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도 먼저 질문에 답하기 전에 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만약 많은 선교사들이 이미 그곳에 자생적으로 전도를 하는 교회가 있고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고 모두 선교지에서 뼈를 묻기까지 중복되고 경쟁하는 전도(이미 생명력 있는 교회와 성경이 있다고 가정하고)를 한다면 과연 그 선교사들은 어떤 결과를 보게 될까요?
저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가진 중국과 인도라는 선교현장에서 다년간 사역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선교역사에서 볼 때,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말하는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로서 자신 있게 그 결과를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현지교회들은 선교사와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유지되는 매우 의존적이고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없는 병든 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여기에 이해를 돕는 좋은 일화가 있습니다. “한 곤충학자가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하는 과정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어요. 나비로 태어나기 위해 고치 사이의 좁은 틈을 뚫고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어요. 그 모습이 하도 가련하고 안타까워 그는 가위로 잘라서 틈을 더 벌려주었어요. 그러자 나비는 쉽게 고치에서 빠져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어요. 고치를 쉽게 빠져 나온 나비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날개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그냥 날개 짓도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땅바닥을 버둥거리고 다니던 나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죽어버렸어요.”
곤충학자는 그 비운의 나비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비가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안쓰러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힘든 일이 나비에게는 날개에 힘을 기르는 필연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나비는 세상에 나오기 전 오랜 시간 힘을 쓰면서 날개에 있는 혈관으로 충분한 양의 혈액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날개가 튼튼해져 평생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값싼 동정심이 나비에게는 치명적인 재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를 가까운 선교역사를 통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중국교회가 자생적인 교회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환점은 1949년 중국이 공산화하면서,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외부의 도움이 끊기고 고난과 핍박 가운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자생적인 교회로 변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모든 선교사들이 강제로 추방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와 필리핀과 같이 비교적 자유롭게 선교가 진행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상황을 보면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그 엄청난 물량공세와 수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서로 경쟁하고 중복된 사역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연약한 교회로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많은 한국교회들이 올바른 선교관의 정립 없이, 단순히 교회 성도들이 여름과 겨울에 단기사역을 하기에 편리한 지역들을 중심으로, 선교사들을 중복적으로 파송하여, 개 교회 중심적이고 독단적이며 자신들의 교회를 알리는 선교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한국교회로부터 엄청난 후원금을 끌어와 학교와 선교센터와 교회는 지었지만, 현지 사역자들을 키워 그들한테 지도력을 이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터줏대감처럼 현지 사역자들을 데리고 장기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20여년 전 필리핀교회들이 “제발 한국선교사들은 필리핀을 떠나라”라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기까지 하였겠습니까?
질문의 답으로 돌아와서, 이제 한국교회는 올바른 교회관과 더불어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선교관을 정립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선교사가 선교지에 뼈를 묻기까지 그 현지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남아서, 그 현지교회를 돌보고 그 민족을 전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물론 한때 선교사는 선교지에 뼈를 묻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편리한 교통과 발전된 의료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선교사들이 선교지를 향해 떠났던 부두는 정말, 말 그대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선교사를 위해 부모와 친구, 그리고 교우들이 눈물로 송별하는 자리였습니다.
간혹 선교사들은 여행가방 대신에 무거운 관을 짜서 거기에 자신의 필요한 물품을 담아 선교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이름 모를 풍토병과 종교적 박해 그리고 장거리 여행 중 잦은 사고로 말미암아 순교하게 되면, 바로 그 짐가방 대신 사용했던 관에 담겨 고국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열악했던 선교현장에서 선교사들의 생존 기간은 짧았고, 그래서 의례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는 그곳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떠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열악했던 선교지 상황은 100여년 전 조선 땅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만약 내게 천 개의 목숨이 있다면 조선인에게 모두 주어야 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08년 8월 15일 조선땅에 온지 1년 만에 25살의 꽃다운 나이로 양화진 한강변에 묻힌 ‘루비 켄드릭’이라는 젊은 여성선교사의 경우는 그 당시 척박했던 조선의 선교 상황을 우리에게 잘 알려줍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본국을 방문할 수 있고 큰 위험 부담 없이 전략적으로 선교지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나라마다 기본 의료시설들이 있고 세계화로 말미암아 필요한 기본 생필품들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제 평균 선교사의 수명이 70을 훌쩍 넘었고 이렇게 생존 기간이 길어진 선교사들이 한 곳에 오래 남아 사역을 계속하게 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선교현장에서 많은 부작용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물론 선교역사 속에는 선교사가 추방됨으로 교회가 잠시 존재했다가 사라진 경우들도 더러 있습니다. 대표되는 경우가 중국 당나라 때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이 ‘경교(景教)’라는 이름으로 중국 장안(长安)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교회일 것입니다. 왜 교회가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졌을까요? 선교사가 추방되었기 때문일까요?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중국황실의 극심한 핍박에서 찾을 수 있지만, 보다 본질이 되는 이유는 불교와 구분하기 어려운 지나친 토착화로 인한 기독교 교리의 변질과 순수 토착민으로 구성된 자생력 있는 교회가 없었고, 그리고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야 하는 시점을 단정적으로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생적인 교회를 세우고 그 민족의 언어로 된 성경을 번역해 주는 것은 선교사가 선교지를 언제 떠나야 하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사가 떠나면 교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교사가 적당한 때가 되면 선교지를 떠나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선교의 목적이 그 민족의 인구 100%를 전도하는 데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민족복음화는 선교사의 몫이 아니라 선교를 받은 민족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중세 유럽에서 천주교 선교사가 국왕을 천주교로 개종시킴과 동시에 국가의 종교가 되어 모든 백성이 의무적으로 천주교인이 된 사례들이 있지만 결국 명목상의 천주교인들만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란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자생적인 교회가 세워지도록 그리고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 번역되도록 그 민족을 돕는 것이고 때가 되면 모든 지도력을 현지 지도자들에게 이양하고 떠나는 것이다.”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현실 문제들도 있습니다. 가령 중국 같은 경우에는 공식적인 한국인선교사의 숫자만 해도 5천 명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만일 이들 모두가 한꺼번에 선교지를 변경한다면 중국과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의 선교지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탁상공론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능한 해결책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는 미전도종족한테 관심을 돌려 선교사를 파송하며 또 선교사들도 중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지도력을 제자들한테 이양하고 순차적으로 미전도족속을 향해 나아 가든지 혹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연약한 화교교회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든든히 세워 세계선교를 함께 감당하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교의 정의를 내린다면, 선교란 자문화권이냐 혹은 타문화권이냐가 아니고 국내냐 해외냐의 차이도 아닙니다. 그리고 한민족이냐 타민족이냐의 차이, 심지어 한국어냐 외국어냐의 차이도 아닙니다. 좁은 의미에서 선교란 스스로 자신들의 민족 안에 자생적인 교회를 세울 수 없고,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수 없는 민족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더불어 선교사란 스스로 교회를 세울 수 없고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없는 민족한테 가서 복음을 전하여 자생력 있는 교회를 세우고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주고 때가 되면 지도력을 현지 일꾼에게 이양하고 바울처럼 떠나는 사람인 것입니다.
‘왜 모든 민족에게 선교를 해야 할까?’
이제 마지막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요한계시록 7: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 구원하심이 보좌에 않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는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계시록’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모든 사람들이 국가와 백성과 방언의 기초인 ‘민족’ 단위로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올려 드릴 것이라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들이 생명책과 각자의 행위들이 적힌 책들을 따라 상벌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주님은 세상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의 방언으로 올려드리는 찬양을 받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선교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지 못한 어떤 분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적이 있습니다. “투자 대비 단기간에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민족을 대상으로 선교를 해야지 왜 엄청난 투자와 시간에 비해 구원받는 수가 적은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선교를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접근이 용이하고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거의 모든 큰 규모의 민족들은 이미 자생적인 교회와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사역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선교를 하는 선교사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설령 그 민족의 수가 아무리 적고 또 선교하기가 지극히 어렵다(티베트 불교권,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무슬림권, 외딴섬과 오지 그리고 밀림의 미전도소수민족 등등) 하더라도 그 민족 안에 아직 교회와 성경이 없다면, 그 민족도 반드시 마지막 날에는 주님 앞에 서서 우리 주님이 그 민족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놀라운 사랑과 그 큰 은혜를 그들의 언어로 찬양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며 바로 그것을 당신과 나의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 모든 민족에게 선교를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면 슬픔과 아픔과 죄와 죽음이 가득한 이 세상이 끝나고 우리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면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시겠다고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기 때문에 그 민족의 규모와 숫자에 상관없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 교회가 없고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책 혹은 성경음성 파일이 없는 280여 미전도종족이 지금도 자신들한테 복음을 전해줄 전도자가 오기를 신음하며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엄중하고 절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선교사의 90% 이상이 이미 교회와 성경이 있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많은 한국교회들이 편중된 지역에 과잉투자 혹은 중복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지역에 편중된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들의 중복된 과잉투자는 그동안의 엄청난 수고와 헌신으로 수많은 선교 현장의 귀한 열매들을 맺어온 한국 선교 역사의 밝은 면을 점점 어둡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선교 현장에서 서로 협력해야 할 선교사들간에 사역지가 중복됨으로 인한 경쟁과 갈등 그리고 현지 사역자를 중간에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고, 현지 사역자는 더 많은 사역비를 쫓아 선교사를 바꾸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편중, 과잉, 중복된 선교는 결국 현지 교회로 하여금 자치와 자전 그리고 자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고 결국 날지 못하고 죽은 나비와 같이 자생력 없는 교회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여전히 복음을 듣지 못해 어둠 가운데 앉아 있는 미전도종족들에게는 무관심한 채로 우리가 원하는 선교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속한다면 우리는 결국 주님의 다시 오심을 훼방하는 악하고 무익한 종들로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례들 중 하나를 나누며 이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를 은퇴하고 남은 인생(실버선교)을 선교에 헌신하기 위해 인도 서남부지역으로 오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언어적 준비와 현지 문화적응이 안된 상황에서 선교적 열심히 앞선 나머지 부교역자처럼 현지 목회자를 앞세워, 현지 지역교회 목사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그중에 몇몇 목사를 선정해서 교회건물을 지어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나는 영어를 못해도 이미 교회를 50개나 건축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비자정책이 강화되면서 그분은 더 이상 인도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훈련되지 못한 현지 목회자의 문제점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세워진 몇몇 교회건물들은 다른 용도로 전용되었습니다.
위 사례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열정과 헌신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럼 언어와 문화이해의 부족일까요? 이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꼭 언어를 능통해야 사역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문제는 올바른 선교관의 정립이 없이 마치 한국교회에서 목회하듯이 선교를 하려고 했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교현장에 있는 사역자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것은 선교현장이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자발급 문제가 더 까다로워지고 있고, 현지 물가는 급등하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더 완악해지고 종교 사이의 대립은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선교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선교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성삼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정하신 정확한 때에 당신의 아들의 피로 구속된 모든 민족들로부터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까지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통해 당신의 선교를 반드시 완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은 주님이 당신의 선교를 위해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초청하셨고 함께 이 일을 이루기를 기뻐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된 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그분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충성, 동료들과 겸손한 협력, 지혜로운 전략, 충분한 언어의 준비와 문화의 이해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올바른 선교관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88년을 기점으로 2018년이면 30년이 됩니다. 헌신과 열정으로만 가득차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지로 달려나갔던 한국교회와 선교사가 아니라 보다 올바른 선교관을 정립한 성숙된 한국교회와 선교사가 되어 이제 막 선교현장으로 달려오고 있는 젊고 패기 있는 중국선교사와 동남아권선교사들을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그들과 함께 협력하는 선교를 잘 감당하는 선교한국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사무엘 |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