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현대판 고전으로 알려진 『오래된 미래』는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인 헬레나 호지 여사가 쓴 책으로 원제는 ‘Ancient Future'(1992) 입니다. 원제를 우리말 ’오래된 미래’로 번역한 것인데, 출판계에서도 탁월한 번역의 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표현입니다. 

책의 저자인 호지 여사는 1975년 런던대학교 재학 중에 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작은 티베트’으로 불리웠던 히말라야 서쪽의 라다크 마을을 처음 방문합니다. 호지 여사는 이후 이곳에서 10여 년을 살며,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토대로 쓴 책이 바로 『오래된 미래』입니다.

라다크 마을의 환경은 척박하고 기후는 혹독했지만, 사람들은 평온함 속에 과거 천년 이상 번영을 누려온 문화와 역사적 자부심 속에 검소한 생활과 협동의 전통을 이어가며 행복을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 속에 그 지역에도 발전을 명분으로 개발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마음은 자본과 편리 중심의 소비문화에 노출됩니다. 심지어 갑작스러운 서구문화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서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되고 거부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호지 여사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라다크 마을의 사람들이 세계화의 논리 속에 점점 삶의 각박함과 허망함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의 역설만큼이나 라다크 마을의 역설적인 상황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기록해 갑니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라는 저자가 고른 제목의 의미는 ‘앞으로도 미래의 해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과거를 잊지 말고 돌아보라’ 라는 소망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미래의 적용
『오래된 미래』는 선교 사역에도 두 가지 관점을 제공합니다. 첫째는 해아래 새 것이 없다는 순환적 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고 두 번째는 선교적 접근에서 획일적 세계화의 방법보다는 지역적 차별화의 더딤이 장기적으로 유익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작년 가을에 방문한 ‘은내천’ 지역의 소박한 정경과 삶의 여유는 책속의 라다크의 정서를 잠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몇 가정의 순수하면서 동시에 차분한 사역의 정취를 함께 느끼며 며칠을 지내다 오며 이 주제로 글을 좀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 사역에서 있어서 『오래된 미래』 중의 한 방법론은 문서입니다. 초기 중국선교의 시초는 문서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말 쇄국정책과 반외세의 분위기 속에 초기 사역자들은 말레이 반도 말라카에 선교기지를 세우고, 이곳에서 학교와 인쇄소를 함께 일으키며 중국어와 영어로 된 출판물을 공급함으로 첫 사역을 일구어갑니다. 우리나라도 선교초기에 있어 이미 국외에서 성경이 번역되었고, 그렇게 전해진 성경과 신앙문서는 권서인 이라는 이름의 사역자도 등장시키며 활발히 보급, 전개되었습니다.

권할 권(勸)자를 써서 책을 권한다는 의미의 권서인은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쪽복음을 전하기 위해 무거운 ‘복음궤짝’을 지고 부르튼 발로 삼천리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성경을 보급해 나갔습니다. 때로는 산속을 헤매다가 산적이나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한겨울 산골마을 찾아가다 길을 잃고 동상에 걸리는 일은 부지기수였습니다. 글을 모르는 이에게는 한글을 가르쳐서라도 성경을 권하고 팔았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라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곡식이나 생선, 옷과 계란 등을 받고 성경과 교환해 주었습니다. 

당시 영국성서공회의 한국 지부 총무로 활동했던 캔 뮤어는 한국에서의 성서보급의 결과에 대해 “말씀이 읽혀지고 암송되고 있다. 말씀은 이 생기 없고 영감 없는 백성들의 피와 뼈와 살 속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으며, 그들은 반드시 새로운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질 것이다”라고 전망하며 그들의 수고를 인정해주었습니다.

반복되는 새로운 과거
출판전문가 한기호 선생은 ‘읽고 쓰는 능력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 이후 아직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오직 변화되었을 뿐’이라 말하며, 그동안 책자본의 등장, 인쇄술의 발견, 디지털 혁명 등 책의 역사에서 몇 차례 큰 변화를 경험하지만 여전히 읽고 쓰는 책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어 왔음을 지적합니다.

사람의 지식습득과 변화는 해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가장 중요한 사례 중에 하나입니다. 선교역사에 있어서 문서의 역할과 문서사역자의 수고와 열매를 제외하고는 논의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이미 선교의 역사는 문서로 기록되고 전수되어 왔기에 사역의 혼이자 뼈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은내천’ 지역의 특성상 문서와 성경이 물결을 이루어 흘러들어가야 합니다. 자신들의 경전을 중시하고, 낙후된 농촌의 환경에서 작은 쪽복음의 문서는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로부터 쉬운 책들로부터 대상과 지역을 선정하여 맞춤형 보급으로 소리 없이 복음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여전히 권서인이 필요합니다. 농촌의 구석구석과 내지의 한 사람까지 쪽복음을 전하는 심정으로 문서 사역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문서운동가의 출현이 절실합니다. 역사는 단회적이고 일방향적이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모습은 항상 나선형의 상승모습으로 반복되어져 왔습니다.

본토 대륙으로 진입할 수 없을 때 이미 말라카에서 문서 사역은 충분한 진전을 이루며 준비되어갔습니다. ‘은내천’ 지역에서 많은 무슬림들이 이룬 경계의 벽을 확인할 때마다 낙심할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한 권의 책, 한 명의 문서운동가를 준비해 놓을 때 우리는 멀리 있는 오래된 미래를 바로 뒤에 있는 새로운 과거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속한 교회에서 해마다 가을에 선교주간을 정해오며 현지교회를 동원하고, 사역자의 강의를 들으며, 격년으로는 현장도 함께 방문하고 있습니다. 첫해에는 청년들과 함께 첫 사역지를 다녀왔고, 작년 가을에는 당회원들과 함께 마지막 사역지가 될 지역을 답사했습니다. 내년에는 작은 목적 하나를 가지고 현장을 방문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교주간을 늘려 선교의 달, 선교의 해를 꿈꾸어 봅니다. 온 성도와 함께 이 시대의 마지막 권서인의 심정으로 복음의 궤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은내천’ 지역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는 비전을 함께 그리며, 한 발씩 꾸준하게 보조를 맞추어 갈 것입니다. 이곳에 이렇게 글을 나누며, 생각의 씨를 뿌리는 것도 그 다짐과 계획을 흐리지 않고 더욱 견고케 하기 위함입니다.

한 가지 사역을 평가하는 일에는 두 가지 방면에서 살펴야 합니다. 하나는 실제적인 사역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슨 사역을 하려고 했는지 사역의 의도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사역의 성과가 속도를 말한다면 사역의 의도는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역의 의도를 평가할 때는 현장중심으로 필요에 부합하는 방향이었는지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역의 준비와 실행도 두 가지 방면에서 꾸준히 갱신되어야 합니다. 사역의 성과와 사역의 방향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속도와 방향이 함께 가면 좋지만 때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항상 먼저 방향을 선택하자’라고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사역의 항해 중에 있어 우리가 바른 방향의 키만 놓치지 않고 있다면, 영원한 선장되신 그분께서 바람을 불게 하시던 해류를 보내 주시던 결국엔 마지막 도착항까지 인도하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미래이냐 새로운 과거이냐 그 열매는 오롯이 그분께 맡기고 과거의 지혜와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나날이 갱신된 오늘만을 붙들고 나아갑니다. 이 길을 함께 걸어 갈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이관 | 전 중국선교사