, 선생님에게서는 경멸을 당하고, 짝사랑하는 황링마저 선생님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위청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거절을 당하자 친구의 여자를 탐냈다. 부모는 자식을 분노의 출구로 삼고, 선생은 학생을 삐뚤어진 길로 인도하고, 친구는 우정을 배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학생, 청년, 노인은 자식과 부모, 스승과 제자, 연인과 부부, 친구 관계에서 안정감이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온갖 불신만이 팽배한 세상을 만났다.

가학과 자학
강자는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약자는 더 약한 자를 찾는다. 피해자는 가해자로 전락되고 폭력이 처음엔 일방적이었다가 후에 전파되어 확산된다. 암표상은 가짜 기차표를 팔고도 버젓이 돌려주지 않았다. 웨이부는 환불을 요구하다가 조폭에게 구타를 당하고 자신을 추격하는 위청의 일행을 피하기 위해서 사려고 한 만저우리행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궁지에 몰린 약자는 갈취를 당했다.

할아버지 왕진은 집은 비록 자신의 소유지만 아들과 며느리 손녀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비좁은 베란다에서 잠을 자는 모습은 관객에게 마치 큰개가 왕진의 강아지를 물어 죽인 상황만큼 측은하고 잔인하게 보였다. 왕진은 큰개의 주인을 찾아갔지만 주인은 죽은 강아지 값을 얼마나 요구하느냐며 따졌다. 조폭이 왕진을 협박하고 있을 때 아들은 딸을 안고 그냥 사라지고, 며느리는 경찰에 신고할지를 물어볼 뿐이다. 큰개를 키우는 주인은 다른 개의 죽음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며, 자식은 부모의 안위에 방관자일 따름이다.

웨이부의 아버지는 전직 경찰인데 뇌물을 받아 해고를 당하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서 집에서 지낸다. 아들의 몸과 방에서 악취가 난다며 핀잔을 주며 집의 돈을 가져갔다고 의심하였다. 황링의 어머니는 방문 판매원 생활을 하며 겪는 수모와 불행한 결혼을 딸에 대한 욕설로 분출하였다. 어머니는 아들 위솨이를 다치게 한 범인을 빨리 찾아오라고 형인 위청을 나무라고 아버지는 위청에게 발길질을 하였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가까운 이에게 드러내지만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더 깊어만 갔다. 관계 속의 냉담과 소홀함이라는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청은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하자 분풀이로 친구의 아내를 이용하였다. 자신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을 예전 여자 친구가 만나주지 않아서라고 핑계를 댔다. 고등학교 부주임은 황링에게 어렸을 때 어떤 학생이 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무섭다고 느끼다가 자꾸 보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부주임은 보다 좋은 곳으로 이직하려고 했는데, 자신과 제자 황링이 찍힌 부적절한 동영상이 학교에 유포되면서 좌절에 빠졌다. 부주임은 그 책임을 황링에게 전가하였다. 부주임은 웨이부에게 졸업한 뒤 너희 태반은 시장니아 노점에서 꼬치구이나 팔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사실 부주임이 황링과 학생들에게 대하는 가학적인 태도는 부주임 자신에 대한 냉소와 조롱으로 보인다.

분노의 절규
인간 내면에 억눌린 감정은 분출되기 마련이다. 웨이부가 학교 일진에게 가한 상해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모독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웨이부는 친구 리카이가 학교 일진 위솨이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을 돕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뇌물 수수자란 말을 듣고 모욕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자와의 일탈이 고등학교 부주임의 부인에게 알려져 부인은 황링의 집에 찾아와 욕설을 퍼부었다. 황링은 자신과 그녀의 어머니를 욕하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무력으로 맞섰다.

웨이부는 유일하게 의지했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황링과 함께 만저우리로 가려고 산 기차표는 암표상에게 사기당하고, 좋아하는 여학생은 학교 선생님에게 농락을 당했다. 청소년의 억눌린 감정은 사회의 잠재적 불안이 될 수 있다. 웨이부는 억눌린 감정을 길가의 낯선 사람에게 터뜨렸다. 한 노인이 펜스 밖으로 떨어진 제기를 마침 길에 있는 웨이부에게 주워달라고 부탁하자 웨이부는 제기를 돌려주지 않고 노인에게 맞대고 욕하면서 분풀이를 하였다. 인간의 내면에 억눌린 감정은 때론 피해자를 가해자로 전락하게 한다.

웨이부의 친구 리카이가 위청에게 가한 총격은 관객에게 위청의 우정에 대한 배신과 부도덕에 대한 심판처럼 보이게 한다. 위청은 친구의 죽음을 궁핍한 생계와 예전 여자 친구의 몰인정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죽은 친구의 아내와 예전의 여자 친구가 이 말을 듣고 위청에게 보인 반응은 냉대와 조소일 뿐이었다. 이것은 위청이 주변인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현실에 대한 무기력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헌 현실에 불안해하고 세상에 분노하였다. 영웅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불완전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투영하였다.


사랑과 이상을 좇아서

위청은 동생을 다치게 한 웨이부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다녔지만 자신의 동생 위솨이에게 괴롭힘을 당한 웨이부를 이해하게 되었다. 웨이부를 용서하고 자살한 친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친구가 자살할 때 현장에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위청은 우정에 대한 배신과 불륜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싶었다.

황링의 어머니는 부주임의 아내가 집을 찾아와 소란을 피울 때 적극 나서서 황링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평소 딸에게 욕설을 퍼붓던 어머니지만 궁지에 몰린 자식을 지켜주는 모습에서 끈끈한 모정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불안으로 도피처를 구했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들은 재개발을 앞둔 잿빛 공업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만저우(滿洲)에는 땅바닥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코끼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새로운 곳을 동경하여 함께 떠나기로 하였다. 영화 후반부에 위청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서 제기를 차고 있을 때 버스 전조등의 어슴푸레한 불빛 속에서 코끼리의 고통스러운 것 같은 크고 긴 울음소리를 들었다.

원작소설의 후반부에는 위청은 화롄(花莲)동물원에 도착하여 코끼리의 부러진 뒷다리를 발견하고 코끼리를 안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코끼리의 코가 위청의 몸을 휘감고 바닥에 누운 그를 발로 누르려고 하였다. 소설은 대만에 있는 화롄의 동물원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소문이라고 말할 뿐 실존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여 주었다. 게다가 이상향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소설에서 위청은 코끼리를 만나서 생명의 위협을 당한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에 몽롱한 상태에서 코끼리 소리를 들어서 이상향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였다.

펑샤오강(강冯小刚) 감독의 영화 《노포아(老炮儿)》에서 주인공은 도심의 부잣집 새장 속에서 탈출한 아프리카의 타조가 차들이 가득한 큰길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고 어서 도망치라고 외쳤다. 코끼리와 타조는 곤경에 빠진 현대 도시인들을 상징하였다. 또 영화의 제목도 여러 번 바뀌어 ‘황금양털(金羊毛)’, ‘사랑은 벚꽃 만개할 때(爱在樱花盛开时)’라는 이름도 있다. 제작자는 영화의 제목에 사랑이라는 글자를 추가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감독은 원제목 《털썩 주저앉은 코끼리 (大象席地而坐)》을 고집하였다. 소설 속의 코끼리는 육중하고 다리가 부러져서 설 수 없는 기형상태이다. 꿈속에 그리던 코끼리는 정상생활이 불가능한 비극적인 존재이다.

감독은 신장 189cm의 거구에 대학입학시험도 2년간 도전해서 결국 자신이 원하던 베이징영화대학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그의 꿈은 현실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영화 속에 일어서지 못하는 코끼리는 감독 자신을 비유하거나 예견할 수도 있다. 독립영화로 성공한 중국 영화계의 거장 왕샤오솨이는 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젊은 영화인과 4시간짜리 러닝타임과 어두운 사회의 현실을 담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를 편집할 때 갈등을 겪었지만 감독의 죽음으로 갈등의 상처는 봉합되었다. 대만영화제 진마장에서 최우수 작품상의 영예가 영화 스태프나 가족에게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는지는 가늠하지 쉽지 않다.

중국은 1993년 천카이거(陈凯歌) 감독이 《패왕별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한국 언론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한국영화 100주년에 주는 선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봉준호 감독은 아시아에서 중국의 장이머우(張藝謀),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뿐만 아니라 한국 감독에게도 주목해주길 주문해주길 바랬다. 재능 있는 중국 감독의 요절을 추념하며, 천만 관객시대에 양분화된 한국 영화계에서 척박한 노정 속에 분투하는 젊은 독립영화 예술인에게 따뜻한 격려와 아낌없는 지원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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