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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고 싱그러운 달, 6월이 되었습니다. 『중주』가족 여러분에게 6월의 싱싱하고 싱그러움이 가득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가정, 일터, 교회, 사역, 모두에 말입니다. 중국선교 동역자들의 ‘단체카톡방’에 들어갈 때마다 활기와 우애가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중국선교 활동 전반이 싱싱하고 싱그럽기에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푸르고, 더 싱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입니다.
중국, 순교자 연구가 활성화되었으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평소에도 그래야 하지만, 6월이 되면 우리는 호국영령들과 전몰장병들을 더 깊이 추모하게 됩니다. 크리스천들은 이 일에도 모범적이어야 합니다. 좋은 크리스천은 좋은 국민이 되어야 하니까요. 애국에 앞장서는 것은 한국교회의 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기독교 = 애국’, 이렇게 등식화(等式化)시켜 놓은 분도 있습니다. 참 중국도 ‘애국애교(爱国爱教)’를 강조하고 있군요. 교회는 또 순교자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교부의 말처럼, 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 위에 서 있습니다.
중국교회에도 많은 순교의 피가 어려 있습니다
먼저 순교를 당한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1899년에 일어난 의화단의 난 때 189명의 선교사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의화단의 난을 ‘종교전쟁’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중국 한교(中国汉教)’와 외래 기독교가 충돌하는 가운데 한교를 보호하고, 양교에 반대〔保汉教, 反洋教〕하는 것이 의화단 운동의 중요 목적의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은 한국 선교사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1935년 1월에 호림현(虎林县) 오소리강변에서 순교한 한경희(韩敬禧) 목사님입니다. 한 목사님의 아들은 한순옥(韩淳玉) 목사인데 이 분은 북한에서 목회하다가 6․25 전쟁 시기, 역시 순교 당했습니다. 한순옥 목사의 아들 역시 남한의 선교방송을 들은 것이 문제가 되어 처형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목사님의 가정은 ‘3대 순교 가문’이라는 명예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또, 순교를 당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때 희생당한 성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교회사에 대한 연구는 많이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순교자들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선교는 백색순교의 길
요즘 한국교회는 ‘순교라는 말을 신중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이 있고, 순교자와 관련된 단체들이 몇 있지만 순교의 정의, 순교자의 범위, 이런 것들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순직자들에게도 순교라는 말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장 통합측은 지난 2012년, 제99회 총회에서 순직자 제도를 확정했고, 이어 2014년, 제99회 총회에서는 ‘순교자 추서 규정’을 제정했습니다. 이 규정을 보면, 순교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박해 받아 죽은 성도’라고 정의했고, 순교자 추서 신청은 사후 7년이 지난 다음에 가능하고,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재 예장 통합측에서 6․25 전쟁 이후 공식적으로 추서된 순교자는 배형규 목사 한 분뿐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배형규 목사는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게 피랍되어 목숨을 잃은 분입니다. 배형규 목사는 제주가 고향인데 제주에 있는 이기풍선교기념관에는 그의 순교비가 서 있습니다.
순교 논의와 관련하여 ‘백색순교’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도 이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한 교회사가(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해 “‘백색순교’(white martyrdom)란 피를 흘리는 ‘적색순교’(red martyrdom)와 비교해서 붙인 용어로 박해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순교가 아니라 자연적 생명을 살면서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 자기 안의 정욕과 탐욕을 죽이며 그리스도의 완전성화를 이루어가는 신앙적 삶을 의미한다. 붉은 피와 대비하여 무명의 투명의 눈물과 땀을 흘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백색’이란 단어를 사용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백색순교는 전도를 하며 경건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백색순교에 이어지는 적색순교가 참다운 순교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백색순교의 삶을 사는 분들입니다. 많은 제약이 따르는 가운데 성실한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중국선교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6월에 그분들께 머리를 깊이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좀 특별한 마음으로 중국선교를!
한 집회의 설교를 맡아서 오래간만에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 『중국을주께로』 2014년 5/6월호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 책의 특집은 ‘복음의 섬 제주, 중국인 사역’이었는데, 설교 중에 그 잡지를 들어 보이며 제주가 중국복음화를 위해 크게 쓰이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했고, 이 특집의 제목 그대로 제주가 ‘복음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배형규 목사 순교기념비도 찾아보았습니다. 그 비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고초를 겪고 세상을 떠난 이기풍(李基丰) 목사의 순교기념비, 4․3 사건 때 목숨을 잃은 이도종(李道宗) 목사의 순교비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순교를 당한 분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를 당한 분과 한국교회의 새 선교과제인 이슬람 세력에 의해 순교를 당한 분의 순교기념비가 한 곳에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이 무척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아세아방송(현재, 제주극동방송)의 직원 아침경건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 건물은 부족한 사람이 초대 본부장으로 있을 때 건축했는데, 건축회사와 계약을 할 때 ‘기초공사를 위해 땅을 팠는데 바위가 나오면 그것을 깨뜨리는 비용 천만 원을 더 지불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돌이 나왔을 것 같습니까? 안 나왔을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직원들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돌이 나왔으면 제가 이런 소리를 안 하지요. 돌이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낸 흙이 좋아서 그것을 팔아 건축회사가 돈을 벌었습니다. 무척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보고 ‘아, 이 건축 순조롭겠구나!’ 자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도우시는 곳입니다. 저는 그것을 참 많이 체험했습니다. 6월 30일이 아세아방송 개국기념일인데 그래서 그 날이 되면 좀 특별한 마음으로 지내곤 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중국선교 전반에 임하는 하나님의 도움을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좀 특별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세아방송 로비에는 ‘여기는 국내 남부 복음화와 북방선교의 큰 터전’이라는 대형 휘호가 걸려 있습니다. 그 휘호에 얽힌 이야기도 했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인데 영웅사관을 반대하고, 무명의 일꾼들에 의해 큰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가면 무명용사비가 있습니다. 그 비에 ‘여기는 민족의 얼이 어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감동적이지요. 저 휘호는 이 건물의 헌당예배에 맞춰 만들어진 것인데 그 문구는, 많이 변형되기는 했지만 무명용사비의 비문에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예가에게 휘호를 부탁하면서, 무명용사 비 앞에 다녀와서 써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교의 무명용사들인데, 여러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으시며 일하시기 바랍니다.”라고요.
이번 호의 특집은 ‘사역자의 언어능력 향상 노하우’입니다. 선교에 있어서 언어 문제는 ‘숙명’과도 같은 것인데 이번 호는 좀 구체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유관지|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